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동욱 경희총민주동문회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위원장. 7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창립 100주년이 되는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오는 6월 10일은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지역 추가가 마을의 한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의 개교식으로 시작된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항일군사교육의 효시로 우리의 항일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뿐만 아니라 만주와 러시아령 및 중국 관내의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고려혁명군, 한국광복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올해 초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창립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기념사에까지 신흥무관학교가 언급되는 등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반인들의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경희대학교 총민주동문회에서는 모교의 역사복원을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신흥무관학교에 관심을 갖고 2006년에는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를 구성, 현재에 이른다. 지난 2006년부터 준비위원장을 맡아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정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주동욱 경희총민주동문회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위원장을 7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흥무관학교 독립운동사 비중 커"

주동욱 준비위원장은 신흥무관학교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도 그동안 이런 부분이 저평가됐다고 말했다. 때문에 신흥무관학교가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의의가 절대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흥무관학교의 의의에 대해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운동의 뿌리가 된 점, 기득권층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점, 독립운동을 위한 전략적 측면에서 세운 학교라는 등의 세 가지를 꼽았다.

“1910년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암흑기로 국내에서 3.1운동이 벌어지기 이전까지는 어떤 투쟁도 힘들었습니다. 때문에 독립운동을 해외에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시기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운동가를 양성해 1920년대 무장투쟁의 뿌리를 만든 것은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10년대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을 때 보수, 기득권인 양반계층도 민중들처럼 저항을 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책임의식을 느껴 망국시대에 기득권을 버리고 책임을 다한 것을 알려주는 것도 높이 살만 합니다. 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 안동 이상룡 선생 등은 전 재산을 항일독립운동에 쏟아 부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이는 오늘날까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 번째로는 신흥무관학교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전략적 측면에서 고민하고 세운 학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가 민족독립을 위해 만든 최대의 조직으로 신민회의 ‘신’자에 흥할 ‘흥’을 붙여 신흥무관학교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독립운동사에서의 역할을 살펴보면 당시 우리나라는 스스로의 힘으로 강대국을 물리치기 힘들어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해 일제로부터 독립하자는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독립군 간부 등을 길러내 힘을 기르고 강대국들을 이용해 독립전쟁을 일으키자는 전략에 의거해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진 것이지 그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빼앗겼다고 만든 학교가 아닙니다. 신흥무관학교가 개설된 이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전략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경희대학교 연혁 복원 활동 통해 관심"

▲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원들이 신흥무관학교 옛터를 답사했다. [자료사진-경희총민주동문회 제공]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가들의 기억에는 신흥무관학교가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조선민족혁명당 기관지 <앞길>에는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의 성지이며 메카라는 연재글이 실렸다. 잡지에는 “혁명의 성지, 천여명의 조선건아가 복수의 칼을 갈던 곳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분단된 상황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신흥무관학교는 세상에서 잊혀져갔다.

이런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그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의 경희대학교는 1960년 4월 신흥대학에서 경희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된 것으로 1960년대 이후 선배들은 그런 인식이 별로 없었지만 1960년대 이전 신흥대학 출신 선배들은 학교의 뿌리를 알고 있었고, 이들이 학교의 역사를 알려주면서 후배들은 신흥무관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는 별로 동문회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학교 역사를 알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경희총민주동문회에서는 지난 2003년 신흥무관학교 옛터를 답사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사학과 출신이라는 자존심에 다른 사람보다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컸을 것입니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찾고 하면서 신흥무관학교의 가치를 연구했습니다.”

연구가 지속되면서 신흥무관학교의 가치는 더욱 빛을 더했고 그가 2006년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경희대학교의 연혁복원운동에 앞장을 선다.

“경희대학교의 교사(校史)에는 1949년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시영 선생이 1947년에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신흥전문학원을 세워 1949년에 신흥대학으로 발전시켰으며 이후 조영식 전 학원장이 인수한 뒤 1960년에 교명을 경희대학교로 바꿨습니다. 해

방이후 국가 재건과정에서 역사적 정통성 살리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단국대, 홍익대, 국민대, 신흥대를 만들었는데 이중 유일하게 신흥대학만 경희대학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는 이전 학교 역사를 배제하고 경희대학교의 역사만을 역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에 창학 이념과 학교 역사를 알리고 후배들에게 그 정신을 잇도록 하기 위해 경희대학교 모교 연혁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 십 차례 학교 측에 경희대학교의 역사를 앞당겨야 한다고 했지만 아직 학교 측에서는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왔습니다. 모교연혁복원 사업과 관련해서는 경희인들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진보세력도 독립운동에 관심 가져야"

