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민족21 편집기획위원)


경제재건과 선군영도를 위한 영화보급

북한은 1970년대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반영한 영화작품들을 많이 제작했을 뿐 아니라 영화보급사업1)과 ‘영화실효투쟁’2)을 광범위하게 전개했고 1980년대에도 이 분위기는 이어졌다. 다만 1990년대 중반 이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영화보급사업과 ‘영화실효투쟁’도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재건의 길에 나선 지금은 당 선전선동부가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영화보급을 위해 고심하고 있을게 분명하고 <조선중앙TV>에 방영되는 예술영화도 정책적 수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2012년 1~2월 기간에 방영된 47편의 예술영화들에서도 확인된다. 영화들 가운데 새 조국 건설과정을 그린 영화는 <다시 만난 전우> <시련의 해> <첫 파견원> <초행길> 등 8편, 생산현장에서의 당정책 및 김일성.김정일의 경제교시 관철을 다룬 영화는 <그는 탄부였다> <가야할 길> <시련을 뚫고> <길을 비켜라> <대홍단책임비서> 등 13편, 농촌정착과 농촌지원을 그린 영화는 <불타는 마음> <도라지꽃> <녀자뜨락또르운전수> 등 6편, 그리고 군인영웅.군인정신.헌신적 군복무를 그린 영화는 <전사의 명세> <우리 정치지도원> <명령만 내리시라> <복무의 길> 등 9편이었다(<표3> 참조). 경제재건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선군영도의 정치노선이 영화 선정에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가야할 길>을 비롯한 2000년대의 작품 몇 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종합가공반’ 제작과정을 다룬 <가야 할 길>

2002년 작품 <가야할 길>은 청남기계공장에서 종합가공반3)의 제작과정에서 벌어지는 생산현장의 투쟁을 다룬다. 시작과 끝에 흐르는 주제곡의 가사 “뒤돌아보지 않으리라. 멈춰 서지 않으리라. 장군님 따라서 가야 할 길”은 비장미가 넘친다. 해군에 입대했다가 기뢰부설훈련 중 전사한 아들의 유품을 받은 지배인(최일준)은 공장으로 돌아와 유압기 설계에 전념한다. 지배인은 리과대학 박사원을 졸업한 ‘강진’과 갈등이 빚는다. 지배인은 ‘모든 것을 우리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강진은 ‘최첨단설비만이 살길’이라 역설한다. 지배인은 내각 성(省)에 올라가 종합가공반 완성기한을 연장받자고 하는 부기사장(림병호)을 타이르면서 말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사람은 구태여 주위를 살피지 않는 법이야.” 지배인은 종업원회의에서 장군님 앞에서 1년 안에 종합가공반 완성을 다짐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난관을 뚫고 나가야지”라고 하면서 “(부족한 전기문제를 풀려면)사색하고 탐구하고 뚫고 머리를 써야 하지 않나”라고 설득한다.

지배인은 강진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사장에 추천하고, 강진은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최첨단 유압장치 설계도 완성을 위해 몸부림친다. 지배인은 강진과의 대화에서 “결사관철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운명문제”라고 말한다. 강진의 동생 진옥이 남자친구인 용해공(고필승)에게 하는 말, “지배인동지의 높은 실력과 패기를 좀 닮으라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결사관철’을 ‘당정책에 대한 태도’ 문제로 여기며 당정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지배인은 용접봉을 하나 태우는 시간이 1분57초라고 말할 정도로 ‘실력가형 간부’이다.

강진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지배인.부기사장과 함께 유압실험을 강행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강진은 구급차에 실려 가고, 지배인은 그를 살리기 위해 혈액과 골수를 기증하려고 병원을 찾았지만 강진은 과학원으로 떠나고 없다. 지배인의 처(병원 과장)는 뒤늦게 아들의 희생과 열사증 수여의 소식에 접한다. 처는 지배인이 아들 소식을 알면 당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지배인은 못 들은 척 하며 말없이 설계도면을 꺼내들고 공장으로 가려 한다. 지배인은 공장으로 나가면서 처에게 과학원에 가서 강진을 돌보도록 부탁하고 처는 해군부대 방문을 미루고 과학원에 가겠다고 약속한다.

<가야할 길> 후편은 지배인이 과학원을 방문한 처(병원과장)로부터 강진이 유압장치 설계의 실패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낙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당비서는 지배인을 위로하며 종합가공반을 성공적으로 끝내자고 격려한다. 당비서는 “청남의 노동계급을 믿겠다”고 한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칭) 앞에서 지배인이 종합가공반 제작을 “무조건 집행해 선군의 동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일을 상기시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할 길이기에 선군시대에 그이의 동지가 되자”고 역설한다. 「동지애의 노래」의 한 소절이다.

이윽고 지배인의 처는 강진이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쓴 기초자료를 가지고 돌아와 지배인과 당비서에게 전한다. 전승절 예술행사에서 지휘를 맡기로 한 강진을 대신해 지배인이 무대에 나와 기초자료 전달 소식을 전하고는 지휘봉을 잡는다. 합창곡은 「동지애의 노래」이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 강진의 수술 장면과 지배인 처의 해군부대 방문 모습이 교차한다. 공장 근로자들은 강진의 자료에 의거해 유압실험에서 성공을 거둔다. 이어서 50톤 베트4)를 제작하는 과제로 넘어간다. 50톤 베트는 1000분의 1㎜의 정밀도를 요구한다는 것.

