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23)

2013-10-07     정창현

통일부가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에 내년부터 3년 간 2,5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할 방침인 것으로 나타났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순방 때 미 의회에서 이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한 이후 여러 차례 강조한 사업이다. 실례로 지난 7월 27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된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의 작은 지역에서부터 무기가 사라지고, 평화와 신뢰가 자라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그곳이 바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폐쇄직전까지 치닫던 개성공단의 재가동에 남과 북이 합의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경기도는 한강 하구-파주-연천-철원-고성을 벨트로 묶고 북한지역까지 확대하는 4단계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자체 구상안을 발표했다. 고성군이 독자 평화공원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강원도 각 지역 민간단체들도 앞다퉈 청원에 나서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공약으로 제시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

사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김대중 정부부터 지속적으로 제안되어 왔던 사안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2008년 8.15경축사에서 DMZ을 평화구역으로 하는 방안과 DMZ을 가로지르는 ‘남북경협평화공단’ 설치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측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야 가능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무엇일까?

DMZ을 평화협력지대(생태평화공원)로 조성하는 문제가 남북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였다. 이때 북한의 입장도 처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 노무현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획기적 방안을 담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6년 전인 2007년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과 오후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과 서해평화협력지대의 필요성에 대해 장시간 설명하며 DMZ을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하자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전 회담 때만 해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지만 오후 회담 때는 해주특구 개발 등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을 전격 수용했다. 다만 비무장지대를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전에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 (해주를) 특구로 보십시다. 그래서 전체를 서해 평화협력지대로 선포를 하고, 그 안에 한강하고 개발. 해주공단.. 공단이라고 해도 좋고 특구라도 해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 안에 공동어로구역 만들고, 북쪽에 생태평화공원까지 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 그건 아니.. 정전협정 문제가 우선.. 그게 풀어진 조건에서.. 평화협정을.. 중간에 시범적으로 하고.. 그렇게 돼야지 지금은 아마.. 아직 그 전단계로 하면 좋지 않겠는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NLL(북방한계선)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조성하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는 단계에서 DMZ을 생태평화공원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북측에서 남측이 제안한 DMZ 평화협력지대 조성안을 거절한 것으로 해석했지만 북한의 입장은 거절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남쪽의 반응을 언급하며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표시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2007년 11월 14일 남북총리회담 환영만찬에 참석했던 북측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우리는 과연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가 서해특별지대 설치를 실천적으로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며 “서해특별지대가 원만하게 추진된다면 DMZ을 평화지대화 하는 구상도 실천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10.4선언에 DMZ 관련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남측이 DMZ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해 주로 경제적 측면에 강조점을 둔데 비해 북측은 정치.군사적 측면에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 남측은 서해특별지대 설치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를 통해 서해상, 더 나아가 한반도의 긴장을 없앨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북측은 서해상의 긴장완화가 선행돼야 서해특별지대 개발이 가능하고, 이것이 DMZ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북측은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남측의 여러 제안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총리회담 때 만난 북측 관계자는 “남측의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해 여러 차례 북측에 제안을 해 왔다”며 “우리는 이 제안들에 대해 유럽 등 해외 사례들을 수집해 우리측 안을 만들어 놓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DMZ의 평화적 이용 구체적 청사진 마련

이와 관련해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북측의 한 관계자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강원도에서는 금강산과 설악산을 관광특구로 연결하고 철원일대에 평화산업단지 조성하는 계획을 제안했고, 경기도에서는 해주와 파주, 인천을 연결하는 경제특구를 제안했다. 해주특구 개발과 파주를 연결해 파주에 남북협력경제단지를 조성하고, 이곳에 북측의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방안은 북측에서도 대단히 구체적으로 검토돼 타당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공화국(북측)에서는 유럽에 실사단을 보내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의 상호 경제협력 사례에 대한 조사까지 마쳤다. DMZ을 통일평화지대로 개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나와 있다.”

▲ DMZ의 평화적 이용은 10.4선언의 구상에 잘 담겨져 있다. [자료출처 - 동아일보]
북한이 내부적으로 DMZ의 평화적 이용방안에 대해 상당히 깊숙하게 논의를 했던 것이다. DMZ을 통일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남측의 구상에 북측도 나름의 대응 청사진을 마련해 놓고 있었던 셈이다.

