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지난 2008년 가을 평양과 백두산 등을 참관했던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자료실장(당시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이 방북기를 본사로 보내왔다. 필자는 뒤늦은 방북기를 쓰게 된 이유를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 탓에 혹시라도 새 세대들이 통일에 무관심하게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재는 매주 토요일에 걸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 : 프롤로그 - 나와 DPRK
2편 : 인천공항과 순안공항
3편 : 평양이야기 (상/하)
4편 : 백두산이야기 (상/중/하)
5편 : 묘향산 이야기와 남은 이야기들 (상/하)
6편 : 에필로그

방북을 마치고 한 달 뒤, 할머님은 86세의 긴 세월을 마감하셨다. 마치 당신이 가보기를 그토록 염원하였던 북녘 땅을 손자라도 다녀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나는 허겁지겁 병원으로 찾아들어갔다. 아내가 나대신 이틀 동안 할머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먼 여행을 다녀온 남편을 맞이한 아내의 표정에서 반가움을 읽을 수 없었다. 대신 어머니가 잘 다녀왔냐고 좋은 구경 많이 했냐며 반가이 맞아주신다.

벌써 할머님 얼굴에는 호흡기가 끼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그 호흡기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고통스러워하셨다. 나는 할머님을 보자마자 카메라부터 꺼내들었다. 집에 계셨더라면 편하게 TV로 큼지막하게 보실 수 있었는데, 지금은 카메라의 작은 뷰파인더로 밖에 보실 수 없었다. 아픈 몸에다가 불편한 호흡기까지 차시고 제대로 보시기나 했는지, 천지며 묘향산이며 평양시내며, 그리고 손자가 천지에서 쓴 영상편지를...

나에게 그 한 달은 악몽이었다. 북에서의 환희와 기쁨을 되새기다가도, 한 많은 인생을 살다 마지막에 고통스러운 호흡기로 연명하시고 있는 할머님을 뵈면서, 분단으로 인해 빚어진 감격과 슬픔을 동시에 맛보아야 했다.

"혹시 말입니다. 남이든 북이든 어디에 사시던 분이든 혹시 평안남도 순천에 살던 '김진항 허정순 부부'를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주소는 평안남도 순천군 창신면 오곰리 입니다. 그리고 순천에서는 저의 할아버님 함자가 '김진환'으로 불리셨다고 합니다) 두 분은 돌아가셨지만, 아직 그 부부의 외동딸 '김희옥'은 잘 살고 있습니다. 김희옥은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다시 자녀 둘씩을 낳아, 혈혈단신으로 살아왔던 고인 허정숙은 무려 열 명의 후손을 키워내셨습니다. 그 자손들이 이곳 서울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혹시 이 두 분을 알고 계신 분이 있으면, 이 글 아래 댓글이라도 달아 주십시오. 아니면 통일뉴스에 팩스라도 넣어 주십시오."

▲ 보현사 경내 벽면에 그려져 있는 탱화 한 폭. 묘향산의 절경을 담아낸 듯 보인다. [사진-이창훈]

평양에서 머물 때 가본 곳이 있다. 평양시 장충동에 있는 '장충성당' 내에 있는 '콩우유 공장'이다. 북에서는 남에서 지원한 콩우유공장이 생긴 뒤로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고 한다. 신선한 콩우유가 생산되면 곧장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전달하는데, 이동하는 동안 마치 응급환자를 싣고 가는 앰블런스처럼 앞에 가는 차들이 먼저 가라고 양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콩우유 생산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일손들도 보이지 않았다. 원재료인 콩이 남으로 부터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단의 갈등이 통일조국의 주인공이 될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남북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산세가 높고 골이 깊어도 세월이 흐르면, 산세는 낮아지고 골은 메워져 평지가 되는 것이 세상 자연의 이치인데, 어찌된 일인지 '분단의 골짜기'만은 점점 깊어지고만 있다. 골이 깊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골에 언제고 바닷물이 들어찰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은 ‘같은 민족이니 하나로 합치자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보현사 해탈문 현판. [사진-이창훈]

묘향산 보현사의 대웅전을 가려면 '해탈문(解脫門)'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업(業)과 연기(緣起)'에서 벗어나는 문이고 그래야만 대웅전의 부처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다. 남에서 많은 절을 가보았지만, 보현사의 해탈문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분단의 업을 어쩌지 못하면서 대웅전의 부처님을 뵐 수나 있을지. 남북분단의 업을 쌓은 한민족은 굳이 '연기'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미 세계대전에 못지않은 큰 전쟁을 치루면서 세상만사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화해와 용서가 없는 대결만 존재했던 분단 65년의 세월의 업'은 ‘연기’에 의해 한민족 내부는 물론이요, 인류문명사와 지구자연사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한민족의 해탈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이산가족의 한은 점점 깊어지고, 남북의 갈등은 점점 높아만 가는데, 대결을 멈추고 '화해와 용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 때에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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