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개인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준비중인 가수 백자.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진보와 통일의 현장에서 빠짐없이 만날 수 있었던 노래패 ‘우리나라’의 가수 백자(白子, 39)가 첫 개인 앨범 <가로등을 보다>를 내고 콘서트를 갖는다.

‘우리나라’ 활동으로만 치더라도 가수 생활 10년을 훌쩍 넘겨 겨우 첫 솔로 앨범을 낸 늦깎이지만 ‘불혹’의 나이답게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홍대 클럽들이나 성미산 아래쪽 ‘작은 나무’ 카페 등에서 솔로 공연을 했다. 그렇게 하면서 모아진 곡들을 솔로 정규 1집으로 내도 되겠다”싶었고, “<100ja>카페에 음반 제작을 알리고 후원을 부탁한다는 글을 냈는데 생각보다 많은 100여 분이 후원”해줘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회성 짙은 노래를 함께 부르다 ‘개인의 감성’을 담아 홀로 무대에 서는 그의 앞길에 탄탄대로만 놓여있지는 않을 것이다.

“현장에서 결의 높은 노래와 더불어서 서정적인 노래들도 같이 공유될 수 있게 돼야 한다는 바람”을 전한 그는 “공감과 자기위로, 그 두 가지를 다 솔로로서 해낼 수 있어야 백자라는 가수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로서는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대의 가로등이 되고 싶어
그대가 걷는 길 위에 서서
가끔 그대가 바라보는 것 만으로
그저 좋을 풍경이고 싶어
비 내리는 날에 나무 가지 사이로
뿌연 빛 뿌려주고
눈 내리는 날엔 하얀 눈송이를 비추어
그대 깊은 상처를 덮어 주리라...”

(‘가로등을 보다’ 중에서)

그는 “1집이 제 감성들을 표현하고 솔로로서 지향하고 싶은 포크적인 사운드, 어쿠스틱 사운드(acoustic sound)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자신의 음악을 ‘비워냄의 음악’, ‘여백의 음악’이라고 칭했다.

“사실 마흔이 다 돼서 늦은 나이에 음반을 내니까 오히려 빨리 떠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즐기면서,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불혹의 나이가 주는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그는 이번 첫 앨범을 내면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은데 대해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기타리스트 김광석은 “우리는 외형적인 소리에 쌓여있는 시대에 있지만, 백자는 그런 것과 아랑곳하지 않는 그만의 외로운 영혼의 울림”이라 평했고, ‘타바코쥬스’ 보컬 권기욱은 “이 추운 날 어깨를 다독거려주며 따뜻한 희망을 얘기해주는 친구 같은 앨범”이라고 상찬했다.

4월 15일(8시), 16,17일(4시) 세 차례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펼쳐질 그의 첫 앨범 발간 기념 무대에는 음반에 참여한 연주자들이 함께 하며, 게스트로는 홍대 클럽 친구들과 ‘너를 사랑해’의 한동준 등이 출연한다.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할 수 있다.

다음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합정동 ‘우리나라’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 가수 백자와의 인터뷰는 지난 1일 오후 합정동 '우리나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왼쪽은 사인이 담긴 <가로등을 보다> 자켓.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노래패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활동해왔는데, 왜 이제야 첫 솔로 1집을 냈나?

■ 가수 백자 : 원래 ‘우리나라’에서도 개인 활동, 솔로 음반을 같이 병행하자고 2003년경 이야기됐다. 그런 계획에 따라 이광석, 한선희, 이혜진 씨가 솔로 음반을 팀 일정에 따라 쭉 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재정 상황도 어렵고 하다 보니까 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제가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영화음악이고, 영화음악을 묶어서 <걸음의 이유>라는 소품집을 2009년에 냈다. 그건 독립음반 식으로 다 제 방에서 작업했고, 그 음반을 내면서 홍대 클럽들이나 성미산 아래쪽 ‘작은 나무’ 카페 등에서 솔로 공연을 했다. 그렇게 하면서 모아진 곡들을 솔로 정규 1집으로 내도 되겠다 싶어 팬들의 도움을 받아서 내게 됐다.

□ 앨범을 내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는데, 제작 과정을 들려달라.

■ 처음에는 ‘우리나라’ 팀도 재정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싸게 해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까페 <100ja>카페에 음반 제작을 알리고 후원을 부탁한다는 글을 냈는데 생각보다 많은 100여 분이 후원해줬다. 처음 생각보다 녹음실도 좋은 곳을 구하게 됐고 자켓에도 더 투여할 수 있었다. 일등공신은 그분들이고 그분들이 후원자이자 제작자인 셈이다.

그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도 올렸는데 많은 금액은 아니더라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SNS 덕을 봤다.

음반 자켓 디자인도 후원으로 디자인해주고 사진도 재능기부를 해주고 사실상 녹음실도 안치환씨의 ‘참꽃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싼값으로 후원해준 격이다. 늘그막에 음반을 내서 그런지 많이들 도와주셔서...(웃음)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 오랜 활동 후 내는 첫 음반을 어떤 컨셉으로 기획했는지? 어떤 마음을 담으려했나?

