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열 (중국 청화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국제영문매체 제4언론 책임주필)

정기열 교수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부고 발표 사흘 후인 12월 22일 평양에 들어갔다. 정 교수는 북녘땅 곳곳을 방문하면서 북녘동포들이 당한 대국상 기간의 모습들을 통일뉴스를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외부세계에 있는 그대로 전할 것이다. / 편집자 주


노동신문 12월 29일 보도에 의하면 12월 28일 새벽 3시경부터 수도 평양을 비롯 지방 곳곳에 이르기까지 북녘땅 거의 모든 곳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살아 생전 그리도 좋아했다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영결식 전날인 27일 그리도 춥던 날씨는 이미 꽤 풀리기 시작했고 살을 에이듯 싶던 찬바람 또한 훨씬 줄어들었다. 기온변화가 가져온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이 마치도 깊은 슬픔에 잠긴 인민들을 위로라도 하는 듯 나라 전체를 감싸 안은 것 같았다.

다음의 내용들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내용들과 열흘의 평양취재 기간 무작위로 이루어진 평양시민들과의 대담 모두를 종합한 것들이다. 취재 전기간 직접 찍고 구한 사진과 동영상들은 제4언론(중문, 영문)을 통해 일부 먼저 소개됐다.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다 저문 12월 31일 북경으로 돌아온 뒤 갖고 온 자료들에 대한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구해온 거의 모든 사진 및 영상자료들을 제4언론은 물론 세상 여러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도 소개할 계획이다.

영결식 전후 장례 전기간 북녘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일들은 인류가 일찍이 경험치 못한 경험이라고 평가해야 옳을 것 같다. 필자의 경우 인류역사에서 아직은 그러한 경우를 알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북녘에서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한 일들을 “인류역사상 아직은 전무한 경험”이라고 쓰는 이유다. 그것들을 요약하면 아마도 다음의 표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북녘동포들의 실제 모습에 즉 본질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간 표현이라 믿기 때문이다: 북녘동포들의 다함 없는 서로사랑 이야기.

그들의 “서로사랑” 대상에는 “동무(동지)”, 나라, 민족이 우선 포함될 것 같다. 그 대상에는 그들의 최고지도자를 비롯 당, 정부, 국가의 일군들도 포함될 것이다. 특히 최고지도자와 모든 일군들의 서로사랑 대상에는 그들이 섬겨야 하는 인민들이 최우선 포함될 것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북녘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주장이다. 김일성 주석 때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르기까지 나라사랑, 조국사랑, 인민사랑 이야기를 북녘의 “선전에 불과한 허구”라고 바깥세상이 줄곧 치부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젠 “선전에 불과한 허구”라는 바깥 주장이 “반북세력들이 목적의식적으로 꾸며낸 거짓선전”이라는 비판에서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12월 28일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 때문이다. 온 세상에 중계된 영결식 전후 일어난 믿겨지지 않는 사건들 때문이다. 보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북녘사람들과 함께 오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사건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혼연일체”(渾然一體)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끔찍이도 아름다운 서로사랑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북녘의 현실을 선전, 허구라고 주장하는 세상사람들의 경험세계에서는 상상키 어렵고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세상에서는 도저히 가능치 않을 흉내조차 어려운 사건 같기 때문이다. 북녘동포들의 서로사랑 이야기를 가능한 “있는 그대로”(things as they are) 전하기 위해 씨름한 글과 말들을 “북에 세뇌된 또 다른 선전, 주장”이라고 치부하기 쉬운 많은 사람들의 사고에서의 일종의 제한성을 한편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믿기 어렵고 설명키 어려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장례 전기간 체험한 일들은 20년 넘게 끝없이 북녘을 찾은 필자를 포함 열린 마음으로 북에 다가가려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믿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들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들이 말하는 “지도자와 인민이 이루어낸 혼연일체의 사랑”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된 사건이기도 했다. 끝없는 고난, 시련을 함께 이겨온 그들의 심장 깊이 어딘가에 내재했을 것 같은 그들이 가닿은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랑의 대서사시 같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28일 새벽 3시경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함박눈은 오전에 계획한 영결식을 오후 2시로 미룰 정도로 쉬지 않고 펑펑 내렸다. 경제인으로 오래 북녘과 사업하는 한 캐나다동포가 고려호텔 19층 자신의 방에서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평양의 아침 풍경을 내다 보며 “온 세상이 마치 흰색의 하얀 소복을 입고 영결식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눈은 펑펑 내렸다. 그러나 필자와 캐나다동포는 물론 세상이 전혀 알지 못했던 사건은 눈이 내리기 시작한 그날 새벽 3시경부터 발생했다.