그러나 신흥무관학교가 단순히 한 학교의 역사복원이라는 의미를 넘어 왜 주목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주 준비위원장은 좌우 구분 없이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진보세력들도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활동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20년대 이후 이념의 분할이 생겨났지만 1910년대는 좌우 구분도 없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그저 독립을 위해 민족협동정신을 강조한 기념비적 학교입니다. 현재 많은 독립운동기념사업회들이 있지만 대부분 보수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피땀 흘려 다시 찾으려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분명 500년 역사의 조선과 대한제국은 봉건국가로 이를 회복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고 또 단순히 그런 봉건국가를 가지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빼앗긴 국가를 찾아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즉 바로 그 나라는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아닌 자유, 평등, 민주주의, 진보의 새 나라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정신을 생각해보면 독립운동에 대해 보수뿐 아니라 진보인사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복원 위해서라면 육사가 무관학교 정신 계승해도 이해"

▲ 주동욱 위원장이 신흥무관학교 서울 옛터 올레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자료사진-경희총민주동문회 제공]

주 위원장은 또 신흥무관학교가 단순히 학교의 역사복원운동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복원사업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무관학교라는 성격 상 경희대학교가 아니라 육군사관학교 등이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위해 경희대학교가 아니라 군대나 육군사관학교가 신흥무관학교의 정통성을 잇는다 해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했다.

“경희대의 전신인 신흥대학 교명이 가진 역사성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대한제국의 무관학교와 의병전신의 맥을 잇는 데 신흥무관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해방 후 군대나 육군사관학교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에서 그 맥을 찾겠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큰 역사의 시각에서 보면 경희대학교가 됐건 육군사관학교가 됐던 좀 더 신흥무관학교의 역사를 잘 계승할 수 있는 곳 모두가 역사복원사업에 나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돈이나 정치력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니라 역사가 제대로 설 때 좀 더 존중, 소통, 화합, 상생을 이뤄가며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시각을 가져야만 군대, 육사, 경희대에서 자신의 학교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엔 모교 연혁 복원을 위해 한 것이지만 역사의 굵은 줄기에서 볼 때 우리 역사의 복원을 위한 것이라면 경희대나 육사 모두가 같이 100주년 기념사업에 동참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민족의 자부심 가질 수 있는 역사 알리고 싶어"

그는 앞으로 신흥무관학교를 민족의 자부심의 역사로 알려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해방이후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수포로 돌아가며 고통스러워 한 가운데 이들은 진정으로 남북통일 국가를 염원하지 않았을까, 선혈들이 염원했던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복원하고 이를 위해 계승해야하지 않나 생각중이다.

“아직도 친일파의 부와 명성까지 갖고 있는 남한사회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발전시킨 사람들의 삶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받으면서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꿈꿨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하면 수난의 역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크지만 이젠 세계사 속에서 경제적 강소국의 주장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민족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역사 속에서 떳떳한 삶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신흥무관학교 살아있는 역사 되도록 할 생각"

이를 위해 경희대학교총민주동문회는 지난해 3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우당기념사업회에 100주년 기념사업을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수 차례의 발기인 준비모임, 총회 등을 거쳐 2011년 1월 27일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창립하기도 했다.

기념사업회는 현재 신흥무관학교 역사복원을 위해 만주 항일 전적지 답사사업, 학술심포지엄 개최, 순회 강연회, 전시회, 독립기념관에서의 체험 학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독립정신계승에 관한 법률제정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준비위원회도 1947년 학교가 있었던 종로구 수송공원 터에 신흥전문학원터 표지석을 세우고 내년에는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지난 2000년 발간한 신흥무관학교 항일투쟁기 <광야에서>를 수정 보완하고 올해의 활동을 넣어 내년에는 백서를 발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신흥무관학교를 포괄하고 독립운동사를 전면에 드러내 조명해보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흥대학과 경희대학교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도록 동문들과 학생들의 노력이 계속되도록 독려하는 동시에 일반 국민들에게도 신흥무관학교가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자료 정리를 통해 단순히 신흥무관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학교의 구성원들 개개인의 삶을 조명해서 신흥무관학교가 단절된 역사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역사가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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