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민족21 편집기획위원)


4월 중순으로 예정된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와 ‘강성대국 선포’ 예정인 태양절(4.15,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을 앞둔 북한은 지금 ‘정치의 계절’이다. 지금 김정은 영도체제의 확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영도.업적의 계승이 과제이니만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활동 보도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과거 활동에 관한 기록영화 방영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조선중앙TV>가 지난 1~2월에 방영한 47편의 조선예술영화도 ‘정치의 계절’을 반영하고 있다(<표1> 참조).

북한 TV에 방영되는 보도물이나 기록영화뿐 아니라 예술영화의 선정 권한도 당 선전선동부가 갖고 있다.1) 예술영화는 주민들의 중요한 문화적 소비대상이고 오락수단인 동시에 목적의식적인 정치교육자료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예술영화가 선전선동 수단으로 인식됐으며, 김일성 수상도 일찍이 1958년에 “영화가 여러 가지 예술형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대중교양수단”이라면서 예술인들에게 “당과 혁명을 위한 예술, 로동계급과 인민을 위한 예술을 창조”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2)

김일성.김정일의 영화관(觀)이 녹아있는 예술영화

김일성 수상은 1964년에 예술영화 제작의 방향과 관련해 항일혁명투사 및 전쟁영웅의 형상화, 사회주의건설의 주역들에 관한 영화 창작을 중시하면서 사상성과 예술성을 잘 결합시킬 것을 강조했는데3), 이 방침은 영화제작의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는 1966년에는 혁명가의 전형성을 보여줄 때 ‘생활형상’을 잘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노동계급, 농민(뜨락또르운전수), 교원, 과학자, 의사 등 각 계층 근로자들의 생활을 형상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할 것과 작가.예술인들의 현장 경험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4)

김일성 수상은 1968년에 ‘혁명적 영화창작’에 관한 포괄적인 언급5)한 이래 1971년 10월에 2.8예술영화촬영소를 방문한 뒤에는 영화부문 지도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김정일이 1960년대 중반부터 문학예술부문에 대한 지도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김정일의 초기 당사업은 영화예술부문에 집중됐고, 이 점은 그가 1973년 4월 11일 「영화예술론」6)이라는 종합저술을 내놓기 전까지 34편의 저작7)을 발표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정일선집』 제1~3권).

김정일의 영화관은 김일성의 생각을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그는 영화에 관한 첫 발언에서 “실재한 자료와 원형을 영화에 그대로 옮기려하지 말고 예술적으로 전형화”할 것을 주문했다.8) 그는 자신의 정치적 운명의 전환점이 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정치적 의제로 삼은 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한해 앞둔 1966년에 문학예술의 주제방향이 항일혁명투쟁과 ‘조국해방전쟁’,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 해방 후 새 사회 건설과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 등을 포괄한다는 김일성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창작가의 ‘혁명적 세계관’과 영화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9) 그 뒤 영화문학 창작사업에서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10)하는 한편, 김일성이 강조했던 영화 속에서의 생활의 진실한 묘사11), 작가.예술인의 혁명화12), 영화창조체계의 확립13) 등을 줄곧 강조했고 영화창작은 이러한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예술영화들이 김정일의 지도를 떠나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월 방영물 중 1970년대와 2000년대 작품, 각각 3분의 1

지난 1~2월에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예술영화 47편 가운데 1970년대 작품이 17편이었던 것에서 북한의 ‘1970년대’는 선전사업에서나 주민정서 면에서 ‘체제적.이념적.문화적 원형’을 이룬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그들은 1970년대를 ‘문학예술혁명의 시대’로 일컫는다). 북한 정치권이 혁명의 계승을 ‘정치적 화두’로 삼듯이 주민들은 일상의 문화소비를 통해 “과거에서 현재를 읽어내고, 과거에서 미래의 길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북한의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외부의 바람은 그들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의 소산이지 않을까 싶다. 북한 영화는 대부분 회상 장면을 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소통.대화는 그들 사회를 읽어내는 열쇠인 셈이다.