29일 밤 한 보건일군(수기치료사)이 확인해준 이야기다. 그 사건은 평양 소재 몇몇 대학 학생들에 의해 시작됐다. 영결식 때 국방위원장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지나게 될 거리에 눈이 쌓이고 얼 것을 염려한 대학생들의 서로사랑의 마음과 정성이 마치 전염병처럼 이심전심으로 급속히 퍼져 나간 사건이다. 대학생들이 기숙사 모포, 이불을 갖고 나가 깔기 시작하면서 운구차가 지나게 될 평양시내 100여리 전 구간이 모포, 이불, 나중엔 평양시민들의 옷, 목도리 등으로 뒤덮인 사건이다.

어린 학생부터 허리 굽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남녀노소 수십만이 이른 새벽부터 오후 2-3시경까지 끝없이 눈을 치우고 닦고 얼음을 깨며 한편으론 속절없이 계속 내리는 눈을 막기 위해 옷, 목도리, 담요 등을 깔거나 펼쳐 들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바깥세상이 도저히 믿겨 어려운 북녘동포들의 서로사랑 이야기 혹은 그들 표현대로 “지도자의 인민에 대한 인민의 지도자에 대한 사랑,” 필자의 표현으론 일종의 어떤 위대한 사랑의 대서사시 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재일총련동포들을 태운 버스들에서는 바깥에 들릴 정도로 대성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금수산기념궁전으로 향했던 긴 차량대열 맨 앞의 외교관들, 국제기구성원들을 포함한 타민족들의 경험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영결식장에서 눈이 뻘겋게 충혈된 채로 몹시도 슬픈 표정으로 서있던 한 외국인 경우를 통해 상상만해볼 뿐이다. 그는 우연히도 필자가 2006년 4월 <민족21>과 <통일뉴스>에 게재했던 대담기사 주인공 “스위스 축산기사 다니엘 선생”이었다.

장례 전기간 “집단호상”에서 꽃피워난 서로사랑이야기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집단호상” 사건 또한 앞의 서로사랑 이야기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인류가 일찍이 경험치 못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해서 틀릴 것 같지 않다. 평양에 도착한 12월 22일 저녁 호텔에 여장을 풀기 전 평양체육관 앞에서 목격한 집단호상사건은 29일 오전의 중앙추도대회를 끝으로 모든 공식추모행사가 끝난 밤 12시 자정 “설득이 안 되어 거의 강제로 해산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의 대서사시였기 때문이다.

장례 전기간 추모장소들엔 수천수만의 군중이 순서를 기다리며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추모장소들엔 거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거운 슬픔과 비통이 내리누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깊은 적막과 엄숙함만이 대신했다. 그들은 일렬종대로 늘어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문제는 매일 영하 10도를 전후해 오르내린 극심한 추위였다. 정작 더 큰 문제는 낮에는 물론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에도 끊이지 않는 추모객들과 그들 양 옆에 꼼짝않고 늘어서 몇시간 씩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었다.

보건일군들은 열흘 내내 전국의 모든 추모현장을 지키며 슬픔, 비통에 빠진 인민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짬을 내 필자의 치료를 도와준 보건일군이 있다. “추간판탈출”(디스크)문제로 2007년부터 의사-환자의 인연을 맺은 친선병원 수기치료사다. 24일 저녁 그를 처음 만났다. 이미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만날 때마다 더 충혈되어 갔다. 눈가 주위까지 점점 더 부었던 것 같다. 아래는 중앙추도대회가 있던 12월 29일 밤 그에게서 치료를 받으며 들은 말이다:

