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은 지난 12일 북.중 경제협력 등을 주제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라진.선봉은 굉장히 중요한 출구가 되고, 중국의 창지투와 연결되면서 중간에 있는 국가급 변경무역구인 훈춘이 과거 시대에 비해 월등하게 미래지향적인 거점이 될 수 있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은 중국의 창지투(長吉圖, 창춘-지린-투먼) 프로젝트와 북한의 라선경제무역지대가 연결돼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훈춘’에 방점을 찍었다.

이승률 회장은 지난 12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창지투와 라진.선봉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큰 하나의 경제의 맥으로 봐야”한다며 특히 북.중 국경도시인 중국의 훈춘시에 대해 “라진.선봉에서 출항권을 갖게 된 훈춘이 중국 연안경제의 ‘제4섹터’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만일 창지투가 라진.선봉으로 연결되면서 연변자치주 제2도시인 훈춘이 중심도시가 되면서 연변자치주 일대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되고, 이로서 환동해경제권의 거점지역으로 구역가치를 발현한다면, 그 미래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포스코가 거기(훈춘)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내가 알기로 철강, 자동차, 건설, 토목, 첨단산업 등 5개 분야에 관해 길림성과 경제협력 MOU(양해각서)도 체결했고, 장춘시 도시계획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9월중에 훈춘에서 정준양 회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의 포스코유통센터 기공식 행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포스코가 훈춘에 큰 부지로 물류센터를 새우고, 중국에서 진행하는 창지투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곧 라진선봉 쪽으로의 물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포스코가 들어감으로써 한국에서 중국에 진출한 몇 개 큰 업체들도 적극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예를 들어 SK라든가 이런 팀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들었고, 일본 기업들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고 전했다.

김진경 연변과학기술대학 설립총장과의 우연한 만남이 21년간 이어지며 연변과기대 대외담당,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재단 건설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그는 “올해 들어와 모든 학교와 노동당 당교조차도 문을 닫고 노력동원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평양과기대만 유일하게 계속 수업을 해왔다”고 전했다.

만 10년에 걸쳐 건설한 평양과기대 캠퍼스는 33만평 대지에 17개동 건물이 들어섰으며, 지난해 10월 25일 대학원생 60명(정보통신분야 20명, 농생명식품공학부 20명, MBA 20명)과 학부생 100명 등 총 160명으로 개학했다.

올해 3월말에 학부생이 100명이 더 늘었고, 외국국적 교수도 50명으로 늘었다. 또한 앞으로 대학원은 2단계로 자원에너지분야, 건설공학, 의과대학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는 “북한도 나름대로 해외 경제, 해외 기술, 해외 국제무역이나 동향들을 최대한 배우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며 “소통을 통한 교류협력, 그리고 신뢰와 상호견제가 가능한 국제관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주변국가들과 함께 안정된 국제화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북한도 살고 남북한 공존과 상생,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9월 동북공동체연구회를 설립해 한.중.일 3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경제공동체를 추구해온 그는 최근 4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서울에 사무국 설치 등을 목격하면서 “역사의 큰 흐름에 직접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동북아공동체연구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과정에서 그는 동북아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오랜만의 염색이 어색하다는 소탈함을 보였다.

한.중.일 3국은 물론 남북을 오가며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 그리고 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위해 땀흘려온 만큼 그의 말은 시종 조심스러웠다.

다음은 인터뷰 문답 내용의 일부이다.

황금평.라선지대 “북한의 필요와 중국의 필요가 맞물”

▲ 2007년 9월 18일 동북아공동체연구회 창립대회장에서 주요 임원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승률 회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2007년 동북아공동체연구회를 창립한 이유와 목표에 대해 설명해달라.

■ 이승률 회장 : 내가 연변과기대 대외담당을 하고 평양과기대 건축을 담당하면서 언젠가 평양과기대가 개교하면 최소한 한.중.일 3국간의 기업인들과 지식인들, 문화인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져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남북한 통일의 새로운 출구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 언젠가 서울에 연구소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동북아경제공동체연구원을 개설하고 있던 연변과기대 권영순 교수 연구실을 방문한 것도 계기가 됐다.

2007년 9월 18일에 창립대회를 하고 11월 1일에 통일부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협력 사무국을 개설하기로 합의하는 등 협력이 강화되는 추세다. 평소 주창해온 동북아공동체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 같다.

