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아름다운 세상 - 어해도(魚蟹圖)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49)

2016-02-13     심규섭

물 속 생물들을 소재로 한 우리그림들이 있다.
효문자도는 효(孝)라는 한자와 물고기를 결합하여 도덕적이고 교훈적 내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또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삼여도(三魚圖, 三餘圖)는 물고기를 뜻하는 한자 어(魚)와 여유로움을 뜻하는 한자 여(餘)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여 학문을 권장하는 내용을 표현한다.
파도 속에서 잉어가 해를 향해 도약하는 독특한 그림도 있는데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담고 있다.

▲ 좌측-심사정/어약영일/18세기/종이에 먹과 엷은 색/57.6*129cm/간송미술관.
우측-작자 미상/약리도(躍鯉圖·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종이에 먹/62.5×116.5㎝/국립민속박물관. 중국의 잉어그림 등용문과 연결고리가 있지만 조선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킨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다. 잉어는 선비의 상징이고, 파도는 어려움을 뜻하며, 아침 해는 변치 않는 붉은 마음을 뜻한다. 올바른 선비라면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동시에 출세를 향한 욕망을 담고 있는 중의적 그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자료사진 - 심규섭]

물고기에는 다양한 상징이 붙어있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鱖)이라고 하는데 궁궐의 궐(闕)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출세의 상징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새우는 등이 굽은 모양 때문에 바다의 노인이란 뜻의 해로(海老)가 되고, 해로는 다시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해로(偕老)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게를 한자로 해(蟹)라고 하는데, 게의 딱딱한 껍질을 등갑이라고 부르고 1등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니까 주로 과거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백합조개를 대합(大蛤)이라고 하는데 크게 어울린다는 대합(大合)의 의미로 표현한다.

이렇게 다양한 물 속 생물들을 통합하여 표현한 그림을 어해도(魚蟹圖)라고 한다.
어해도의 소재는 거의 모든 물고기와 참게, 조개, 수초와 같은 물속 생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해도는 미학이나 조형적 가치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장한종, 장준량으로 이어지는 화원가문에서 꾸준히 창작되었다. 이것은 선비나 양반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일정한 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사실, 화가 입장에서 본다면 어해도는 복잡하고 어려운 그림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동시에 복잡한 형태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는 상당한 소묘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물고기의 모양이나 생태적 특성을 꼼꼼하게 관찰해서 그려야하며 동시에 물속의 상황을 재미나게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직업 어부가 아닌 화가가 바다고기를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어해도에는 쏘가리, 잉어, 참게, 메기, 자라와 같이 강이나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가 주로 등장한다.

▲ 심주이/어해도/디지털회화/2015.
보통의 어해도는 민물에 사는 생물을 표현하는데 반해 이 그림은 바다의 생물을 그렸다. 중앙에 수석을 넣어 중심을 잡고 여러 해초로 장식했다. 그 주변으로 황해, 동해, 남해에 사는 물고기와 생물들을 동시에 표현하여 좁은 화면을 넓은 시공간으로 확장했다. 사실적인 표현과 채색은 현실감을 높이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이다. 이런 어해도는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상상력을 높인다. 또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우리그림의 미학과도 잘 맞는다. [자료사진 - 심규섭]

미학적 가치가 별로 없는 어해도가 대중그림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길상(吉祥)의 내용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고기는 출세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부부해로, 가족화합, 다산 같은 현실적 욕망을 구현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의 그림에 부귀영화, 불로장생과 관련한 모든 상징을 넣은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이런 비빔밥 같은 그림을 좋아한다.
심지어는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특성을 이용해 자물쇠를 만들기도 했다.

둘째는 백성들의 이상세계가 투영되었다.
다양한 물고기가 헤엄치며 살아가는 물속의 풍경은 인간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백성들은 이런 물속의 공간을 용궁세계로 이해하고 수용했다.
용궁(龍宮)은 용왕이 사는 가상의 세계인데 도교와 민간신앙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물속은 하늘이나 땅보다 아래에 있고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공간이기에 백성들의 정서와 잘 부합한다. [십장생도]에서 표현하는 이상세계가 양반들의 것이라면 물속의 세계는 백성들의 것이었다.
용궁은 별주부전(수궁가, 토생전), 심청가와 같은 대중적 판소리에 등장한다. 물론 이런 판소리는 어해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구체적인 용궁이나 용왕의 묘사는 언제나 시각적 상상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물고기 그림은 선비의 정신적 가치를 담은 수묵화로 출발해 다양한 물속 세계를 표현한 대중적 어해도로 발전한다.
하지만 독립된 형식으로 완성되기 전에 일본식 잉어그림에 가려 사라져 갔다.
 

▲ 화려한 채색화로 그린 일본식 잉어그림이다. 부부화목, 다산, 여유, 출세 따위의 길상을 담은 내용이 중심이고 인문학적 가치는 찾기 어렵다. [자료사진 - 심규섭]

바다는 모든 생명의 발원지이면서 수많이 생물이 살아가는 넓은 공간이다.
세계의 문명은 바다를 통해 연결되고 발전했다. 바다를 장악하는 나라가 세계의 발전을 주도한다.
바다는 상상력이 숨 쉬는 공간이고 그림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 같은 역할을 한다. 바다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 영화나 인어공주 같은 만화는 이미 세계적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진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문화적 가치로 발전할 가능성 높다.
어해도는 매력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그림이다.
세계에는 잉어나 고래, 대형문어 따위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생물을 소재로 한 독특한 미술형식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또한 인문학적 내용을 담은 수묵화부터 대중적인 채색화까지 발전한 그림이다.
어해도는 우리에게 값으로 매기지 못할 만큼 엄청난 영감과 상상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