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 어떻게 볼까?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27)

2013-11-04     정창현

▲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르피가로> 2일자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긍정적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자료사진 - 민족21]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했다. 지난 2일부터 프랑스 방문을 시작으로 서유럽 국가 순방에 나선 박 대통령은 출발 당일 보도된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만남 용의를 묻는 질문에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즉각 남북 경색국면 타개 위해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개성공단 재개 합의로 숨통이 띄었던 남북관계가 이산가족상봉 무산이후 다시 꽉 막힌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파장을 의식한 듯 ‘원칙적인 답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갑자기 나온 남북정상회담 발언

그러나 박 대통령의 첫 남북정상회담 언급은 과거의 발언과 비교할 때 대북정책에서 일정한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5월 미국 방문 당시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를 만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과는 일단 차이가 느껴진다. 당시 박 대통령의 한 측근이 “남북정상회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전한 것과도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발언이다. 6개월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우선 남북정상회담 발언은 지난 6월을 기점으로 일정한 변화를 시도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북측이 6월 6일 포괄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자 개성공단 정상화를 시작으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담 수석대표의 격문제로 남북당국간 회담이 무산되고, 7월 6일 시작된 실무회담에서도 개성공단 재가동에 원칙적 합의만 이룬 채 계속 회담의 의제와 개성공단의 보장주체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라인에서 ‘대북강경입장’이 견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7월 22일 개성공단 5차 실무회담이 아무런 합의점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의 파국이냐 지속이냐’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결국 ‘신뢰프로세스’를 이어가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돼 여러 경로를 통해 북측의 남북대화에 대한 ‘진정성’을 파악하는 ‘특단의 조치’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초반 북한에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국민이 지지했지만 개성공단사태가 파국을 맞을 경우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은 8월 14일 7차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개성공단 사태는 133일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본격적인 의미의 첫 남북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도 청신호가 켜지게 됐고,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도 탄력을 받게 됐다.

박 대통령도 실무회담 타결과 관련해 “오늘 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남북관계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더불어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노력해가기를 기대한다”고 환영을 뜻을 피력했다.

‘8.15 경축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언

그리고 다음날 광복절 축사에서 ‘전향적인’ 대북메시지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이제는 남북간에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라며 “앞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의 공동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추석을 전후로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과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제의했다. 박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몇 가지 대목에서 주목된다.

첫째, 북한 스스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진심으로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며 열린 마음으로 북한을 적극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북한 변화론’이나 ‘대북압박론’과는 차별성은 둔 것이다.

둘째는 처음으로 적극적인 평화를 언급한 점이다. 박 대통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억지력이 필요하지만, 평화를 만드는 것은 상호 신뢰가 쌓여야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조금 견강부회(牽强附會)한다면 ‘안보패러다임’에서 ‘평화패러다임’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적어도 안보와 평화가 함께 가야한다는 점을 언급한 대목은 주목됐다.

셋째는 북측이 요구하는 ‘포괄적 대화’를 수용하지는 않겠지만 남북관계의 현안들을 단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식과 국제적 규범이 통하는 남북관계를 정립해서 진정한 평화와 신뢰를 구축해 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해 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식’으로 ‘상생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같은 구상은 ‘냉전적 정치지형’과 남북관계의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김관진 국방장관의 잇따른 대북 발언이 빌미를 제공했다.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김 장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이미 한반도를 넘어 아.태지역과 세계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가 됐다”, “북한은 종북세력과 연계하여 사이버전, 미디어전, 테러 등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는 이른바 4세대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은 그 준비로 볼 수 있다”는 등 북한을 자극하는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김 장관은 박 대통령과 북한이 ‘합의’에 기초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유연한 태도에 대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적 대화공세”라며 평가절하했다.

북측은 즉각 반발했다. 북한은 김관진 장관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북남관계를 적대관계로 삼고 모든 대화와 협상을 대결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후 예정돼 있던 이산가족상봉을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최고존엄’을 모독했고, 적대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한 달 넘게 대남 비난전을 펼쳤다.

그러던 북한이 10월 중순을 넘으면서 두 가지의 ‘유화카드’를 내놓았다. 북한은 10월 25일 억류하고 있던 ‘월북자’ 6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공단 방문을 수용했다. 10월 들어 남북간에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튀기 위한 접촉이 다시 시작됐고,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언급은 이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1월 1일 5.24 대북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관련 “정부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것 역시 정부의 달라진 태도를 시사한다.