당비서는 지배인이 공장대학을 갓 졸업한 용해공(고필승)의 의견을 일축해버린 독단적인 행동을 나무란다. “지금 일부 일군들 속에는 지배인의 독단과 소총명이 도를 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종합가공반의 과제는 지배인만의 것이 아니다”고 한다. 지배인은 당비서의 지적을 달게 받아들이고 작업장에서 괴로워하는 필승에게 찾아가 도시락을 건네며 말한다. “설계가 대단해. 아니 훌륭하오. 앞으로 지배인감이야.” 필승의 설계에 따라 50톤 베트의 제작도 성공을 거둔다. 그러던 어느 날 당비서는 공장 근로자들을 모아놓고 “장군님께서 머나먼 외국방문길에서 오늘 새벽, 우리 공장 노동계급에게 믿음의 말씀을 주셨다”고 전하고 기술자.노동자들은 분발을 다짐한다.

마지막 관문은 50톤 베트를 기중기로 들어 올려 종합가공반에 앉히는 것이다. 지배인은 이 작업에 목숨을 걸겠다는 태세이고, 그 결심에 당비서와 강진의 여동생 진옥5), 그리고 부기사장이 함께 한다. 지배인의 결행 소식에 접한 기술자.노동자들이 몰려와 50톤 베트 들어올리기에 마지막 힘을 합친다. 이윽고 50톤 베트가 들어 올려지고 근로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어지는 두 개의 마지막 장면. 강진은 수술 결과가 좋아 공장으로 돌아오고 지배인과 뜨겁게 포옹한다. 한편 지배인의 아들이 근무하던 해군부대의 제대군인들이 청남기계공장에 파견되자 지배인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내 아들’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맺는다.

북한산 석고로 시멘트 생산에 성공하는 <길을 비켜라>

2001년작 <길을 비켜라>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한 시멘트공장에서 북한산 석고로 시멘트 생산에 성공하는 일화를 담고 있다. 지배인(윤철권)은 젊은 날의 별명 ‘야생말’답게 공장의 모든 업무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공장은 평양-남포간 고속도로6) 건설장에 시멘트를 보장하는 과업을 맡고 있는데 생산정상화가 여의치 않다. 외국 원자재의 수입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북한산 석고의 활용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주체철’, ‘주체섬유’, ‘주체비료’ 등을 연상시킨다). 밀어붙이기와 ‘배짱의 도가 지나쳐’ 권리정지의 책벌을 받은 바 있는 지배인은 기사장(유성혁)을 비롯한 일부 간부들의 소극성과 보신주의에도 불구하고 소성로 보수공사 등의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다. 새로 부임한 당비서(박삼식)는 김정일 교시 관철을 위한 지배인의 노력을 남달리 이해한다.

북한산 석고에 의한 시멘트 생산의 열쇠는 실험실 연구사(림훈철 준기사)가 쥐고 있다. 실험을 거듭하던 훈철에 대한 지배인과 기사장의 평가는 야박하기만 한데 당비서만은 훈철의 실험을 격려한다. 당비서는 훈철의 실험성과 자료를 지배인에게 건네게 되고 지배인의 아들은 지배인에게 “모든 공장 근로자들이 지지하는 상황에서 훈철의 성과에 아버지가 반대해서 뒷공론이 많다”고 전한다. 지배인은 훈철의 성과 자료를 검토한 뒤 실험실에 찾아가 성과를 인정하고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사과한다. 지배인은 일찍이 공장 건설 초기에 소성로에 중유나 유연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변을 물리치고 무연탄 사용으로 소성소를 작동시키는데 성공한 장본인이었다.

공장당협의회가 열린 자리에서 기사장은 공장현실이 복잡한데 석고광산 개발업무까지 전개하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지배인은 실험성과를 지지하며 인근의 석고광산을 개발해 그 광산 석고로 시멘트를 생산할 것을 주장한다. 지배인은 거수가결에 붙일 것을 제안하고 거수가결에선 기사장조차 찬성하기에 이른다. 소성로가 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기사장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소성로를 뜯지 않고 해결하는 성과도 거둔다.

몇 해 전에 수술 받은 췌장암이 도진 병든 몸으로 오로지 시멘트 생산의 정상화에만 몰두해 성과를 거둔 지배인이 병원으로 향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에는 상처한 지 3년 동안 독신으로 지낸 지배인과 속도전청년돌격대 시절에 그와 인연이 있었던 광산기술자 하영심(림훈철 어머니)이 동승한다. 이들의 혼사를 주선하려던 당비서가 지배인의 병간호는 “영심 동무가 적임”이라 하자, 지배인은 “당조직의 지시인데 제가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라는 농담으로 영심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영화는 ‘거친 성미’와 ‘장군님의 교시 관철’ 밖에 모르는 지배인을 등장시켜 이어지는 사건을 교차시키고 있는데 ‘고난의 행군’ 시기의 식량사정의 어려움도 그대로 보여준다(공장숙소에서 강냉이국수로 끼니를 때우는 당비서, 쌀이 떨어져 쌀을 꾸러간다는 대사나 식량 때문에 출근 못한 근로자를 위해 식량을 구하러 나선 직장장의 일화, 지배인이 가족으로부터 생일상을 받고는 이를 공장에 가져다 노동자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 등). 이 영화에는 생산현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들을 담고 있다. 기사장이 지배인으로부터 대안중기계공장에 가 소성로에 쓸 예비발전기 수리용 회전자축을 구해오라는 지시를 받고도 상부 지시와 어긋나는 줄 착각하고 이를 늦추는가 하면, 지배인이 수산사업소에 부두확장공사용 시멘트를 제공하고 동태를 받아와 공장 근로자들에게 나눠준 후방사업이 과연 ‘독단주의’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동태 수송과정에서 일어난 자동차사고에 대한 책벌을 지배인 대신에 당비서가 받겠다고 나서는 등의 모습이 펼쳐진다. 당비서는 그 과정에서 “지배인은 자나 깨나 장군님의 교시 실천만 생각하는 진짜배기 충신”이라고 평가하고, 기사장에게 “관료주의와 강한 요구성을 갈라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배인이 입원 길에 나서기 전에 북한산 석고로 시멘트 생산에 성공한 것을 전해 들으며 하는 말, “그러니 남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에 영화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순직한 채탄공의 영웅적 행위를 다룬 <그는 탄부였다>

