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결단' 성명, 개성공단 폐쇄 면피용
<초점> 북측 입장 변화만 고수하고 인도적 지원 연계한 '잔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8일 개성공단 재가동 논의를 위해 북측에 실무회담 재개를 제의했다.
류길재 장관은 성명에서 "북한은 지금이라도 재발방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주기를 바란다"며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더 큰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막기 위해 부득이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이에 대해 논의할 회담을 제의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어 통일부는 29일 오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북측에 '날짜와 장소'를 명시하지 않은 회담 제의 전통문을 보냈다. 하지만 북측은 이날 오후 4시 판문점 마감통화 때까지 남측의 제의에 답을 하지 않았다.
이번 정부의 최후통첩은 지난 4월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 북측이 근로자를 철수하자,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회담을 제의하며 '중대한 조치'를 예고했다. 그리고 북측이 회담에 응하지 않자, 하루만에 개성공단 잔류인원 철수라는 '중대조치'를 결정했다.
이러한 전례에 비춰, 이번 통일부 장관의 '중대한 결단'은 개성공단 폐쇄일 가능성이 높다. 북측이 '재발방지'에 대한 변화된 입장을 내놓지 않거나, 이번 실무회담 재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의 마지막 카드는 '개성공단 폐쇄'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 변화없이 북측만 변하라며 압박
하지만 이번 정부의 '최후통첩'은 지난 여섯 차례 남북 실무회담의 사실상 결렬 당시의 상황에 어긋난 발표다.
지난 25일 6차 실무회담에서 북측은 재발방지 부분에 대한 남측의 입장을 철회하고, 남과 북이 공동담보를 하겠다면 판문점 채널을 통해 차기 회담 일정을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남측도 재발방지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며, 북측이 진전된 입장이 있을 경우 판문점 채널을 통해 연락할 것을 제의했다. 즉, 양측이 재발방지에 대해 변화된 입장을 취할 경우, 차기 회담을 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일부는 재발방지에 대한 기존 입장만 재확인하고 북측에 '마지막'이라며 일방적으로 실무회담을 제안했다.
통일부 장관 성명에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다시는 정치.군사적 이유로 개성공단의 가동이 중단되지 않고, 국제기준에 따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또다시 부당한 이유로 통행제한과 근로자 철수 등 일방적 조치가 취해진다면, 우리 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뒤이은 개성공단입주기업 관계자들과 면담에서도 류길재 장관은 "북측이 '오불관언(吾不關焉,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북측을 비난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북이 밝힌 '입장변화 시 연락할 것'이라는 공통된 입장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깬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마지막', '중대한 결단'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최후통첩'을 내린 것은 북측을 회담장에 나오게 하겠다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결국 정부의 '최후통첩'은 국내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재발방지에 대한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일방이 회담을 열자는 것은 일종의 압박전술일 뿐 아니라, 설령 회담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마지막' 회담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결국,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쉽게 꺼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부 장관이 성명발표 이후, 이례적으로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만나 북한의 태도를 비난한 것은 '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고집을 피워 어쩔수 없이 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면피용 책략을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후통첩' 카드 쓰다 부메랑 맞을 수도
이러한 정부의 '최후통첩'에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북측이 아니라 개성공단 입주기업측이다.
북측은 이미 지난 6차 실무회담 사실상 결렬 직후, 박철수 단장의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북측) 6.15의 산물인 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기고 그의 정상화를 바라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성공업지구는 남측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정부의 '최후통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2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다들 쇼크를 받은 상태였지만 마지막까지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해 달라고(통일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인은 "정부는 공단 폐쇄를 기정사실로 두고 절차와 명분을 쌓아가기 위한 절차를 거친다는 느낌을 모두 받았다"며 "개성공단은 문을 닫겠다는 결론은 이미 나와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이 진정성이 없다고 하는데 북이 상식이 없다는 것을 감안해서 볼 때는 북이 회담에 임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은 다했다고 본다"며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한 의지가 별반 없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 우리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유창근 '개성공단 비대위' 대변인도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 "6차 회담까지 오는 과정에서 저희가 전문을 다 봤다. 그런데 상당히 여태까지 6백여 개의 남북회담이 있었는데 그 어떤 상황보다도 북쪽이 사과를 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많이 받아들이고, 이제는 용서하고 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중대결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좀 유감스러운 것은 개성공단에서 이 정도면 되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투자자고 주인인데 좀 물어봐야 되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중대 결단'에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정부의 '최후통첩'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정부가 되려 입주기업들의 분노라는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만 있다.
면피성 '최후통첩'에 인도적 지원 연계하는 '잔꾀'
정부가 '최후통첩'을 국내 면피용 카드로 사용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걸고 넘어지는 교묘함을 보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관 성명에는 개성공단에 대한 '최후통첩'과 함께, 5개 단체의 북한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 승인을 밝혔다.
성명은 "상대를 존중하면서 원칙있고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우리 정부는 정치적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가 신청한 밀가루, 옥수수, 분유 등 10억원 상당의 식량지원은 승인하지 않는 잔꾀를 부렸다.
김형석 대변인은 29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과의 지원내용, 영유아 등과 함께 지원의 시급성, 필요성, 그 다음에 지원을 하려면 사전에 어느 정도 지원계획에 대한 북한과의 사전협의나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승인 제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전부터 지금까지 '정치적 문제와 별개'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인도적 지원 지속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별 승인과 개성공단과 연계한 승인 발표는 결국, '정부는 할 만큼 다 했다'는 식의 면피용 교묘한 잔꾀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