■ 팀(‘우리나라’)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참여, 강한 주제들을 노래해왔다면 제가 그런 노래를 만들면서도 개인의 감성이랄지 쓸쓸함이나 고독이나 감상들, 그런 곡들도 계속 써왔다. ‘우리나라’를 통해 발표되지 않은 감상적 노래를 중심으로 담고 싶었다.

“결의 높은 노래와 서정적인 노래들 공유될 수 있어야”

▲ 가수 백자는 작사.작곡은 물론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까지 다재다능하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가수 백자 만의 감성의 특성이 있다면?

■ 딱히 어떻다고 제가 말하기는 어렵고 듣는 분들이 ‘이게 백자만의 감성이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어쿠스틱 사운드(acoustic sound)를 좋아한다. 이 음반에서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된 사운드를 구현해 보려고 했다.

저로서는 1집이 제 감성들을 표현하고 솔로로서 지향하고 싶은 포크적인 사운드, 어쿠스틱 사운드를 담으려고 노력했고, 굉장히 많은 음악들 중에서 제 음악이 어떤 포지션이 될지는 청자들의 몫일 것 같다. ‘백자와 청자’의 관계다.(웃음)

□ 직접 작사.작곡도 하고 기타와 하모니카까지 연주하는 등 다재다능한 것 같다.

■ 하모니카를 잘 불지는 못해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고 기타는 잘 치려고 연습을 많이 한다. 그동안 써왔던 곡들이 있어 발표하고 싶은 것이 창작자로서의 욕심이다. 앞으로는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열어놓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부르다가 개인 앨범은 주로 감성적인 노래를 담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것 같다.

■ 제가 홍대 앞 인디클럽들에서 공연한지 2년 됐는데, 그곳에서 노래한 솔로 공연 곡들이 많이 담겨있다. 혼자서도 비정규직 사업장에 가기도 한다. 그런 데서의 노래와 홍대클럽에서의 노래 사이에 사실 간극이 있기는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저한테는 목표다.

요즘은 클럽에서도 ‘노란봉투’라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노래를 조금씩 부르기 시작하고, 현장에 가서도 ‘가로등을 보다’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의외로 좋아하더라.

▲ 노래패 '우리나라'. [사진제공 -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진보예술진영을 놓고 보더라도 장기투쟁 사업장 같은 현장에서 결의 높은 노래와 더불어서 서정적인 노래들도 같이 공유될 수 있게 돼야 한다는 바람이 있다.

제가 결국 솔로활동을 쭉 하더라도 사회성과 서정성, 제 개인적인 표현으로는 공감과 자기위로라고 생각한다. 공감적인 부분이 사회성이라고 보고, 자기위로가 서정성이라고 보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 두 가지를 다 솔로로서 해낼 수 있어야 백자라는 가수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로서는 큰 목표다.

□ 홍대앞 활동과 1집 발간 등을 통해 볼 때 솔로 가수로서의 전망이나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지?

■ 제가 좋아하는 어쿠스틱 기타 치면서,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내면서 저를 위로했던 서정적인 노래들을 부를 공간이 있고 음반으로 발표도 하고, 저로서는 굉장히 좋다.

그걸 보고 좋아해주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고, 호응이 오고, 기분이 굉장히 좋다. 앞으로의 가능성은 모르겠는데, 사실 마흔이 다 돼서 늦은 나이에 음반을 내니까 오히려 빨리 떠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즐기면서,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불혹의 나이가 주는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워냄의 음악’, ‘여백의 음악’이다”

▲ 홍대앞 클럽에서도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인 백자.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개인의 서정성을 노래하는 가수들은 굉장히 많고 최근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경쟁도 치열한 쉽지 않은 영역인 것 같다. 백자의 노래가 자기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 요즘 ‘나는 가수다’가 한창 화제다. 어떤 생각이 드냐면, 사실 옛날에 다 있던 노래들인데 우리 나라의 소위 탑가수라는 사람들도 저런 프로가 아니면 음악이 유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언론의 힘, 방송의 권력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청자들이 청계천 가서 백판을 사오거나 했다면 지금은 방송을 들려주는 대로 들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홍대 인디클럽이 굉장히 소중한 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바다비’와 ‘FB’에서 주로 공연하고 있다. 한달에 한 클럽당 한두 번씩 한다. 그런 공간들이 더 활성화되고 정책적으로 지원도 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어렵다. 저도 이번에 음반 내고 우리 쪽에서는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재일동포들과 같이 공연한지 2년이 된, 영화 ‘우리학교’를 찍은 김명준 감독이 ‘노 개런티’로 찍어줬다. 배우들도 다 노 개런티로 해줬다. 이걸 방송국에 틀어 달라고 부탁하고 다니는데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정말 돈 없는 뮤지션들은 장벽이 너무 높다.

