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8개항으로 되어있는 10.4선언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항이 무엇일까요?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모든 항이 중요하겠기에 우문(愚問)이겠지요. 그래도 이명박 정부라는 ‘현실’과 결부해 굳이 고르자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나오는 5항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남북 간 긴장, 특히 서해 해상에서의 북방한계선(NLL) 갈등과 지난해 연평도 포격전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10.4선언에서 가장 핵심적인 합의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학자들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10.4선언 4돌 기념행사의 하나로 5일 인천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체제와 서해평화의 섬’ 국제학술회의에서 김연철 인제대 교수가 흥미 있는 견해를 피력해 눈길을 끕니다. 김 교수는 서해 해양평화공원을 만들자면서, 그 공원을 “선(線)이 아닌 면(面)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동안 NLL은 남과 북을 가르고 이제 남쪽 내부의 이념적 경계선이 됐다”면서 NLL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합니다. 즉, NLL은 선을 중심으로 한 남북 분단경계선이지만, ‘서해 해양평화공원’이라는 면으로 접근할 경우 군사적 신뢰구축이 진전되고 호혜적 경제협력의 환경 조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묘하게도 이와 비슷한 견해가 또 발견됩니다. 재일동포인 강종헌 한국문제연구소 대표는 2007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남측-재일동포 합동토론회에서 10.4선언에 대한 설명에서 선과 면의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에게는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과 NLL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선은 적과 아를 가르는 것임에 비해 면은 그 안에 모든 선을 머금고 모든 가치를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10.4선언에는 서해지역 무력충돌 지역인 NLL이 안 나오고 그 대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면으로 표현했다”면서, 남북 정상의 선견지명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서해 NLL과 평화협력특별지대를 학문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발상이 기발합니다. 이처럼 10.4선언을 이행했다면 남북 간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는 북측도 비슷합니다. 북측은 <노동신문> 4일자 사설에서 “지난해 연평도사건이 일어나고 조선서해의 5개 섬 일대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극도로 첨예화되어 북남사이에 전쟁위험이 전례 없이 고조된 것도 남조선당국이 10.4선언이 밝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 것과 중요하게 관련된다”고 적시할 정도이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평화로운 면(面)이 아니라 팽팽한 선(線)이 주는 긴장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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