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23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도 ARF 외교장관회의 직전 대기장소에서 비공식 접촉을 가졌습니다. 남북 외교장관 간 접촉은 3년 만에 처음입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전날 위성락-리용호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간 비핵화회담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보기 좋은 건 두 사람이 대기장소에서의 접촉부터 회의장으로 이동하기까지 줄곧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으며, 또 회의장에 나란히 입장한 광경입니다.
위성락-리용호 회담이 6자회담 재개의 신호탄이라면, 김성환-박의춘 접촉은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이라 할 만합니다. 마침 이날 채택된 ARF 의장성명도 7항에서 남북 비핵화회담을 거론하면서 “장관들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협의를 환영하고, 동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국제사회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환영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표시한 것입니다. 지난 TV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처럼 발리에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일단 이번 발리회담(ARF)의 한 목적인 6자회담 재개의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6자회담 관련국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온 ‘남북 비핵화회담 → 북미 접촉 → 6자회담 재개’라는 3단계 방안의 첫 단추를 끼웠기 때문입니다. 마침,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24일 성명을 통해 “(지난 22일)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간 첫 단계 비핵화 회담에 이어, 미국은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을 다음 주말 뉴욕으로 초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라면 일단 6자회담 재개는 순항할 공산이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남북관계 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