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막식. 23일 오후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서 ‘신흥대학 표지석 제막식’이 경희총민주동문회 주최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신흥대학 표지석 제막식’이 23일 오후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서 경희총민주동문회 주최로 열렸다.

이곳은 64년 전 조계사 소유의 각황사(覺皇寺)가 있던 자리였다. 이를 1911년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설립되었던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시영 선생(성재학원 초대 이사장,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과 졸업생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국내에 들어와 이곳을 매입하여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신흥대학은 1947년 2월 신흥전문학원으로 만들어져, 1949년 3월 신흥대학으로 개편하고 문교부로부터 정규대학으로 인가(『관보』1949.3.29)받았다. 이후 신흥대학은 1952년 5월 18일(현 경희대학교 개교기념일)에 조영식 씨가 인수하였으며, 1960년에는 경희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신흥대학 설립 당시의 신흥무관학교 관련 신문기사 / 1-신흥대학교가 문교당국에 정식허가를 얻어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49년 5월 11일 동아일보) / 2-동양외전과 신흥대학이 합병하였다는 내용(50년 4월 5일 경향일보) / 3-김동주 씨가 신흥대학에 토지 건물등 싯가 10억원을 희사하였다는 내용(50년 4월 28일 동아일보) / 4-신흥대학 남녀학생 모집광고(50년 5월 16일 동아일보).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이날 행사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김재운 기획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전기호 공동대표(경희대 명예교수, 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장)는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일제가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를 유포시키며,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며, 일제강점기에 목숨 받쳐 싸웠던 이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 공동대표는 “이러한 시기에 세계사에 유례없는 독립운동을 펼쳤던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희총민주동문회 김용호 회장은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은 그 내용면에서는 육군사관학교가 받아드려야 하고, 연혁이라는 차원에서는 경희대학교가 받아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올해 진행되었던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사업을 이어 2012년부터는 신흥무관학교의 연혁을 복원하는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 기념강연회와 제막식.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한편, 제막식이 끝나고 오후 5시에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주최로 성균관대학교 서중석(『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의 저자) 교수의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강연’이 제막식 참가자들을 비롯하여 경희대학교 재학생들이 함께한 가운데 수송공원 옆에 위치한 조계사 불교대학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서 교수는 기념강연에서 “가산을 털어 항일운동기지를 만든 이회영 6형제와 안동의 이상룡 등 많은 권문세족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도 높이 사야겠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1910년대 중국과 러시아를 누르고 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며 욱일승천하는 일본을 대항하여 끝없어 보이기만 하던 독립투쟁을 실천한 그들이야 말로 대단한 분들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서 교수는 “그렇게 해서 그분들의 뜻대로 해방은 되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일당이 항일운동가들을 외면하는 바람에 외세가 아닌 동족에 의해 버림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면서 “이들에게 가해진 이러한 역사는 바로잡음과 동시에 다시는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광고.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신흥무관학교 100년’은 ‘경희대학교 100년’입니다

올해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였던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탄하자 이회영 이상룡 김동삼 이동녕 등 다수의 애국지사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전 재산을 처분한 뒤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온 몸으로 실천한 이들 선각자들의 헌신과 동포들의 염원이 합쳐져, 1911년 6월 10일 최초의 독립군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실로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로부터 10여 년간 신흥무관학교는 3,500여 명에 이르는 독립군 간부 전사를 배출하였습니다.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항일무장투쟁의 현장에는 항상 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청산리 봉오동 독립전쟁의 영웅들, 의열단의 투사들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인재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하여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고려혁명군 한국광복군 등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신흥무관학교의 이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은 대학교가 있습니다. 해방 후 임시정부 요원들과 함께 귀국한 이시영 선생(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은 옛 동지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부활에 갖은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46년 3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소재 각황사(覺皇寺)를 매입, 1947년 2월 이곳에 신흥전문학원을 설립하였으며, 1949년 3월 신흥대학으로 개편 정규대학으로 인가받았습니다.

1951년 5월 조영식 선생이 인수한 뒤 교세확장을 거듭하였으며, 1960년 경희대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경희대학교는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유수한 종합대학교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성취는 구성원 모두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경희대학교의 60년에 이르는 도약과 발전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아가 전사(前史)로서 신흥무관학교의 경이로운 항일독립투쟁의 역사에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마감하는 지금, 경희총민주동문회는 앞으로 열어갈 모교의 미래 100년을 떠올리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혼신을 다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받고자 합니다. 경희대학교의 모든 구성원들과 힘을 모아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는 모교의 100년 연혁을 온전히 복원하는데 앞장서 나겠습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신흥대학 옛터’ 표지석을 건립하고 제막식을 가집니다. 이번 행사는 경희대학교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였음을 널리 알리고 신흥무관학교 정신의 부활을 내외에 선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2011년 11월 23일 경희총민주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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