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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론> 대선 슬로건의 위력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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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16  0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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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슬로건(slogan)의 나라다. 평양시내에는 슬로건이 적힌 자체 선전물이 즐비하며, 위치가 좋은 건물 외벽에는 필경 슬로건이 붙어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은 슬로건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였을 것이다. 지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떴기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도 함께 붙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 외부 세계에 대해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는 단호한 슬로건은 유명하다. 묘향산 입구에 있는 ‘미래를 사랑하라’는 슬로건은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어려운 시기의 연속이었기에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면서 가자’며 낙관을 키웠을 법하다.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은 지난 4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100돌 기념 열병식에서 연설을 통해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고 외쳤다. 이는 하나의 슬로건이 되어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널리 불린다고 한다.

최근 남측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슬로건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잘 만든 슬로건 하나, 열 정책 안 부럽다’는 말이 퍼질 정도일까. 슬로건은 후보의 말(言)로 된 얼굴이다. 그래서 후보자가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의 김문수는 ‘함께 갑시다. 위대한 대한민국’이라고 손수 지었고, 김태호는 ‘낡은 정치 세대교체’를 내걸었다. 강력한 후보인 박근혜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잡았다. 임태희는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김두관은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를 외쳤다. 김영환은 ‘국민 화병을 고쳐 드리겠습니다’라는 카피를 직접 고안했다. 문재인은 제일 늦게 ‘사람이 먼저다’로 정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이 슬로건들 중에서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세균은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 조경태는 ‘민생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을 들고 나왔다. 아직 출마 선언을 안 했지만 잠재적 후보인 안철수도 어떤 슬로건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역대 대선에서 슬로건의 효시는 1956년 3대 대선에서 이승만에 맞선 신익희의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모아진다. 이후 인상적인 슬로건은 1971년 김대중이 내건 ‘이번에는 2번 대중은 김대중’인데 이는 박정희의 지역감정 전술에 말려 실패한다. 유신시대와 전두환 신군부에 걸친 시기에는 대선이 간접선거가 되는 통에 슬로건은커녕 후보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6월항쟁이 가져다 준 1987년 13대 대선부터 슬로건이 등장한다. 이때 군부 하나회 출신인 노태우는 ‘보통 사람’을 내걸었고, 3김 중에서도 특히 김영삼은 ‘군정 종식’을 내걸었으나 야권 단일화 실패로 패배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3당합당’을 한 김영삼이 ‘신한국 창조’를 내걸고 ‘이제는 바꿉시다’를 내건 라이벌 김대중을 압도했다. 외환 위기 와중에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는 ‘준비된 대통령’을 내건 김대중이 ‘깨끗한 정치’를 내건 이회창을 꺾었다. 5년 뒤 이회창은 ‘나라다운 나라’을 걸고 다시 나섰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건 노무현에 석패했다. 가장 최근인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가 ‘성공’을 바라는 당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정동영의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크게 압도했다.

이처럼 슬로건에는 시대정신이나 후보 자신만의 차별화된 내용을 담기 마련이다. 그래서 슬로건은 때로 선거에서 위력한 힘을 발휘해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미국 대선의 경우는 슬로건의 위력이 돋보인다. 한 예로 2008년에 오바마는 ‘체인지!’(Change)와 ‘예스 위 캔!’(Yes, we can)을 반복적으로 썼다. ‘우리가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 짧은 문구는 흑인에다, 소수자 출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슬로건은 슬로건일 뿐이다. 슬로건이 ‘대선’이라는 마케팅 전략의 일부이자, ‘대통령’이라는 상품을 파는 광고문구라는 것이다. 말(言)로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있어 슬로건은 말의 연장일 뿐이다. 정치인은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다 뱉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선 때 이명박(MB)은 ‘국민성공시대’와 ‘경제대통령’을 내걸고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경제는 어렵고, ‘국민고생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MB의 측근들은 치부를 해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도가 지나쳐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면서 친형부터 하나 둘 감방행이다. 슬로건이 중요하지만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분단시대에서 통일이나 민족 관련 슬로건이 하나도 없다는 게 영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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