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전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이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진행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철마는 달리고 싶다.’

1950년 한국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녹슨 열차의 사자후. 반세기 만에 철마는 묶인 발을 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17일.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 운행식이 열린 것. '철마'는 경의선과 동해선을 통해 남북을 오가며 달렸다. 당시 송상호 출입사무소 시설관리장은 <통일뉴스> 기자에게 "열차가 계속 다녀서 남북교류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이 야드가 중국, 유럽을 오가는 교류물자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년도 채 안 돼 남북철도는 다시 발이 묶였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사자후는 다시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남북철도 연결 5주년을 맞아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실무를 담당한 홍익표 민주통합당 성동(을) 국회의원 당선인을 15일 오후 성동구 사무실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 남북철도 시험운행 당시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홍익표 민주통합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인.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홍익표 당선인은 남북철도 연결이 1년도 채 안 돼 끊어진 상황을 두고 “안타깝다”는 말을 연발했다.

홍 당선인은 “정말 어렵게 당시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시범운행하고 12월 13일에 화물열차가 개성까지 부분운행을 그나마 정기운행이라는 의미로 시작했다”며 “1년도 채 못가서 중단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당시 시범운행과 정기운행을 실행하는 정책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아쉽다”고 말했다.

남북철도운행은 2007년 5월 시범운행, 12월 정기운행까지 됐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전면 중단, 지금에 이른 상황이다.

“90년대 초 학자들이 상상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이 2007년 결실 맺은 것”

▲ 홍익표 당선인은 '철의 실크로드' 구상 실현을 중요한 의정과제로 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남북철도가 처음 연결되는 당시에 대해 홍익표 당선인은 “너무 어렵게 90년대 초반 일부 학자들이 상상하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비전을 제시하고 남북이 합의한 것이 2007년에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통일부에서 일했을 때, 정상회담보다 개인적으로 더 의미 있는 하루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북철도 연결은 사람과 물자가 오고갈 수 있는 수단이다. 실제로 철도연결 사업을 개성공단 근로자 통근용으로 사용했다”며 “그런 측면에서 철도가 연결될 때 상상했던 일들, 통일의 첫 단추를 이제 채웠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남북철도 연결 실무자로 활약한 홍익표 당선인의 설명에 따르면, 남북철도 연결은 90년대 학자들에 의해 한반도종단철도(TKR, Trans Korea Railroad)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 Railroad)가 제기돼, 한국을 동북아 물류기지화하여 남북종단 열차를 이용, 시베리아 대륙횡단 철도를 공유해 유럽 전역으로 수송하는 물류시스템 체계 논의가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철의 실크로드’를 언급, 남북 철도연결 사업이 본격화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06년 이종석 통일부 장관 시절 남북 철도연결 합의에까지 이르렀으나 그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무산됐다. 그러다 2007년 재논의, 합의를 거쳐 5월 17일 첫 남북철도 시범운행이 이루어졌고 12월 정상운행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홍익표 당선인은 “90년대부터 논의되고 김대중 대통령의 비전이 현실화된 것”이라면서 “통일의 첫 단추”라고 요약했다.

물론, 당시 남북 간 철도연결까지는 남북 대화의 진전과 정체라는 부침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홍익표 당선인은 “합의과정에서 남측의 생각과 북측의 생각이 서로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할까”라며 “남북 간에 대화를 할 때 느끼는 것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이면에 다른 배경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남북철도 연결의 난관은 ‘군사적 합의’였다.

그는 “우리는 순전히 철도문제에 대해서 군사적 합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북측은 포괄적 의미에서 군사적 합의를 들고 나왔다”며 “그래서 남북철도 연결사업에 국한한 원포인트 군사적 합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남북 경공업 원자재와 지하광물자원 협력사업이 동시에 진행됐다”며 “사실상 철도연결사업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군사적 합의문제처럼 동시에 진행되고 맞물려 있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북철도 연결 중단, 이명박 정부의 전반적 남북관계 파행 때문”

▲ 홍익표 당선인도 소속돼 있는 민주통합당 한반도평화본부의 위원들이 16일 도라산역장의 안내를 받으며 도라산역을 둘러보고 있다. 도라산역에서 평양역까지는 205km에 불과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2007년 5월 첫 남북철도 연결 이후, 1년도 채 안 돼 남북철도 연결은 중단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정책 기조와 금강산 관광 중단 선언, 대북 전단지 살포 등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북측은 ‘12.1’조치를 발표, 개성관광과 남북 간 철도운행 중지, 남북 직통전화 단절 및 개성공단 남측 상주인원 감축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철마’는 달리지 못했다.

