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합의가 주는 시사점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56)
북한과 일본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조사와 대북제재 해제에 합의했다고 5월 29일 전격 발표했다. 북한은 국방위원회 협의(추정)를 거쳐 <조선중앙통신> 보도 형식으로, 일본측에서는 아베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후루야 게이지 납치문제담당상이 참석한 각료회의를 연 후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비밀작전’을 연상케 한 합의
주변 국가들의 ‘훼방’을 의식해서일까?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5월 26~28일)은 ‘비밀작전’을 연상케 했다. 북한이 요청해 결정된 회담장소부터 그랬다. 회담이 끝난 후 언론의 첫 1보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합의내용에 대해 주변국에 아예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고, 일본은 29일 발표 직전에야 한국과 미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올해 들어와 평양에 있는 일본인 유골의 조사 및 반환 문제를 제기하며 북일회담 재개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0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열린 북일 간 적십자 실무회담과 외무성 과장 간 비공식 협의에서 양국은 “진지하고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했고, “중요한 일보(一步)”를 내디뎠다. 이를 토대로 3월 30~31일에는 아베 정권 출범(2012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북일 당국간 회담이 열렸다.
북한은 “과거와 다른 환경과 조건”, 즉 “국제정세가 크게 움직이고 6자회담에 참가했던 나라들의 역학구도, 지역의 국제관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평가에 기초해 북일 당국간 회담에 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북일회담의 성과는 불투명했다. 회담과정에서 북한측은 납치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고, 일본이 한미일 공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독자적으로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서로 다른 북한과 일본의 이해관계
따라서 이번 북일간 합의는 두 가지 변화된 변수가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남북관계와 북일관계를 동시에 진행하려던 북한이 2월 남북고위급합의이후 남북관계가 오히려 긴장국면으로 접어들자 북일회담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는 점이다. 북한으로서는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 피해자 재조사 카드를 활용해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아베 총리의 입장 변화다. 지난해 4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 참여(參與.자문역)를 북한에 특사로 보내 북일수교 협상 재개 등과 관련한 사무적 협의를 모두 끝낸 아베 총리가 최근 북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의 한 신문기자는 “아베 총리는 언제든 조건만 충족되면 북일 정상회담을 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며 “정상회담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던 아베 총리가 북한의 변화된 태도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중국, 한국과 영토 및 역사문제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북한을 돌파구로 삼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과 일본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번 합의가 도출된 셈이다. 지난 3월 필자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정부관계자는 북일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세 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첫째, 김정은 시대 북한은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고, 한국.미국.일본과 동시에 대화를 진행하려는 ‘포괄적 세계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북한측에 신뢰만 준다면 납치 피해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의 입장에서는 2002년의 ‘평양선언’이 유훈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일본측이 북일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평양선언’의 이행과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해야 한다.
셋째, 회담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외무성 라인이 아닌 다른 접촉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이런 측면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합의를 통해 일본은 “조일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문제를 해결하며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의사를 다시금 밝히고 일조간의 신뢰를 조성하고 관계개선을 지향하여 성실히 림하기로”하였고, “재일조선인의 지위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조일평양선언에 따라 성실히 협의해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밝혀 두 차례나 2002년 ‘평양선언’을 언급했다.
또한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스톡홀름에서 열린 회담에 국가안전보위부 인사를 참석시켰다. 이 신문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올해 1월 이후 본격화한 북한과 일본의 비공식 협의에서 국가안전보위부 당국자가 일본과의 창구 기능을 했다고 보도했다. 외무성과는 다른 통로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핵심은 북핵문제와 북일관계 분리
그러나 이번 북일 간 합의과정에서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은 일본이 북핵문제와 북일관계를 분리해 접근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의 유연한 태도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북한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관련 포괄적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 조사를 개시하기로 했으며, 이와 동시에 일본 정부는 인적왕래 규제, 송금 및 휴대금액 관련 특별규제 조치, 인도주의 목적의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조치를 해제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측은 해당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실시를 검토하기로 했다.
