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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과 희망은 평화통일의 길을 가는 것" 윤영전, 6.29선언과 전두환 20년 장기집권 플랜 비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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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3.22  15: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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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고희 기념문집을 낸 윤영전 평화연대 상임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지진과 쓰나미, 방사성 누출로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일본 열도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역사와 사회의 소용돌이에서 비켜 설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물며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 구성원 누구에겐들 그만큼의 아픈 생채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가문의 대들보였던 맏형은 1949년 해방공간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스러졌고, 보도연맹에 가입됐던 당숙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끌려가 처형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내려오자 아버지는 면 인민위원장으로 임명됐고, 둘째 형은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생사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윤영전(71세) 평화연대 상임고문은 어려서부터 우리 민족의 비극을 가족사를 통해 처절하게 체험했고, 자신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과 군사독재 시절의 특별한 공직 경험 등을 거쳐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지난해 12월 발간한 고희기념문집 『인연 아름다운 만남』과 수필선집 『강물은 흐른다』, 그리고 애창가곡집 CD.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지난해 12월 고희기념문집 『인연 아름다운 만남』과 수필선집 『강물은 흐른다』를 발간하고 애창가곡집 CD까지 내놓은 그는 ‘70 고희(古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방면의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서울대학교 근무할 때부터 계속 민주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골수 국가공무원도 못 됐지만 공무원 출신이 평화통일 운동에 나서자 의문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정의사제구현단과 함께 생겨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에서 상임위원과 감사를 했고, 경실련 민족화해아카데미에 들어갔다가 10년 전 경실련 통일협회가 제 역할을 못하자 이장희, 이철기, 양관수, 홍순명 선생 등과 평화통일 운동을 위해 빠져나와 평화통일시민연대를 창립한 것이다.”

그는 이후 남북경협운동본부, 남북경협포럼, 남북청소년연맹,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범국민위원회, 평화재향군인회, 평화만들기,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선 등 여러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거나 기고활동을 통해 맹활약했다.

“통일부의 통일교육위원을 6년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서울시에서 제일 열심히 했다고 최우등으로 올라갔지만 ‘역사인식이 부족한 대통령’이라는 글을 써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그까짓 것 내가 안 하면 어떠냐. 제 소원이 남북통일도 통일이지만, 정권교체가 소원이었다.”

   
▲ 윤영전 고문은 자신의 호를 따 '구암'서문예원을 운영할 정도로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소원’은 고 이한기 총리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얽혀있다. 이 총리가 서울대 법대 학장이던 시절부터 보좌하며 함께 일해온 그는 군부독재인 5공화국 치하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재직할 때도 지근거리에서 보좌함으로써 87년 6월 항쟁과 6.29선언이 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증언할 수 있게 됐다. 6월 항쟁이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흐르지 않고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로 우회할 수 있게 된 배경에 그의 노력도 보태져 있는 것이다. (아래 상자기사 참조)

특히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웅산 참사’는 전두환 대통령이 ‘20년 장기집권 시나리오’ 실현을 위해 버마(미얀마) 레윈 장군의 장기집권 모습을 측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현대사 복원에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아래 상자기사 참조)

윤영전 상임고문은 광주시 효덕동 효골에서 효열가문에 태어난 탓에 “조신하며 행동”해왔고, 열녀 할머니에 이어 아버지와 자신이 효자가 되었고, 지난해 2월에는 부인까지 효부상을 받았다.

그는 “사라져 가는 효열정신이 구시대적 발상이 아닌 살아가는 지표요 근본”이라며 “삼대효열가문으로 살기가 힘이 들지만 그 길이 살아가는 방편이고 모토로 되고” 있다고 자신의 고희기념문집에서 밝혔다.

그는 평화통일 활동과 가정에서의 남다른 노력 외에도 서예가와 수필가, 소설가로서 부단히 정진하고 있으며, 노래 또한 수준급이다.

“앞으로 제 마지막 꿈과 희망은 이 땅의 66년 분단을 극복하는 평화통일의 길을 가는 것이다. 실제로 행동도 하고 글로도 남기면서 80살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나. 윤봉길 의사는 집안 형님뻘 되시고 안중근 의사는 존경하는 분인데, 그 분들의 정신으로 살아가겠다.”