■ 크게 보면, 한.중.일 3국뿐만 아니라 몽골,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공동체적 교류, 동반협력, 그리고 인재교류, 기술표준 등 여러 문제를 다루면서 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면서 종합적인 인프라 건설과 함께 초국경 지역개발로 서로 소통하고 교류협력이 발전된다면 이것이 결국 남북한 통일을 국제환경 차원에서 조성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남북간 통일을 우리끼리 남북간만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개념에서는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소통하고 서로 교류협력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반도 내부적인 문제도 같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더 필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는 평양과기대가 개교하면 한.중.일 지식인들과 기업인들, 문화인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서 남북한 통일의 국제환경을 조성하고, 실제로 북한 사회 안에 국제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을 자연스러운 정상국가화, 국제협력의 단계로 유도함으로써 남북한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올해 6월 초에 황금평경제지대와 라선경제무역지대 착공식이 북.중 고위 당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어떻게 평가하나?

■ 북한의 필요와 중국의 필요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은 두만강유역개발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왜냐하면 라진선봉 쪽으로 출항권을 내야했기 때문이다. 동북3성 지역의 경제개발이 동해 쪽으로 출구가 없다 보니까 늘 한계에 부닥치고, 물류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통행, 유통관계 등이 문제였다. 쉽게 이야기하면 밥을 잔뜩 먹었는데도 뒤가 막혀 소화를 못시키는 꼴이 되버렸으니까. 그러나 초기에 북한이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

북한은 강성대국이라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나름대로 노력해왔지만 2008년도에 김정일 위원장이 한번 쓰러지고, 다시 건강을 되찾으면서 세습체제에 들어가고, 자력으로 국제무역이나 산업개발, 기술문제, 여러 가지 국제관계에 필요한 표준 같은 걸 감당을 못하니까 결국은 중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이해한다.

더구나 그동안 MB 정부가 ‘비핵.개방.3000’이라는 틀 안에서 압박정책을 써왔던 것이 사실이고,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자기들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개발 파트너로 참여해주지 않는데 대한 배신감을 느낀 것 같고, 또한 미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의 필요와 중국의 필요가 맞아들어간 것이 결국 이번 황금평과 라선경제지대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 관점이 되는 것 같다. 결국 북한과 중국은 상호간에 경제와 안보라는 측면에서 떼려야 뗄 수없는 요구(Needs)가 서로 맞물려 돌아갔다.

잘 아시다시피, 어차피 북한은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데 중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별 대안이 없고, 또 중국은 자국의 안정을 위해 변방 안보적인 측면에서 북한을 안정화 시켜야 동북 3성 지역의 안정화는 물론 위구르, 티벳, 몽골지역 등 변경지역의 안정화도 가능하다.

□ 북.중 간 필요성이 맞물린 것이 사실이지만 차이도 있을 것 같다. 내심 바라는 바도 다를 수 있고, 일부에서는 황금평경제지대의 개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 사실 황금평은 중국에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지금 단동이라든가 요동반도, 대련 일대 경제개발계획이 발해만 경제권과 맞물려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굳이 압록강 하구의 모래섬, 거기에 둑을 쌓고 인프라를 갖춰 산업공단지대로 만들려면 상당히 돈도 많이 들어가지만 실제 그걸 조성해놓는다 해도 중국 측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만 보면 인푸트(input)에 비해 아웃컴(outcome)이 별로 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북한 측 입장에서 보면 라진선봉도 중요하지만 중국에 연결되는 목줄이 신의주-단동-심양-북경으로 연결되는 굉장히 중요한 노선이다. 정치.경제.안보 모든 면에서. 여기에 중간 거점으로 중국을 끌어넣어 경제적인 수혜도 만들지만 더욱 끈끈한 안보체제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 평양 서쪽에 해주-남포-신의주 서해안지대 경제벨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이 가장 필요한데 거기에 신압록강대교나 황금평 같은 중간 산업거점화가 돼야 중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기술, 물류, 자재 공급망, 무역 이런 것들이 원활해져 더 밀착된 북중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략에서 북의 필요성이 굉장히 강한 지역이다.

결국 중국이 원하는 라진선봉 출항권을 허용하는 대신에 황금평을 바터제로 반대급부적으로 요구하는 식으로 실용주의적인 어떤 합작, 담합을 했다랄까, 정치안보적인 것과 시장경제적인 것 두 가지 상반된 니즈(Needs)를 서로 주고받기 식으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극적인 타결을 보았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북.중 간 상호 간에 여러 가지 의견차가 있고 이해구도의 갈등이 있겠지만 전체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상호 교차형으로 짜맞춰서 두 가지 행사를 같이 연동시켰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 그렇기 때문에 황금평 개발은 잘 안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 안 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신의주가 한 번 실패한 적도 있고, 또 중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어차피 중국은 북한 문제도 있지만, 북한만이 가장 큰 과제는 아니다. 변경지역 문제, 내부적인 지역편차, 소득편차, 양극화 현상, 부정부패 온갖 내부 정치적 현안문제가 산적해있다.

