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왜 북한 신년사를 비판했는가

<분석> 북한 신년사 이틀 만에 정부 '비방중상'식 입장발표

2014-01-03     조정훈 기자

정부가 북한의 신년사를 두고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것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비방중상' 중단을 촉구한 지 이틀 만이다.

새해를 맞아 덕담을 주고받아도 시원찮을 판인데, 정부는 북한의 신년사 중 남북관계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진정성 의구심', '이율배반적 태도', '지령을 통한 종북세력 부추기기', '자가당착' 등 할 수 있는 표현을 모두 동원해 맹비난에 가까운 '비방중상'을 했다.

이날 정부의 입장설명은 북한 신년사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대부분 언론의 분석과 여야의 환영입장을 바로잡겠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 만에, 그것도 유관기관 협의를 통해 강도높게 비판한 것은 석연치않다. 게다가 통일부가 1일 신년사 분석자료에서 "대남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언급하였으나, 비난도 계속하고 있어 향후 태도변화 여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조심스레 전망한 것보다 수위가 더 높아졌다.

이는 유관기관 협의라기보다는 통일부를 배제한 국정원과 국가안보실, 청와대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둔다"에 방점을 찍어 미국과도 어느 정도 교감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이 2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주목하는 바는 비핵화 관련 북한의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점이다"라고 평가한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북한의 신년사를 강도높게 비판한 속내는 무엇일까.

6월 지방선거를 앞둔 국내용

우선은 국내용 가능성이다. 현재 굵직한 국내 정치 일정으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고, 철도 민영화로 촉발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화두에 대다수 국민들이 동참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자칫 국내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는 지방선거에서 참패, 조기 레임덕이 형성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각종 여론조사기관 조사결과, 40%대로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하지만 40%대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지지도는 변함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신년사를 비판해 북한의 대남유화 공세를 일단 차단함으로써 대북 원칙론을 견지해 지지율을 반등시키겠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한의 반발을 이용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재결집시키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공조 의지

다른 측면에서는 한미간 공조를 더욱 공고화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한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가운데,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촉발된 한.일 간 문제로 한.미.일 공조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와 주변에 핵전쟁 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북침 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이로 하여 사소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그것은 엄청난 핵재난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미국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해결하자면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며 '우리 민족끼리'와 '자주'를 강조했다.

즉,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고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제시한 것은 정부가 일본 발 악재 속에서 여론이 한.미.일 공조보다 남북관계 우선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외부 핵전쟁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핵 억제력 강화', '3차 핵실험' 등 핵과 관련한 명시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그렇기에 정부는 이번 입장에서 "무엇보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미국도 "비핵화 관련 북한의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면서 비핵화를 압박카드로 다시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외교안보 장관 발언을 종합한 정부 입장

정부의 이 같은 속내는 북한 신년사 비판 공식 입장에 앞서 지난 2일 통일외교안보 장관들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류길재 장관은 통일부 시무식에서 "자주나 주체도 지구촌과 섞여 살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외진 곳에서 자기 혼자 자주나 주체를 외치는 것은 진정한 자주나 주체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자들과 만나서는 "북한 신년사는 실제로 전개되는 것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떨어졌다"라면서 "(이번 신년사) 내용들은 그것이 현실로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표현으로 (남북대화를) 제의했다고 해석될 게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시무식에서 "장성택 처형이 김정은 체제는 물론 남북관계 및 북핵 문제, 나아가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도의 주의력을 기울여 대처해야 한다"면서 "핵심국 외교와 북한.북핵 외교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며 북핵을 둘러싼 국제공조를 강조했다.

김관진 국방장관도 간부 조찬간담회에서 북한 신년사가 유화적인 내용이라는 보고를 받고 "북한은 화전양면을 구사할 수 있다. 항상 대비를 철저하라"고 주문했다.

정부의 북한 신년사에 대한 공식 입장은 통일외교안보 장관들의 발언을 모은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지난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이 박 대통령을 향해 '7개항 공개질문장'을 던지고, 박 대통령이 언론 기고를 통해 응답 성격을 취하고,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로 화답하는 형식으로 양측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기고를 중심에 놓고 볼 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확실한 의지와 실질적 행동을 보여준다면 한국은 경제개발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 대외정책의 중요한 과제"라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박 대통령이 '대결이냐 신뢰냐'라는 북한의 질문에 '비핵화 시 남북관계 개선'이라고 강조한 것이고,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은 데 대해 정부가 실망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북한의 '비방중상' 중단 촉구에 정부가 북한의 신년사 비판으로 '비방중상'을 하면서,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은 난망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