조만간 발족할 ‘안중근의사 평화연구원’에서도 일익을 담당하겠다며 열의를 쏟아내는 그에게 칠순 고희는 아직 아무런 장애가 아닌 듯이 보인다.

<6.29선언 비사와 전두환 20년 장기집권 플랜 (녹취록 일부)>

윤영전 고문은 이한기(1917.9.5~1995.2.2) 선생을 1966년 서울대 법대 학장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이한기 선생이 5공 전두환 정권 하에서 1980년 감사원장과 1987년 국무총리를 지낼 때 비서로 일함으로써 현대사의 한 자락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가급적 녹음 원본에 충실하게 풀었다. /편집자 주

   
▲ 87년 6.29선언 당시 총리를 맡았던 고 이한기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엿본 윤영전 고문.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6월항쟁 때 또 전두환이가 아침 7시에 전화를 한 거예요. “(감사원)원장님 지금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데, 원장님께서 총리를 좀 맡아주셔야 겠습니다.” 그러니까 “아, 나는 정치도 못하고 총리직 같은 것 할 능력 없습니다. 나는 못 합니다.” 그랬더니 “아, 좀 도와주세요. 이럴 때 도와주셔야지 언제 도와주십니까.” 그래가지고 “전화 끊습니다.” 딱 끊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 양반이 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윤 군, 전두환한테 전화 왔는데 총리를 맡아달라 하네.” 그래서 “어, 지금 총리 가면 안 되죠. 역사에 큰 욕 먹습니다.” 그랬더니 “큰일났네, 아무래도 지상발령 날 것 같네.” 가는 사이에 발령이 나버렸어요. 지상으로. 결국은 별 수 없이 오후 3시에 임명장을 받으러 갔는데 반기문이 당시 외무부에서 와서 의전비서관하고 있었는데, 노신영 따라 가버렸어요. 그만 둔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이틀간 의전비서관을 했죠. 반기문은 국제법 강의를 받았고, 이 총리가 결혼 주례를 했고 저도 주례를 서줘서 매번 만났었죠. 그런데 반기문을 오라 그러니까 “저는 외무부에 기한이 넘어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러니깐 “이 나라가 어지러운데 있어야지, 무슨 소리냐. 내가 왔는데. 잔소리 말고 근무해!” 그러니깐 “알았습니다.” 해가지고 온 거다. 그래 가지고 5월 26일부터 근무했죠.