<그는 탄부였다>는 2007년 3월에 순직한 2.8직동청년탄광 채탄5중대 세포비서 김유봉(노력영웅,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투쟁담을 담은 실화 예술영화이다. 유봉은 선군혁명전진대회에 참가하러 평양에 왔다가 화력발전소 관계자로부터 “탄 좀 많이 캐주오.... 탄이 없어 공장이 멎고 달리던 기차도 선다”는 말에 채탄5중대에서 3천톤을 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탄광 사무실에 「결사관철」「총진군」액자가 예사롭지 않다. 석탄공업성 부국장(림학준), 초급당비서(태우성), 5중대장(한성걸), 1996년 10만톤 증산과정에서 발파구멍을 뚫다가 순직한 장성민의 아들 수철(소대장), 그리고 유봉 등은 석탄증산에 운명을 걸고 있다.

탄광에 새로 들어온 ‘원익’은 소금밭 노동자로 일하다가 도망나와 어머니(유치원 원장)로부터 혹독하게 비판받고 집에서 쫓겨난 사고뭉치였지만, 탄광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 그의 애인 ‘명심’은 세포비서 유봉에게 원익의 과거를 설명하면서 탄부가 될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수철은 어린 여동생(수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늘 마음 아프다. 부국장은 수정을 이모 댁으로 보내고 수철도 후방부로 전근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유봉은 탄광을 떠나는 수철을 끝내 주저앉힌다. 수철은 그 길로 막장일에 전념하고, 유봉은 자신의 처에게 수정을 함께 키우자고 설득한다. 그러던 중 수정을 강반석혁명학원에 입학시키기로 한 결정이 상부로부터 내려오자 탄광은 감격에 휩싸인다. “탄부를 혁명가로 봐주는 게 아닌가”라며 감동하는 원익은 이미 혁신자 대열에 들어섰다.

김유봉은 혁신자가 된 원익에게 어머니에게 찾아가도록 설득하지만 원익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급당비서는 유봉을 파견해 원익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조치한다. 중대장과 세포비서, 그리고 원익과 명심이 직동 탄광사택에서 어머니와 해후한다. 한편 “평양의 불빛이 빛날 때 탄부의 영예가 넘친다”는 대사에서 드러나듯이 2.8직동청년탄광은 평양에 석탄을 공급을 생산단위이다. 한번은 중대장 성걸이 생산부족분 350톤을 마치 달성한 것처럼 속이다가 들통 난다. 소대장 수철이 세포비서 유봉에게 이를 알렸고 유봉은 그날의 생산량 자체를 영(0)으로 처리한다. 유봉의 생각은 “채탄5중대는 온 나라가 다 알고 장군님께서 알고 있는 중대인데 생산량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초급당비서로부터 “당신도 당원이오?”라며 질책을 받은 중대장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다.

영화는 이윽고 대단원으로 치닫는다. 김유봉은 침수갱7)과 3호굴 사이에 맞구멍을 뚫어 채굴할 수 있는 갱으로 만들겠다는 대담한 착상을 한다. 부국장은 한 공장으로부터 양수기를 가져오도록 조치하고, 그 공장 사장은 직동탄광에서 석탄을 출고하려다 제지당하고 그 과정에서 유봉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그가 해마다 10만톤 생산을 달성해왔고 석탄공대 통신대 졸업생들과 일군들을 많이 양성해왔으며. 52명의 당원들과 20여년간 ‘충성의 당세포’를 운영해온 탄부라는 것이 드러난다.

내각 석탄공업성은 침수갱과 3호굴 맞구멍뚫기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유봉을 갑자기 소환해 중앙간부로 임명하려고 하지만, 유봉은 “장군님께서 탄부 김유봉을 알고 계시지 막장을 떠난 김유봉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며 막장으로 돌아온다. 유봉은 부국장, 초급당비서, 중대장, 소대장 등에게 평양 만수대의사당에 혼자 들어가 보니 마치 “직동의 탄부가 왔구먼. 석탄이 전기이고, 전기가 있어야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갈 수 있소”라는 ‘장군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유봉은 침수갱과 3호굴을 연결해 물을 지대가 낮은 금천강으로 뽑기로 하고 중대원들에게 다음날 결행하는 것처럼 속여 모두 갱 밖으로 나가게 조치한다. 다만 부국장만이 유봉과 함께 남아 침수갱 폭파작업을 준비하고 결행에 옮긴다. 폭발음과 함께 초급당비서, 중대장, 소대장등이 갱으로 진입하지만 유봉의 몸이 함께 폭발한 뒤였다. 탄부들이 절규하고 직동탄광에 배치되어온 공산대학 졸업생 딸(은정)이 울음을 터드린다. 마지막 장면은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김유봉의 묘비 앞에 가족들과 탄광 동료들이 참배하는 모습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그가 즐겨 읊은 시 「동발나무」가 흐른다.

