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분단 56년에 맞는 8.15. 작년의 8.15는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인한 감격과 희망의 8.15였다면, 올해의 8.15는 안타까움과 좌절의 느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미국의 부시 정권이 등장하면서 북한을 주요 대상으로 MD(미사일방어망)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으며 북미대화도 클린턴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나마의 남북대화마저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수구세력은 더욱 기승이다.

그러나 이러한 냉전적 대결세력의 움직임은 쇠퇴해 가는 늦더위처럼 역사를 거스르는 헛된 몸짓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욱 희망과 미래를 준비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해방은 감격스러운 일임과 동시에 뼈저린 분단의 시작이었다. 국내와 해외에서 목숨을 건 민족해방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였으나 해방은 완전한 주체의 몫이 되지 못했다.

해방공간에 동시에 진주한 외세, 그리고 이에 빌붙은 세력들...  친일파들은 다시금 새로운 상전을 모시고 민족화해와 통일을 거부하였으며, 통일지향세력은 외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범민족적 단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해방이 민족의 자주성과 번영의 길이 아니라 분단과 적대의 길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이후 남북 모두에게는 불행과 고통의 근원으로서 분단은 깊숙이 자리잡았다. 남에서는 북의 "빨갱이"를 빌미로 독재와 억압이, 북에서는 `미제`의 위협에 맞서 생존하기 위한 수령중심의 전시국가가 각각 자리잡은 것이다.

작년의 8.15는 해방 후 처음으로 남과 북, 해외동포,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여 6.15 남북공동선언의 지지, 실천과 화해와 협력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전개하였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화끈한 언행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당국간의 회담도 진척이 없을 뿐만 아니라 8.15 행사마저도 장소문제니 단체별 참여자수 문제니 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삐걱거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우려와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좌절의 기운마저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낙담과 좌절에 빠질 때가 아니다. 더욱 더 희망의 기운을 가열차게 지펴야 할 때이다.

작년의 역사적 6.15 공동선언도 남북 당국간의 의지보다는 무수한 애국적 민중들의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한 가시밭길을 마다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이러한 진전이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어려움도 통일운동 세력에게는 더 한층의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지, 낙담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그 과제는 무엇인가? 56년전의 8.15가 완전한 해방이 되지 못한 가장 큰 문제인 외세의 문제와 민족의 대단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미국의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정권이 북한과 합의한 수준을 실질적으로 파기하고 재래식 무기 문제까지 들고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단계마다 엄격한 검증과 투명성을 빌미로 한 사찰까지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 당국의 화해정책마저 거부하고 있으며 북한을 겨냥한 MD정책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생존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의 화해와 협력의 가장 기초인 평화를 흐트러뜨리고 군사적 긴장관계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 우려마저 자아내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통일운동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운동 모두가 나서서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미국의 MD정책과 대북 대결 정책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외쳐야 할 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은 가장 친미우익적 색깔을 노골화하고 있으며 교과서 파동, 야스꾸니 신사 참배 문제 등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을 바꾸어 아시아의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둘째로는 민족대단결 문제이다. 지금 보수야당과 극우언론은 틈만 나면 냉전적 남북대결을 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파탄시키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통일지향 세력들은 내부의 작은 차이인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大同)의 정신으로 대단결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누가 헤게모니를 잡느냐, 누구를 중심으로 하느냐 하는 작은 이익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가능한 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존중해가면서 누구를 몇 명 보내느니 장소가 어디니 하는 사소한 차이를 중심에 두지 말고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아무나 다 함께 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의 기치 하에 정파나 처해있는 조건의 차이를 떠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완의 해방으로서의 8.15. 그것을 온전한 해방으로 만드는 것은 통일을 지향하는 민중운동의 몫이며 그것을 이루는 길은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수하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약력>

80년 서울대 법대 졸업
병원노련 정책국장 역임(88-95)
민주노총 기획국장, 고용안정센터 소장 역임(95-99)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역임(99-2001.2)
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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