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이 끝났음에도 그 여진(餘震)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여진이란 다름 아닌 방중 결과를 둘러싼 평가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새벽 투먼(圖們)을 거쳐 중국방문을 시작해 26일까지 7박8일간에 걸쳐 열차로 무려 6천㎞를 달리며 방중일정을 마쳤다. 더구나 창춘에서는 2000㎞가 넘는 장거리를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30시간이나 달려 양저우에 도착했다. 이 길고도 험한 여정(旅程)마냥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의미를 둘러싸고 온갖 진단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 평가들은 사뭇 다르다. 그만큼 초점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작년 5월과 8월에 이어 일 년 사이에 3번째다. 즉, 양국 정상이 셔틀외교식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난다는 것이다. 양국 관계가 새롭게 변화하면서 그만큼 함께 수시로 다룰 사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의미를 방문지에서의 동선(動線)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논의내용에 근거해 살펴보자.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 방문기간 중 무단장(牧丹江), 창춘(長春), 양저우(楊州), 난징(南京)을 거쳐 베이징(北京)으로 입성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 도시에서 한편으로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투쟁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산업현장을 방문했다. 예를 들어 무단장은 경박호(鏡泊湖)와 남호두회의 등 김 주석의 항일혁명투쟁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하이린(海林)농장을 들렀다. 창춘은 1964년 9월 김 주석이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와 상봉을 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치(一汽)자동차 공장을 참관했다. 또한 양저우는 김 주석이 1991년 10월 마지막 중국방문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안내를 받은 도시이다. 이곳에서 화룬쑤궈(华润苏果) 슈퍼마켓을 방문했다. 그리고 난징은 김 주석이 1975년 4월에는 덩샤오핑(鄧小平)과 함께, 1991년 10월에는 장쩌민과 함께 돌아보면서 “조중친선역사에 불멸의 자욱을 남긴 추억 깊은 도시”이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슝마오(熊猫)그룹을 찾아 최신 액정 전자제품라인을 둘러봤다.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 후 양국은 각각 <조선중앙통신>과 <신화통신>을 통해 그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 발표했다. 그런데 두 통신이 발표한 내용이 똑같지 않고 다소 다른 점이 있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들이 민감하게 해석하거나 지어 왜곡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차이라기보다는 서로가 각각 강조하고 싶은 점으로 봐야 한다. 공동보도문이나 합의문이 아닌 이상 자국의 관심도에 맞게 방점을 찍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발표문에 이런 강조점이 없이 양쪽이 똑같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한쪽이 다른 쪽에 승복을 했다는 증거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사실 양측의 발표문을 보면 전통적인 사안에서부터 현안에 이르기까지 짚을 것은 다 짚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북측의 보도는 북중친선에 비중을 뒀고 중국측의 보도는 경제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각각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인 6자회담이나 남북관계와 관련해 ‘획기적’이거나 또는 ‘눈여겨 볼만한’ 구절이 없다는 것이다. 북중은 현 시점에서 남측의 조건부 남북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을 보면 양국이 새로운 관계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면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북측의 기류를 대변하는 재일 <조선신보>가 정상회담 직후 평가한 ‘전략적 높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양국은 특수한 역사적 혈맹관계를 비롯해 경제협력과 후계자 문제, 각 나라와 당의 노선 문제,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들을 다 논의했다. 이는 양국이 어느 한두 가지 사안에만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안에 관심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모두(冒頭)에서도 지적했듯이 김 위원장의 방중 의미를 둘러싼 전문가들이나 언론들의 평가가 천차만별인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특히 일부 보수 언론들이 이번 방중을 두고 경협이 성사되지 않았다니, 빈손외교니 하는 것은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라선 북중 친선협조관계’라는 근본을 무시한 채 입맛에 맞게 재단한 전형적인 흠집내기 보도일 뿐이다. 북한은 한반도 정세든 경제문제든 김일성 주석의 유훈과 혁명전통 그리고 북중 친선관계에 근거해서 변화ㆍ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드러냈다. 이는 김 위원장이 들른 도시들에서 경제발전을 목격했지만 그 이전에 김일성 주석의 옛 발자취를 통해 북중친선을 강조한 데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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