대홍단에 활짝 피어난 철쭉, 인간승리의 이야기 <대홍단책임비서> 4부

2001년작 <대홍단책임비서> 4부 <대홍단의 철쭉>편은 불구의 몸으로 사회보장 대상자인 최새복(지배인 최형세의 딸)이 입당도 못하고 ‘1천정보 개간 전투장’에 참가하지도 못하던 처지에서 인간승리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영화는 군당 책임비서(김충진)가 지배인과 함께 무지개언덕에 올라 감자육종, 이탄 채취전투 등 깃발 11개를 언덕에 세울 것을 결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임비서는 ‘걸린 문제’ 해결을 위해 “1천명 제대군인을 믿고 내밀어보자”고 한다. 책임비서와 지배인은 제대군인들과 함께 이탄전투에 참여해 등짐까지 직접 지는 모습을 보인다. 돌격대원들이 새복에게 찾아가 “우린 새복이 너 몫까지 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새복은 “돌격대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달라...내 꼴이 이게 뭐니... 나는 죽었다. 이 세상에 없는 여자”라며 좌절감에 흐느낀다.

‘철쭉갱 화선입당’ 때 새복은 입당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친구 김류경(책임비서의 딸)은 1천명 당원돌격대 대장이 된다. ‘1천정보 개간전투’에 참가할 당원돌격대가 조직되던 날 책임비서는 당원이 아닌 새복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대홍단군 전체가 개간전투로 들끓고 있는 때에 새복은 빈방에 홀로 앉아 괴로워한다. ‘장군님이 다녀가신 곳을 걷고 싶고, 그 곳에 묻히고 싶어 하는’ 새복의 ‘순결한 마음’을 알게 된 책임비서는 새복의 입당을 도와주지 못한데 대해 자책한다.

한편 감자육종 연구사 리석은 계속되는 실패로 책임비서와의 갈등을 빚으면서 혜산으로 옮겨간 인물이다. 리석은 대홍단을 떠나면서 애인 주순절 연구사에게 말한다. “내가 이제 연구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치요. 혜산에 가서 아이도 찾고 장마당 출입이라도 해서 한 목숨 부지할 결심이오.” 순절은 “그건 타락이에요”라며 만류하지만, 리석은 떠나고 만다. 책임비서는 정보당 수확고 2.5배 증대가 가능한 다수확품종을 성공해 대홍단이 “온 나라의 감자원종장이 되어야 한다”고 순절에게 역설하지만, 순절은 “리석 동무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라며 “아마 도덕적 원인이겠지요”라고 한다. 고아원이 아들을 데리고 간 데 대해 리석은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1천정보 개간전투장에 참가한 청년돌격대는 대부분 처녀들로 꾸려져 있고 제대군인들이 전투장에 투입되면서 젊은이들의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전투장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간판이 보인다. 분장장이 지배인과의 협의에서 1천정보 개간을 시간 내에 완수 못할 것을 우려하지만 제대군인들과 돌격대원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성공한다. 책임비서는 분장장 등에게 “군인정신을 배워야 해”라고 말한다. 이는 요즘 북한사회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한편 책임비서는 “장군님 다녀가신 그 밭머리를 걷고 싶다”는 새복의 염원을 받아들여 그를 포전선동원으로 임명하면서 선동장비를 장착한 삼륜자전거를 마련해준다.

책임비서는 조직비서를 혜산에 파견해 리석을 설득하려다 실패하자 직접 리석에게 찾아가 말한다. “대홍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순절이도 그렇소.... 나는 책임비서요. 사람들의 사생활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살펴야 할 당일군이라는 말이오. 대답하오. 그가 싫어졌소? 아니면 고아원에 맡겼다는 그 아들 때문이오?” 책임비서는 리석의 아들이 류경과 사위 장명우가 키우고 있는 ‘승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대홍단에 돌아와 혼자 가슴앓이를 한다. 한 켠에선 개간전투장에서 새복이 제대군인들에게 「총폭탄」이 새겨진 손수건을 선물하고, 선동원으로서 서해 해상사건에 대해 방송하며 제대군인들이 ‘분기탱천’하는 모습도 나온다(우리 코드에는 맞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영화적 관습’이다). 대홍단군은 이제 11개 깃발 가운데 3개를 올리는데 성공하고 판유리공장 건설 등의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대홍단의 철쪽>은 두 에피소드로 끝맺는다. 하나는 제대군인들이 새복의 집부터 전기난방 시설을 하자고 하는데 군당의 결정은 제대군인의 살림집부터 전기난방 한다는 것이었다. 새복의 남편 박창호(부비서, 제대군인 출신)는 새복이 제대군인들의 생각에 동조한 것에 대해 “새복의 정신이 병들었다”며 질타한다. 새복은 남편과 함께 분장장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집은 제대군인에게 주고 분장장 집에 우리가 동거하면 어떤가요?” 새복의 깊은 마음에 창호는 감동한다. 다른 하나는 책임비서 등이 새복의 집을 방문해 진행한 가정에서의 ‘입당’행사이다. 군당 조직비서는 “사회보장자 입당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만류했지만, 책임비서가 완강하게 밀어붙여 도당의 승인을 받았던 것이다. 당기를 세워놓고 군당 비서처의 이름으로 새복에게 당원증을 수여한다. 그 보증인은 철쭉갱 당원돌격대장 김류경과 군당위원회이다. 새복은 주순절에게 말한다. “난 드디어 행복을 찾았는데, 언니는?”

