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 (지구촌동포연대 KIN 운영위원장)


“힘차게 확실하게 한 발작 한 발작 앞으로”

벽에 가려 “한 발작 한 발작 앞으로”란 글귀만 보였다.
“한 발작 한 발작 앞으로”
오늘 이 자리와 ‘조선족 연합회’를 가장 잘 압축 표현한 말이라 생각이 바로 들었다.

‘조선족 연합회’
이젠 ‘재한 조선족 연합회’라는 정식명칭이 붙었는데, 오늘은(2월 5일) 그 연합회가 서대문 무악재역 근처에 작은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자축하는 자리이다. 이름이 ‘문화 활동 중심’. 우리에겐 좀 어색하나 ‘센터’라는 말이 원래 중심이란 뜻이니....

첫째는 연합회 회원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배우는 공간이고, 둘째는 한국에 조선족(문화,역사)을 알리는 공간이란다. 보증금, 월세 모두 회원들이 갹출했단다.

‘보금자리를 또 하나, 아니 이젠 날개를 하나 만들었구나. 또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갔구나’라는 느낌이 벽의 글귀와 포개졌다.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앞날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람도 단체도 국가도. 내가 아는 그 중의 하나가 ‘조선족 연합회’이다. 조선족 연합회는 계속 “한 발작 한 발작 앞으로”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확신한다.

“나는 저 분을 보면 모택동이 생각 나”
유봉순 회장과 함께 조선족연합회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핵심 기둥의 한 분인 진복자 총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 재외동포재단이사장인 이구홍(해외동포문제연구소장)씨의 말. ‘모택동’의 의미 범위가 넓기에 이 대목에서 무슨 의미인지는 모호하나, 함께 자리한 사람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나는 ‘정말 걸물’이란 말로 해석하면서. 연합회 10년의 발자취 사진과 함께 붙은 저 문구도 틀림없이 진총무의 작품일 것이다.

‘풍찬노숙’이란 말도 그저 떠올랐다. 한자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리, 바람, 고생이 그 이미지다. 이 땅에서 잠잘 곳 마련하며 살아 온 조선족동포들 대부분의 삶이 그럴 것이지만, 잠시 조선족 연합회를 생각하니 떠오른 낱말이다.

▲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조선족 동포는 이제 40만이다. 40만이나 되니, 조선족 동포들의 모임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그 중의 하나가 ‘조선족 연합회’이다. 작년 은평구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이들의 문화공연. [사진제공 - 황의중]
쫓겨다니며 거리에서 보따리 장사하던 아줌마(?)들 몇몇이 모여 연합회를 만든다. 그리곤 100여일 지속적인 거리 투쟁으로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어 낸다.(2004년 2월 국회통과) 이 과정에서 모임공간이던 교회에서 쫓겨나 작은 쪽방 하나를 얻는다. 그리고 2009년엔 바로 그곳 1,2,3층을 모두 얻어 갈 곳 없는 조선족동포들의 생활공간인 ‘우리집’을 일구어 낸다. 2006년부터는 서로 돈을 맡기고 빌려주는 신용금고를 만들어 키워내면서, 작년엔 은평구 문화예술회관에서 40여명이 합창 공연(재한조선족연합회 가을맞이 문화공연/9.18만주사변 80주년 음악회)을 개최한다. 시간과 돈 모든 것에 쪼들리는 사람들이 한발 한발 일구어 낸 일들이다.

쓰다 보니 그들이 걸어 온 길을 이렇게 쓸 일이 아니다. 무례일 것이다. 단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확신’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힘차게’, ‘확실하게’라는 말도 그저 지나치는 수식어구로 보이지 않았다. 이분들의 역사와 의지가 담긴 말일 테고, 이 두 낱말이 오늘 조선족연합회와 만나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확실하고’ ‘힘차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도 스쳤다.

“우리 노래 하나 하고 계속 합시다.”
‘행사를 이렇게도 진행할 수 있구나.’ 연합회 행사에 참여하면서 여러 번 느꼈다. 행사이니 식순이 있다. 뭐 내빈들 인사도 있고, 보고도 있고. 그런데 그 자리에 노래가 들어가 함께 부르고, 또 어떤 때 나와 춤도 춘다. 그리고 행사는 이어진다. 오늘도 그랬다. 즉 모인이들 모두가 하나다. 그들은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갈 것이다. 그러니 확신은 계속 확장된다.

“제가 좀 고민하고 망설이기도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인 것을 보니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에 출마하겠습니다.”
이구홍 소장의 인사말 중 한 부분. ‘이렇게 조선족 동포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을 해 나가니 난들 못하겠는가? 그리고 이분들을 위해 뭔가 힘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뜻임을 다 안다. 그리고 또 시원한 말 “여러분이 30억을 모으면 내가 20억을 마련하겠습니다.”

“올해 목표가 30억입니다.”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고생하며 사는데 일본정부가 함부로 못하는 것은 바로 은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선족연합회가 한 발작 한 발작 그 일을 향해 가고 있다.

조선족동포는 어려워도 돈을 빌릴 곳이 없다. 연합회에 찾아오는 딱한 사람들을 그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돈을 빌려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2006년 연합회 내에 한 부서로 ‘신용보조부’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것이 2008년에는 3억, 작년에는 10억의 기금을 마련했다. 모두 회원들이 맡긴 돈이다. “그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자랑으로 자주 들어 온 말이다. “동포들이 피 땀을 흘려 번 돈이니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아마 만들어 낼 것이다. 이날도 30억 목표를 말하는 진복자 총무는 마이크 잡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한 발작 한 발작’을 몸동작으로 전달한다. 힘차고 확실하게.

식당에서, 파출부로, 떼밀이로 일하는 이분들이 지금 이 땅에서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 다. 믿음과 희망의 공동체를 확실하고 힘차게 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겐 정의가 힘입니다.”
인사말 끝에 이 말을 했어도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내게 이미 ‘조선족연합회’는 단순히 조선족동포들이 서로 돕는 상호부조 성격의 단체, 자신들의 이익을 모여서 지키려는 이익단체가 아니다. 나는 이분들이 우리사회에 던져주는 ‘빛’을 보고 있고 생명수 같은 어떤 물살을 그리고 있다. 또 이분들이 꿈꾸는 ‘조국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큰 목표도 그저 구호로만, 희망사항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인사말에 전하고 싶었다.

또한 이들은 작년, 한 재일조선인 광부가 진폐증으로 죽어가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만든 ‘단바망간기념관’을 다시 살리자는 모금운동(1천명 후원회원 모집운동)에도 앞장섰다. 50여명이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주어 지금도 월 5천원을 매달 그분들 통장에서 빼내고 있다. 고맙고 부끄럽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다.

그날도 춤과 노래로 이어진 자리를 나오며, ‘역시 오늘도 오길 잘했어’라는 생각과 함께
아마 이분들은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것도 몸으로. 따뜻한 마음 한 번 제대로 열어주지 않는 그 잘난 조국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그리고 이것이 이 분들의 에너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작 한 발작 힘차게 확실하게”
라는 말과 함께.


고등학교 국어 교사
일본 오카야마 한국교육원 원장
에다가와조선학교 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단바망간기념관 한국후윈회 실행위원장
지구촌동포연대(KIN)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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