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웬지 길림대 동북아연구원 교수와 지난 9월 6일 중국 장춘시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서 교수는 피부가 하얗게 되는 백반증 현상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조선(북한)의 경제개발 10개년 계획 내용을 요약하면 ‘의의는 중대하나 관념이 전통적이고, 목표는 웅장하나 조치는 완벽하지 않고, 전망은 낙관적이나 실시에는 곤란이 많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연구에 30여년을 바쳐온 중국 길림대학 동북아연구원 스웬지(서문길 徐文吉, 64세) 박사 지도교수는 어떤 질문에도 자신 만의 정리된 답을 주저 없이 내놓았다.

지난 9월 6일 ‘제7차 중국.길림 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 취재를 위해 방문한 중국 장춘시의 한 호텔에서 만난 스웬지 교수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답게 ‘조선어’로 인터뷰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스웬지 교수는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에 대해 “조선 측의 요구가 크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개혁개방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라고 짚고 “수혈식 지원과 방향을 가르치는 지원이 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요약하면 ‘1구(라진선봉특구) 2도(위화도.황금평도)’는 계속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특히 중국 동북지역의 길림성은 라진.선봉을 개방해야 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몽골도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북측 특구 내의 관리들을 중국 텐진(천진 天津)시에 초청해 중국학자들이 두 차례 특강을 했다며 “이는 중국의 대외원조 프로그램이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와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경제 문제가 식량 문제, 자금 문제, 원자재 문제 등 여러 가지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이 사고방식”이라며 “옛날 사고방식을 고집하면 경제를 바꿀 수 없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잇단 중국 방문에 대해 그는 △북중 우호친선 △후계자 문제 △경제협력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특히 후계자 문제에 대해 양상(亮相), 탁고(托孤), 역지(历志)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간략히 정리했다.

첫째, ‘양상(亮相)’이란 후계자의 얼굴을 중국에 보이는 것이고, 둘째, ‘탁고(托孤)’는 “장성택 같은 이들이 동행하여 ‘후계자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셋째, ‘역지(历志)’는 김일성 주석 동상이 세워진 육문중학교 방문 등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위업을 계승.발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지난해 11월 북한을 다녀왔다는 그는 “특히 사고방식, 우리 접대하는 조선대외문화연락위원회 국장 등 정부 관원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며 “우리에게 옛날에 보여주지 않던 것들을 보여줬다. 천리마공장 용광로도 보여줬다. 농장도 보여줬는데, 특히 새로운 것이 강동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과수농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미래에 대해 그는 “완전히 자본주의 식으로도 안 되고, 계속 견지해도 안 되고 새로 잡아야 된다”며 “현재 한국이 ‘강경 대 강경’ 대책 보다는 전략적 태도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스웬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곽범기 북한 부총리가 박사 학위 수여

▲ 스웬지 교수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한국말을 잘 하신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한 걸로 들었다.

■ 스웬지 교수 : 그렇다. 그 전에도 배웠다. 내가 연변대학 졸업생이다. 1972년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길림대학에 분배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길림대학에 조선연구소가 있었고 그때부터 이미 한반도 문제 취급을 시작해 거의 40년 됐다.

□ 왜 연변대학을 갔나?

■ 그때는 자기가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문화대혁명으로 5년간 대학이 문을 닫았고 1972년부터 시범적으로 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그때는 자기 의지대로 원하는 전공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분배를 따랐다. 조선말을 전혀 몰라 ‘가나다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어 전공이 마음에 들었고 공부 성적도 우수했다.

□ 김일성종합대학은 언제 갔나?

■ 1983년에 연수로 갔다. 3년간 주로 준박사 학위를 전공했다. 거기는 석사가 없고 본과, 준박사, 박사로 나뉜다.

1990년에 다시 갔었다. 박사 논문을 시작해서 2년간 마치고 규정대로 돌아왔다. 박사 논문을 제기하고 1년 후에 다시 박사학위 구술시험을 통과했어야 하는데 1992년에 바로 중.한 수교가 있어 그 후로 아무 소식이 없었다.

10년 후인 2002년에 원래 논문을 수정해서 출판하라는 통지를 받았고 2006년 구술시험까지 통과한 후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것이 <로동신문>과 <중앙텔레비전>에 보도됐고 조선 곽범기 부총리가 직접 학위를 수여했다.

□ 1992년에는 한.중 수교도 되고 ‘고난의 행군’ 직전이니까 북한도 어려운 상황이었겠다.

■ 그때는 아직 괜찮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 한 바로 그 해에 큰 홍수가 났다. 그로부터 갖가지 곤란에 부딪쳐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이 나왔다.

“‘1구 2도’, 특구 식으로 대대적으로 하는 것”

□ 최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례적으로 3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나?

■ 3가지 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2010년부터 중.조 수교 60주년 우호친선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양국 최고위급이 상징적으로 방문했다.