대홍단의 인간군상들과 자력갱생의 나날들, <대홍단책임비서> 5부

<대홍단책임비서> 5부 <방풍림>편은 리석 연구사가 대홍단군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판유리공장 건설을 둘러싼 우여곡절을 교차시키면서 여러 이야기를 엮어간다. 대홍단 도시건설사업소 지배인(장명우)은 혜산의 리석에게 찾아간다. 감자술과 감자빵을 건넨 명우는 직설적으로 리석에게 따지듯 묻고 리석은 “승준이는 내 아들이요”라고 실토한다. 리석은 부인의 임종도 보지 못할 정도로 연구사업에 미쳐있었고 고아원에서 승준을 데려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명우가 장인(책임비서)처럼 냉가슴을 앓는다. 명우의 처 류경은 “당신 없이는 살아도 승진이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명우는 장인을 만나 혜산에 다녀온 사정을 전하면서 집안일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명우는 류경에게 아이를 고아원에 돌려보내고 임신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슬쩍 권유해보지만 류경은 “아이를 내보내면 당장 이혼하겠다”고 맞선다. 두 사람의 옥신각신 대화가 흥미롭다. “그러니까 넌, 날 군서방으로 생각했다는거지? 마른 명태처럼 두드리겠다” “당장 재판소에 가자!” “(돌격대원으로 대홍단에 와 있는) 평양처녀, 개성처녀 골라가며 재혼하겠다.”

한편 책임비서와 지배인(최형세)은 감자육종온실에 필요한 판유리를 군 자체의 힘으로 생산할 것을 결심한다. 지배인은 협의회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유리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한 간부는 “토론해야 지배인동지에게서 자력갱생 밖에 더 나올 소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투정부린다. 지배인은 “전기도 우리가 이악하게 달라붙어 해결했는데... 역사와 경험을 창조해보자”, “판유리문제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다”, “장군님께서 농기계, 비료, 종자까지 보내주셨는데 이제 판유리까지 손을 내밀겠는가? 5호 발전소를 건설하던 기세면 무세울 게 없소”라며 설득한다. 결국 철쭉갱 당원돌격대원들에게 유리공장 건설을 맡기로 결정하고 매 분장에서 인수원, 목수 등 3명씩 유리공장 건설에 차출하도록 결정한다. 지배인은 “실무적 포치는 했으니 유리기술자 문제는 책임비서 동무가 해결하시오”라고 과제를 넘기자 책임비서는 “군당집행위원회에서 따로 보도록 합시다”라고 결속한다.

책임비서는 이동 중에 ‘방랑자’들을 도안전국으로 호송하던 차량을 만난다. 대홍단이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유입된 젊은이들이 안전원들에게 체포됐던 것이다. 책임비서는 이들은 3,4호 발전소 건설장에 보내겠다면서 이들을 인수받는다. 트럭에 올라탄 책임비서는 젊은이들 속에 5호 발전소 철쭉갱 돌격대원 출신의 오영호를 발견한다. 영호는 예전에 책임비서에 대해 비방.신소한 오승관(자재과장)의 아들로, 아버지와 싸운 뒤 이모부가 일하는 남포유리공장에서 일하다가 대홍단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영호는 “판유리는 견습공도 만들 정도로 간단하다”고 책임비서에게 말한다. 책임비서는 군당집행위원회에서 영호를 판유리공장 책임자로 임명하려고 하지만 19세 청년에게 그 직책을 맡길 수 없다는 반대에 직면한다. 더욱이 영호가 오승관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공장을 둘러본 영호는 ‘외양간’ 같다며 판유리 생산공정별 작업방법과 표준조작지도서를 책임비서에게 준다. 영호는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사실을 밝히고 “남포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책임비서는 영호의 판유리공장 책임자 임명에 끝까지 반대하는 군 안전부장과 함께 오승관 부자를 만난다. 오승관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대홍단을 떠나도 깨끗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소. 떳떳하게 살고 싶소”라고 한다. 영호가 아버지가 얻어맞은 것은 대홍단을 떠날 때 돼지 한 마리를 훔쳐 팔고 떠났기 때문이란다. 책임비서는 “죽어도 대홍단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왜 못하오. 아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면”하고 오승관을 설득한다. 책임비서는 “장군님의 두리에 성을 쌓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청년문제는 혁명의 전도문제”라고 하면서 영호에게 삶의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군 안전부장도 이를 받아들인다.

한편 낡은 수확기의 총동원을 위해 준비태세를 갖추던 장명우는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가고 박창호의 설득으로 요기를 할까 해서 새복의 집에 간다. 명우는 “류경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이라며 승진이 리석 연구사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때마침 새복의 집에 들린 류경이 문밖에서 그 대화를 듣고는 ‘키운 정’ 때문에 괴롭다. 류경은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 승진을 리석에게 돌려주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류경은 리석을 만나 대홍단으로 돌아올 것을 설득한다. 이 와중에 한 분장의 포전 감자작황이 다른 포전에 비해 좋지 않았는데 큰 길에만 작황이 좋고 뒤편에는 나쁜 ‘눈가리기’ 식이었음이 드러나 분장 초급당비서가 처벌을 받는다. 분장장은 책임비서에게 초급당비서의 책임이 아니니 자신을 처벌하라고 하지만, 책임비서는 “군당의 수천 명 당원이 결정한 것”이고 “분장장에 대해서는 간부당 생활총화에서 심각한 비판이 제기될 것”이라고 밝힌다. 군의 여론동향을 살펴온 노인 한분이 책임비서에게 찾아와 “화산재 밭에 감자를 심어서는 곤란하다.” “책임비서 어른이 감자농사를 제쳐놓고 건설장에만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장군님께서 대홍단은 감자농사가 기본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판유리공장은 아이들 한테만 맡겨두고 간부들의 관심이 모자란다.” 이에 대해 책임비서는 “아직 일군들 속에 못된 형식주의가 남아 있다”고 반성한다. 이 노인은 걱정은 6부 <무지개언덕>편에서 현실로 드러난다.