중국은 굳이 황금평에 많은 투자와 적극적인 지원을 해서 선도적으로 개발해야 될 특별한 사유가 없다. 그러므로 객관적 관점에서 볼 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과거 실패 사안도 참고하면서, 북한에서는 중국의 눈치를 많이 봐가면서 황금평 개발을 적극 요청하리라 보지만, 중국이 만만하게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재원을 들여 개발에 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중국이 혈맹지간이라고 하지만 덜 미덥고 섭섭한 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

개발순위로 보면 라진선봉은 중국 측에서는 굉장히 이용가치가 높고 적극 개발해서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접경지역 안보문제 등에서 요구도가 크지만 이쪽 황금평 지역은 개발 가치가 낮다. 그렇다고 일이 안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황금평 지대가 평양으로부터 신의주-단동-심양-북경에 이르는 노선의 중간거점으로서 북.중 간에 굉장히 중요한 목줄이나 마찬가지니까 신압록강대교라든가 인프라를 강화하여 중간 산업공단 거점으로 북.중합작을 이끌어내는 데는 서로의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많이 걸려서 할 거다.

내가 토목도 해보고 종합 건설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거 강 하구 공사란 것이 한번씩 비가 많이 내리면 작업 도중에 휩쓸려가 버리고 그런데, 그것도 중국팀이 들어와서 공사하기 보다는 중국 자재와 북한 노동력이 합쳐서 하게 될 텐데, 기술이나 장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열악한 상태라 이런 점에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도 라진선봉은 상당히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요인이 많지만 이쪽 황금평 쪽은 계속 투입만 해놓고 나중에 과실을 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보면 손실이 먼저 크게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이익을 회수하는 이런 방법이니까, 손실보전을 어떻게 해줄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 신헝지 그룹의 가오징더 이사장이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되고, 그가 책임지고 일을 하지만 손실 발생시 중국정부가 80%를 손실 보존해주겠다고 공식 발표한 얘기를 듣고, 북중 간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만으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안보차원에서 필요성이 대두되다 보니까 라진선봉을 경제면에서 우선적으로 취하는 대신 황금평은 장기적 관점에서 북중간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상호보완적으로 지원해 주는 형태로 모양을 갖추는 것 같다.

포스코, 9월중 훈춘에서 유통센터 기공식

▲ 2009년 9월 16일, 평양과학기술대학 1단계 건물준공식 후 강의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동북아공동체연구회]
□ 라선경제무역지대에 한국 기업도 들어갈 수 있나?

■ 지금은 불가능한데, 과거 90년대 초반 합영법이 시행되고 할 때 미국, 캐나다, 호주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인 관계자나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이 거기에 들어가서 구제활동도 하면서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많이 참여했다. 한국 기업체들도 수산물이라든가 자원개발이라든가, 유통관계도 있고 해서 제법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라진선봉 자체가 발전되지 못하고 그런 가운데 남북한 문제가 경색되고 충돌하다 보니까 남북경협에 참여한 대부분의 기업형 프로젝트가 부실해지고 지금은 수산물 유통 정도로 명맥을 유지해온 실정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와 새로운 대안이 주어졌다. 즉, 중국정부와 길림성이 힘을 합쳐 추진하는 ‘창지투 프로젝트’가 부상한 것이다. 지금 창지투와 라진선봉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큰 하나의 경제의 맥으로 봐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어차피 창지투 개발이 동북진흥계획에 따라 굉장히 중요한 동북 3성의 큰 이슈다. 중국으로서는 정부 차원의 관심사고 여기에 한국 기업체나 일본기업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포스코가 거기에 참여할 예정이다. 내가 알기로 철강, 자동차, 건설, 토목, 첨단산업 등 5개 분야에 관해 길림성과 경제협력 MOU(양해각서)도 체결했고, 장춘시 도시계획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창지투 개발에 참여하면서 물류가 한국으로 연결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포스코가 9월중에 훈춘에서 정준양 회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의 포스코유통센터 기공식 행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

유통단지에다 대단위 물류시설을 구축하여 가공, 조립, 생산, 연구개발 등을 위한 건물과 창고 등을 지어 자체적으로도 쓰지만 관련 기업들에게 임대도 해서 국제컨소시엄 유통산업단지를 만드는게 사업목표다. 여기에는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일본 업체들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포스코가 훈춘에 큰 부지로 물류센터를 새우고, 중국에서 진행하는 창지투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면서 특히 장춘지역의 도시개발사업, 자원개발사업 등에 치중하면서 그리고 길림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면서 동북 3성 지역을 거점화하려고 하는 것은 곧 라진선봉 쪽으로의 물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류의 대로가 열릴 수 있다는 전제아래 이런 사업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가 들어감으로써 한국에서 중국에 진출한 몇 개 큰 업체들도 적극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SK라든가 이런 팀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들었고, 일본 기업들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

일본은 과거 만주국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련은 거의 일본 공장들이 많고, 장춘과 하얼빈 쪽에도 일본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들이 창지투 프로젝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어떤 형태로든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본다.

