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드디어 21세기 역사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1972년 공포의 유신 독재 40년 만에 박정희라는 친일 독재의 망령이 무덤에서 부활하고 있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세상이 뒤바뀌고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결코 박정희는 기념할 대상이 아니다.

▲ 박정희군이 혈서로 군관을 지원했다는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자 보도.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가 누구인가. 그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천황을 받들고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교사직도 팽개치고 자진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일본 육사를 거쳐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는 데 앞장 선 다카기 마사오, ‘최후의 일본제국군인’이었다. 모든 조선인들이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는 패전을 맞이했다. 일제가 패망함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것만이 일제 식민지시기 박정희의 삶의 실체였다. 천황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 그가 일본이 패망하지 자결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박정희는 일본 천황제파시즘의 정점에 있었던 일왕 쇼와의 아들이다. 그가 선포한 10월유신 조차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근대화 모델과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운 군국주의 이념인 쇼와유신의 분단형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는 민족반역자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다. 4.19민주혁명의 꽃을 군화발로 무참히 짓밟으며 이 땅에 18년 군부독재의 길을 장본인이다. 심지어 남북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체제를 선포해 종신독재를 꿈꾸었다.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조국과 민족 그리고 사상과 양심마저 내던지며 변신을 거듭한 자가 바로 박정희였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박정희만은 결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어느 독립운동가는 절규했다.

박정희가 걸어온 삶이 이렇듯 뚜렷하게 부정적이기에, 그의 추종자들조차 박정희의 공로로 드는 것은 오직 하나 경제성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밑천으로 내세우는 대일청구권자금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수많은 범죄사실을 불과 몇 푼의 돈을 받는 대가로 눈감아 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한일협정 전후 불법적인 검은 돈의 뒷거래가 이루어졌다는 미 중앙정보부의 충격적인 보고서도 공개되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독립국가로서 새로 조약을 맺으면서 이 무슨 매국적 망발이란 말인가! 이 미 정보부의 보고서의 진실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산26번지에 자리한 '박정희 기념.도서관'. [자료사진 - 통일뉴스]
허울 좋은 ‘고도성장의 금자탑’ 아래에는 ‘베트남전쟁’에서 의미 없이 죽어갔거나 아직도 고엽제 휴유증에 시달리는 수만 명 베트남 참전군인의 비극과 베트남 민중의 한이 배어 있다. 박정희가 휘날린 조국근대화의 허황한 깃발에는 저임금 장시간 중노동에 항의하다 무참히 짓밟힌 노동자들의 피가 묻어 있다. 새마을운동의 노래가 높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빚더미에 눌린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화려한 도시의 그늘 아래 수 백만 도시빈민의 통곡이 넘쳐흐른 게 박정희시대였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장기집권이 불가피했다고?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많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위해 내세운 상투어가 바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러고는 제멋대로 헌법을 뜯어고치고 군대와 경찰 그리고 정보조직을 통해 피로써 장기집권을 꾀했다. 그리고 예외 없이 국민들에게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한 사실을 상기하라. 박정희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정희의 이른바 근대화는 ‘피의 근대화’였다. 앞으로도 선진화를 하겠다고 하면 장기집권을 용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박정희시대에는 오적(五賊)과 떡고물로 표현되는 부정부패가 보다 거대한 규모로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았다.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재벌의 족벌 경영,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만성적인 외채경제는 박정희가 주조한 왜곡된 경제구조의 핵심이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심지어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은 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가치가 유보될 수 있다고 주장해, 인간을 오직 빵으로만 사는 동물적 존재로 돌려버렸다. 박정희가 민주화를 훼손시켰지만 경제성장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희생해도 좋다는 전도된 가치관에 다름 아니다. 이런 반인간주의 이념을 21세기 한국사회의 가치관으로 계승, 보급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하겠는가!

▲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개관한 21일,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주최한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즉각 중단 기자회견’이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서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박정희가 집권한 시대는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독재, 그리고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치관이 투쟁하던 시대였다. 이 빛과 그림자의 투쟁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반민족으로, 독재로 그리고 반통일의 화신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이 암흑의 지배 아래 수많은 친일잔재와 파쇼 세력이 기만적인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때로는 ‘박정희 신도’로 자처하면서 박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기념사업’은 박정희 시기 그의 ‘공범’들과 박정희가 남겨놓은 관변 시스템에 유착한 세력 그리고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현 집권층의 권력욕 그리고 ‘뼛속가지 친일과 친미로 물든’ 이명박 대통령의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 엉키어 진행되는 추악한 권력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집권기 구축된 권력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하고 정당화하고자 국민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거대한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 바로 ‘박정희기념.도서관’이다.

더구나 이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기념관측은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친일과 독재를 해도 버젓이 기념하는 이 시대의 역사범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차마 낯을 들 수 없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을 용납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한 예비 범죄마저 방조하는 것에 다름없다.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 집권 여당의 최고 실력자이자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공인의 신분임에도, 아버지의 친일과 독재의 업을 대속하는 대신 그 업적을 칭송하는데 앞장서는 데 대해 우려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이 무색하게 헌누리당으로 가는 이 역사의 반동을 방관할 수 없다. 진실이 침묵할 때 거짓이 장화를 신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제 거짓의 역사를 뿌리봅고 진실과 정의의 역사를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렇다. 지금은 박정희 기념사업이 아니라 박정희 청산사업이 시작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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