<방풍림>에서는 판유리공장 화재사건이 극적인 전환을 이끈다. 간부들이 이구동성으로 “코흘리개에게 맡긴 게 잘못”이라고 쑤군거리고 군 도시경영과장은 “고의적인 방화 같다”면 영호를 의심한다. 군 안전부장은 “주인이 자기 집에 불을 놓겠는가”라며 영호를 두둔하지만, 영호는 “제가 불을 질렀습니다.... 공장이 타버렸다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따위 외양간 공장은 장군님의 뜻이 아닙니다. 밀짚 지붕 때문에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어제도 두 명이 질식했습니다. 제가 교화소에 갈 테니 이제 현대적인 공장을 세워주십시오”라고 절규한다. 책임비서는 영호의 방화 행위는 “공장을 형식적으로 지어준 나와 일군들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라면서 제대군인들을 판유리공장 건설장에 동원해 제대로 짓도록 결정한다. 한편 승진을 데리고 리석에게 찾아간 주순절이 책임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리석이 대홍단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책임비서 부부는 대홍단의 초입으로 달려가 리석과 승진을 맞이한다. 리석은 농업과학원 혜산분원의 기사 3명이 대홍단으로 탄원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대홍단 집입도로의 ‘방풍림’을 배경으로 책임비서 부부가 달구지를 타고 대홍단에 처음 들어올 때의 모습이 포개진다.

사업상 독단과 과오로 몸부림치는 대홍단 간부들, <대홍단책임비서> 제6부

<대홍단책임비서> 6부 <무지개언덕>편은 책임비서와 그 사위인 장명우(도시건설사업소 지배인)가 사업상의 독단과 과오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간부들이 어떤 자세로 사업해야 하는지를 묘사한다. 책임비서는 견인전동기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려던 명우를 혜산에서 주저앉힌 지배인의 전화를 받는다. 책임비서는 지배인에게 “명우가 남의 분공(맡겨진 업무)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책임비서는 제대군인 출신의 부비서(박창호)를 만나 “남을 깔보고 사람들을 편협하게 보는 못된 버릇을 고쳐줘야지”라며 명우를 일깨워주길 부탁한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제대군인들을 동원해야겠소. 목재운반만 풀면 유리시제품도 나오겠다, 뭐가 걱정인가?” “금년도 감자농사는 육종온실 건설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한 해설강연을 조직하도록 당부한다. 그리도 원하든 판유리 시제품이 나오고 무지개언덕에 또 하나의 깃발이 나부낀다. 이제 벌목대장에 제대군인 주대철이 임명되고 대철은 벌목장에 가기 전에 한밤중에 마을처녀 이쁜이를 길에서 만나 장화를 선물한다. 이곳을 지나던 지배인(최형세)가 “이 한밤중에 무슨 연애질을 길바닥에서 해”라며 이들을 차에 태워준다.

명우는 대홍단의 철도전기화에 필요한 견인전동기 도입을 담당한 자재과장(오승관)을 못 미더워한다. 오승관과 명우는 견인전동기 도착이 늦어지는 답답한 상황에서 삿대질하며 다툰다. 이 모습을 본 책임비서가 명우에게 주의를 주지만 명우는 “신소질이나 하는 늙은이를 감싸는 아버님도 보신주의 하자는 겁니까”라며 격하게 대든다. 오승관은 전기기관차 가동 준비를 위한 레일을 점검하고 일부 주민들이 뜯어간 레일을 되돌려놓도록 애쓴다. 책임비서는 승관에게 당적 분공이라면서 “장명우를 감화시키라”고 요청한다. 승관은 처에게 “내가 누굴 교양개조한다는 게 우습지 않아? 귀쌈이나 얻어맞고 돌아오지 않을런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벌목장에 가 있는 명우를 만나러 간다. 승관은 명우에게 “자연개조보다 인간개조가 어렵다는 걸 모르나? 자기 결점은 뒷등에 걸머멘 배낭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법이네”라고 말하지만, 명우는 반성의 기미가 없다. 승관은 하는 수 없이 명우의 처 류경이 아프다고 거짓말한다.

책임비서는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명우를 기다린다. 명우는 “난 양심적으로 살자는거요. 원칙적으로 살자는 겁니다.... 건달꾼 오승관이한테 큰 소리 한번 안치시니...”하고 역정을 내지만, 책임비서는 “대홍단에 필요한건 폭군이 아니라 노역하는 일군”이라며 “벌목장에서 당장 철수해 수확기부터 살려야 해”라며 설득한다. 명우는 “나도 깃발대를 보면 가슴에서 불이 난단 말이야”라며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만류하는 류경에게 명우는 “다시는 이 집 문턱을 넘지 않으면 될 게 아니야!”라고 신경질을 부린다. 명우는 그 길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고 창호-새복의 집으로 간다. 창호는 명우에게 “오죽하면 작은 책임비서 소리가 들린다”며 반성을 촉구한다. “너도 과연 제대군인이냐. 군복을 벗었다고 정신까지 벗어버렸나? 제대군인을 망신시키려면 대홍단에서 어서 사라져라”고 소리친다. 명우는 “이제는 류경이네 집 문턱도 안 넘겠다”며 집을 나서 벌목장으로 되돌아간다.