<조선중앙TV>가 1~2월에 1980년대 작품 8편, 1990년대 작품 5편을 각각 방영한 것에 비하면 1970년대 작품의 방영이 단연 많았다. 이 기간에 2000년대의 예술영화는 15편이었는데 이는 1970년대와 2000년대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표2> 참조). 70년대 방영작품에는 김일성이 생전에 극찬한 것으로 알려진 <로동가정>과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동가정>에 대한 김일성.김정일의 품평

1971년작 <로동가정>은 ‘광록’일가로 불리는 4대가 함께 사는 광산촌의 한 대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문제해결 과정을 묘사한 가족드라마이다. 갈등구조는 노동계급의 가정에서 연구직에 종사하는 ‘두석’이 노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경험이나 실험보다는 이론논증에 빠져드는 오류를 범하는 것, 그리고 ‘삼석’이 축구선수나 사무직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친정에 온 큰 딸 ‘순옥’은 결혼 후 직장에 다니지 않고 가두여성(전업주부)로 지내려고 하는 등 가정혁명화, 새 세대 혁명화의 문제가 따라다닌다. 영화에서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간의 대립에서 당연하게도 집단주의 정신과 노동계급성을 중시한다.

김일성 수상은 당시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로동가정》은 아버지가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로동계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사상교양과 사상투쟁을 거쳐서만 로동계급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로동계급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혁명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버지의 성분이 나쁘다고 하여 아들이 반드시 나쁜 사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일부 당일군들 가운데는 사람들의 출신성분만 일면적으로 보면서 가정주위환경이 좀 복잡한 계층의 사람들을 차별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 당이 키워낸 새 세대들에 대하여서는 그들의 출신성분을 문제시하지 말아야 합니다.”14) 가족드라마의 모습을 띤, 이 영화는 노동계급성을 중시하면서도 출신성분의 차별을 넘어선 ‘광폭정치’의 원형을 담고 있다.

<로동가정>이 제작되던 시기에 김정일이 당선전선동부 부부장 직책으로 영화사업을 지도할 때였기에 그도 이 영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상을 수여한 예술영화《꽃피는 마을》도 걸작이지만 예술영화《로동가정》은 그보다 더 예술적 품위가 높은 걸작이라고 하시면서 영화를 신문으로도 널리 소개 선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사회적 평가를 받도록 하라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작가, 예술인들이 생활을 깊이 체험하려면 작품창작에서 생활체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연출가들이 현실을 잘 알고 다양한 생활을 깊이 료해하고 있으면 어떤 영화도 다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로동가정》을 맡은 연출가는 지금까지 예술영화《북극성》을 비롯한 정탐물 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로동계급의 생활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예술영화《로동가정》을 훌륭히 만들어냈습니다.... 《로동가정》에서는 작품의 주제사상에 맞게 대사들을 뜻이 깊게 주는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15) 북한 영화에서는 ‘노동계급의 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가 중시되어왔으며, 김정일의 작품평도 주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품평

1971년작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시기(1951년) 강원도 법동군의 한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호송하다가 폭격을 당한 상황에서 군인들을 구하다가 전사한 간호원 안영애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죽기 전에 가슴에서 당증을 꺼내 "이 당증을 당중앙위원회에 전해달라"고 한 대목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당의 참된 딸」이라는 제목으로 혁명가극으로도 만들어졌다.

김일성 수상은 이 영화를 이렇게 평했다.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는 인민군 군인들의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잘 보여줌으로써 근로자들로 하여금 자기 조국과 자기 당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인민군 군인들의 강철 같은 규률성과 조직성, 전쟁승리에 대한 굳은 신심과 혁명적 락관주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화는 군인들과 근로자들을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사상적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16) 현 시점에서 이 영화를 재방영한 것은 ‘당의 선군사상과 선군영도’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김정일 부부장의 평가는 구체적이다.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는 평범한 간호원의 투쟁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이지만 극성이 강한 영화입니다....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교양하는데서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장면들이 좋은데도 있지만 영화에 당원이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아주 잘 형상하였습니다.... 창작가들은 극성이란 무엇인가, 어디에 극성이 있는가고 하면서 빈말 공부만 하지 말고 인민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생활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똑똑히 보고 잘 형상하여야 합니다. 창작가들이 그 어떤 요란한 사건을 인위적으로 꾸며내거나 틀에 박힌 낡은 공식과 극작술로 작품을 창작하려 하여서는 안 됩니다. 작가들은 영화문학작품에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여야 합니다.”17)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화면에 사람들을 많이 넣어 규모를 크게 잡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빛내인 참다운 공산주의자, 조선로동당원의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진실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데 있으며 인간의 참된 삶의 길을 밝혀준데 있습니다. 이 작품과 같이 규모는 작아도 사상이 웅심 깊고 시대와 계급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빛나는 형상이 있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감동적인 생활이 차고 넘칠 때에는 얼마든지 광폭영화로 될 수 있습니다.”18)