한국기업이 들어가고 일본기업이 합류하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축소판 동북아경제공동체와 같은 이런 형태의 협업이 조성될 텐데 그 물류가 라진선봉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라진선봉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결국은 한국과 연결되고 일본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중남부지역으로도 연결된다. 그런 차원에서 환동해경제권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라진선봉은 굉장히 중요한 출구가 되고, 중국의 창지투와 연결되면서 중간에 있는 국가급 변경무역구인 훈춘이 과거 시대에 비해 월등하게 미래지향적인 거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책에다 이를 중국 연안경제의 ‘제4섹터’라고 썼다. 첫 번째는 심천 주강경제권, 그 다음에 상해 장강경제권, 그다음에 천진 발해만 경제권, 그 다음 연안경제권 제4섹터로서는 중국이 북한 라진선봉에 출항권을 가지면서 훈춘과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오래전부터 역사의 희망으로 봐왔다. 훈춘은 발해 때부터 통일신라와 일본에 알려진 물류도시로 발전했었고, 지금도 북.중.러가 연접되고 한국과 일본으로 연계되는 중핵거점지역이다. 이곳이 환동해경제권의 핵심 도시로 부상한다는 것은 사실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렇게 함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중국도 덕을 보고 북한도 당연히 덕을 보지만 그 중간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새로운 미래 로드맵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창지투 및 나선개발에 따른 훈춘과 두만강지역개발(GTI)은 그것이 결국은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새로운 경제부흥과 국제관계의 중핵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남북한 문제에도 장차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남북 간의 공존, 상생, 통일이 된다고 봤을 때도 북방진출의 하나의 교두보를 형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물론 지금도 우리가 연길에 많이 다니고 거기에는 한국에서 세운 연변과기대도 있고, 또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가고 기업체들도 많이 들어가 있지만 지금은 중국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작은 섬과 같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만일 창지투가 라진선봉으로 연결되면서 연변자치주 제2 도시인 훈춘이 중심도시가 되면서 연변자치주 일대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갖게 되고, 이로서 환동해경제권의 거점지역으로 구역가치를 발현한다면, 그 미래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중국이 호락호락하게 조선족이나 한국과의 관계를 내버려두지 않을 걸로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연변자치주와 중국 정부와 마찰이 없는 범위 안에서 Win-Win-Win할 수 있는 경제논리로 풀어가도록 해야 한다.

창지투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포스코처럼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중에 라진선봉에도 한국 기업이 같이 들어가게 될 터인데, 그 방법은 단독으로 들어가는 것이 리스크가 있다면 중국 업체와 함께 합작 형태로 들어가면 된다.

중국에는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들까지 진출하여 기업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돼 간다. 한국 업체들이 새삼스레 ‘큰 리스크를 안고 라진선봉에 들어간다’고 지레 겁을 먹을 것이 아니라 한중수교 후 중국에서 가진 비즈니스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이곳에 뿌린 내린 한국기업들과 같이 조인트벤처 형태로 들어간다든가 또는 중국기업들과 같이 합작하거나 조선족 기업들과 동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기실 내면적으로 북한에서도 한국 투자를 원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도 너무 남북관계의 현안에만 매달려있지 말고 큰 흐름, 즉 창지투와 라진선봉 물류 인프라의 연결과 훈춘 거점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미래 발전 등을 고려한 이런 팩트들을 잘 활용해서 한국기업이 경제논리로 참여하고 그것이 결국 나중에 남북한의 공존과 상생, 통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된다고 판단하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중.일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

▲ 한.미.일을 포함한 동북아공동체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승률 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중국도 2012년에 권력교체기를 맞는다. 북중 간의 우호협력 관계에 변화가 있겠나?