명우는 벌목장에 다시 찾아온 승관을 밀쳐내자 승관이 명우의 따귀를 갈기며 말한다. “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이 소골강 기슭에 뼈다귀를 묻자고 그래? 장군님께서 너 같은 젊은이들을 믿고 대홍단벌을 남겨주셨다.... 너가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어”라며 처절한 모습으로 벌목에 나선다. 이를 지켜보던 류경이 명우를 위로하고 명우는 흐느끼며 하산을 결심한다. 이때 승관이 달려와 “견인전동기 도착 소식이 왔네. 책임비서동무가 빨리 내려오라고 찾고 있네”라고 전한다. 견인전동기를 가져온 평양 전동기기계공장의 관계자들이 승관이 평양에 왔을 때 공장 일을 돕다가 쇳가루에 눈을 다쳐 입원.수술했고 이 때문에 안경을 쓰고 대홍단에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자 승관이 겉멋으로 안경을 쓴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란다. 한편 전승기념일을 맞아 제대군인 70쌍의 결혼식이 열리고 대홍단군을 ‘사회주의이상촌’을 만들자고 결의한다. 대홍단 주민들은 제대군인들의 살림집과 농장에 필요한 목재생산 전투에 나선다.

그러던 중 삼봉분장, 부선분장 등 일부 포전에서 감자수확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책임비서는 직접 포전들을 돌아보고 울부짖는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던 말인가? 온 나라 인민이 지켜보고 장군님이 기대하는 대홍단의 감자농사를, 이 배은망덕한 이 놈 때문에....” 책임비서는 ‘당원 김충진의 당생활에 대한 문제’ 한 가지를 다루기 위한 군당집행위원회 확대회의를 연다. 그는 자신이 지난날 과오를 범하고 대홍단에 올 때 장군님이 자신을 살려준 ‘운명의 은인’이라고 말한 뒤 “대홍단에 필요한건 천만금이라도 보내주신 장군님....일부 분장에서 수확고가 떨어진 것은 종자혁명, 통알감자심기, 비루스(바이러스) 대책마련, 물비료 확보 등의 장군님의 가르침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요청한다. 분장장(마옥매)는 책임비서에게 “관료주의적 사업작풍을 꼭 고쳐야 한다”면서 “우리 일이 얼마나 조잡하고 즉흥적인가”라며 비판한다. “농번기에 주택건설이 뭡니까? 거름생산, 종자확보, 김매기는 자력갱갱의 기본인데... 농사에게 제기되는 실무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지적에 책임비서는 “사상적 과오”이고 “나의 충성심 문제”라고 반성한다. 지배인(최형세)은 그에게 “자강도 사람들은 안 주어도 해내는데 우리는 다 주었는데 뭡니까? 책임비서 동지는 운명을 구원해주신 장군님의 사랑을 잊었습니까?”라고 비판한다. 책임비서의 처연한 반성모습과 함께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 흘러나온다.

책임비서의 발길은 벌목장전투장의 한밤중 우등불 행사에 닿는다. 제대군인들은 책임비서에게 함께 춤을 추자며 기분을 달랜다. 벌목대장 주대철은 책임비서에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올해 농사는 실패해도 내년 농사를 잘 지을 준비를 해야 할 게 아닙니까? 육종온실 건설을 빨리 해야 할 게 아닙니까?”라고 격려한다. 한편 명우는 류경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고 목재수송전투에 나선다. 목재수송전투에 앞서 책임비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농사차비부터 빈틈없이 할 것, 종자혁명의 돌파구부터 열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목재수송전투를 자체의 힘으로 승리적으로 결속할 것을 강조한다. 새복의 선동연설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대군인들은 「김정일 결사옹위」 구호를 외치며 목재수송에 돌입한다. 장대비 속에서 유속이 빠르고 강폭이 좁은 위험한 강물로 통나무떼를 옮기는 과정에 명우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동(물이 흘러내려가지 못하고 한 곳에 괴어 있도록 막아놓은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내며 벌목떼는 무사히 운송된다. 책임비서는 명우를 간병하던 류경에게 전화를 걸어 “무지개언덕에서 육종온실 기공식을 한다는데 건설부지를 옮겨야 할 것 같구나”라며 무지개언덕을 원상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류경은 그 길로 무지개언덕으로 달려가 무지개언덕의 보존과 백두산 3대장군 헌시비 건립을 호소하고 참석자들이 이를 지지한다. 육종온실은 가공공장 뒷 기슭의 양지바른 곳에 짓기로 한다. 이윽고 철기전기화의 깃발을 비롯해 7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감자농사의 가을걷이와 감자수송이 진행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상에서 2001년 작품 몇 편을 골라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각 작품의 줄거리와 주인공의 성격, 사건과 갈등구조, 그리고 당정책의 선전방향과 실효성 등을 세부적으로 관찰.분석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적지 않다. 북한 영화들은 전반적으로 집단주의사회의 모범적 인간의 전형성, 당정책과 김정일 교시 관철에 몰입하는 충실성, 생산현장에서의 경영간부들.기술자들.근로자들의 투쟁과 헌신성,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표상되는 선군사상과 선군영도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들 사회의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구조와 여러 갈등 양상을 즐겨 다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화 가운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찬양과 충성의 발언이 우리의 코드에 잘 맞진 않지만 영화 안에 담긴 ‘생활의 발견’은 흥밋거리를 넘어 그들 사회와 주민들의 정서에 대한 좋은 분석 재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술영화를 십 수편을 분석한다면 풍부한 생활묘사를 통해 주민들의 삶과 고뇌, 희망과 좌절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영화창작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북한이기에 예술영화는 ‘현실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은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되는 옛 영화들을 보면서, 과거에서 미래의 길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표3> 조선중앙TV 방영(2012년 1~2월) 조선예술영화 주제별 분류

    주 제

                         영  화  제  목

편수

  민족무예

평양날파람

1편

  항일투쟁

꽃파는 처녀

1편

해방기 첩보물

우리의 생명(1,2부)