북한 주민들은 오늘도 1970년대 초반 작품들인 <로동가정>과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노동계급성과 당성, 군인정신 등을 반복적으로 교양 받고 있으며, 이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해 주민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표1> 조선중앙TV 방영(2012년 1~2월) 예술영화 일자별 분류

  일 자

                    영    화   제   목

     제작년도

  0101

눈속에 핀 꽃

   2000년대 추정

  0102

그는 탄부였다

   2008년 이후

가야 할 길(전편)

   2002년 10월

  0105

가야 할 길(전편)

   2002년 10월

  0106

가야 할 길(후편)

   2002년 10월

  0107

억센 나무

   1991년 11월

  0108

유산(제1,2부)

      2005년

다시 만난 전우

      1975년

  0109

우리의 생명(제1부)

   2002년 12월

  0110

우리의 생명(제2부)

   2002년 12월

  0111

불타는 마음

      1983년

시련의 해

      1977년

한 생명을 위하여 천리 

   2002년 1월

  0112

시련을 뚫고

      1983년

  0115

압연공들

      1972년

길을 비켜라

   2001년 5월

  0117

백옥(제1부)

      2009년

  0118

백옥(제2부)

      2009년

  0121

첫 파견원

      1976년

노을비낀 호수

      1980년

처녀관리위원장

      1976년

  0122

로동가정(전,후편)

      1971년

  0123

이 세상 끝까지

      1977년

  0124

이 세상 끝까지

      1977년

  0125

우리의 래일은 더 푸르다

   2000년대 추정

  0127

포병의 아들

      미확인

  0129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1971년

  0130

산정의 수리개들

      1975년

  0131

첫 통화

      1978년

  0201

꽃파는 처녀

      1972년

도라지꽃

   1987년 7월

  0202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전편) 

      1981년

  0204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전편) 

      1981년

  0205

전사의 맹세(제1,2부)

      1973년

우리 선전원

      1976년

  0206

평양날파람

      2006년

내가 사는 가정

     추정불가

생의 흔적(전편)

   1989년 8월

  0207

생의 흔적(후편)

   1989년 8월

  0208

생의 흔적(후편)

   1989년 8월

대홍단책임비서(제1부)- 이깔나무

   1997년 5월

  0210

대홍단책임비서(제2부)- 사나운 겨울

   1997년 5월

  0211

보통강반에 깃든 이야기 (제1,2부)

      1972년

대홍단책임비서(제3부)- 겨울에 내리는 비

   1997년 5월

  0212

탄전의 주인들

      1974년

대홍단책임비서(제4부)-대홍단의 철쭉

   2001년 5월

  0213

대홍단책임비서(제5부)-방풍림

   2001년 5월

  0214

대홍단책임비서(제5부)-방풍림 

   2001년 5월

  0217

소원

  2000년대 추정

  0218

한 녀학생의 일기

      2006년

우리 정치지도원

   2000년대 추정

  0219

대홍단군책임비서(제6부)- 무지개언덕

   2001년 5월

  0220

고요한 전방

      1996년

  0221

명령만 내리시라

      1996년

  0222

복무의 길

      2001년

  0223

위훈의 길

   1990년대 중반

  0225

녀자뜨락또르운전수

      1970년

  0226

초행길(전, 후편)

      1981년 

공장에서 온 청년

      1976년

  0227

전선길(전편)

      1982년

  0228

전선길(후편)

      1982년

[출처]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 홈페이지의 「일일 북한TV프로그램 편성표」에 근거해 작성한 것.
※ 제작년도는 유영호,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서울: 학민사, 2009년) 부록 <1949~2007년까지 창작된 북한영화 리스트> 및 인터넷검색 등을 통해 확인한 것이고,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음.