■ 지금은 쉽게 말해 서로 배가 맞아들어 가는 셈이다. 지금은 상당 수준의 밀월관계라고 이야기해야겠다. 북한은 다급할 정도로 내년(2012)을 기점으로 하는 강성대국을 준비해야 된다. 지금 평양은, 신문에도 났지만 모든 대학들이 다 휴교고 심지어는 노동당 당교까지 다 휴교다. 강성대국 프로젝트 때문에 건설 물량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대부분의 청년들이 근로노동에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북한의 필요와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이런 기회를 활용해서 북한을 끌어안으면서 자기들의 동북 3성의 경제적 실리뿐만 아니라 변방 안정화에 대한 안보적인 필요를 충족코자 하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지난해 있었던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중국의 편향된 태도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사건 발발 당시 북한을 두둔하는 쪽으로 발언을 하고 또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북한을 애써 끌어안는 태도를 보인 건 다 이런 속셈이 있어서이다. 다만 그 대신 북한에게 핵문제 타결을 위한 6자회담에 일단 참여하도록 푸시하는 형태로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중국의 정권 교체가 있더라도 큰 변화는 없으리라고 본다. 다만 후진타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외교정책과 시진핑 정부가 가지게 될 국가운영의 관점은 아무래도 좀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는 등소평, 강택민에 이르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중국의 전통적인 국가관리 정책, 즉 국가 권력의 핵심공약을 공산당의 내부적 목표와 준거에 의해 추진해 왔다. 물론 후진타오 시대부터 조금씩 국제관계에서 나름대로의 유연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해왔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의 여지를 보인다거나 기층 인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향상시켜주기 위해서 신경써왔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훨씬 더 중국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 권리라든지 경제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과 투자가 더 커지리라 본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체제의 통제수단은 좀 약화되고 오히려 국제관계라든가 경제, 복지 이런 차원에서 더 자유개방체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시진핑이 북한을 지금 후진타오보다 더 가깝게 할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보면 나는 좀 부정적으로 본다. 왜냐면 시진핑 체제가 들어오면 과거의 공산당 혈맹관계를 계속 유지하겠지만, 정치안보적인 측면으로만 북한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경제관계로도 많이 볼 것인데, 이때 경제논리로 본다면 지정학적 물류의 이점과 자원확보 등을 제하고는 북한이 사실 중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진핑 시대에는 이전에 비해 국제 환경이 더 급속도로 확대 발전, 팽창될 터인데 그에 비해 북한이 여전히 이 상태로 폐쇄적 입장을 계속 유지한다면 파트너십으로서는 너무 약하고 불편한 거다. 따라서 중국측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북한이 그렇게 기분 좋은 파트너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정치안보 차원에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진타오보다 점점 더 거리감이 생길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전망을 가져본다.

□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설치되는 등 흐름이 있다. 이 회장께서 주장해왔던 흐름이 정부차원에서도 현실화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하나?

■ 연변과기대, 평양과기대 일을 하다보니까 자동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을 늘 같이 다니고 친구들도 있고, 교류하다보니까 공동체의식이 발로된다. 공동체를 통한 시너지를 가지려면 사실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면서 나도 잘 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섬, 플러스섬 방향으로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결국 자기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동북아공동체가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해왔다.

97년에 IMF 외환위기가 오고 난 다음에 공식적으로 한중일 3국 간에 산.학.관 환황해경제기술교류회의라는 것이 순회 개최돼 올해 11월 대전에서 11차 회의가 열린다. 또 4차에 걸쳐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일련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나는 역사의 큰 흐름에 직접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슴이 뿌듯하다.

한.중.일 3국이 과거사 문제를 뛰어넘어 서로의 명분을 챙겨주고 상호 이익공동체로 거듭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이때 가장 큰 장벽이 남북한 분단의 장벽이다. 한.중.일 3국의 공동체적 협력을 통해서 남북간 장벽도 해소시키면서 한.중.일 3국간의 동반성장 시너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 시대의 정신이고 희망의 역사다.

최근에 4차 한.중.일 정상회담 결과로 사무국도 한국에 설치되고, 일본의 하토야마 전 총리가 제안했던 ‘캠퍼스 아시아’라는 한.중.일 3국 간의 학생 인력 교류뿐만 아니라 인턴쉽, 취업제 개방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이 내년부터 포괄적으로 추진된다.

한국에 사무국이 설치된 것은 한국이 결국 중국과 일본을 상호 견제도 시키고 또 소통도 시키면서 중간 매체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것은 쉽게 말해 과거사 문제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미래의 대로를 열어가는 출구 역할을 하는 좋은 상징기구라고 할 수 있다.

□ ‘과거사 문제를 넘어서’라고 했는데, 일본이 넘어줘야 하지 않나.

■ 일본 스스로 과거사를 뛰어넘어주면 좋은데,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려 하는데, 꼭 일본이 먼저 독도문제다 뭐다하면서 속을 뒤집어 놔 나도 정말 밉고 화가 난다.