10.4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구상은 DMZ을 통일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 조치로 남과 북을 ‘사실상 통일’(남북연합연방제)의 상태로 이끌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남북이 사실상 통일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분위기 정착과 남북간의 전면적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이 프로젝트는 가능하다. 2007년 10.4선언은 이것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같은 공감대는 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합의하고,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후에도 북한은 10.4선언의 이행을 전제로 DMZ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던 배경환 전 CnA 코리아 대표의 ‘국제평화도시’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그는 2009년 DMZ에 가칭 ‘국제평화도시’를 건설하자는 제안을 북측에 한 바 있다. ‘국제평화도시’ 구상의 요지에 대해 그는 2011년 <민족21>(5월호)과 인터뷰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핵문제가 포괄적인 협의과정으로 들어가게 되면 평화조약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평화체제로 전환된다고 했을 때 휴전선 문제가 제기될 것이고요. 그러나 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휴전선 자체를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이것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여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제안을 하게 됐습니다.
한 다국적 기업이 안전만 보장된다면 DMZ에 세계적 규모의 친환경적인 위락시설을 갖춘 평화도시 건설에 나서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피력했습니다. 이 기업은 최대 400억 달러(45조 원)를 투자, DMZ에 디즈니랜드와 첨단의료휴양시설, 교육시설, 컨벤션센터 등을 갖춘 평화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제안했어요. DMZ의 생태계를 최대한 살리는 친환경적인 평화 공존 지대를 건설, 남북 화해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특화된 세계적 관광명소로 삼겠다는 것이죠.
평화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양측이 DMZ구역 내 1500만㎡의 부지를 제공하는 것이 전제돼야 합니다. 투자사는 부지의 현금 보상과 평화도시에서 얻어지는 수익금 배분은 물론 북의 산업기반시설 지원에도 나설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북측은 ‘10.4선언의 전면적 이행과 평화협정 체결’을 전제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DMZ 활용방안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자료사진 - 민족21]

가장 최근에는 지난 7월 말 북한 대남정책을 담당하는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방북한 박상권 전 평화자동차 사장에게 “개성공단이 잘되면 DMZ에 공원을 만드는 것도 잘 될 것”이라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이 발언은 기존 북측의 입장을 고려해 볼 때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문제가 잘 풀리고,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북미대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시대에도 북한은 여전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밝힌 서해평화특별지대와 DMZ평화지대 조성에 대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북측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기도 하고, 김양건 비서를 비롯해 당시 대남정책 담당자들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4선언 이행 없이 ‘DMZ 세계평화공원’조성 불가능

박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북측의 입장에 대한 일정한 수용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DMZ 세계평화공원이 추진될 경우 ‘호랑이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리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DMZ가 아닌 그 남쪽 지역 몇 군데에 ‘토건족’들의 이익만 보장한 시멘트 조형물을 만드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을 정치쟁점화하면서 박 대통령은 NLL사수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더구나 통일부는 현재 심의 중인 ‘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을 삭제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은 곧 NLL 포기’라는 식의 논리 확산이 결국 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서 서해특별지대 추진 포기를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말로는 남북간의 기존합의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10.4선언의 핵심합의인 서해특별지대 추진을 제외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 10월 5일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남측이 발표한 “‘제2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이라는 것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완전히 말살하고 반공화국(북) 대결책동에 더욱 악랄하게 매달리기 위한 철저한 반통일문서, 체제대결 각본”이라고 비판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항구적 평화체제 추진 등 10.4선언의 핵심내용을 뺀 것은 이 선언의 폐기행위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욕을 보이고 있는 ‘DMZ 세계평화공원’은 분명히 한반도 평화체제를 추진해나가는 동력을 생산하는 사업이 될 수 있고, 북측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DMZ의 형성 자체가 정전협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정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DMZ 세계평화공원’은 ‘정치적 수사’나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 재개문제조차도 풀지 못하면서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또한 ‘DMZ 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될 경우 군사적 긴장을 줄일 수 있다거나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면 남북통일에 대한 국제적인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정도의 안이한 생각으로는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박 대통령의 ‘DMZ 세계평화공원’ 제안이 단순히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한 노림수라고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DMZ 세계평화공원을 추진할 ‘진정성’이 있다면 우선 이념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남북관계를 평화번영의 관계로 복원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북미대화와 6자회담, 4자회담의 촉매역할을 수행해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비핵화프로세스와 4자회담을 통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동시에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맞물려야 ‘DMZ 세계평화공원’도 남북간에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박 대통령은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식 기념사에서 “정부는 강력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킬 체인’(Kill Chain, 정보.감시.타격 통합시스템)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핵과 대량살상무기 대응능력을 조기에 확보, 북한 정권이 집착하는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될 때 평화를 지키면서 북한을 진정한 변화의 길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식이다. 더구나 ‘킬 체인’과 KAMD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것이 한반도비핵화 협상과 남북대화에는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칫 어렵게 조성된 ‘대화국면’이 ‘긴장국면’으로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

튼튼한 안보는 필요하다. 그러나 안보를 강조한다고 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통해서만이 진정한 안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없다면 박 대통령의 ‘DMZ 세계평화공원’구상은 첫발을 떼지도 못하고 준비만 하다 사문화될 것이다. 이미 제안으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