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동부’의 ‘의도된 판깨기’ 

12일 개최된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이른바 ‘당권파’의 물리력을 동원한 회의 진행 저지로 무기 정회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새진보통합연대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난산을 거쳐 통합해 2011년 12월 6일 창당된지 5개월여 만이다.

12일 중앙위원회가 진행된 일산 킨텍스 회의장은 그야말로 ‘절망의 구렁텅이’였다. 당권파로 통칭되지만 실상은 이른바 ‘경기동부’로 분류되는 일단의 세력이 중앙위원은 회의석에서, 평당원은 방청석에서 의사진행 발언권 요구와 구호제창으로 조직적으로 회의진행을 방해했다.

특히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첫 번째 의안인 강령개정안을 표결처리해 가결을 선언하자 이들은 안내요원들을 물리적으로 밀치고 단상으로 뛰어올라 유시민.심상정.조준호 공동대표에게 폭언을 내뱉고 폭력을 휘둘렀다. 통합진보당과 경기동부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 전 과정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수많은 현장취재 기자들의 손끝을 거쳐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경기동부와 통합진보당, 나아가 진보진영이 온 국민 앞에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꼴이다.

이날 회의 파행은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고, 잘잘못을 따지자면 비례대표 경선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단상점거와 폭력사태까지 이른 대목은 단순한 계파 경쟁이나 당내 이견 조율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에 관한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현장을 지켜본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는 이번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파행은 당권파 일부인 경기동부의 ‘의도된 판깨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이들의 단상점거나 폭력이 조폭 못지않은 퇴행적 집단의 행태라는 비판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손실은 이정희 대표를 잃은 것

이번 사태로 경기동부와 통합진보당,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에 손상을 입었지만 가장 큰 손실은 역시 이정희 공동대표라는 유망한 진보정치인이 꺾인 일이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회의 시작 직전에 공동대표 사퇴를 발표하면서 “꼭 화합해서 통합진보당을 국민들 속에서 세워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지만, 정작 자신은 퇴장해버림으로써 이 같은 예상되는 파행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자파세력의 물리력 동원에도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 정파도 책임지지 못하는 ‘고용사장’에 불과한 정치인임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진보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정희 대표는 한미FTA 반대투쟁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의 현장 등에서 신뢰를 쌓아갔고, 의정활동과 TV토론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정치스타로 자리 잡았지만 이번 일련의 사태에서 결국 한계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는 이에 앞서 진보정당 통합과정에서부터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특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정파적 논리에 갇혀 스스로의 길을 열지 못했다. 최근 이정희 대표의 인터뷰나 발언 속에서는 ‘역시 이정희’라는 초기의 예리함이나 순수한 열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마웠고 행복했다”는 마지막 인사말처럼 과거의 촉망받는 진보정치의 기대주 이정희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과 당원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 이정희 대표였던 만큼 더욱 성숙된 정치인으로 거듭난다면 이번 사태는 쓴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정당 정치에서 한계 보인 ‘경기동부’

이번 사태의 주역은 단연 ‘경기동부’였고, 경기동부는 이제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하게 됐다. 오랫동안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자신을 혁신하지 못한 경기동부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대중정당 정치에서 그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중앙위원회 회의장에 미리 준비한 손구호를 들고 나타나 회의를 깨뜨릴 의도를 분명히 했고, 참여당계 중앙위원의 자격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명분으로 아예 강령과 당헌 개정안 상정까지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지난 4, 5일과 10일 두 차례의 전국운영위원회에서도 폭력사태만 동반하지 않았을 뿐 똑같은 행태가 반복됐다.

이들은 비례경선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수용할 수 없다며 진상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경선 비례당선자들의 진퇴 여부는 당원총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을 내놓았고, 이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폭력까지 불사했다.

이들의 주장 중 일부 타당한 점이 있지만 불합리한 점 또한 많다는 것은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결국 협의와 협상을 통해 일부 관철하고 일부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 정파의 주장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고지순한 진리로 내세우며 타협을 거부한 채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관철하려했다.

이들의 이 같은 집단적 비타협성과 비합리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온 문제였고,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된 바 있다. 경기동부는 과거 ‘당권파’ 시절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던 구태를 변화된 대중정당에서 되풀이함으로써 자신을 혁신해내지 못한 문제집단으로 확실히 낙인찍혀 쇠락을 자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장성과 성실함, 결연한 의지와 일사분란함 등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제 경기동부는 많은 국민과 당원들의 신망을 잃었다. 따라서 또 다른 해법을 찾기 위해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되며, 깊은 자성에 기초해 당 내분 수습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다른 정파들 역시 이들을 매도하는 쉬운 길보다 함께 혁신하는 계기로 삼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뼈 깎는 자성의 기회로

통합진보당의 내분사태는 진보진영 전체에도 커다란 타격을 안겼다. 국민의 눈에는 당권파나 통합진보당, 진보진영이 모두 한 덩어리로 보일 따름이다. 아무리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하소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한 경기동부가 힘을 잃는다고 해서 통합진보당이 자동적으로 더 합리적 집단으로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모든 정파와 당 전체가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어렵게 결단했던 ‘통합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살펴야 할 때이다.

이번 통합진보당의 일련의 사태에서 당 밖에 있는 진보세력은 어떤 압력이나 조정력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무기력함을 노출했다. 민주노총이 중앙위원회 하루 전에 입장을 정하고 압박을 가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재야단체들과 재야원로들도 유의미한 조정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당의 기본토대라 할 수 있는 진보진영의 총체적 무능력이 드러난 셈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다가오는 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이 기여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당 내분을 수습하고 국민들의 민생현장으로 들어가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진보의 디딤돌을 놓아나가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일산 킨텍스에서 내부갈등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도 서울광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자리에는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당선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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