그러나 현상에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한.중.일 3국이 유교문화권이라든가 한자 문화권이라든가 하는 공동기반을 기초로 해서 그동안 역사적으로 공동체적 교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트랜드인 지역블럭화 추세를 수용한다면 어차피 한.중.일 3국의 문화교류, 광역교통망 확대와 인프라건설과 초국경 경제협력은 앞으로 틀림없이 시대의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하는 획기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일부 극우파들 행동도 있지만, 중국은 또 안 그런가. 중국도 보면 요새 패권주의라든가, 중화민족주의와 대국근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소수 무책임한 선동가들과 그들의 과격한 하수인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럼 솔직히 우리나라는 안 그러나.

이 시대의 흐름에 접속하는 소통과 공감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면, 지금까지 있었던 갈등관계를 불식시켜 나가면서 차츰차츰 시대가 바뀌어나가면서 과거사 문제를 뛰어넘고 한.중.일 3국 간의 새로운 이익과 창의적인 모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역사발전의 지표가 돼야 할 것이고 시간은 걸리지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중국과 우리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본다.

■ 다르다. 내가 국제세미나를 해보면 중국 사람하고 일본 사람이 만나 세미나 하거나 하면 참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이 중간에 들면 굉장히 뭐랄까 협의하기가 좋고, 중국 사람도 한국이 끼어들어서 일본과 협의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참고로 일본 기업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인력이 조선족이다. 왜냐하면 조선족들은 중국말과 한국말도 알지만 일본말을 잘 이해하고 있다.

□ 조선족이 일본어를 많이 하나?

■ 옛날 만주국 영향도 있었고, 실제로 대학입학 시험 때 영어보다 일본어가 쉬워 제2외국어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일본 유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한국에는 조선족들이 와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했지만, 일본에 가서는 대부분 사무직이라든가 무역업 이런데 종사한다. 그래서 일본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가장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인력중의 하나가 조선족들이다. 높은 봉급을 주고서라도 꼭 데려가고 싶어 한다.

이를 조금 확대 해석하면, 조선족들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중간 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이 시대의 새로운 모랄을 창출하고 있는 민족이라고 보고 싶다.

“서울에 북한 사람들이 와서 대학 세운다면 허용해주겠나”

▲ 2006년 7월 당시 평양과학기술대학 건축 현장 모습. [사진제공 - 동북아공동체연구회]
□ 연변과기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 90년도에 내가 골프장 건설사업을 했는데 제일 하고 싶었던 게 포시즌 골프장이었다. 한국은 겨울 때문에 두 달 내지 석 달 동안 골프를 못한다. 그리고 곧 한.중수교가 되면 한국 업체들이 많이 중국에 건너갈 거고, 특히 산동반도 쪽으로 많이 갈 거다. 그래서 포시즌 골프장을 할만하고 한국 기업체들이 많이 들어올 지역을 따져볼 때 칭다오가 가장 유력하다고 봤다.

그래서 그곳 시장도 만나고 사업계획도 착실히 세웠는데, 그때 가장 큰 문제점이, 땅값 자체는 싼데 농민들을 소개시키고 내보낼 때 주어야 할 보상금 이게 땅값보다 훨씬 비싸고 규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로비를 한답시고 그때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양상곤 주석의 아들 양소명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북경에 갔었다.

북경에 갔더니 이 친구가 더블로 약속을 해 놨다. 나 말고 또 다른 나이가 많으신 한국 분이 있더라. 그분이 나보다 연배가 많으니까 먼저 말씀하시라 했다. 그런데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한국 출신이지만 유럽에서 공부했고, 미국 가서 대학교수도 하고 기업체도 경영해서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다. 그래서 내가 86년도에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북경에 와 있는 동안 우리 동족들이 사는 연길, 장춘, 길림, 하얼빈을 다녀보니까 말과 글은 지키고 있는데 고등교육기관이 없어서 사회가 정체돼 있더라. 나는 크리스찬이다. 나는 아무 사심없이 자선하는 마음으로 연길에다 조그만 기술대학을 하나 세우려 하니까 당신 아버지가 권력자니까 나를 도와달라. 나는 돈 벌러 온 게 아니다. 어떤 반대급부를 얻으려고 온 게 아니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중국의 장기 발전과 우리 조선족 사회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어서 왔다”는 말씀을 하더라. 그때 그 양반이 바로 연변과기대 김진경 설립총장이다.

그때 내가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사실 전공이 철학이었는데, 내 나름대로 사회와 인간의 진실과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철학과를 택했지만 많은 세월동안 세속적으로 살다보니 그러한 꿈과 비전을 잃고 있었다. 그 잃어버린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희망의 철학, 그걸 그때 다시 깨닫게 됐다. 그래서 그만 골프장 때려치워 버리고 학교일에 참여한 게 이제 만 21년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 해줘야 내가 왜 돈도 안 생기는 이런 일을 가지고 연변과기대, 평양과기대, 동북아공동체를 떠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100% 내 자비로 활동한다. 국제활동을 하다보니 비용도 많이 들고 또 학생들이나 학교 지원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누가 나한테 봉급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건설사업은 계속 병행했나?