<표2> 조선중앙TV 방영(2012년 1~2월) 조선예술영화 제작시기별 분류 

  시기

                        영   화  제  목

편수

1970년대

다시 만난 전우, 시련의 해, 압연공들, 첫 파견원, 처녀관리위원장,

로동가정(전,후편), 이 세상 끝까지,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산정의 수리개들, 첫 통화, 꽃파는 처녀, 전사의 맹세(1,2부), 우리 선전원,

보통강반에 깃든 이야기(1,2부), 탄전의 주인들, 녀자뜨락또르운전수,

공장에서 온 청년

17편 

1980년대

불타는 마음, 시련을 뚫고., 노을비낀 호수, 도라지꽃,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 생의 흔적(전,후편), 초행길(전,후편),

전선길(전,후편)

8편

1990년대

억센 나무, 대홍단책임비서(1,2,3부), 고요한 전방, 명령만 내리시라,

위훈의 길

5편

2000년대

눈속에 핀 꽃, 그는 탄부였다, 가야할 길(전,후편), 유산(1,2부),

우리의 생명(1,2부), 한 생명을 위하여 천리, 길을 비켜라, 백옥(1,2,3부),

우리의 래일은 더 푸르다, 평양날파람, 대홍단책임비서(4,5,6부), 소원,

한 녀학생의 일기, 우리 정치지도원, 복무의 길

15편

추정불가

포병의 아들, 내가 사는 가정

2편

   계

 

47편

※ <표1>에 근거해 재작성한 것. 2부작 이상의 다부작 영화는 1편으로 취급함(단, 대홍단책임비서는 1~3부와 4~6부를 각각 1편씩 산정. 제작년대가 다른 점을 감안한 것).

(계속)

<각주>

1) 당 조직선전사업을 총괄하던 김정일 조직비서는 1974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전선동부에서는 텔레비죤방송을 통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교양하는 사업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선전선동부에서는 영화문헌들과 새로 나오는 예술영화들을 텔레비죤으로 많이 내보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텔레비죤을 통하여 영화를 방영하게 되면 필림을 적게 쓰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교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영화들이 나오면 그것을 영화관을 비롯한 보급망에서도 돌리고 텔레비죤을 통하여서도 방영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김정일,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과 한 담화, 1974년 8월 31일),『김정일선집』제4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년)) 당시 당 선전선동부 영화지도과가 영화제작 및 방영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중앙당에 영화부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TV방영 관련사항은 선전선동부가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2) “영화는 당보의 사설과 같이 호소성이 높아야 하며 현실보다 앞서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혁명투쟁의 매 단계에서 동원적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영화는 우리 당의 힘 있는 직관적인 선전선동수단입니다. 영화는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여줄 수 있으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오랜 기간의 역사적 사실들과 사건들을 직관적으로 생동하게 보여줄 수 있으므로 근로자들을 교양하는데서 소설이나 신문보다도 낫고 무대의 제한을 받는 연극보다도 우월합니다....예술인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당과 혁명을 위한 예술, 로동계급과 인민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인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잔재를 철저히 뿌리뽑아야 합니다....영화예술인들 속에서 낡은 사상잔재를 뿌리뽑기 위한 사상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예술인들을 당학교에 보내여 공부도 시키고 공장과 농촌에 보내여 현실 속에서 배우고 단련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일성, “영화는 호소성이 높아야 하며 현실보다 앞서나가야 한다,”(영화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1958년 1월 17일), 『김일성저작집』제12권(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81년))

3) “영화예술인들은 혁명적 영화를 만드는데서 항일혁명투사들을 잘 형상하는 것과 함께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혁명가들을 형상한 영화도 많이 만들어야 하겠습니다...현 시기 우리의 영화는 근로자들을 사회주의건설의 혁명적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합니다...혁명적 영화를 창작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작품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옳게 결합시키는 것입니다....영화를 비롯한 예술작품들이 감화력이 있고 교양적 가치가 큰 것은 바로 거기에 높은 사상성과 함께 고상한 예술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혁명적 예술작품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으로 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에 물젖게 합니다....우리는 영화예술분야에서 예술지상주의를 부르짖는 수정주의적 방향으로 나가도 안 되며 또 사상성만 강조하고 예술성을 무시하는 길로 나가도 안 됩니다. 영화예술인들은 당의 로선과 방침에 따라 높은 사상성과 고상한 예술성이 옳게 결합된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합니다.” (김일성, “혁명교양, 계급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만들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연설, 1964년 12월 8일), 『김일성저작집』제18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년))

