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얼굴없는 전쟁의 시대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를 계기로 `얼굴 없는 전쟁`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적이 누구인 지도 모르고, 전선도 없고, 당연히 전쟁 규칙도 없으며, 무기도 대량살상무기나 사이버전의 해커에서 이번처럼 공중납치한 민간 항공기에 이르도록 다양하기 짝이 없고, 공격 목표도 군사 시설과 상업용 건물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없는 21세기의 신종 전쟁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언제든지 희생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피하려면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국방부 청사)에 직격탄을 꽂은 지난 11일의 테러는 말하자면 얼굴 없는 전쟁 시대의 예고편인 셈이다.
미국 본토가 공격받기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세계 금융 중심지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를 가리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징인 펜타곤이 당한 것도 그렇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원래 목표가 백악관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 포스 원이었다니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가 현실화된 것이다.
미국은 동서에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자연적 방벽이 자리잡은 데다 남북은 선린 관계이고 침공 능력도 없는 국가들과 접경하고 있어 본토 피침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으나 `얼굴 없는 전쟁`에 허를 찔려 속절 없이 준(準) 전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군 벙커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하고 백악관과 의사당, 국방부, 국무부, 재무부 등 모든 관공서가 소개됐으며 사상 처음으로 모든 민간 항공기의 운항이 금지됐다.
아울러 금융시장이 폐쇄되고 세계무역센터가 위치한 맨해튼은 재해 구역으로 선포됐으며 워싱턴DC와 인근 메릴랜드주 및 버지니아주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부시 대통령은 `철저한 보복`을 거듭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추산으로는 이번 테러의 희생자가 수 천명으로 지난 1941년 12월7일 진주만 폭격 당시의 사망 2천403명과 부상 1천178명을 웃돌 게 분명하다.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TV에 나와 `1941년 12월7일과 마찬가지로 지금 미국이 전쟁 상태임은 분명한 일`이라고 규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적이 없다. 맞서 싸울 적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테러를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고 있으나 진주만 폭격 당시에는 적이 분명했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2일 이를 가리켜 `회색 전쟁`(Gray War)이라고 지칭하고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어 40여년간 지속된 냉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 미국은 이제 `회색 전쟁`을 맞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얼굴 없는 전쟁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컴퓨터의 발달로 테러리스트들의 활동 범위가 크게 넓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