북일회담 과정에서는 북핵문제가 거론됐는지 모르겠지만 합의문을 놓고 보면 북한과 일본은 철저하게 양국의 관계개선과 현안해결에만 한정돼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도 일본측의 독자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해제해도 형식상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와는 충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북일 합의는 이행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손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태평양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과 종전 후 귀국하지 않은 사람 등 약 2만여 명의 유골 조사 및 묘역 조성이다. 이번 북일 합의에서 북한은 일본인 유골 및 묘지 처리, 성묘방문 등을 협의, 필요조치를 하기로 했으며, 일본측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북한에는 종전 전후의 혼란 상황에서 사망한 일본인 매장지가 약 70곳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매장이 확인된 곳은 평양 교외의 ‘룡산묘지’ 등 5~6 곳 정도로 전해진다. 이들 일본인 유골에 대해 북한은 반환 의사를 밝혔지만 일본은 반환보다 북한지역에 일본인 묘역을 조성하고 가족들이 성묘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유골 조사 및 반환작업에 관계해온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다른 나라에 매장돼 있는 일본군의 유골을 발굴, 송환한 사례가 거의 없다”며 “북한지역에 흩어져 있는 일본인 유골도 송환보다는 북한의 특정지역에 모아 공동묘역을 조성하고, 가족들이 여기에 자유롭게 성묘를 갈 수 있게 하는 쪽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북한도 향후 북일관계를 고려해서라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난제는 역시 납치 피해자와 행불자 문제다. 이번 북일 합의에서 북한은 “일본측이 지난 시기 납치문제와 관련하여 기울여 온 공화국의 노력을 인정한데 대하여 평가”하면서 “종래의 입장은 있지만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하여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 납치 피해자와 행불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송환을 요구한 일본의 요구를 북한이 전면 수용한 것이다.
특히 모든 대상들에 대한 조사를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특별한 권한(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물론 2008년 8월 13일 열린 6자회담 북일 국교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재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에 동의했지만 대화파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물러나고 대북 강경파인 아소 다로 총리가 등장하면서 무산된 사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합의된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은 순조롭게 되겠지만 구체적인 활동은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 일본 내의 정치상황, 아베 총리의 방북 등과 연계돼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납치문제 조사가 합의대로 이뤄지더라도 북일관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미, 남북관계 개선속도와 보조를 맞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내외의 요인으로 아베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이번 북일 합의를 이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북한의 한미일 공조 흔들기
흥미로운 점은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과 4월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한국 순방을 통해 한.미.일 삼각공조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이를 약화시키기 위한 중국과 북한의 ‘공세’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중국은 5월 26일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방한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표방했던 박근혜 정부가 급속히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6월로 예상되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평양이 아닌 서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중 포위정책이 가속화되는 조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북한이 가세해 일본과의 대화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한.미.일 3국의 압박 일변도 대북공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한국과 미국은 일본이 독자적인 대북제재 완화 방안에 대해 사전에 구체적으로 협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 고위소식통은 30일 “(일본이) 어떤 제재를 어떻게 해제한다는 것에 대해 한미 양국과 사전에 협의한 것은 아니다”라며 “조사를 개시하면 일본이 제재를 해제한다고 돼 있는데 그렇게 단순한 것인지 좀 일본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본에 “투명한 북일 협의”를 거듭 강조했다. 북핵 공조 차원에서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 문제와 맞물린 대북제재 완화 시 독자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외교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한미일 3국 공조’에 기초한 대북 압박 메시지만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임박하지 않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언급하며 대북공조 타령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5월 28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또 다른 핵실험을 하게 되면 6자회담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서 “6자회담 관련국과 비핵화, 북핵 불용을 실질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번 북일 합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북일 합의를 ‘새로운 고민거리’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대북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활용해 대북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런 독자적 대책도 없이 북핵공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와 국내 현안을 분리해 합의를 이끌어 낸 아베 총리의 대북정책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북핵문제와 남북대화를 분리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헤이그 정상회담이후 노골적으로 남북대화를 견제하고 나선 미국의 압박도 북일 합의로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 강경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관진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에 임명했다.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에 부적절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북한의 한.미.일 대북공조 흔들기에 박근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