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花鳥圖)

<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74)

2014-01-17     심규섭

‘화조도(花鳥圖)’는 꽃과 새를 어우러지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화조도’는 가장 대중화된 우리그림이다.
‘화조도’는 8~10폭 병풍그림부터 손바닥 크기의 작은 그림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다. 궁궐은 도화서 화원들의 작품으로 장식했으며, 양반들은 실력 있는 화가들의 ‘화조도’를 구입했고 백성들의 안방은 화공들에 의해 대량 창작된 민화풍의 ‘화조도’가 차지했다.
또한 ‘화조도’는 노리개, 장신구, 의복, 도자기, 가구 따위를 장식하는 데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화조도’는 화려한 꽃과 다양한 새의 결합으로 장식성이 뛰어난 그림이다. 특별한 정치, 사상적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면서 자극적이고 보는 즐거움을 주는 꽃과 새의 모습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다.
‘화조도’는 잘 팔리고 인기가 많은 그림이지만 선비들 사이에서는 별 내용이 없어 수준이 낮은 그림으로 보았다. 그래서 선비의 사랑방보다는 주로 여성이 생활하는 안방을 장식했다. 꽃과 새가 들어간 장신구나 옷, 혹은 갖가지 꽃과 풀을 그려 장식한 가구인 ‘화초장’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화조도’는 정물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수화나 풍경화도 아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한 가치가 광범위하게 녹아있는 동양의 독특한 양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꽃을 화병에 넣어 방안을 장식하거나 새를 잡아 새장에 가두는 문화는 없었다. 꽃밭을 특별히 가꾸지도 않았다. 그 대신 사상이나 정서를 투영시켜 꽃을 관조하고 멀리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화조도’는 대중적인 그림이지만 그리기가 만만치 않다. 꽃과 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가지고 대충 그릴 수가 없었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고 새의 털은 붓끝으로 한 올 한 올 그려야 했다. 또한 꽃의 특성상 다양한 색을 사용해야 하는 채색기법을 동원해야 했다. 특히 꽃과 새의 모습에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 넣는 일은 그림에 대한 오랜 경륜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조선시대에는 ‘털 달린 새와 짐승’이란 의미의 영모화(翎毛畵), 꽃과 풀을 뜻하는 화훼도(花卉圖)를 분리해서 보았다. 그러니까 ‘화조도’는 새와 동물그림을 잘 그리면서 동시에 꽃과 풀 따위를 모두 잘 그리는 화가라야 ‘화조도’를 제대로 그릴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조선 말기 오원 장승업의 12폭 화조도의 가격은 집 한 채를 사는 것과 맞먹었다고 한다,

‘화조도’에는 크게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첫째는 수묵으로 그린 ‘화조도’이다.
수묵으로 그린 ‘화조도’는 주로 선비들의 사상인 ‘청빈과 절개’ 따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그림에 나오는 꽃은 선비들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투영된 ‘매화, 동백, 국화, 목련’ 따위이다. ‘국화’는 오래 전부터 ‘군자’의 상징을 가진 꽃이었다. 또한 ‘매화, 동백, 목련’은 겨울이나 초봄에 피는 꽃으로 매서운 한파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생태적 상징 때문에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새는 주로 한 마리만 그려진다. 선비들이 좋아했던 새는 기쁨을 뜻하는 ‘참새와 까치’ 그리고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매’가 있다.
섬세한 기법보다는 수묵으로 다소 거칠고 즉흥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선비의 기개와 절개, 청빈, 유유자적한 삶을 표현한 이런 그림은 선비가 생활하는 사랑방에 걸렸다.
이런 선비들의 사상을 담은 화조도가 바탕이 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 발전했을 것이다.