■ 그렇다. 그래서 이 정도나마 학교를 도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연변과기대 대외담당을 하게 되고 평양과기대 설립재단의 건설위원장을 맡게 됐다.

□ 연변과기대에서 강의도 하나.

■ 특강 위주로 한다. 주로 최고경영자 과정 같은 사회교육부문에서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경제동향 분석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 평양과기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2001년도 1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상해 푸동지구를 다녀와서 “우리도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해가지고 신사고, 신기술 정책으로 전환했고, 그 후 2002년 7.1경제개선조치도 했다.

2001년 2월 초에 김진경 총장을 초청해서 “연변과기대와 같은 대학을 평양에 세워달라”고 한 게 평양과기대다. 중국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성공한 국제대학이 그들에게는 경제개선과 국제화를 위한 모범적인 대안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총장께서 평양 갔다 오고 난 다음에 MOU 해온 걸 들고 내가 맨 먼저 뛰어간 게 카이스트(KAIST)다. 왜냐하면 연변과기대 일을 해보니까 우리가 학부밖에 없고 대학원 과정이 없어서 기업들이 우리 대학에 자리잡고 싶어도 R&D가 안되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기 때문에, 평양과기대에서는 먼저 대학원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모델을 카이스트로 잡은 것이다.

연변과기대의 경우 기업들이 들어와서 R&D를 하면서 연구원도 쓰고 연구개발도 해야 학교 발전도 되고 기업도 발전할텐데 연구원들이 없다 보니까 기업들이 들어왔다 떠나고 들어왔다 그냥 떠난다. 내가 거기에 한이 맺혀있지만 연변과기대에서 대학원까지 증설하려면 돈이 무척 많이 든다. 지금도 교회나 자선기관에서 기부하는 헌금가지고 운영하는 판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평양과기대 설립기획 당시 내가 총장께 건의했다. “일단 대학원을 먼저 세워서 산학협력의 기초를 공고히 한 다음 학부제를 도입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한국에서 가장 모델이 되는 대학은 어딥니까. 카이스트입니다.” 본디 카이스트가 대학원 대학으로 시작된 것을 총장께서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시 카이스트 동창회장이면서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평소 연변과기대 산학협력에 많은 조언을 주셨던 이민화 메디슨 회장에게 이런 내용을 부탁드려 김진경 총장님을 모시고 카이스트 최덕인 원장을 만나서 ‘평양카이스트’란 닉네임을 달테니까 카이스트가 갖고 있는 커리큘럼이나 학제, 산학협력에 관련된 자료 등을 적극 제공해 달라. 그렇게 시작한 것이 평양과기대 설립 기획안이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만 10년이 걸리는 동안에 건축한 건물이 지금 17개나 되는데, 2009년 9월 16일에 1단계 건물준공식(개교식)을 가졌다. 또한 캠퍼스 규모가 사방 1km로 백만평방미터가 된다. 한국 평수로 33만 평이다. 굉장히 큰 면적이다. 카이스트 캠퍼스 크기와 동일하다. 건물 두세 개 지어놓고 대학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 보니까 대학원만 개학할 게 아니라 학부제도 같이 병행시키자 해서 작년 10월 25일 대학원생 60명(정보통신분야 20명, 농생명식품공학부 20명, MBA 20명)과 학부생 100명, 모두 160명으로 개학을 했고, 교수들은 100% 외국인이다.

우리 한국 국적은 못 들어갔다. 통일부에서 방문 승인을 안 해주니까. 김진경 총장은 미국 시민권자다. 이런 식으로 외국 교수 19명이 들어가서 영어 수업을 하면서 160명을 가르치다가, 올 3월말에 학부생이 100명이 더 들어와서 지금은 학생들이 260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교수는 모두 50명으로 증원되었으며, 역시 다들 외국국적이다. 미국적 한인 교수 10명을 포함해서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에서 자비량으로 봉사하러 온 외국인들이다.

대학원은 1단계로 정보통신분야, 농생명식품공학, MBA(경영학)를 개설했지만 2단계로 자원에너지분야, 건설공학, 의과대학 등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재미있는 일화는 처음 MBA 과정을 제의했더니 그쪽에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알아야 하니까 좋다고 했다가 중간 협의단계에 학생들부터 가르치지 말고 자기들 교수들이 먼저 배우겠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먼저 자본주의 시장경제학을 공부해서 그걸 사회주의체제에 맞게 믹스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제안해온 거다.

