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서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11년은 2010년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의 여파를 못 이기고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변화나 진전을 못 이루고 막 지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북한에서 이른바 ‘급변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건 발생 후 북한이 보여준 위기관리능력은 돋보였다. 외부세계가 주문(呪文)처럼 외웠던 급변사태가 일어났지만 그 대처과정은 안정적이었고 순조로웠다. 최고 지도자의 급변사태(급서)가 곧바로 권력과 국가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급변사태가 정상국가임을 증명하는 계기로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을 ‘급변사태’니, ‘인민봉기’니 그리고 ‘군부쿠데타’니, ‘내부 붕괴’니 하는 식의 사시(斜視)로 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2012년은 한반도 주변국 격변의 해

이제 북한을 빌미로 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아니 2012년은 격변의 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 이유는 올해 남북을 비롯해 한반도 주변국에서 권력 이동을 비롯한 무게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6자회담 참가국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다.

먼저,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G2(주요 2개국)가 권력 교체기를 맞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판가름 나는 미국 대선이 있으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후임으로 시진핑 부주석이 등장할 중국 당 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러시아의 경우도 푸틴 총리의 대통령 복귀에 분수령이 될 대선이 열린다. 일본은 하도 정치변동이 많기에 2012년에 언제고 새로운 총리가 들어설 수도 있다.

북한에 있어 2012년은 국가발전전략의 하나인 ‘강성국가의 대문을 여는 해’다.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1주기, 새로운 ‘영도자’로 부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집권 첫해가 되는 해다.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김정은 시대’가 자연스럽게 개막되었다. 북한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지형이 형성된 것이다. 마침 2012년 남한에도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이다.

그렇다면 2012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앞에서 잠깐 살펴봤지만 2012년은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서 거대한 변화가 닥치는 시기다. 각 주변국에서 어떤 리더십이 등장하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풍향이 언제고 바뀔 수 있다. 격변의 시기에 우리 민족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북한은 급격한 변동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리더십이 구축되었다. 남는 것은 남한이다. 2012년은 남한에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준다.

이명박 정부를 결산하자

하나는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다. 그 반면교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을 잠깐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4년간 1987년 체체 때부터 국민적 합의로 발전, 진행해온 민주주의와 민생 그리고 남북관계가 급격히 훼손되는 것을 목도해 왔다. 우리는 지난 4년간 이명박 정부더러 대북 대결정책에서 벗어나 화해정책을 펼 것을 요구해 왔다. 아울러 외교에서도 한미동맹을 탈피해 주변국들과 균형외교를 펼 것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이는 ‘쇠귀에 경 읽기’(牛耳讀經)였다.

2012년은 남한에서 어떤 세력과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우리 민족의 운명이 갈림길에 설 공산이 크다. 지난 시기 군부정권 시대는 차치하더라도 최근 20년간을 일별해 보자.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접하면서 어떤 정부가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했는가는 분명해진다.

대북 대결주의를 택한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는 한반도 위기지수가 급팽창하면서 때로는 전쟁 분위기로까지 나아갔다. 남한은 외세공조를 통해 북한을 찍어 누르려 했으나 이는 헛수고였다. 북한은 여전히 건재하다. 남과 북이 갈등과 대결만 일삼으니 관계개선은커녕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별국으로만 존재했다. 남북이 한반도에서 지렛대 역할을 못 하니 무늬만 독립국이지 약소국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민족화해 입장을 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는 사소한 남북갈등은 있었지만 큰 틀에선 민족공조를 유지함으로서 남북관계의 발전은 물론 동북아 정세 나아가 6자회담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의 방향과 관련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의 성과는 남북공조의 극치였다.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2012년이 이명박 정부 결산의 해라는 의미는 자연적으로 고사하는 이명박 정부의 명운을 재촉하자는 게 아니다. 자연사(自然死)하는 건 대상이 아니다. 4년 전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행세했고 동조했던 세력들, 그리고 그 틀 안에 있으면서 새로운 권력을 꿈꾸는 아류 세력들까지 부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2012년 양대 선거에서 심판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자

2012년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는 여전히 불안정한 ‘1987년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6월항쟁의 산물인 1987년 체제는 25년이 지나다보니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챙기고 있지 못하다. 1987년 체제에는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의 이행과제가 담겨져 있지만 민족문제가 빠져 있으며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라는 광풍이 남겨놓은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과 해결 방안을 담고 있지 못하다.