둘째, 수묵과 채색을 섞은 ‘수묵채색’이나 진채기법으로 그린 ‘채색화’로 그린 ‘화조도’이다.
그림의 바위가 등장하고 새는 암수 쌍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색깔은 화려하며 꽃이나 새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자연의 이치, 음양의 조화’라는 정도의 내용이 담긴 장식적이고 화려한 그림이다.
일반적으로 ‘화조도’라고 하면 이런 그림을 지칭한다.

▲ 상단 그림-수묵화로 그린 화조도이다. 선비들의 정서를 반영하여 담백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 여성의 안방을 장식했던 화조도를 남성들도 좋아하게 된다. 선비들의 청빈과 절개를 담은 화조도와 일반적인 화조도를 교묘하게 결합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중단 그림-전문화가나 화공들에 의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화조병풍그림이다. 이런 병풍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화면구성 능력과 소묘, 채색능력과 같은 뛰어난 미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단그림-민화풍의 화조도이다. 병풍그림에서 보이는 형식성은 없고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다. 화려하지만 조잡한 채색과 대중들이 좋아하는 여러 상징을 결합해 주술성과 장식성을 극대화하였다. [자료사진 - 심규섭]

‘화조도’에는 다양한 꽃들이 등장하는데 주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면서 사람과 여러 형태로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종류는 20여 가지가 넘는다.
‘모란’, ‘매화’, ‘복숭아꽃’, ‘배꽃’, ‘원추리’, ‘연꽃’, ‘석류꽃’, ‘철쭉’, ‘목련’, ‘해당화’, ‘동백꽃’, ‘국화’, ‘장미’, ‘백합’, ‘달개비’, ‘금낭화’, ‘나팔꽃’, ‘여뀌’, ‘제비꽃’, ‘찔레꽃’, ‘맨드라미’ 따위가 소재로 사용된다.
또한 ‘화조도’에 등장하는 새의 종류도 다양하다.
‘참새’, ‘학’, ‘꿩’, ‘원앙’, ‘오리’, ‘비둘기’, ‘앵무새’, ‘금계’, ‘물총새’, ‘까치’, ‘까마귀’, ‘곤줄박이’, ‘박새’, ‘딱따구리’, ‘제비’, ‘수대조’, ‘공작새’, ‘종달새(노고지리)’, ‘노랑지빠귀’ 따위가 있는데 경우에 따라 ‘봉황’과 같은 상상의 새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꽃과 새가 등장하든 간에 꽃과 새만 그리면 ‘화조도’로 부른다.
꽃과 새와 조합도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무리한 결합은 없다.
대부분의 새는 우리나라에 자생하거나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없는 ‘수대조(綬帶鳥)’, ‘공작’이 등장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에는 주로 바위가 나오고 꽃나무를 주로 그린다. 바위는 땅을 상징하는 장치이고 꽃나무는 새가 나무에 앉는 습성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또한 작은 개울이나 강이 배경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원앙이나 오리가 물가에서 생활하는 생태적 특징 때문이다.

‘화조도’는 그냥 보기 좋고 편안하고 장식성이 강한 그림이다.
굳이 찾자면 ‘자연합일, 자연무위, 음양조화’ 정도이지만 그것은 꽃과 나비를 그린 ‘화접도’, 풀과 곤충을 그린 ‘초충도’, 심지어는 선비들의 이상세계를 표현한 ‘수묵산수화’에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다.
조선 후기가 되면 불로불사(不老不死)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도교(道敎)의 영향과 민간신앙의 유입으로 인해 별 뜻이 없던 ‘화조도’에 상징이 붙는다.
원앙과 앵무새는 부부화합, 오리는 장원급제, 금계와 모란은 부귀영화, 연꽃, 원추리, 꿩, 공작은 출세, 석류꽃은 다산, 학과 복숭아꽃은 장수를 뜻한다고 한다.
출세, 장원급제, 부부화목, 다산, 부귀, 장수, 액막이 따위는 모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다.
‘화조도’에 상징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에 주술적 내용을 첨가하면 백성들이 좋아하고 높은 값으로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떤 음식을 판매하기 위해 ‘남자들에겐 정력에 좋고 여자에겐 피부에 좋다’라는 흔한 상술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는 여성용 그림인 ‘화조도’에 선비들의 상징인 매화와 참새, 까치 따위를 결합시키기도 한다. 새와 꽃을 그린 그림에 온갖 상징을 결합시켜 비빔밥처럼 만들었다.
더욱이 ‘화조도’는 특별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상징들이 결합하는데 편리했다.

