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은 지난 17일 지진국장 명의로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 학술토론회 등 협력사업을 추진시켜 나가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자고 남측 기상청장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왔습니다. 이에 대해 남측은 “남북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이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남북 당국 간 회담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북측에 있어 백두산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백두산 천지는 남북 민간교류 시 개방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당국 간에 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백두산 화산’을 고리로 한 북측의 대화 제의는 시기적으로 절묘합니다. 일본 대지진에 맞춰 제의함으로써 남측이 거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아울러 내용적으로도 파격입니다. 알다시피 북측에 있어 백두산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투쟁의 현장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가와 ‘정일봉’이 있는 혁명의 본산입니다. ‘백두3대장군’, ‘백두혈통’이라는 표현에서도 보듯 북한의 정체성 배경에는 백두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혁명성지로 선전하는 백두산인데, 마치 그 폭발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남 협의를 제안한 것은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말을 지나면서 남측에서 이상기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백두산 화산 협의를 애초 ‘당국 차원’에서 검토하다 ‘민간 차원’으로 대응 수위를 낮추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남측이 남북 당국 간 대화의 전제로 내세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나 북핵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가 북측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속 좁은 처사입니다. 남측은 지난해 말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과 관련해 내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북측이 백두산 화산 협의를 제의해 왔으니 남측의 백두산TF는 자동적으로 생명력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간 남과 북은 특히 바다에서 갈등과 대립을 겪어왔습니다. 매시기 서해 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충돌해 왔으며 지난해에 터진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전도 바다와 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아직 남북관계는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측이 제의한 것은 산입니다. 현지답사를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백두산에도 가야 할 것입니다. 남측이 당국 간 협의를 조속히 받아들여, 바다에서 소원해진 남북관계가 산에서나마 풀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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