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 동포들의 실향이유 3가지

2000-09-25     연합뉴스
23일 고향으로 내려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 1차 고향방문단 단원들의 실향(失鄕) 사연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가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또는 강제노역, 둘째는 유학이나 부모의 의사에 따른 도일(渡日), 셋째는 해방정국에서의 좌우 대립으로 인한 피난 등이다.

이번에 방문한 이들 (63명)의 실향 이유는 초청자인 대한적십자사나 방문단을 구성한 총련측 모두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어 전체 인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식민치하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은 고향이 경북 청송인 박종익(81.도쿄도(東京都) 주오고토(中央江東)지역 상공회 고문)과 문경이 고향인 김영철(71. 총련 이와테현 본부 위원장) 씨 등이다. 김씨의 도일은 형의 징용과 연관돼 있다.

김씨의 형은 39년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갔고 자신은 이듬해인 40년 11살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형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나 형은 4년 뒤 강제노역으로 얻은 지병이 악화돼 유명을 달리했다.

경기도 안양이 고향인 리형구(72.조선통신사 고문)씨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19살때인 47년 일본으로 건너간 경우이고 고향이 전남 해남인 민남채(78)씨는 `머슴` 살이하던 부친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나중에 가족과 함께 도일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박희덕(74.조선상공인연합회 부회장)씨는 41년 3월 15세때 소학교를 마치고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제주도가 고향인 리은직(77.문예동 중중 고문)씨는 33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리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어 관할경찰서를 무려 25번이나 들락거리고 나서야 도일에 필요한 증명서를 얻었다고 말했다. 해방정국의 좌우 혼란 속에서 극우반공 논리가 횡행하는 가운데 일본으로 피신한 경우도 있다.

고향이 경남 창녕인 노은현(73.盧垠鉉.가나가와(神奈川)현 교육회 고문)씨의 도일은 48년 `2.7 구국투쟁`(일명 2.7 대구폭동)과 직접 연관돼 있다. 일제때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이후에도 경찰 당국의 질시를 받던 부친이 고문을 당하고 자신마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몸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

동요 `산토끼`의 산실인 창녕 이방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노씨는 `잠시` 몸을 피했다 돌아올 요량으로 일본에 갔다 당시 조련(총련의 전신)이 운영하는 아이치(愛知) 초등학원에서 자리를 잡아 눌러 앉았다.

제주도가 고향으로 104세 노모(윤희춘.尹喜春)씨를 만난 량석하(72.梁錫河)씨도 좌우대립이 낳은 민족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있다.

그는 41년 14살 나이로 돈을 벌기위해 도일했지만 7년뒤 형인 량은하(당시 27세)가 2.7 구국투쟁 직후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사망했다. 당시 이 사건은 소위 `모슬포지서 고문치사사건`으로 미 군정의 `G-2보고서`에도 기록돼있다. 형수(은하형의 부인)는 아들을 업고 남편의 죽음에 맞서다 4.3사건의 난리 속에 총살당했다. (연합200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