1편

  새조국건설

다시 만난 전우, 시련의 해, 산정의 수리개들, 첫 통화, 우리 선전원,

첫 파견원, 보통강반에 깃든 이야기(1,2부), 초행길(전,후편)

8편

  당사업작풍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

1편

   혁명계승

유산(1,2부)- 오백룡 일화, 백옥(1,2부)- 오진우 일화

2편

  생산현장

당정책․교시

     관철

눈속에 핀 꽃, 그는 탄부였다, 가야할 길(전,후편), 억센 나무,

시련을 뚫고, 압연공들, 길을 비켜라, 노을비낀 호수, 이 세상 끝까지,

우리의 래일은 더 푸르다, 대홍단군책임비서(1,2,3부), 탄전의 주인들,

대홍단군책임비서(4,5,6부)

13편

  농촌정착

  농촌지원

불타는 마음, 처녀관리위원장, 도라지꽃, 생의 흔적(전,후편),  

녀자뜨락또르운전수, 공장에서 온 청년

6편

  교육현장

위훈의 길

1편

  군인영웅,

  군인정신,

헌신적 군복무

포병의 아들,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전사의 맹세(1,2부), 소원,

우리 정치지도원, 고요한 전방, 명령만 내리시라, 복무의 길,

전선길(전,후편),

9편

가족드라마

(노동중시․영웅가족․사회헌신)

로동가정(전,후편), 내가 사는 가정, 한 녀학생의 일기

3편

   기  타

한 생명을 위하여 천리

1편

     계

 

47편

※ <표1>에 근거해 재작성한 것.


<각주>

1) “영화보급사업은 우리 당 사상사업의 한 부문을 담당하는 중요한 선전선동사업입니다....우리의 영화예술은 혁명적이며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으로 하여 사람들을 주체의 혁명적 세계관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우리 시대의 인간전형을 내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살며 일하여 투쟁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줌으로써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투쟁의 무기, 생활의 교과서로 되고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 영화보급사업은 철저히 근로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과 밀착되여야 하며 돈벌이를 위한 영업적 목적에 리용되여서는 안됩니다. 영화보급사업에서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 원칙을 견지하자면 로동자, 농민, 군인, 청소년학생들에게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그들의 요구와 기호에 맞게 편성사업을 짜고들어야 합니다. 새 영화가 나오면 보급일군들은 영화필림을 메고 로동자, 농민, 군인, 청소년학생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들의 생활의 특성에 맞게 상영조직을 다양하게 하여 누구나 다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근로자들이 영화를 보고 배운 것을 자기 사업과 결부시켜 분석하면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투쟁의욕과 신심을 가지고 일에 달라붙게 하는 영화실효투쟁은 우리 당이 내놓은 독창적인 영화보급방침의 하나입니다.” (김정일, “당사상사업의 요구에 맞게 영화보급 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전국영화보급부문 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1978년 3월 8일), 『김정일선집』제6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년)) 

 2) “영화실효투쟁은 부서 안의 모든 과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야 합니다. 영화실효투쟁을 영화지도과 혼자서는 잘 할 수 없습니다. 지방지도과 책임지도원들도 영화실효투쟁에 관심으로 돌려 지방 당조직들에서 영화실효투쟁을 제대로 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것을 늘 장악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동무들은 지금 도, 시, 군에 내려가 있는 영화를 가지고 먼저 실효투쟁을 조직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되 도, 시, 군당 위원회들에서 영화실효투쟁을 강화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선전선동부에서 이미 영화실효투쟁을 위한 방식상학도 한 것만큼 조직사업을 짜고들면 영화실효투쟁을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일, “당사상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방지도과책임지도원협의회에서 한 연설, 1973년 11월 8일), 『김정일선집』제3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년))

“우리 영화들 가운데는 실효투쟁을 하여야 할 영화가 따로 있고 실효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지난날 당 안에 유일사상체계가 철저히 서지 못하고 반당분자들이 문화예술부문에 끼여들어 책동할 때에는 좋은 영화들을 골라 실효투쟁을 하도록 조직적으로 포치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 안에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서고 우리당 사상사업이 유일관리제 원칙에 의하여 진행되는 조건에서 어느 영화는 실효투쟁을 하고 어느 영화는 실효투쟁을 하지 말라고 조직적으로 포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조직들은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그것을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보이고 실효투쟁을 하는 것을 정상적인 사업으로 하여야 합니다.” (김정일, “조직부와 선전선동부 사이에 배합작전을 잘할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회의에서 한 연설, 1977년 2월 1일), 『김정일선집』제5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년))

3) 종합가공반- 여러 가지 가공 조작을 수행하며, 여러 개의 공구로 공작물을 동시에 가공하거나 순차적으로 가공하는 반자동화 또는 자동화된 전문 공작기계(북한어, 네이버사전)

4) 베트- 공작기계에서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정확한 움직임을 보장하는 기본틀(북한어, 네이버사전)

5) 북한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기중기 운전수, 뜨락또르 운전수 등 생산현장의 기계조작을 담당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으며, 예술영화에도 이런 대목이 자주 나온다.

6) 영화에서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로 언급되지만 공식명칭은 1998년에 완공된 ‘청년영웅도로’(평양직할시-남포직할시)이다. 평양과 남포를 잇는 53km의 4차선 고속도로(1972년 기공, 1979년 준공)와는 달리 새로 건설한 고속도로이다.

7) 북한의 일부 광산들이 폭우와 침수 때문에 여러 차례 피해를 입었고 침수로부터 복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걸렸다는 보도와 증언들이 많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