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30일 남측 당국이 민간 조문단의 조문방북 요구를 막은 것을 비난하면서 ‘이명박 정부와의 상종 불가’를 재천명했습니다. ‘김정일 대국상(大國喪)’을 마친 하루 뒤에 나온 것입니다. 물론 지난 5월 30일에도 북측이 이 같은 ‘상종 불가’ 선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북측의 워딩만 봅시다. ‘5월 성명’에는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을 것”이었는데, 이번 ‘12월 성명’에는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에서 ‘영원히’로 바뀌었습니다.

더 의미 있는 게 있습니다. 성명 발표의 주체입니다. ‘5월 성명’ 때는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12월 성명’에는 ‘국방위원회’입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격이 높은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 자료를 살펴보면,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은 ‘5월 성명’ 외에도 △비상통치계획-부흥 비난(2010.1.5), △천안함 조사결과 비난(2010.5.20), △한미 연합해상훈련 비난(2010.7.24) 등 모두 네 차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방위원회 성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그 최고 책임자가 바로 타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번 ‘이명박 정부와의 영원한 상종 불가’ 천명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언이 되는 셈입니다. 아마 북측은 그것을 남측에 시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국방위원회는 성명에서 “민족의 대국상 앞에 저지른 (이명박) 역적패당의 만고대죄와 관련하여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의 공동위임에 따라” ‘상종 불가’ 입장을 천명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간 남측은 ‘대국상’을 당한 북측에 대해 ‘(1994년 김일성 대국상 때와는 달리) 조의도 표명했다’, ‘이희호-현정은 민간 조문단도 보냈다’, ‘애기봉 등의 성탄 트리 점등도 보류했다’며 느긋해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안함, 연평도 도발은 김정일이 최종 책임자”라고 하면서 이들 사건과 김정은을 분리하려는 입장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얼마든 유연하게 할 수 있다”, “(북 급변사태시)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에 보이기 위함”이라는 등 유연한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내년 1월 2일 신년사에 대북 유화정책이 담길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이틀 앞두고 터진 북측 국방위원회의 성명은 이 모든 것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있습니다. 일례만 봐도 북측은 남측의 조의 표명에 대해 ‘북 정권과 인민 간의 분리’로, ‘이희호-현정은 조문’에 대해 ‘전면적 조문이 아닌 제한적 조문’으로 격하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그렇기도 합니다. 남측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망해졌습니다. 이는 남측 정부가 지난 4년간 대북 대결정책을 펴온 후과(後果)이기도 합니다. 이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판짜기는 새해의 과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