4) “영화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혁명적 각오를 높여주는데 이바지하려면 먼저 영화에서 취급하는 사건들과 주인공들의 혁명적 세계관 형성과정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그려야 합니다. 영화는 일반적 호소로써가 아니라 생활형상을 통하여 주인공들의 혁명의식이 어떻게 생겨나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점차 높아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왜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사회주의건설에 대한 작품도 사실주의적으로 써야 하며 작품에서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작가, 예술인들이 로동계급을 형상한 작품을 잘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로동계급의 생활을 잘 모르고 로동계급의 생활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 예술인들이 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로동계급의 생활에 대한 체험을 쌓아야 하겠습니다....로동계급을 형상한 작품과 함께 농민, 교원, 과학자, 의사를 비롯한 각 계층 근로자들의 생활을 형상한 작품, 학생교양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사회주의농촌건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뜨락또르운전수들에 대한 영화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깊이 있고 내용이 풍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서는 영화문학작품을 잘 써야 합니다....건설에서 설계를 잘하고 그것을 시공에 앞세워야 하는 것처럼 영화창작에서도 영화문학의 질을 높이고 그 것을 영화제작에 앞세워야 합니다.”(김일성, “깊이 있고 내용이 풍부한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영화문학작가, 영화연출가들 앞에서 한 연설, 1966년 2월 4일), 『김일성저작집』제20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년))

5)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데서 전투하는 장면은 좀 적게 넣고 유격대원들의 다양한 생활을 실감 있게 형상하여야 하겠습니다. 혁명가는 정치성이 있어야 할뿐 아니라 인간성도 있어야 합니다....영화예술이 온 사회를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데 적극 이바지하려면 기성 혁명가에 대한 영화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혁명화되는 과정을 형상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항일무장투쟁의 불길 속에서 이룩된 혁명전통이 오늘 어떻게 계승 발전되고 있으며 그 뿌리에서 새로운 혁명가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도 만들어야 합니다....영화예술인들은 해방 후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혁명화되여 혁명가로 자라난 과정을 깊이 있게 그린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하겠습니다....지금 농민들이 로동계급화되는 과정, 혁명가로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거의 없는데 농민들 속에 있는 산 자료를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인테리들이 혁명화되는 과정을 형상한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사회정치생활경위가 복잡한 사람들이 혁명화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혁명적인 영화를 창작하기 위하여서는 영화예술인들이 자신을 철저히 혁명화하여야 합니다. 영화배우들이 혁명화되지 않고서는 혁명가의 역 형상을 제대로 창조할 수 없으며 연출가들이 혁명화되지 않고서는 혁명적인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김일성,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영화부문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68년 11월 1일), 『김일성저작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년))

6)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의 내용구성 (『김정일선집』 제3권 수록, 1994년)
<생활과 문학>편 *문학은 인간학이다 *종자는 작품의 핵이다 *주제는 정치적 의의가 있게 풀어야 한다
*혁명과 세계관이 서는 과정을 깊이 있게 그려야 한다 *규모가 대작이냐 내용이 대작이냐?
*구성의 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 *갈등은 계급투쟁의 법칙에 맞게 풀어야 한다
*매 장면에는 극이 있어야 한다 *작게 시작하여 크게 끝내야 한다
*뜻이 깊고 알기 쉬운 대사가 명대사이다 *양상을 잘 살려야 한다 *독창성은 창작의 본성이다

<영화와 연출>편 *연출가는 창작단의 사령관이다 *창작에서는 크게 노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연출에서는 감정조직을 잘하여야 한다 *배우연기는 연출가에게 달려 있다
*촬영과 미술에 대한 요구성을 높여야 한다 *음악과 음향을 살려써야 한다 *연출의 비결은 편집에 있다
*부연출가는 창작가이다

<성격과 배우>편 *배우는 영화의 얼굴이다 *연기에는 새 것을 들고 나와야 한다
*생활을 알고 연기를 하여야 한다 *말과 행동에는 가식이 없어야 한다
*연기의 성과는 필연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 *세계관이냐 《잠재의식》이냐?

<영상과 촬영>편 *촬영은 실감이 나게 되어야 한다 *광폭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
*화면형상은 높은 촬영기술을 요구한다

<화면과 미술>편 *조선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분장은 고상한 예술이다
*의상과 소도구는 시대와 성격에 맞아야 한다 *장치물은 시대감이 나야 한다

<장면과 음악>편 *음악이 없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들을수록 좋고 인상깊은 것이 명곡이다
*선율은 특색이 있어야 한다 *가사가 좋아야 곡이 잘 된다 *음악은 장면에 맞아야 한다
*편곡은 창작이다

<예술창작>편 *창작과정은 혁명화, 로동계급화 과정으로 되어야 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당의 신임에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속도전은 혁명적 문학예술창작의 기본원칙이다