5월 18일 (5.18광주항쟁) 7주년 기념 미사에서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사건을 폭로해서 5월 25일에 개각해서 내무(장관)에 고건, 안기부장 안무혁, 국방(장관)에 이기백 이렇게 해서 민심수습을 위한 개각을 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총리 보좌하는데 반기문이 안 올 수 없어 왔죠. 둘이 상황을 보니까 “큰일 날 일이다. 완전히 4.19혁명과 똑같다.” 그런데 전두환이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4.13 호헌조치 할 때 이미 20년 집권 시나리오를 그대로 간 것이다. 아웅산 간 것 알지 않나. 소위 레윈 장군의 지도하는 걸 보라고 해서 데려간 것 아닌가. 4.13 호헌조치는 말이 안 되지 않나? 박종철 군 고문치사 했으면 수습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그러다가 5.18 7주년에서 김승훈 신부가 폭로 하니까, “경찰 2명 아니고 진짜 3명이 더 있다”, <동아일보>에서도 엄청나게 커져버리니까 꼼짝 못하지 않았나. 6월 9일 이한열 군이 최루탄 맞아서 중상 당했고, 10일부터 항쟁 시작하고. 저는 명동성당 천주교 신자니까 알잖아요. 경찰 정보는 거짓말만 하니까 제가 직접 간 거죠. 갔더니 뭐 민중이 뭐 대단한 거예요. 조금 있었더니 군이 출동을 했다는 거라. 나보고 총리가 “윤 군, 군이 출동했다는 설이 있는데 자네가 알아보게.” 그래서 제가 여의도에 갔더니 1개 사단인가, 1개 반 사단인가 와 있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왜 왔소?” 그랬더니 군군의 날 행사 예행 연습하러 왔데. 아니 국군의날이 10월 1일인데 무슨 놈의 6월초에 와. 그래서 내가 수도기계화사단의 김진영 장군, 내가 투자금융에 있을 때 자매결연을 맺었던 홍보실장이 있었어요. 당시 김 소령이라고. 거기다 물어봤더니 “명령만 떨어지면 수도기계화사단이 65킬로미터 시속으로 1시간 10분이면 서울에 갑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총리가 이기백한테 물어봤다는 거야. “이 장관, 군이 나왔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니까 “네. 총리님. 사실 군이 제대로 계통을 밟으면 24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동해놓고 계엄령을 선포하면 4시간 만에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했습니다.” 그런 거야. 그래서 이한기 총리가 반기문이랑 있을 때 “큰일 났네. 군이 나온다는데 큰일 났네.” 그래서 내가 “군 나오면 나라 망합니다. 지금 광주사태도 7년 전에 했는데 아직도 해결 못했는데 군이 또 나와요? 이건 나라 망하는 일이니까 총리께서는 이거 할 때 절대 사인하면 안 됩니다.” 했더니 “그럼 어떡하란 얘기야?”, “병원에 입원해야죠. 몸이 아프시니깐.” 그러니까 “그러면 병원에 가더라도 총 들고 와서 사인하라면 어떡하냐?”, “아, 그래도 안 해야죠. 만약에 하면 제2의 이완용이가 되는데 제2의 이완용이가 되고 싶습니까?” 그랬어요. 총리하고 저하고는 묵계가 있어요. 자기 잘못한 것도, 자기 부인 잘못한 것도 이야기해 달래요. 감사원장 갈 때부터. 그런 좀 특별한 사람이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했더니 “맞아. 군이 나오면 안 되지.” 그런데 그러기 전에 명동성당에 들어가 있던 천 명 정도가 밤새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6월 11일 전두환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명동성당에 대한민국 좌익 용공 빨갱이들이 다 모여가지고 해방구를 설정했다. 알고 있느냐?” 그런 거예요. “나도 얘기는 들었소.” 그러니깐 “당장 저걸 처치해야지 대한민국 법이 무시돼서 말이 되느냐.” 그 소리를 들으니까 나에게 전화로 “윤 군, 큰일났네.” 그래서 “그러면 일단 안기부장한테 사정을 한번 물어 봅시다.” 그랬더니 “어, 이 사람아 안기부장을 총리가 맘대로 하나?”, “아 지금 세상이 그게 문젭니까. 제가 안기부장 비서실장한테 전화할테니까.”, 전화해서 “총리하고 전화 바꾸쇼.” 그랬더니 안무혁이 전화 받았어. 그랬더니 “지금 대통령한테 지시를 받았는데 명동성당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하니까 “저희도 지금 고민입니다. 거기에 좌익 용공이 다 있는데.” 그 다음에 고건이 제자거든 (서울대) 문리대. “고 군” 장관이라고 말도 안 해. “고 군, 지금 명동성당은 어떡하냐?” 하니까, “아 저도 고민에 고민입니다.” 그래서 나랑 반기문이랑 그랬다. “절대로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 그때 함세웅 신부가 거기 있을 때다. “김 추기경, 신부.수녀들 신자들 다 나와서 반항할텐데, 그러면 명동성당은 완전히 성역화를 무너뜨린 것이 돼서 대한민국의 300만 카톨릭 신자들이 ‘종소리를 울려서 명동성당 기도하자’,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이며, 아울러 7억의 세계 신자가 로마 교황청에서 ‘대한민국의 명동성당 사태에 대해서 기도하자’ 하면 대한민국 무슨 창피가 됩니까?” 했더니, “맞아 맞아” 그러시더니 안기부장과 내무장관 두 사람을 그 다음날 총리 공관에서 만났어요. 만나서 얘기를 한 거다. “절대로 이건 공권력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저희도 생각이 같은데 전두환 대통령이 지금 강해가지고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아, 이건 안 된다. 천주교와 싸워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된다.” 그래서 출근을 막 했는데 9시에 긴급 안보장관 회의를 하더라. 십 며칠인가 된다. 계엄령을 선포한다 어쩐다 할 때다. 그러더니 딱 하는 이야기가 국방장관, 치안본부장 다 모아놓고, 이분은 갔다 온 이야기 다 해주니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헌법을 무시하고 해방구를 설정해서 떵떵거리고 있는데 이게 나라가 아니다. 이걸 바라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더니 “이거 해결책이 무슨 방법이 있나?” 그러니깐 그 사람 만날 그러잖나. 누구 말도 안 듣는다. 다 눈치를 보는데, 묘하게 “총리께서 복안 있습니까?” 그러더래. 