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3일 제주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제주 4.3항쟁 정신계승 노동자대회’가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새벽부터 오랜만에 비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빗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에 있다가 불현 듯 “4월 3일은 언제나 날이 궂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라던 어느 선배의 말씀이 떠올랐다.

‘맞다, 4월 3일이다!’ 어제 강정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이들이 다시 오늘 오후 한 시, 제주시청 앞에서 ‘제주 4.3항쟁 정신계승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었다. 나는 일단 시청 앞, 노동자역사연구소 한내 제주지부 사무실에서 지인들과 만나기로 해 열 두시 경 도착했다.

그런데 봄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내렸다. 그치지를 않는다. 이래 가지고 아이들까지 있는 대회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제주 민주노총에서는 강행하겠다고 하고, 열두 시 반쯤 되니 시청 앞으로 깃발이 서고 관광버스들이 도착한다.

굵지는 않은 빗방울이지만 양은 꽤 되는 빗속으로 카메라를 챙기고 나섰는데, 뭍에서 오신 분들은 대회를 마치고 떠날 요량으로 우비에 가방까지 들고 벌써 모여 앉았다.

서귀포 동서교통 노조지부장, 우성아파트 노조지부장 등 제주 지역 3곳의 투쟁사업장 발언으로 대회는 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문을 열었다. 제주지역 일반노조 도립예술단의 여는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도립예술단은 작년 4월부터 새로운 안무자의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지회장의 강제 해임 등 노조탄압에 맞서 천막농성 중에 있다.

▲ 대회사를 하고 있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본 행사는 제주 4.3항쟁에 대한 추모 묵념의 노동의례에 이어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의 대회사로 이어졌다. 김영훈 위원장은 “4.3의 진실을 지금까지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는 4.3예산 전액을 삭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그는 “63년 전 오늘 이 땅에서 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하던 수 만 명의 노동자·민중들이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무참히 학살됐다”며, “그럼에도 이 곳 제주에 이승만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몰상식한 발상을 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제주 지역 공동투쟁본부 대표들의 발언에 이어 울산지역 노래패의 노래 공연 그리고 뒤를 이어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의 연대사로 이어졌다.

▲ 연대사를 하고 있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오른쪽)과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홍 의원은 “4.3 유족들이 60여 년 동안 가슴앓이 해온 것에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시는 이 같은 국가 살인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깊이 새기고 앞장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민노당과 지역 노동자들이 손을 잡아 진정한 진보정당을 새롭게 통합해 나가자”고 말했다.

조승수 대표는 “현 정권은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며 동북아평화를 위협하고,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며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4.3의 정신을 이어, 제주도는 이제 항쟁의 섬을 넘어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 참가자들이 '노동탄압박살'에 점화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상징의식으로 도립예술단의 4.3 진혼굿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이어 공무원 노조의 투쟁사가 있었고, 도립예술단의 4.3 진혼굿과 함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상징의식으로 대회는 마무리되었다. 도립예술단의 첫 여는 공연에서 복색과 작은 장구를 들고 힘차게 시작된 다섯 명의 공연에, 뭍에서 온 모든 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 진혼굿 또한 모든 이들이 이차선 도로 위에서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4.3의 넋들과 그들의 정신과 함께 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상징의식이 끝나고 깃발들을 앞세우고, ‘4.3항쟁 정신대회 노동자대회’ 플랜카드를 들고 대오는 시청 앞에서 중앙로를 통과해 4.3항쟁 마지막 지도자 이덕구 선생을 효수했던 관덕정으로 한 시간 여 시가행진을 했다.

▲ 대회 후 참가자들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송지영 통신원]

나는 행진이 시작되자 한기(봄이라고 얇게 입고 나간 덕에)와 발의 상태를 핑계로 다시 한내 사무실로 되돌아 왔다.

제주 4.3을 두고 민관 주도 하에 최초의 민중항쟁이라고 보는 관점과 권력에 의한 민중 학살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탄압받은 이 민중들이 ‘민중항쟁’이었다고 말하는 데는 이미 오랜 시일이 걸렸고,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지난 2009년 제주공항에서 발견된 4.3 유골들의 DNA 감식이 끝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63년 만에 주검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4.3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어제 오늘 함께 보낸 시간들을 새기면서,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중앙의 단체들이 4.3을 자꾸 전체의 문제로 끌어내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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