또한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은 DMZ평화공원 조성,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구상 등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발표한 정책들을 임기 안에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력이 전제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제안한 ‘포괄적 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11월 12일 방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와의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가스관 연결,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북한 나진항 현대화 사업 등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를 해야 할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첫 한.러정상회담에서 “유라시아 협력을 강화하는 게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데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실제로 정부는 북한 라진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철도 현대화 작업을 비롯해 나진항 현대화와 복합물류사업 추진 등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긍정적 반응 예상돼

6자회담 등 북핵대화 재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점도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높였다. 최근 미중 6자회담 대표간 협의가 열린 데 이어 한미일 3자 회동이 이어지는 등 6자회담 재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데는 정부 관계자들도 이견이 없는 상태다. 북핵문제에 대한 주변국 간 논의가 활발해지는 만큼 이산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간 사업이 추진될 추동력도 마련되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도 “북핵문제와 남북관계가 비슷한 분위기로 가기 위해서 남북 간 대화를 다시 트는 ‘돌파구’가 필요하다”며 “당분간 이 계기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은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인가? 일단은 북한이 대화에 다시 나올 가능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를 타진했다. 북한으로서는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인 지난해 9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만남 용의를 묻는 질문에 “경색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어떻게든 바꿔나가야 된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든 만날 수 있다. 만나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진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발언을 박 대통령의 변화된 입장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미 ‘뜬금없이’ 월북자 6명을 아무 조건없이 송환할 때부터 대화분위기 조성에 나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북한이 먼저 지난 9월 연기했던 이산가족상봉 행사 재개 논의를 들고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계절적으로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연내에 어렵다는 점 때문에 3통(통신.통행.통관)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인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 및 국제화 문제가 우선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비판한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선(先) 북핵폐기’ 발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해 왔기 때문이다.

‘북핵’과 ‘국내 정치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10월 중순이후 남과 북이 정체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선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공약 중 하나인 이산가족상봉을 되도록 임기 초반에 실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고, DMZ평화공원 조성,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구상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MB정부와의 차별성도 드러낼 수 있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포괄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대외노선을 김정은시대의 기본노선으로 확정한 북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드는 남북관계의 장기간 경색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외자본 유치와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남북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개와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한 후 다시 남북대화가 중단됐던 경험은 대화의 수요자체가 현실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더욱이 과거 2차례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이명박 정부 때의 남북정상회담 무산과정을 되돌아볼 때 남북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돌발변수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여러 가지 국내외의 난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손발이 맞는 않는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의 부조화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이산가족상봉을 연기하면서 ‘대화와 대북강경발언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화는 대화이고 할 이야기는 해야한다는 식의 대북 강경발언’은 언제든지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대화의 진정성’이 있다면 조율된 대북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야 할 것이다.

둘째, MB정부의 ‘유산’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한다. MB정부 때 임명된 김관진 장관을 교체하고, 남북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를 막고 있는 ‘5.24조치’를 해제해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5.24조치’ 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지난 3월 청와대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 이전 정부처럼 ‘무조건 안 한다’는 입장을 취해선 안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비정치적.인도적 교류를 통한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군사적 사안에 대한 해결 방식을 찾아가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밑그림 상 남북 간 전면 경제교류 중단을 내세우는 ‘5․24조치’는 새 정부 임기 내 언젠가는 반드시 해제해야 할 현안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11월 1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내 자본의 개성공단 추가 투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5.24조치’의 해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근혜식 개성공단’활성화의 핵심요소인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해서라도 국내 기업의 추가 투자가 절실하고, 이것의 전제가 ‘5.24조치’ 해제다. 따라서 개성공단 회담이 다시 활성화되고, 푸틴 대통령의 방한으로 남북.러 철도 및 가스관 연결 사업이 진전되는 시점에 남북경협에 대한 족쇄를 풀어 자연스럽게 ‘5.24조치’를 ‘해소’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져야 남북 당국간 회담도 성과를 낼 수 있다.

셋째, 8.15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안보패러다임’에서 ‘평화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튼튼한 안보’에 대한 강조와 와 대북압박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MB정부 5년간의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평화를 만드는 상호 신뢰’형성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에 ‘안보 변수’를 활용해 지지율을 높이는데 일정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언급은 그 같은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돌다리도 두들기며 가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진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언급했다면 북한이 손을 내밀었을 때 ‘포괄적 협상’을 통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냉전수구적 정치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강하지만 아직까지 박 대통령에게 기회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