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제1호 법정(재판장 전수안)에서 열린 이시우 사진작가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상고심 결심공판에서 오전 10시 20분경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해, 지난 2008년 12월 30일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상고 기각으로 무죄가 확정되자 20여명의 방청객들은 승리와 안도와 한숨이 낮게 터져나왔고, 대법원 정문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최로 간략한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이시우 작가는 “국가보안법이 광범위하게 무작위로 적용되는 관행에 쐐기를 박고 국가보안법의 영토를 좁히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본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소위 ‘왕재산 사건’과 최근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너무 기쁘다”며 “항소심 판결 나고 3년 만에 연락이 왔는데, 너무 현재 이명박 정권에서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다 보니까 1심, 2심에서 무죄를 받았는데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 씨는 1심 주변호사인 이정희 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1심 재판을 맡았던 한양석 판사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많은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과 민변 변호사들, 너무 많이 마음써주신 분들한테 감사 드린다”고 인사했다.
2심 변론을 맡은 조영선 변호사는 “이적단체를 빼고는 거의 모든 국가보안법 위반 사안이 망라된 사건인데 무죄가 확정됐다”면서 “국가기밀의 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이고 인터넷 정보 수집의 자유를 넓게 해석했다는 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심재환 변호사는 “우리 법원에서 군사기밀 내지는 국가기밀과 관련해서, 또 이적표현물 소지에 관한 유사한 판결과 비교해서 매우 전진적인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특히 이적표현물 소지와 그 소지의 행위에서의 이적 목적성이 있느냐의 여부를 명백히 준별해서 봐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판례변경이 있었는데, 이시우 씨의 판결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에는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와 서영선 강화유족회 회장, 오철근 서울퀘이커모임 회원, 고정호 이시우대책위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편, 이 작가는 2007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2008년 1월 31일 1심에서 검찰의 구형 10년에도 불구하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 통일뉴스 : 대법원 무죄 선고 소감은?
■ 이시우 작가 : 5년 만에 끝나니까 한편으로 홀가분한데, 또 한편으로는 다른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 많이 있어 이 사건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 오늘 무죄판결을 예상했나?
■ 90%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에는 긴장됐다.
□ 모든 사법절차가 마무리됐는데, 인사말은?
■ 민변에 감사드리고, 1심을 맡아준 이정희 민노당 대표, 2심의 조영선 변호사를 비롯한 민변 20여 명의 변호사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법원 밖에서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힘써주신 민가협,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사회단체에 역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가족들에게도 한 말씀.
■ 고생을 제일 많이 한 집사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들 우성이에게도 역시 고마움을 전한다.
□ 이번 판결의 의미는?
■ 1심부터 쭉 판결이 무죄를 유지했다.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들이 모두 ‘군사기밀’이 가장 큰 건으로 제소되고 있는데 공개된 사실에 대해 기밀이 적용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인터넷이나 정보 민주화 현실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에 의해서 벌어진 기밀 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터넷이 발달한 상태에서 인터넷에서 수집해 공개된 정보를 옮겼거나 인용했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사건의 중요한 의미이다.
‘회합.통신’ 같은 경우 의례적인 만남, 이적 목적을 갖지 않는 만남에 대해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제까지 수많은 남북접촉을 하고 정권이 바뀌어 부담감이나 걱정이 많은 분들에게 그런 접촉에 대해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판례가 됐다.
마지막으로 ‘이적표현물 소지’라는 것이 단순히 보관했거나 연구나 집필 목적으로 이용한 경우 죄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환영하는 바이다.
전체적으로 변화된 현실에 맞는 법 적용이라는 대원칙을 지켜졌다는 점에서 다른 사안에도 적용 기준으로 사용되어지길 바란다.
□ 수사과정에서 압수된 작품사진들은 어떻게 처리됐나?
■ 압수된 채로 있고, 어떻게 할지는 이제 완전히 판결을 받은 상태니까 다시 논의를 해야 한다.
□ 사진작가이자 평화활동가로 일련의 이번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긍정적인 판결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공공의 적’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것 같다. 설령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혐의가 적용된 순간부터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는 점에서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국가보안법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또한 창작, 연구할 때 나도 모르게 생긴 습관 중에 하나가 반드시 출처, 주석을 달아야 글이 써지는 버릇이다. ‘지나칠 정도의 자기 검열’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갖게 되는 자기 검열을 완전히 벗지 못하는 것이 한편으로 있는 것 같다. 창작자는 자유가 제일 중요한데, 끝없이 고민하고 신경써야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사회활동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것이 확실히 나도 모르게 줄어들고, 외모도 이러다 보니까 나서지도 잘 못하는 그런 변화가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작품의 주제가 생겼다 국가보안법을 갖고 당분간 창작하고 발표할 주제가 생겼다. 영토조항 문제, 고무.찬양 관련해서 어떻게 작가로서 비판하고 작품으로 승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 근황을 알려달라.
■ 출소하면서 목표가 혐의 관련된 것들을 석방된 이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었다. 『한강하구』는 하나 매듭지었고, 이번에는 ‘유엔군사령부’를 매듭짓기 위해 연구하고 저술하고 있다. 다른 것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어 한동안 국가보안법 사건과 관련된 것을 마무리 짓는 사업을 당분간 할 것 같다.
□ 하고싶은 말은?
■ 어쨌거나 진실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조건이라 할지라도 집요하고 냉철하게 싸운다면 한분한분 마다 성취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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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추가, 14일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