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화목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12)
2015-04-10 심규섭
닭은 오래 전부터 사람에게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친숙한 존재였다. 그래서 닭과 관련한 여러 상징이 붙어 있다. 새벽에 일찍 우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귀신을 쫓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머리의 볏은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보여 관직에 나아가는 출세의 상징이 된다. 또한 닭 우는 소리를 공명이라고 하는데 정치를 통한 공적인 명성을 얻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맨드라미는 닭의 볏과 닮았다는 이유로 닭과 궁합을 이루는 꽃인데 닭과 함께 그려 닭의 볏 위에 관직을 더한다는 허풍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니 귀신을 쫓는 역할이 필요 없었고 출세와 높은 관직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기에 궁중회화의 주요 소재로 궁궐에 입성하는 것은 실패한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고고한 봉황과 학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의 얼굴을 닭과 비슷하게 표현하는 호사를 누리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닭은 낙향하여 출세를 통한 풍요와 가족을 이끄는 화목의 상징이 되었다.
이 그림은 화목한 닭 가족의 모습인데 그 주변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모란과 높은 관직을 의미하는 맨드라미 따위를 그렸다. 수탉은 언젠가 높은 괴석 위에 올라가 크게 소리를 내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수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암탉은 새끼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먹이를 주는 암탉을 보고 모여드는 병아리의 모습이 정겹다. 뛰어 오다 넘어지는 병아리의 모습은 해학과 익살의 표현이다.
이런 뜻을 몰라도 상관은 없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닭 그림을 감상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