둘째는 내부의 정치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바로 후계자 문제다. 우선은 후계자를 세워서 중국에 얼굴을 보여주고, 다음은 새로운 계승자가 너무 젊어 동행자들이 모두 중요 성원들이다. 장성택 같은 이들이 동행하여 ‘후계자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일성 주석의 위업을 계승.발전하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공부했고 그 동상이 세워져있는 길림시 육문중학교를 방문한 것은 ‘사회주의 생활방식을 견지하라’는 뜻이다. 선대의 뜻대로 계속 가라는 것이다. 이를 중국어로 표현하면 양상(亮相), 탁고(托孤), 역지(历志)이다. 이는 다른데 없는 나만의 해석이다.

셋째는 경제문제다.

□ 일반적으로 북.중 경협 문제에 관심이 많다. 북.중간 경제협력에 관한 이야기는 무성한데 반해 실제로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어떻게 보나?

■ 조선 측의 요구가 크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개혁개방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이 개방 식으로 변혁 식으로 가는 방향을 찾으라는 것이다. 물론 지원도 계속 많이 해주었다. 수혈식 지원과 방향을 가르치는 지원이 다 필요하다.

□ 최근 북.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 요약하면 ‘1구 2도’는 계속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다. 1구는 라진선봉특구, 2도는 황금평도.위화도다. 이것을 특구 식으로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다.

조선 관원들을 중국에 초청하여 중국학자들이 특강을 하는 것이다. 중국말로 페이쉰(배훈, 培訓), 양성이라고 하는데 벌써 두 차례 진행했다. 초청 대상이 대부분 지위가 있는 관원들로서 보통 특구 내 정부 관원들이다.

베이징과 가까운 텐진(천진, 天津)시에서 진행했다. 이는 중국의 대외원조 프로그램이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와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

□ 중국식 개혁개방 방향도 많이 가르치겠다.

■ 그렇다. 특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치고, 해결.처리 방법도 원리적으로 가르쳐준다.

□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로 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어떻게 평가하나?

■ 러시아 역시 경제적 측면과 지역 안정 측면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이 개방 혹은 경제 정책을 고려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경제 원조, 무역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안정 문제로, 주변국의 안정 문제를 위해서 가는 것이다. 특히 6자회담인데, 6자회담을 재개하는데 러시아 역할을 발휘시키려는 목적이다

□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라진.선봉지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 특히 중국 동북지역의 길림성은 라진.선봉을 개방해야 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몽골도 관심이 많다.

“옛날 사고방식 고집하면 경제 바꿀 수 없다”

▲ 스웬지 교수는 북한의 사고방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중국도 내년에는 후진타오 체제에서 시진핑 체제로 달라지는데 대북 정책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 중국의 대북 정책 큰 줄기는 바뀔 수 없다. 일관되게 간다. 중국은 서방나라와 완전히 다르다. 서방은 대통령에 따라 정책이 바뀌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정책 기조가 변할 수 없다. 새로운 지도자가 바뀌면 아마 더 적극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지도자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경제적으로 충분히 재기하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의 경제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고, 북한 경제 발전에서 부족점은 뭐라고 보나?

■ 조선 경제 문제가 식량 문제, 자금 문제, 원자재 문제 등 여러 가지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이 사고방식이다. 옛날 사고방식을 고집하면 경제를 바꿀 수 없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조선의 경제개발 10개년 계획 내용을 요약하면 ‘의의는 중대하나 관념이 전통적이고, 목표는 웅장하나 조치는 완벽하지 않고, 전망은 낙관적이나 실시에는 곤란이 많다’는 것이다.

□ 북한이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미국과의 관계도 소원한 상태에서, 중국과 밀착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 겉으로 볼 때는 아마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상호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관계가 밀접하면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밀접하다’는 것은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조선 관계는 전통적인 관계다. 가장 높은 급이다. 그래서 중국은 항상 이웃 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한다. 또한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상대방을 선하게 대한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간에는 미국 측의 요구가 너무 많다. 군대 주둔문제도 있다. 성질이 다르다.

중국은 한국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전면적 동반자’ 관계로부터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이는 가치와 지역안전 문제다. 과거 중.한 양자 관계 비중이 컸지만 지역안전과 전 세계적인 문제가 다 전략적인 문제로 되는 현재에는 전략적이라는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

□ 지금도 강의하나?

■ 지금도 계속 강의한다. 올해 64살이다. 중국에서 일반교수는 60살에 정년퇴직이지만 박사 지도교수는 65살이다. 내년에 정년퇴직을 해야 하지만 한국 박사생의 지도교수로 2년 내지 3년간 더 근무해야 하기에 퇴직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조선반도 문제 연구에 필생의 정력을 쏟는 것이 일생 소망이기도 하다.

“중국, 후계자 문제는 조선의 내정 문제로 간주”

□ 북한의 3대 후계체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의 평가는?

■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첫째 조선이란 나라의 특성을 연구하면서 그 특성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이 사회주의 나라이지만 자본주의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완전한 서방식은 조선의 국익에 이롭지 않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에돌아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일관된 입장은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후계자 문제에 있어 중국은 조선의 내정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 김정은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부주석을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나?