“우리들 슬픔은 둘째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끝없이 밀려드는 인민들의 슬픔, 비애, 애절함을 목격하며 우리들 자신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키 어려워 그냥 그들과 함께 울고 또 울며 거의 하루 종일 인민들과 함께 눈물의 피바다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하루 종일 집단호상 서는 사람들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만 교대하고 쉬라’, ‘밤이 늦었는데 집에 가 쉬고 내일 다시 오라’ 등 온갖 말로 설득해도 허사였습니다. 그들이 도무지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보건일군)들만으로 안되겠어서 중앙에 도움을 요청했죠. 집단호상을 비롯 몇 시간 씩 추모하는 인민들의 건강 및 안전문제를 중앙에 호소했습니다.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 지시로 23일부터 전국에 추모하고 호상서는 사람들이 들어가 몸을 잠시라도 녹이고 쉴 수 있게 하기 위한 임시천막들이 세워졌습니다. 발동을 켠 채 대기하는 대형버스들도 동원됐습니다. 늦은 한밤중에라도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내버스들도 운행시간을 더 연장했습니다.

더운 설탕물도 공급했습니다. 장례기간 마치 곡기를 끊듯 식음을 전폐한 인민들이 늘어가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호상을 서고 추모하는 인민들 가운데 그런 이들이 주로 빈혈증세와 동상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설득이 통하지 않았죠. 지역, 중앙의 지도간부들까지 나섰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추위에 몇 시간 씩 꼼짝 않고 호상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동상 걸리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비통하게 울다 아예 혼절하거나 때로 극심한 경우엔 숨을 거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전국의 모든 보건일군들이 추모현장들에 나갔다고 한다. 응급차량 1대에 6명(의사 3, 간호사 3)이 한 조로 4명은 밖에서 2명은 안에서 치료하며 30분 간격으로 교대했다는 그가 헤어지며 덧붙인 말이다: “끝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숱하게 드셨다는 쪽잠, 줴기밥을 장군님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처음 먹어보고 체험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열흘 내내 제대로 못자고 못먹고 끝없이 밀려드는 인민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설득하는 생활이지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필자 후기)

북녘동포들이 “핵무기보다 강위력하다”고 주장하는 “일심단결”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음 글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북녘의 미래 I”에서 집중적으로 씨름할 생각이다. 이어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과제와 세계반제자주화투쟁의 미래전망”이란 주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북녘의 미래 II”에서 다루어볼 생각이다. 끝으로 “김정은 시대의 북(조선)”이란 주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북녘의 미래 III”에서 다루는 것으로 평양특별취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글의 마무리를 <통일뉴스>에 댓글을 단 분들과의 대화를 위해 글을 쓰면서 늘 갖고 있는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한다. 글쓰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필자 또한 글에 대한 찬반논란이 늘 따른다. 특정사안에 대해 개인, 집단이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모든 경우가 그럴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 평가, 이해가 천차만별인 것은 하등 이상치 않다. 사람사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각, 이해, 지식, 경험, 정보, 가치, 기준, 틀 등의 수준,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를 뿐이다.

2000년대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됐다. “다름이 아름답다,” “서로의 차이를 상호존중하며 서로 다름에서 조화, 상생, 평등, 협력을 추구하는 문화다양성운동”의 핵심 배경에는 과거 서구/미국의 소위 “소프트파워” 곧 “문화제국주의”가 확산되면서 “세상의 서구화/미국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염려와 반성이 깔려있다. 어느 특정문화종교 중심의 “문화획일주의” 혹은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상생적 견제, 극복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다수는 언젠가 세상 모두가 문화, 종교, 인종, 계급, 성, 이념, 정치적 배경 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온갖 종류의 선입견, 편견, 사고, 이념의 경직성, 이중적, 위선적 사고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희망한다. 문화종교적인 정죄를 경계하고 멀리하며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상호존중에 기초한 조화상생적 사고가 지구촌에 정착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 다수가 모두 사물, 사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열어가며 모든 것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꾸어본다.

나 자신을 포함 세상 모두가 머지 않아 전체(The Whole)와 부분(Part)을, 나(I)와 너(Thou)를, 인간(Human)과 자연(The Nature)을, 흑백 혹은 선악(Good versus Evil) 이해를 “우리와 같지 않으면 적”이라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기독교/유대교/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분열적 단순사고체계인 이분법적(dualistic) 논리, 사고, 구도에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통전적(holistically)으로 조화롭고 균형있게 그리고 상생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되기를 늘 꿈꾸며 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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