<창작과 지도>편 *혁명적 창작실천은 새로운 창작지도체계를 요구한다
*창작지도는 집체적 유일심의의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창작총화에서는 전형을 일반화하여야 한다

7) 34편의 영화관련 저작은 다음과 같다(이 시기 북한의 영화 및 선전 정책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이다)
- “군인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조선인민군 2.8영화촬영소를 돌아보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1964년 9월 15일)
- “혁명적인 문화예술작품 창작에 모든 힘을 집중하자” (문학예술부문 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64년 12월 10일)
-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데 대하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한 담화, 1966년 2월 7일)
-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영화예술부문 창작가, 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1966년 2월 26일)
- “예술영화 《최학신의 일가》를 반미교양에 이바지하는 명작으로 완성할데 대하여” (문학예술부문 일군 및 창작가들과 한 담화, 1966년 12월 27일)
- “인간 성격과 생활에 대한 사실주의적 전형화를 깊이 있게 실현할데 대하여” (작가들과 한 담화, 1967년 2월 10일)
- “당의 유일사상교양에 이바지할 음악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자” (문학예술부문 일군 및 작곡자들 앞에서 한 연설, 1967년 6월 7일)
- “4.15문학창작단을 내올데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6월 20일)
- “조선영화문학창작사에 대한 지도사업을 잘하기 위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영화과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6월 30일)
-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 (당사상사업부문 및 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7월 8일)
- “문학예술작품에 당의 유일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사업을 실속 있게 할데 대하여” (문학예술부문 책임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67년 8월 16일)
- “대작창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 (예술영화 《형제들》의 창작가들과 한 담화, 1968년 4월 6일)
- “음악창작방향에 대하여” (창작가들과 한 담화, 1968년 10월 25일)
-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생활을 진실하게 그릴데 대하여”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68년 11월 1일)
- “예술인들과의 사업을 정치적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영화예술부문 일군 및 창작가들과 한 담화, 1969년 4월 20일)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일군이 되여야 한다”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69년 4월 29일)
-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를 영화로 완성하는데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69년 9월 27일) *** 이상 『김정일선집』 제1권 수록
- “작가들은 아는 것이 많아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영화문학작가들 앞에서 한 연설, 1970년 1월 16일)
- “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의 사상예술적 특성에 대하여” (불후의 고전전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에 참가하는 예술인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1970년 2월 14일)
- “문학예술작품에 사람들의 혁명적 세계관 형성과정을 깊이 있게 그릴데 대하여”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0년 2월 19일)
-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한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 (작가, 연출자들과 한 담화, 1970년 6월 18일)
- “영화예술부문 일군들 속에서 혁명적으로 일하며 생활하는 기풍을 세울데 대하여” (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0년 10월 16일)
- “영화창작사업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영화문학작가들과 연출자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2월 12일)
-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데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1971년 2월 15일)
- “우리 식의 혁명적 영화창조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 (영화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1년 4월 28일)
- “영화예술교육사업에서 사회주의교육학의 원리를 철저히 구현할데 대하여” (평양연극영화대학 교직원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7월 8일)
- “혁명가극 《피바다》는 우리 식의 새로운 가극” (혁명가극 《피바다》 창조성원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7월 17일)
- “영화예술부문의 당사업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영화예술부문 당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1971년 8월 3일)
- “예술작품은 창작가의 열정과 탐구의 열매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연구모임에서 한 연설, 1971년 10월 16일)
- “《피바다》식 혁명가극 창작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여 사상예술성이 높은 혁명가극을 창조하자”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1년 10월 28일)
- “텔레비죤방송의 사상예술적 수준을 높일데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및 텔레비죤방송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2년 8월 22일)
-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킬데 대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산하 창작가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1972년 9월 6일)
- “주체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명연극을 창작할데 대하여” (국립연극단 작가, 예술인들의 사상투쟁회의에서 한 결론, 1972년 11월 7일) *** 이상 『김정일선집』제2권
- “혁명가극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발전시킬데 대하여” (혁명가극건설에 관한 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1973년 3월 1일) *** 이상과 「영화예술론」은 『김정일선집』제3권 수록.

