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향후 10년 간 미국의 국방비가 5천억 달러 정도 감축된다. 미 지상군도 9만 명 정도 감축된다. 국방력의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이제 미국은 대규모 지상군을 동원하는 고강도 전쟁을 당분간 수행할 수 없다. 또한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룰 능력도 상실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개의 전쟁을 포기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지 재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이런 정책을 발표했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에 조종을 울리는 가장 상징적인 선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2개의 전쟁은 이제껏 미국의 국방력이 지닌 상징이자 표상이었다. 그 의미는 단순히 군사적이지만은 않다. 기번이라는 사람이 집필한 『로마제국흥망사』에는 “로마 공화국이 연전연승할 시대에는, 정책과 군사력을 하나의 단일전쟁에 집중하고, 하나의 적을 완전히 압도하지 않으면 제2의 적에 대해서는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로원의 정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로마의 ‘하나의 전쟁 원칙’은 아라비아 이슬람 세력에 의해 소심한 정책으로 비판받았고, 로마를 대신한 이슬람의 사라센 제국 중 오바르가 통치한 10년간은 많은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으로 군사력의 패러다임이 전환된다. 그 10년 간 사라센 족은 3만 6000천개의 도시와 성곽을 함락했고, 이교도 교회와 사찰 4,000개를 파괴했으며, 마호메드를 신봉하기 위해 1400개의 모스크를 건립했다고 『흥망사』는 적고 있다. 로마를 능가하는 이슬람의 정복에 유럽이 느낀 위협과 공포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후로 동양, 특히 이슬람에 대한 유럽의 사상은 자연스럽게 ‘동시 전쟁’으로 전환된다. 제1차 대전과 2차 대전 역시 동시 전쟁이 다발적으로 일어난 사례에 해당된다.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강대국의 능력이 세계의 경찰력과 동일시되는 것이 서구의 일반적 관념이 된 것이다. 냉전을 거치면서 이런 인식은 더더욱 강화되어 하나의 전쟁에 집중한다는 것은 강대국으로서의 적극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까지 나아갔다. 이것이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큰 군사력을 유지하게 된 기본사상이다. 특히 미국의 군부는 냉전시대에는 ‘몇 개의 전쟁’이라는 고강도 전쟁에 대한 집착이 강화된 나머지 냉전이 붕괴된 이후 상황에 맞는 군사력 재편을 단행하지 못하다가 9.11테러를 겪었다. 그제서야 군사력 운용의 큰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도 두 개의 전쟁이라는 기본 패러다임은 고수한 채 단지 군사력의 운용 측면만 바꾸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이 틀을 전격적으로 해체하려는 것처럼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2개의 전쟁이라는 상징이 이처럼 쉽게 포기될 수 있는 것인가? 단지 국방비의 많고 적음 만으로 전쟁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정확한 것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전쟁수행능력은 당장의 국방비가 아니라 전쟁비용 조달문제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현재의 국방비가 적다고 하여도 막상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수행할 만한 전쟁비용을 미국이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은 바로 여기에서 실패했다. 2003년에 럼스펠드는 ABC 방송에서 “500억 달러면 이라크 전쟁은 끝난다”고 호언장담했다. 월포위츠는 “이라크의 재건비용은 석유를 팔아 충당하면 된다”며, “미국이 부담해야 할 재건비용은 17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식 이라크 전쟁비용만 8000억 달러에 재건비용은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초기의 전쟁비용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때문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3년에 약 3800억 달러의 감세를 추진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 역사상 전쟁 중에 감세를 한 유일한 대통령이 바로 조지 부시였다. 이 때문에 몇 년 후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미국의 재정은 치명적 위기에 봉착했고,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전비를 조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두 개의 전쟁이 아니라 한 개의 전쟁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은 2020년까지 악화될망정 호전될 기미가 없다.

만약에 미국의 경제가 조만간 전비조달 능력을 회복한다면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두 개의 전쟁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이를 반대할 미국 내 여론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프랑스와 네덜란드로부터 돈을 빌려 전비를 조달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국내에서 국민을 상대로 발행한 국채로 수행했다. 승리채권, 자유채권이라고 불리는 전비조달 채권이 애국운동과 결부되어 팔려나갔다. 오직 한국전쟁만 빚 없이 재정으로만 수행된 전쟁이었으나 그로 인한 전비부담은 현재가치로 약 6000억 달러(당시 580억 달러)에 달했고,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때문에 투르먼 대통령은 서둘러 휴전협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전쟁을 포기하고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병력을 철수시킨 것도 재정적 이유에서였다. 재정이 왜곡되면 두 개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전쟁도 안 한다는 것이 이제 입증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2차 대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핵심은 대공항으로 인한 800만 명의 실업자와 유휴화된 50%의 산업시설 때문이었다. 대량의 실업자는 병력을 충원하는데 좋은 조건이 되었고, 유휴 산업은 전시 군수공장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전쟁으로 인해 경제 부흥과 완전고용으로 간 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채권을 바로 상환함으로써 미국은 높은 신용을 유지했고, 전후 미국은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슈퍼 파워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비도 조달할 수 없고, 동원할 병력과 산업이 없다. 전쟁을 이기는 배경이 되는 핵심 세 가지, 즉 높은 세수 증대, 국채발행 능력, 대규모 무기생산 능력이 와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국방력 유지를 위해 더 세금을 거둘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럴 형편이 안 되고, 9조 달러의 국채는 외국이 절반을 매입했는데 그 중 가장 큰 매입자가 중국이다. 중국으로부터 돈 빌려서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이렇게 되면 당분간 두 개의 전쟁이라는 성역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의 유일한 문제점은 이를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는 데 있다. 20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한국에서 또다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다면 약 3,000억불의 직접적인 전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 초에 한국정부는 이 중 600억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계획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수치는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바로 이 점에서 한미 양국은 냉전 이래 전쟁을 결심하는 데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여진다. 이 점을 간과하고 2013년 체제를 논한다는 것은 핵심을 빠트리는 것이다. 아무리 한미동맹 강화를 외친들 미 증원전력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 여기에서 2013년 체제는 평화공존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논거를 찾게 될 것이다.


14~16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보좌관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전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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