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서울에 초청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독일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다음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년 3월 26~27일 양일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대하고 싶다”고 밝힌 것입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진정성 있는 핵포기를 합의할 것과 아울러 천안함ㆍ연평도 사태에 대해 사과할 것 등입니다.

이 대통령이 유럽 3개국 순방을 앞두고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을 담은 ‘베를린선언’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이제까지 이 대통령이 대북 대결적인 언사만 쏟아낸 터라 갑자기 ‘평화’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게다가 유럽 출발 전 5.6개각에서 대북 강경론자인 통일부장관을 유임시킨 터라 베를린에서 아무리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발표한다고 해도 그 의미가 반감될 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통 큰 대북제안이 나온다면’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 대통령의 베를린제안은 예측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황당하기조차 합니다. 다자회의를 통해 김 위원장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키겠다는 것인데, 시쳇말로 ‘누가 물어나 봤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북측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국제사회에 핵포기를 합의하고 또 하지도 않았다는 천안함 사건을 사과하기는 불가합니다. 이 대통령이 왜 이 같은 실현불가능한 제안을 했는지 의아스러울 뿐입니다. 일각에서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초청 의사가 국제사회에 대한 ‘의례적 제스처’나 ‘불순한 기도’로 해석되는 이유입니다.

이 대통령의 베를린제안은 미국과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압박에 따른 두서없는 제안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따질 건 따집시다. 지금 남북 간에 긴요한 것은 다자회담이 아니라 양자회담입니다. 남북이 먼저 양자회담을 통해 통일문제나 현안 등을 논의 조율한 뒤, 함께 핵안보정상회의와 같은 다자회의나 국제행사에 참가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로로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에 화답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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