8) “사상예술성이 높은 좋은 영화를 만들자면 실재한 자료와 원형을 영화에 그대로 옮기려 하지 말고 예술적으로 전형화하여 잘 형상하여야 합니다. 실재한 자료와 원형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의하여 전형화되여야 참다운 예술적 형상으로 될 수 있습니다....영화에서 원형을 전형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옮겨놓으면 개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서 개별적 사람을 우상화하고 환상적으로 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영화가 당의 의도에 맞지 않게 됩니다....작품에 형상된 원형이 살아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김정일, “군인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조선인민군 2.8영화촬영소를 돌아보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1964년 9월 15일), 『김정일선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년))

9) “영화는 문학, 음악, 미술을 비롯하여 다른 예술의 특성을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영화를 앞세워 발전시키는 것은 문학예술 전반을 발전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합니다....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영화의 주제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옳게 풀어나가야 합니다....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우리 문학예술의 주제방향은 항일혁명투쟁과 조국해방전쟁,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 해방 후 새 사회 건설과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을 비롯하여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과 건설사업 전반을 포괄하고 있습니다....영화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주인공처럼 혁명투쟁을 해보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심을 가지게 하자면 전투행동이나 사나운 눈보라, 끝없이 펼쳐진 밀림만을 장황하게 보여줄 것이 아니라 혁명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들이 어떤 시련과 곡절을 겪으며 어떻게 혁명을 인식하고 투쟁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면서 혁명가로 자라나는가 하는 사상의식 발전과정, 혁명적 세계관 형성과정을 특색 있게 보여주어야 합니다....영화에서 주인공의 혁명적 세계관 형성과정을 깊이 있게 그려내려면 창작가 자신부터 세계관을 똑바로 세워야 합니다....영화는 일정한 기간의 사실을 제한된 시간 안에 화면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하는 것만큼 이야기를 잡다하게 늘어놓지 말고 집약화하여 그려야 합니다....어느 한 작품에서는 혁명적 동지애에 관한 문제를 취급하였다면 다른 작품에서는 군민일치의 관계를 보여주고 또 다른 작품에서는 적후투쟁을 그리는 식으로 생활과 투쟁을 한 대목씩 파고들어가야 그것이 종합되여 사람들의 혁명적 세계관을 세우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영화가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되는가 못되는가 하는 것은 연출가에게 많이 달려있지만 비록 연출가가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그 사상예술적 기초를 이루는 문학의 질이 낮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기 힘듭니다.” (김정일,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영화예술부문 창작가, 예술인들 앞에서 한 연설, 1966년 2월 26일), 『김정일선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년))

10) “작가들이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당을 정치사상적으로 옹호할 수 있으며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는 좋은 영화문학을 써낼 수 있습니다.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폭로비판된 결함을 하루빨리 고치기 위해서도 작가들 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작가들 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자면 그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그 구현인 당정책을 깊이 연구체득하여 자기의 뼈와 살로, 철석같은 신념으로 만들고 언제 어디서나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기 위한 학습을 첫째가는 혁명임무로 여기고 꾸준히 하는 것은 작가들 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선결조건입니다....사상투쟁의 분위기를 세워 당생활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결함도 융화묵과하지 말고 제때에 강한 타격을 주어 극복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작가들 속에서《창작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과 같은 수정주의적이며 무규률적인 현상을 없애고 혁명적인 생활기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김정일, “조선영화문학창작사에 대한 지도사업을 잘하기 위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영화과 일군들과 한 담화, 1967년 6월 30일), 『김정일선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년))

11) “영화예술인들은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생활을 진실하게 그려내기 위하여 진지하고 꾸준하게 노력함으로써 높은 사상예술적 성과를 이룩하여야 하겠습니다....혁명적 영화에서 생활을 진실하게 형상하자면 혁명가들의 투쟁 속에서 생활을 찾고 그것을 깊이 있게 그려야 합니다....항일유격대원들의 투쟁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여 전투하는 것이나 행군하는 것만 그려서는 생활을 진실하게 묘사할 수 없으며 혁명가들의 생동한 형상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혁명적 영화에서는 혁명가들의 정치생활, 군사생활, 문화정서생활을 여러모로 다양하게 그려야 생활을 진실하게 형상할 수 있으며 정치성과 인간성이 결합된 주인공들의 생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술영화《유격대의 오형제》제1, 2부가 항일유격대원들의 진실하고 생동한 형상을 창조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된 것도 주인공들의 생활과 투쟁을 하나로 련결시켜 풍부하고 깊이 있게 그린 것과 관련되여 있습니다.” (김정일,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생활을 진실하게 그릴데 대하여,”(영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68년 11월 1일), 『김정일선집』제1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년))

