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수교 50주년 리셉션' 교차 참석
윤병세-기시다, '위안부-정상회담 분리' 합의할 듯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이 올해 가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기류다.
청와대는 21일 오후 "박 대통령이 22일 오후 개최 예정인 한일 수교 50주년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정부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도쿄 '리셉션'에 참석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가 20일자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가 아니"라고 정리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일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는 의회 일정을 들어 행사 참석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양 정상은 22일 저녁 각각 서울과 도쿄 행사에 '수교 50주년' 축하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공식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첫단추를 끼우는 셈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21일 오후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만나 정상회담 개최를 조율했다. 21일자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 3월 21일) 3국 외교장관이 합의한 대로 금년 중 가장 빠른 편리한 시기에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현재 양국간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이 진전을 보아, 향후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이날, 윤 장관은 '위안부' 문제와 정상회담 개최 분리 의향을 밝히고, 기시다 외무상은 △조선인 강제징용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문제, △아베 총리의 8월 '종전 70주년 담화' 관련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여부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여성기금'이나 2012년 3월 '사사에안'에서 보듯,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법적 책임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단기간에 이같은 입장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이 '고노담화' 계승 입장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상황 악화를 막는 한편, 꾸준한 해결 노력을 부각시키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이 최근 '8차에 걸친 국장급 협의에서 위안부 문제 관련 의미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세계유산등재 문제, '종전 70주년 담화'에서는 일본이 '성의'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NHK>는 21일, "기시다 외무상이 윤병세 장관과의 회담 때 '세계 유산 등재 때에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하고 알리라'는 한국 주장을 배려할 의향을 나타내 이에 대한 한국의 동의를 얻고 싶은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종전 70주년) 담화의 내용을 중시하는 대신 형식은 각의 결정을 보류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을 배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문제는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와 연계돼 있다.
중국 정부는 '전승기념일(9.3)'까지 역사 중시 기조를 유지하다가 그 이후 대일관계를 푸는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르면 9월 중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들이 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계기에 박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아베 총리와 양자회담을 가진다는 게, 21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병세 장관의 구상으로 보인다.
9월에는 유엔개발정상회의, 11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APEC), 12월 기후변화정상회의 등이 줄줄이 잡혀 있다.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박 대통령은 하반기 다자회의장에서 아베 총리와 어색하게 조우하는 모양새를 피할 수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한.일관계를 개선하라'고 떠밀리는 곤혹스러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위안부' 문제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연계했던 취임 초 박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