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한국노동복지센터 이사)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마냥 환영만 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못한 여운이 남는다. 왜일까? 노동계도 환영일색의 입장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논의를 진행하는 절차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임금 보전 등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진행될 여러 가지 문제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벌이는 사업을 신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음은 현 정부가 벌인 사업들을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 외에도 노동운동의 힘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의 노동계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요한 요구로 제기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노동계가 줄기차게 주장하였지만 실노동시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법정 노동시간은 단축되어 우리나라도 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법정 노동시간과 관련이 없다.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기 전과 일하는 시간에서 별 차이가 없다. 노동계의 실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으며, 드디어 정부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서로 잔업을 더하기 위해서 경쟁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일하여 더 많은 임금을 받으려 하는 잔업 더하기 경쟁이 벌어지는 현장이 바로 자동차 완성차 공장이다. 고임금 귀족노동이라고 언론에서 얻어맞곤 하던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도 서로 잔업을 더 많이 하여 임금을 더 받으려고 한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이러한데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였지만 실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호사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동계가 외치는 실노동시간 단축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렸다.

사용자들이야 신규 고용을 하면 여러 가지 비용이 더 추가되는데 실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만들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노동부도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유권해석 하여 기업들이 주당 60시간, 70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을 열어 놓았다. 노동부의 법해석대로 하면 일주일에 100시간 까지도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한다. 기업은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기업은 추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실근로시간을 줄일 의지가 없고, 노동운동은 실노동시간 단축을 이끌어낼 능력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한국은 여전히 OECD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노동시간 단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면 임금 문제가 바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단축 이야기가 나오면서 임금교섭을 앞둔 사업장이 벌써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부 정책이 현실화되려면 임금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연장.야간.휴일 등 초과근로수당이 전체 임금의 20~25%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낮은 임금을 장시간 노동으로 일부 해결하였던 것이다. 낮은 시간당 임금을 긴 노동시간으로 벌충하였던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보전하여야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한국 노동자의 임금 수준으로 쟁점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에서부터 시급 4,580원인 법정 최저임금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노동시간단축을 제기하면서 노동을 둘러싼 쟁점들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일자리 문제와 장시간 노동, 그리고 낮은 임금의 문제가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될 수 있을 게다.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논의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는 장시간 노동 근절, 일자리 늘리기, 생활임금 보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보생명 노조위원장 (전)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전)
서울지역노동조합 협의회 부의장 (전)
민주노총 정책실장, 정책연구원장 (전)
(사)한국노동복지센터 이사(현)
(사)한국갈등해결센터 전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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