12) “지금 작가, 예술인들이 현실에 나간다고는 하지만 공장과 농촌에서, 도시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대한 혁명적 변혁과정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하고 거기서 사회적 의의가 있는 문제들을 제때에 민감하게 포착하여 작품에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의 로선과 정책을 잘 모르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창작가들은 종자를 잡을 때 먼저 그 종자를 가지고 창작한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을 미치겠는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창작가들이 오늘의 로동자가정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우리 당에 의하여 교양되고 실천투쟁에서 단련된 사회주의 건설자로서의 그들의 고상한 정신적 풍모와 보람찬 생활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작가, 예술인들은 현실에 깊이 들어가서 근로자들의 혁명화의 본보기로 될 수 있는 새 형의 공산주의적 인간전형들을 더 많이, 더 훌륭하게 그려내야 할 것입니다....혁명적 영화예술에는 부르죠아사상, 봉건유교사상, 수정주의사상을 비롯한 온갖 잡사상의 자그마한 요소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주인공은 생산혁신자로, 능숙한 경제조직자로, 열렬한 정치선전자로 형상되여야 합니다....예술은 정치에 복종되여야 합니다. 혁명을 더 잘하고 건설을 더 잘하도록 사람들을 조직동원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우리 예술의 사명입니다....창작가들은 생활의 세부를 그려도 그 사상적 본질과 정치적 의의를 깊이 있게 밝혀내야 하며 인간을 그려도 그들의 정치적 립장과 신념이 똑똑히 나타나게 형상하여야 합니다....창작가들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인민들의 새로운 미감에 맞는 특색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서는 새로운 문제를 잡아쥐어야 할뿐 아니라 그것을 독창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김정일, “사회주의현실을 반영한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작가, 연출가들과 한 담화, 1970년 6월 18일), 『김정일선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년))

13) “영화를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며 당사상사업의 힘 있는 무기로 되게 하기 위하여서는 낡은 창조체계를 마스고 우리의 실정에 맞으며 혁명적 영화창조의 본성에 맞는 새로운 창조체계를 세워야 합니다....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는 작가로부터 연출가, 촬영가, 미술가, 작곡가, 배우를 비롯한 창작가, 예술인들과 기술일군, 행정일군, 로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수많은 일군들이 참가하게 됩니다....영화창조체계란 영화제작사업에 참가하는 모든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자기의 임무를 책임적으로 원만히 수행하도록 창작과 창조의 전 과정을 조직화, 규범화한 것입니다. 영화제작과정은 영화창조의 특성으로 보나 방대한 로력과 자재, 자금을 동원하며 복잡한 기술공정을 동반하는 사정으로 보나 반드시 모든 성원들이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철저히 조직화되고 규범화되여야 합니다....나는 영화창작사업을 지도하면서 낡은 창조체계를 하나하나 뜯어고치기 시작하였으며 불후의 고전적명작《피바다》와《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영화로 옮기는 단계에서 이 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갔습니다....나는 영화문학은 영화문학창작사에서 작가를 도와서 책임적으로 완성하여 작품국가심의위원회의 심의에 통과시켜야 하며 일단 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된 작품은 촬영소에서 그대로 영화를 만들어 당의 결론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여주었습니다....영화문학을 일단 받아들였다면 촬영소의 일군들과 연출가를 비롯한 창작가, 예술인들이 제힘으로 영화를 완성하여야 합니다....작가, 연출가, 배우, 촬영가, 미술가, 작곡가를 비롯한 모든 창작가, 예술인들 그리고 보장부서일군들이 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임무를 책임적으로 원만히 수행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주체적 영화창조체계의 근본요구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창작가, 예술인들과 지도일군들이 자기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김정일, “우리 식의 혁명적 영화창조체계를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영화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71년 4월 28일), 『김정일선집』(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년))

14) 김일성,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의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조선2.8예술영화촬영소 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10월 22일), 『김일성저작집』제26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4년)

15) 김정일, “예술작품은 창작가의 열정과 탐구의 열매이다,”(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연설, 1971년 10월 16일), 『김정일선집』제2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년)

16) 김일성,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의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조선2.8예술영화촬영소 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10월 22일), 『김일성저작집』제26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4년)

17) 김정일, “영화창작사업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영화문학작가들과 연출가들 앞에서 한 연설, 1971년 2월 12일), 『김정일선집』제2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년)

18) 김정일,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데 대하여,”(위대한 수령님의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1971년 2월 15일), 『김정일선집』제2권(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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