우리가 일리가 있다고 해서 받아들였는데, 작년에 개학하기 이전에 다시 수정제안해온 것이, 그러지 말고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우리 교수들이 직접 가르쳐 달라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지금 원래 계획대로 MBA를 영어 원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북한도 나름대로 해외 경제, 해외 기술, 해외 국제무역이나 동향들을 최대한 배우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여러 가지 체제안전과 경제개발, 기술발전을 꾀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몸부림이라고 봐야 한다.

생각해보라. 우리 서울에 북한 사람들이 와서 대학 세운다면 허용해주겠나. 그만큼 그들에게도 경제개선과 국제화의 길이 절실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들의 니즈(Needs)를 따라 들어가며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새로운 변화를 창출하는 것이 남북 공존과 상생을 위한 지름길이 된다고 믿고 있는 거다.

또 한 가지 중국관계를 잠깐 이야기하면, 김일성 주석이 일본에는 조총련 학교를 많이 세웠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수많은 학교를 세워 거기서부터 인력이 배출되어 돈도 많이 보내고 지원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런데 중국에는 서로 혈맹관계라고 하면서 북한에서 세운 대학은커녕 초등학교조차 하나도 없다.

김일성 주석이 모택동 주석에게 부탁해서 자기가 졸업한 길림 육문중학교 만이라도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것도 모택동이 승인 안 해줬다. 겨우 모교에 동상 하나 세우는 것, 그것 하나 허용했다. 그만큼 중국이 교육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자존의식이 강하고 폐쇄적이다. 한마디로 교육문화 대국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국 출신 미국교민에게 연변과학기술대학이라는 대학을 설립하도록 허용했는가. 북한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더구나 바로 북한 접경지역인 연길에다가 학교를 세웠으니 북한에서는 늘 관심있게 학교 설립 배경과 성장을 지켜보았을 것 아니겠나. 그래서 평양 정부가 김진경 총장과 연변과기대를 더욱 중시한 이유가 거기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는 이러한 위업을 이룬 김진경 총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그래서 중국 공산주의 사회체제에서 대학을 세우고 운영한 경험을 살려 북한 평양에서도 동족을 위해서 경제, 기술, 문화 교류차원으로 설립해서 자기들에게 국제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 평양과기대의 기본 설립취지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 들어와 모든 학교와 노동당 당교조차도 문을 닫고 노력동원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평양과기대만 유일하게 계속 수업을 해왔다. 그만큼 그들 나름대로는 중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제3세계와의 관계에서 나름대로 국제관계를 존중하고 상호 호혜적인 국제화의 길을 모색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선군정치와 거대한 병영시스템과 같은 국가사회구조 때문에 서방세계와 너무 동떨어진 국가 운영을 하다보니까 결과적으로 남북간에 강경대치를 하게 되고, 위험한 플레이를 하게 된 것 같다.

□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 경제교류의 기반은 결국은 소통이다. 물물교환뿐만 아니라 모든 재화의 이익창출과 분배를 포함한 모든 상거래는 서로 간의 니즈(Needs)에 따라 움직이는 주고받기 인데,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가치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북한 나름대로도 우호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갖춰줘야 한다. 예를 들어 군사도발과 같은 극단적 행동이라든가, 국제사회가 다 우려하는 핵문제 같은 도발적인 전략을 계속 취한다면, 이는 북한 자체를 위해서도 하등 득이 안 되고, 결국에 가서는 한반도 전체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런 군사도발이나 핵개발을 통해서, 그걸로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지원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결단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북한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남북 상호간에 불신을 제하고, 소통의 영역을 넓혀서 제3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통을 통한 교류협력, 그리고 신뢰와 상호견제가 가능한 국제관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주변국가들과 함께 안정된 국제화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북한도 살고 남북한 공존과 상생,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또 한.중.일 3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과 동아시아의 역사발전에 기여하는 정상국가로서의 역할과 시대 흐름에 합당한 방법이 되리라고 본다.

이런 소통의 협력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도 북한에 인도주의적인 지원이라든가 민간 베이스의 경제, 문화, 기술, 교육의 교류협력을 재개하고 함께 공동 노력함으로써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그 정체성을 공유해나가도록 할 필요가 크다. 또한 한국 정부의 이런 노력에 발맞춰 북한에서도 신뢰심을 갖고 한국의 협상제안에 적극 대응하며 다른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려 말고 진정성 있는 교류협력차원에서 남북경협과 평화공존 방안을 받아주는 것이 자신들의 자존감을 살리고 국가경제를 되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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