의병장 손자, 일본 군국주의 선봉장 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는 한민구 국방장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식물' 박근혜 정부가 결국, 지난해 일본군'위안부' 합의에 이어 또다른 친일매국외교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오는 23일 서울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서명해 정식 발효된다. 지난 2012년 6월 밀실협상으로 추진되다 여론의 저항으로 무산된 지 4년, 지난달 27일 협정 논의 개시 발표 이후 1달도 채 안되는 속전속결이다.
서명 후 공개될 협정문에는 △양국 간 군사정보의 비밀등급 분류, △보호원칙, △정보 열람권자 범위, △정보전달과 파기 방법, △분실훼손 시 대책, △분쟁해결 원칙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감청.영상정보, 인적 네트워크 정보 등을 일본 측에 넘겨주는 것과 비교해 일본 정부가 제공할 정보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미 2014년에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에 따른 내용이 전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은 채, 굴욕적인 첫 한일 군사협정이 되는 것. 이는 일본 아베 정부가 헌법 9조를 고쳐 보통국가화를 선언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 야망이 담긴 재무장의 길을 한국 정부가 열어주게 된 셈이다. 이제 한일 군수지원협정만 체결되면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한반도 진출 가능성은 짙어진다.
이에 주무부처인 한민구 장관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없게 됐다. 의병장의 손자가 일본 군국주의 선봉장이 됐다는 불명예도 함께 안게됐다. 한 장관의 조부인 한봉수 선생은 의병장으로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한봉수 선생은 대한제국군으로 복무하던 중 1907년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의병장 김규환과 함께 일본 헌병대를 습격해 헌병대장을 사살하고 일본군 수송대를 습격했다. 그러다 1910년 체포,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런데, 그런 한봉수 선생이 일제에 체포된 뒤 전향해 다른 거물 의병장을 색출해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도 있다.
의병 연구 대가로 이름이 높은 이태룡 박사는 지난 2014년에 펴낸 책 '한국의병사'에서 "한때 의진(義陣)의 부장이었던 청주 출신 한봉수는 궐석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의병장이 숨은 곳을 가르쳐 줄테니 자신의 죄를 면죄해 달라'고 일본 경찰과 협상을 벌여 경술국치 대사령 이후 재판에서 면소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박사가 공개한 1910년 3월 11일 내부 경부국장이 충청북도 경찰부장 앞으로 보낸 '고비수(高秘收) 제1817호'는 '폭도 소수괴(小首魁) 한봉수가 당국에 사면을 원출(願出)하였다'라고 적혀있다. 거물인 문태서 호남 의병장의 소재를 고발하겠다는 이유였다.
이에 1910년 3월 한봉수는 영동을 출발해 동 군내와 전북 무주, 금산 등을 돌아다니며 문태서 의병장의 소재를 파악하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문태서는 잡히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공로로 한봉수는 대사면을 받았다.
물론, 한봉수의 친일행각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점 때문. 하지만 거물 의병장 색출을 위해 일제와 협력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결국, 한민구 장관의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서명은, 일제 협력 논란이 있음에도, 의병장 조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책임을 물어 오는 30일 한민구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