그래 총리가 “네. 거기는 절대로 무력으로 해서는 안 되고 대화로 해서 풀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대화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해봐야죠.” 그러니까 “그러면 총리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화를 하는데 혹시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없나?” 그러니깐 누가 뭐라겠어. 총리가 얘기했는데. 그래 가지고 “대화를 하는데 6월 14일까지 안 되면 그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안 되면 강경진압 합니다.” 그래서 총리가 고건에게 지시하기를 “거기 있는 사람들 대화를 해서 다 풀고. 절대 잡아가지 않는 조건으로 해라” 그런데 거기서 다섯 차례 투표했는데 안 되는 거라. “풀자.” “안된다. 끝까지 쇼부(승부)를 봐야 된다.” 대한민국 (운동)꾼들은 다 모였나 보더라. 그래서 나중에 다섯 번째 투표 때 풀자는 쪽이 조금 많았데. 그래서 풀자는 결정이 났죠. 그래서 계성초등학교 버스 4대하고 일반 버스 2,3대 대서 조건은 “절대로 잡아가지 않는 조건으로 풀어줘라.” 다 타라니까 주모자급은 안 탄 거지. 다 아니까. 200명 정도는 남고 나머지 3,4백명 정도는 다 탔데. 저기 가다가 내려주는데 또 의심된 사람은 잡아가고. 그 소리를 듣고서 총리가 “잡아간 사람 있었다는구만. 이 경찰놈들 이거 큰 일이야. 약속을 안 지키고, 총리말도 안 듣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데모는 더 많아져 가지고 (부산) 서면로터리에 10만명이 모이고 광주에 5만명 모이고 전국 각지에서 모임을 다 만든 거다. 저는 치안본부에서 계속 보고받아 말씀드리고 그러는데, 반기문 장관은 여러 사람을 만나가지고 의견을 모으고, 총리도 계속 대학 총장, 신문사 사장 다 만나고. 누가 말하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이 양반이 총리실 서기관급 이상 다 모인 간부회의에서 “이대로 가면 나라가 다 망한다. 4.19와 거의 같으니까 이 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6월항쟁에서 요구하는 사항은 다 들어줘야 된다. 말하자면 국민한테 항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안 된다.” 윤석순이 비서실장인데 그 소리 나가게 하지 말라고 “우리끼리만 알고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그런데 청와대로 또 보고됐나 보더라. 총리는 사심 없이 다 이야기 한 거다. 그런데 나중에 군 나온다 할 때 내가 그랬거든 “대통령 한 번 더 만나십쇼.” 그랬더니 “뭣 때문에?”, “군 안 나오게끔 만나야죠. 군 나오면 큰일 난데요.” 그랬더니 “그래, 그런데 내가 지금 명동성당 이 거도 대통령하고 싸워서 감정이 안 좋은데.” 하루 저녁 자고 나더니, 반기문이는 퇴근해버리고 “윤 군, 노태우를 통해서 얘기하면 어떨까?” 그런 거야. 노태우가 전두환 동기고 5.18도 같이했고 (여당 대선)후보도 돼 있고, “노태우가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런 거야. “사실은 총리가 하셔야 하는데요, 그러면 노태우를 통해서 하시죠.” 그래서 노태우를 만나서 3시간 동안 안가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다 얘기 한 거예요. “절대로 이건 될 일이 아니고 다 죽는다. 나라 망한다. 그 다음에 88올림픽도 못 한다.” 그때 88올림픽이 정주영 씨가 1조 얼마를 투자하고 우리나라가 1조 5천을 투자해 3조를 투자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전두환은 뭐라 했냐면 반짝 개헌 해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 근성이 냄비근성이니까 2,3개월 내에 다시 풀어서 하면 올림픽 할 수 있다는 이런 얘기 한 거다. 얼마나 바보스런 이야기냐. 반짝 계엄한다는 거다. 자기가 주도하는 내각제로. 그때 내각제 대통령에 껍데기 노신영이 거의 다 내정됐었고, 그리고 총리는 자기 말 잘 듣는 장세동이 돼 있었고, 그래서 낮에는 일해재단에 가서 근무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연희동에서. 연희동 200평에 2층을 올렸는데, 지하에 3층이 있다. 전화가 180회선이 들어가 있다. 전부 비서실 다 만들어 놓은 거다. 저녁에는 거기 가서 근무하는 거다. 장세동은 청와대서 근무하고. 레윈 처럼 딱 20년 집권 시나리오다. 지금 전두환이 별 볼일 없지만 그걸 제가 역사적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왜냐면 김재익이니 함병춘이니 엄연히 여권 16명이 죽은 곳이다. 거기 버마가 사회주의 국가지 않아요? 북한과 가까웠는데 뭐 하러 그런 나라에 탐방하러 갑니까? 간 것은 오직 레윈이 어떻게 정치를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간 것이죠. 거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사건은 전두환 장기집권 플랜으로 레윈 장군의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갔는데 전대통령이 출발이 좀 늦었거든요. 그런데 함병춘인가 누군가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 오니까 전두환인 줄 착각해서 장치해둔 버튼을 눌렀어요. 그래서 폭삭해서 2,3분후에 전두환이 와서 거기서 살았죠. 그 사건은 저는 북이다 남이다 얘긴 안하는데 거기서 북한이 가까웠으니까 얼마든지 같은 동맹국이니까 제3블럭이니까. 우리하고는 그때 수교도 안 돼 있었을 걸요. 그래 가지고 결국 그 사람들 얼마나 대우해줬나? 국가에서 하는 것 최대한 해주고 가기 비자금 몽땅 해주고. 제 친구가 경호요원 부인과 살다가 헤어졌는데 그 사람이 그때 10억을 받았더라고 1인당. 지금으로 말하면 100억이다. 그런 식으로 버마 아웅산 사건에 대해서는 전두환의 소위 장기집권에 따르는 그 각료들 데려가 몸소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엮어서 보면 4.13 호헌조치가 뜻이 뭐냐면 많은 사람들이 반대해서 들고 일어나면 이럴 때 군이 다시 나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반짝 계엄해가지고 하려고 하는데 미국서도 워커가 와가지고 안 된다고 그러지. 총리도 안 된다고.