홍익표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전반적으로 남북관계가 나빠졌다. 꼭 남측의 책임, 북측의 책임을 떠나서 현상적으로 보면 2008년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화물열차 운행이 중단됐다”며 “그것은 단순한 화물열차 중단이 아니라 전반적 남북관계 파행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철도가 연결됐을 때, 남북관계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결과라고 봤다”며 “그 말은 뒤집으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이 남북철도 연결 사업의 비경제성 문제제기에 대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철도를 운행하기에는 화물이 없다”며 “그러나 그 말은 정확하게 개성공단이 제자리 걸음을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홍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에게 정권을 물려줄 당시의 수준이 5년 동안 정체됐다. 기존 사업대로라면 5년 정도면 2차 개성공단이 조성되고 기업생산량이 배 이상 늘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까 (남북철도) 경제성이 없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적으로 남북관계가 진행되고 정상적으로 개성공단 2단계가 마무리되고 3단계가 시작되면, 근로자수는 20만 명 가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생산량이 배 이상 늘고 물동량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라면서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비경제성 문제제기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악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철도 재연결, 당국 간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에서 시작”

▲ '중무장된 비무장지대(DMZ)'를 뚫고 철마가 달렸지만 지금은 다시 철마가 멈춰 서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끊어진 철도를 다시 잇기 위한 과제가 무엇일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홍익표 당선인은 “당국 간 대화를 기초로 한 신뢰관계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홍익표 당선인은 “남북철도 연결은 철도 문제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신뢰관계, 당국 간 대화체계를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대화가 복원되고 민간교류가 활성화 되면 남북철도 운행 재개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놓여진 철도이다. 물론 장기간 방치해 기술적, 안전상 점검은 필요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처음 한 것보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측도 한번 했던 것이니까 다시 재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익표 당선인은 남한 사회 내 합의가 철도연결 재개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진단했다.

홍 당선인은 “과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 파탄난 남북관계 복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 것인가. 다시 남북관계 영역이 여야에 의한 대립 구도로 논쟁되면 북측과의 합의보다 남측 내 합의가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즉, 이명박 정부가 파탄낸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해소하지 않는 이상, 차기 정부는 초반부터 운신의 폭이 좁아져 제대로 된 남북관계 회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북철도 연결 당시 실무자의 경험을 토대로 “전체가 잘 되어서 부분이 잘 되는 경우가 있다. 부분이 합의돼서 전체가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며 “전체가 안 되면 이 사업을 갖고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전체 사업이 잘된다고 해서 특정 부분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남북관계”라고 조언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남북 간 협의를 이끄는 것과 굉장히 실무적 조율과 정책적 조율이 함께 가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안 된다”며 “전략적 실무, 행정적 마인드가 병행되는 게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고 이를 정부가 고민하면서 심각하게 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인으로, 남북관계 전문가이자 실무자로, 홍익표 당선인의 국회 활동 포부는 남다르다.

그는 국회에 들어서면 △5.24조치의 법적 근거와 피해자에 대한 책임 여부, △국가보안법 수정 및 폐기 논의, △남북 교류협력 전반 완화, △예산 재편성을 통한 통일부의 활동 보장, △정부의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여부 등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뜻을 밝혔다.

2007년 5월 17일. 남과 북의 인사들이 철도를 타고 오고가며 단일기를 흔들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던 당시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기억의 편린으로 남은 한 장면으로 흘러간 것도 사실이다.

홍익표 당선인의 “통일의 첫 단추”라는 말처럼 ‘남북철도’는 우리가 다시 채워야 할 단추임에 틀림없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