그렇다면 대중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들이 결국은 홍대클럽이랄지 ‘성미산 마을공동체’같은 지역공동체 공간들을 통해서 부단히 자기 활동들을 하고, 좋아해주는 팬들의 힘으로 음반도 내는, 결국 그런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 실력을 높여가는 방법으로.

□ 백자만의 뭔가 다른 메시지, 느낌이 뭘까? 많은 가수들, 많은 노래들이 있는 기성 음악판에 명함 하나 더 내미는 것은 아닌가?

■ 명함을 들이미는 것은 맞다. 기성 판에 명함을 들이밀고 ‘한번 들어봐라’, 거기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건 당연히 있다.

만약에 제 음악을 제가 홍보한다고 하면 제 생각에는 ‘비워냄의 음악’, ‘여백의 음악’이다. 사운드적 측면이나 내용적 측면에서도 사운드가 꽉 차있고 빠른 비트가 주도하고 있는데, 제 음악은 좀 느리고 좀 담백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운드가 아니고 어쿠스틱하게 비워냄의 미학, 여백의 미학이다. 내용적으로 본다면 조금 철학적인 음악이랄까, 그렇게 홍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대체로 그런 면에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게 기존의 음악과 다른 부분이다.

사실 분류는 포크음악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포크음악이라면 너무 ‘7080’이다. 그런 쪽으로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김광석과 비교하려 하는데 영광이긴 한데 포크음악 쪽에서도 백자식의 포크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백자 포크’, 음악 장르로 굳이 명명한다면 ‘블루스 포크’를 해보고 싶다.

센다이 지진, “모금행사 진행하려 한다”

▲ 2007년 일본 '민족학교' 순회공연 당시 학생들과 함께.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남북관계가 단절돼 방북 공연이나 일본 총련 초청 공연은 어려운 것으로 안다. 일본 공연은 여러 차례 다녀온 것으로 아는데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 2009년 8월에 고베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기무사인지 국정원인지 알 수 없는 기관원이 ‘오셔서 사찰하셨던’ 때다. 실제로 지금은 그쪽(총련) 분들도 저희들을 부르기를 주저한다.

이번에는 저희들이 센다이 지진으로 인해 초급학교가 무너지고 그래서 건물 새로 짓는데 도움이 되고자 문화예술인이 모이고 있다. 이지상, 권해효, 안치환 선배들이 중심에 서고 김명준 감독이나 저희들이 같이 문화행사도 하고 모금행사도 진행하려 한다. 초청공연은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방북도 오래됐다.

□ 백자 카페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는데, 재일동포들과도 교류가 많나?

■ 원래는 네이버 블로그를 했는데, 그 때는 재일동포 분들과 교류가 많았다. 다음카페로 옮긴지 2년 됐다. 그런데 카페는 들어오기가 복잡한 것 같다. 동포 분들이 많이 못 들어오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보고 그렇다.

□ ‘우리나라’는 요즘 공연을 많이 하나?

■ 최근 몇 년간 공연이 거의 없었다. 이번 달, 저번 달에 기존에 비해서 조금 들어오고 있는 편이다. 단기적 현상인지 길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 행사공연이다.

▲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공연 무대에 선 가수 백자. [사진제공 - 백자]
□ 콘서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 사실 후원받아 콘서트를 하는데 우리 쪽은 하는 족족 빚이다. 엄두를 잘 못 낸다. 3일 동안 진행하는데 얼마나 올지 두렵다. 이름 걸고 크게 하는데 얼마나 올까? 내심 큰 걱정 중의 하나다.

이런 콘서트 통해서 저를 아셨던 분들에게는 제대로 갖춰진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고 모르신분들이 오신다면 제 음악 들려드리고 서로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콘서트 연습은 어떻게 하고 있나?

■ 이번 공연은 풀 세션들이 같이 하는 것이다. 음반을 낼 때 같이했던 연주자들이 합주실을 잡아서 최고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 백자만의 포크사운드 내고 싶어서 새롭게 밴드형태로 콘트라베이스와 재즈드럼 하는 친구들과 같이 연습하고 있다. 이 친구들과 앞으로 좀 길게 하고 싶어서 그 친구들도 두세 곡 같이 하려고 한다. 쇼케이스 선보이는 맛보기 개념으로 연습하고 있다.

게스트는 홍대 앞에서 같이 음악하면서 가까워진 친구들 하고, 좀 특이하게는 한동준 선배가 같이 해주기로 했다. 지금 라디오 방송하는 분이고 ‘너를 사랑해’를 부른 분이다. 저로서는 영광이다. 노무현 추모음반을 낼 때 ‘우리나라’가 코러스로 참여한 계기로 가까워졌다.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음반을 만들거나 공연을 할 때 제가 아주 예민해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영화 ‘블랙 스완’을 보고 공감이 갔다. 가족들로서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아이도 일주일에 절반씩 나눠보는데 아내가 다 맡아 봐야 하고, 그런 게 고맙고 미안하다. 많은 분들이 음반이나 콘서트를 위해 도와줬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준 것은 역시 가족이다.

(수정, 19:22)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