이렇듯 남한 사회가 1987년 체제에 묶여있다면, 한반도 역시 1953년 정전체제에 갇혀있다. 한반도에서의 정전체제란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그런데 냉전체제는 이미 20년 전에 무너졌는데 한반도만은 그 잔재인 정전체제가 무슨 괴물처럼 남아있다. 물론 평화체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반북 대결적이자 친미 일변도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하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7년 대선은 1987년 체제 이전으로의 후퇴냐 아니면 1987년 체제의 극복이냐, 6.15공동선언 이전인 분단시대로의 복귀냐 아니면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통일시대로의 지속이냐, 더욱 확장하면 냉전체제의 고수냐 아니면 그 해체냐를 가르는 대회전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약속이나 한 듯이 남한 사회는 1987년 체제 이전으로 후퇴했으며 한반도는 6.15공동선언 이전인 분단시대로 복귀했다. 한마디로 냉전체제가 부활, 연장된 것이다.

2012년에는 이처럼 남한에서의 1987년 체제를 교체하고, 한반도에서의 1953년 정전체제를 언젠가 평화체제로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그런 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민주진보적인 학계에서 제기된 ‘2013년 체제’에 대해 천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2012년은 남한 사회에서 2013년 체제를 발진시키기 위한 그 무엇인가를 양대 선거를 통해 획득하자는 것이다.

2012년 민족화해적인 정부를 세우자

올해 총선은 4월 11일에 실시되며 그로부터 8개월 후인 12월 19일에는 제 18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빅 이벤트다. 남한 대부분의 정치 세력은 이번 양대 선거에 총출동하면서 모든 자원을 총투입할 것이다. 벌써 그 과잉 조짐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투쟁이 예상되고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총선과 대선과의 상호관계다. 이번 양대 선거는 하나로 갈 공산이 크다. 총선에서 이긴 세력이 대선에서도 이길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권자들이 총선에 표를 준 쪽에다가 대선에서도 표를 몰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올 한해 한쪽에다 권력을 몰아주고 내년부터 그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총선과 대선은 하나의 패키지다. 따라서 총선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세력이 대권 획득에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밝혔듯이 올해 양대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결산하고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자는 것은 곧 민족화해적인 정부,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세우자는 것이다. 민주적이고 민족화해적인 인사와 세력을 지지하자는 것이다. 마침 줄곧 시민사회운동을 해온 민주진보적인 인사들이 절치부심하며 이번 양대 선거에 대거 참여하는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뉴라이트 인사들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 참가하던 것과 비견되는 것으로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민족화해 세력이란 무엇인가?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특히 금세기 들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를 일별해 보면 명확해진다. 한마디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6.15공동선언의 정신은 민족화해와 민족공조에 있다. 민족화해를 통해 남북 간 갈등을 해소하고 통일의 기초를 닦아야 하며, 민족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 싹을 틔어야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두 선언의 합의자인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세 사람이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 노정에서 두 개 선언이 보여 줄 생명력은 질길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계했지만 그 유훈 중의 하나인 조국통일 문제를 받아 안은 새로운 리더십인 김정은 부위원장이 6.15선언을 이행할 것이다. 문제는 남한이다. 이명박 정부는 두 개 선언을 부정해 왔다. 민족화해 입장을 펴는 새로운 세력과 새로운 리더십이 이 두 개 선언을 지지 이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한 사회와 한반도 정세는 복잡하고도 간고하다. 그런 점에서 한두 번의 선거로 나라의 명운이 결정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일별했듯이 대북 대결정책을 편 김영삼- 이명박 정부 때와 민족화해를 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선거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걸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 남한 사회가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양대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고 민족화해 정부를 출범시키자. 그리하여 남한에서 1987년 체제를 마감시키고, 다가올 한반도 평화체제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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