그리고 노태우와 3시간 이야기를 했대요. 했더니, 노태우가 “총리께서 계엄령 절대 안 된다고 하고, 국민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까, 총리 말씀이라고 전하면 될까요?” 이렇게 나왔다는 거여. 이 총리가 그러더라고. “그렇게 뒷심이 무른 사람이더라”고. 자기는 장충체육관 대통령 따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직선제 해버리면 당선 될지 안 될지 모르잖아. 그런데 6.29선언의 진실이 있다. <오마이뉴스>에 나온 바로 그 거다. 물론 이한기 총리나 반기문이나 저나 같이 “국민한테 항복하지 않으면, 도저히 4.19처럼 되면 다 죽는다. 안 죽으려면 공개적으로 선거에 의해서 야당이라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양김이 다 끝까지 나올 때는 결국은 이길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 자기들의 숨겨진 각본이었죠. 그건 나오지 않았죠. 그런데 이걸 김대중, 김영삼 씨는 몰랐었죠. 김대중 대통령은 회고록에 자기라도 양보했어야 한다고 했죠. 그분들 얘기 중에 그런 게 있었어요. 마지막에 뭐가 있냐면, 서로 안 되니까, 서로 여론조사에 밀렸을 때 양보하자고 양김이 합의했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박철언이가 청와대에서 안기부 보좌관으로 갔죠. 언론을 다 장악했고, 노태우 36.6%, 김영삼 28.0%, 김대중 27.0% 영점 오차를 그걸 절대 한 번도 안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계속 갔는데 후보가 돼 가지고 선거를 했는데도 개표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그래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이건 컴퓨터 부정이다” 그랬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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