일부의 지배계층이 향유하던 문화가 대중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궁궐의 궁중회화와 선비의 미술이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욕망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뜻은 훼손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긴다.
조선 후기 백성들의 원초적 욕망이 담긴 도교와 결합한 궁중회화는 대중화의 길을 걷는다. ‘부귀영화, 장수, 액막이, 가족애, 다산, 출세’ 따위의 도교적 내용이 들어간 그림을 선비들은 ‘속화(俗畵)’라고 불렀다. 그 결과 목판으로 찍은 허접한 세화 정도에 머물던 백성들의 집안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실제 이런 그림을 집안에 걸었다고 원초적 욕망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꿈을 꿀 수 있었고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마치 ‘개똥이, 마당쇠, 삼월이’ 같이 제대로 이름을 얻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주역과 도교가 결합한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에 의해 하늘의 이치를 담은 이름을 얻어 존재의 가치를 높인 것과 비슷하다.

대중화를 이루어 백성들의 가치를 높이려면 수준 높고 완성된 원본이 있어야 한다. 민화 혹은 속화(俗畵)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수 천 년의 전통이 압축된 궁중회화가 있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유럽의 유명한 명품들은 모두 그리스로마문명의 전통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장인들이 가방이나 신발을 만드는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짝퉁을 만드는 기술은 유럽 현지 장인들도 놀란다고 한다.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된 원본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민화는 창작의 대상이 아니다. 화가가 민화를 창작하는 것은 이미 대중화된 것을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화는 이미 대중의 것이다. 대중들이 취미생활과 여가활동으로 민화를 그리는 것이 정상이다.
화가는 고급문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으레 고급문화하면 지배문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에는 고급문화가 곧 지배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영향으로 지배계층은 비싼 것만 수용한다. 그 안에는 천박한 소비와 허영만 있을 뿐이다.
고급문화에는 반드시 절제와 엄격한 형식 따위의 가치가 녹아있다. 색채의 절제를 통해 수묵산수화는 고급문화가 되었다. ‘생명에 대한 찬양’이라는 인류 보편적 사상을 엄격한 형식에 녹여낸 궁중회화는 고급문화가 되었다. 십장생도가 고작 ‘장수와 복을 바라는 그림’이라면 궁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민화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화조도 8폭병/심규섭/디지털회화/2014.
화조도를 현대적인 디지털회화로 변주한 그림이다. 일반적인 병풍 형식에 맞추었지만 꽃을 더욱 풍성하게 그려 여백을 줄였다. 또한 배경에 먼 산을 넣어 현실감을 높였다. 복잡한 꽃은 양식화시켜 그렸고 새는 상징명암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주고 세밀하게 그려 사실적인 효과를 높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음은 내내 평온했다. 아침저녁으로 귓가에 새소리가 들렸고 꽃향기는 방안에 가득 찼다. [자료사진 - 심규섭]

‘화조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이 창작되었고 대중적으로 유행한 그림이다. 그 안의 뜻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남녀노소 관계없이 좋아하는 그림이다.
각각의 새나 꽃에는 여러 상징이 붙어있지만 그 뜻을 몰라도 작품을 감상하는데 문제가 없다.
‘몰입’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에 몰입하면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림 속의 세상과 감상자가 한 몸이 되는 경험은 깊은 즐거움을 준다.

‘화조도’,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편안하게 감상하기를 바란다.

(대체,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