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개선 진정성' 도마 위에 오르다
<분석> 이산가족상봉 둘러싼 남북관계 개선 여부
남북이 이산가족상봉을 둘러싸고 관계개선 진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은 9일 낮 12시경 판문점 전통문을 통해 "설은 계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고려된다"며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설 계기 이산가족상봉'은 일단 거부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계기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했으며, 정부는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앞으로 오는 10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일단 북측의 답변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조평통이 주체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산가족상봉 실무접촉에 대해 조평통이 답을 취하는 형식을 통해, 이산가족상봉에 국한하지 않은 포괄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다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실무접촉을 넘어서 범위가 넓은 메시지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즉, 이산가족상봉 실무접촉을 거부한 것이지, 이산가족상봉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며, 북측이 이산가족상봉을 중심으로 한 남북관계 개선의 조건을 던졌다는 설명이다
조평통 전통문에서 "설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하자는 남측의 제의가 진정으로 분열의 아픔을 덜어주고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에서 출발한 좋은 일이라고 본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하지만 조평통은 전통문 말미에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며 남측의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을 강조했다.
비방중상 중단 및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 수위 관건
여기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는 대목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비방중상' 중단과 '전쟁책동 허용하지 말 것' 등을 의미한다.
전통문에는 "남측이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과 상반되게 새해벽두부터 언론들과 전문가들, 당국자들까지 나서서 무엄한 언동을 하였을 뿐 아니라 총포탄을 쏘아대며 전쟁연습을 벌렸다"고 지적하며, "전쟁연습이 그칠 사이없이 계속되고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겠는데,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느냐"고 언급했다.
즉, 지난 3일 정부가 북한의 신년사를 두고 '진정성 의구심'으로 폄훼하고, 2일 군 부대의 '신년결의대회' 전면전 대비훈련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오는 3, 4월에 예정된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수위를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연례적 군사훈련 등을 인도적 사안과 연계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키리졸브 훈련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 설 계기는 시기적으로 겹친다. 이것이 남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때라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북측은 남측이 '최고존엄 모독' 등 비방중상을 멈추고, 국제공조보다 민족공조에 얼마만큼 무게를 둘 지 지켜본 뒤, 이산가족상봉을 필두로 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장성택 처형, 한.미 외교장관이 '최근 북한에서 벌어진 중대한 상황변화' 등을 언급한 것 등은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남측이 과연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낳게 했다.
이와 관련, 조평통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하여 우리를 걸고들어 우리 내부문제까지 왈가왈부하였는가 하면 우리가 제기한 원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핵문제를 내들며 동문서답하였다고 하면서 종래의 대결적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조성의 다른 조건
북 조평통은 전통문에서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를 강조했다. 이는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로 풀이된다.
지난해 북측은 남측의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행사 제안을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 재개도 함께 논의할 것을 수정제의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별개의 사안임을 강조, 이산가족상봉행사를 먼저 치르자고 했고, 이를 북측이 받아들였다.
북측의 입장에서 이산가족상봉행사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치러야 하고, 이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맞물린 사안임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남측은 이산가족상봉행사와 금강산 관광재개 논의는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특히 지난해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무산된 이후, 개성공단 통행,통신,통관 등 3통문제 해결을 통한 국제화 발판이 마련되고, 이산가족상봉행사가 열리면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조건부 논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가 '조건부 연계'가 아닌 입장을 내놔 정부 내 기류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에 대해, "이상가족상봉과 같은 인도적 문제와 금강산 관광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연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산가족상봉 없이 금강산 관광 재개만 먼저 (북측에서) 제의하면 어찌할 것이냐는 그때 가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 '이산가족상봉 후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 입장이 아닌 말 그대로 별개 사안으로 다룬다는 뜻으로 풀이돼, 북측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일단, 설 계기 이산가족상봉은 무산됐다. 하지만 이산가족상봉이라는 남북간 현안에 대해 남북은 공히 반드시 해결되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여기에 비방중상 중단,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군사연습 수위,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 등 남북관계 개선 조건이 얼마만큼 형성되는지에 따라 남북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