■ 그건 잘 모른다. 일단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방문할 경우 중국이 접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전문가로서 북한의 전망과 남북 통일의 전망은?

■ 더 먼 전망이다. 먼 훗날에 조선반도는 꼭 통일할 수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도 “분단된 나라가 오래 되면 꼭 통일된다”고 나와 있다. 그 근거는 바로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 역시 독립, 분단하는 사고가 없다. 우리 중국과 대만을 분리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 남북을 분리하는 자는 없다. 모두가 통일을 원하고 있다. 민심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국제사회에서 반대하는 소리가 점차적으로 적어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꼭 통일할 수 있다. 중국 역시 통일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표 전망은 어렵다. 언제일지. 한반도 수천년 역사 이래 분리된 시간은 짧고 통일된 시간이 많다. 통일 때는 중국과의 관계가 서로 좋다. 경제에도 좋다.

그런데 조선 현재의 전망, 발전 전략이 전변할 수 있을지 못 할지가 관건이다. 일단 경제적으로 순조롭게 전변하면 당면 곤란을 극복할 수 있다. 당면 곤란을 극복하면 민생 즉 사람들의 생활이 좋아질 것이고 따라서 국가 경제도 점차적으로 전변할 수 있다. 조선이 인구가 많지 않기에 일단 정확한 정책을 실시하면 국가 경제가 많이 나아질 수 있다.

□ 북한이 바뀌어야 하는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완전히 자본주의 식으로도 안 되고, 계속 견지해도 안 되고 새로 잡아야 된다.

□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나?

■ 내가 보기에는 60% 가능하고 40% 어렵다. 2002년 7.1경제개선조치, 그것은 바로 사고방식을 전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2차 핵문제가 불거졌고 조선은 할 수 없이 핵개발에 계속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역시 국제사회의 태도가 관건이다. 현재 한국이 ‘강경 대 강경’ 대책 보다는 전략적 태도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 남쪽도 통일부 장관이 바뀌어 대북 정책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 류우익 장관이 서울대 시절에 벌써 아는 사이다. 중국 대사일 때 대사관에서 한 번 만났다. 그리고 길림대에서 특강을 했을 적에도 만났다. 안부 전해달라.

□ 중국에서 한반도와 북한 문제 연구자들이 많나?

■ 조선반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사람이 중국의 조선반도 연구 현황을 아주 상세하게 쓴 글이 책으로 나왔다. 거기에서 중국의 조선반도 연구기구 중 10개가 중요한데, 그중 9개가 북경에 있고 하나는 상해에 있다. 그리고 중국의 관련 학자 역시 10명 중 9명이 북경에 있고 한 명이 장춘에 있다.

□ 장춘에 있는 한 명의 한반도 전문가가 바로 서 교수인가?

■ 그렇다.(웃음) 연변에도 연구자가 있다. 예컨대 김강일, 강용범이 있다. 다 아는 사이다.

“‘자아 전환, 외부 햇볕정책’ 시행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탈북자가 2만명이 넘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떻게 보나?

■ 한국에 있는 탈북자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 보다 훨씬 적다. 중국에도 이렇게 많은데, 심지어 중국 사람을 죽인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별로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한국에 2만명 정도를 포용할 수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

조선의 안정성에 큰 영향으로 볼 수가 없다. 2만명 정도가 나라의 안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러시아 방문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아는 게 있나?

■ 그건 잘 모른다.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어떤 일을 볼 때 큰 추세로 보면 된다.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를 가도 중국에 와도 비행기로 가지 않고 기차를 10여 시간 타는데, 이런 사람이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가 없다.

□ 최근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나?

■ 작년 11월 북한에 다녀왔다. 대표단 성원은 김일성종합대학의 중국 유학생들로서 일체 비용을 자부담하는 민간 차원의 방문이다. 중국 유학생 대표단 방문은 김일성 종합대학이 설립된 후 50여년 이래 처음으로 되는 유학생들의 모교 방문활동이다.

대표단은 조선 측의 열렬한 환영과 접대를 받았다. 김일성종합대학의 학생들이 도로 양 켠에서 환영을 하였고 대학 측 유일한 원사가 친히 접대해주었다. 당시 대표단 방문 활동에 대해 조선 <로동신문>, <민주 조선>등 신문들에 보도되었다.

조선에 있던 날 연평도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체류 시 아무 것도 몰랐다. 계속 노래 부르고 술 마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옛날에 보여주지 않던 것들을 보여줬다. 천리마공장 용광로도 보여줬다. 농장도 보여줬는데, 특히 새로운 것이 강동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과수농장을 하고 있다.

□ 과수농장에는 주로 무얼 심나?

■ 사과다. 주로 유럽 국가에서 사과나무를 기증받거나 수입하여 재배하고 있다. 특히 사고방식, 우리 접대하는 조선대외문화연락위원회 국장 등 정부 관원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북쪽의 사고방식, 둘째는 국제사회가 도와줘야 된다는 것이다. 너무 긴장, 압박하면 이롭지 않다. ‘자아 전환, 외부 햇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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