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최근 출소한 윤기진 전 범청학련 의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최근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선고받은 실형을 다 채우고 만기출소를 하루 남짓 앞둔 윤기진 전 범청학련 의장에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옥살이 동안 이적표현물을 제작하고 지인들에게 편지로 이를 배포했다는 혐의인데, 피의자가 출소 후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장이었다.

수배생활만 10년, 그리고 3년간의 수감생활이 끝나는 시점에서 또다시 구속수사를 강행하겠다는 검찰은 지나친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심지어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는 교정기관이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윤 전 의장은 또 지난해 4월 대전교도소 수감 중에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내용의 불법정보에 대한 삭제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 역시 '해프닝'으로 정리됐지만, 마냥 웃어넘기기엔 당사자는 좀 껄끄럽다는 반응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부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윤 전 의장은 지난달 26일 자정 만기출소했다. 지난 7일 오후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구속영장이 딱 나왔을 때는 이틀 동안 밥도 못 먹겠고, 잠도 못 자겠더라. 3월 4일이 첫째 애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는데, 입학식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았다. 딸 애가 너무 눈에 밟혀서 영장실질심사를 하는데 엄청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검사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났다."

"증거인멸은 말도 안 된다. 교도소에 접견 녹취가 다 있고, 안에서 편지 조사를 한 것도 다 있다. 도주의 우려도 있다고 하는데, 난 지금 가족 때문에 절대 도주를 할 수 없다."

검찰은 계속해서 이 혐의에 대해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윤 전 의장의 편지를 인터넷에 게시했다고 지목한 4명 가운데 1명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2명은 피의자 조사를 마친 상태다.

윤 전 의장은 검찰이 조만간 기소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기각된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지목한 사람들이 제 편지글을 게시한 증거는 없다. 제가 4명과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아니라 수백 명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편지 내용도 남북관계나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런데 검찰이 몇 명과 엮을 수 있는 사람들을 택한 것이다. 압수수색을 받고 조사를 받은 3명은 범청학련 소속원이라는 이유로 엮은 것이다. 조만간 기소를 할 것 같다. 기각된 구속영장 청구도 또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이 안 보일 것만 같았던 수배생활, 3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지탱해 올 수 있었던 큰 힘은 다름 아닌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딸이 크는 모습조차도 옆에서 지켜볼 수 없었던 '못난 아빠'는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가는 그 순간을 그토록 기대하면서 지난날을 견뎌왔다.

"제가 3년 선고를 받을 때, 판사가 그런 표현을 했다. '윤기진 피고인은 죄가 엄하지만, 3년 후에 첫째 딸의 입학식은 가야 하지 않겠나 해서 3년을 선고한다'고 했다. 판사 선고 자체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전 재판부는 그런 고려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영장실질검사 때 그런 얘기를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

▲윤 전 의장은 "이젠 대중들에게 인정받으면서 '프로'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고성진 기자]

윤 전 의장은 출소 이후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5년 전, 대학생 시절 농활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나온 후로 가족들과 처음으로 한 자리에 마주했다.

"1996년 대학교 농활을 간다고 집에서 나와서 처음 들어갔다. 제가 집에서 나올 때는 어머니가 40대 후반이었는데, 이제는 환갑이 지나셨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가 너무 젊으셨는데, 이제는 많이 늙으셨다."

어느덧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가 됐지만, 결혼하고 처음으로 처가댁 식구들을 만났단다. 그의 부인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다. 출소한 지 열흘 남짓, 그에게 하루하루는 처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인터뷰를 한 이날도 윤 전 의장은 처음으로 '황선 동지'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처가 혼자서 양육을 해야 되고, 또 활동도 해야 되니까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둘을 보면서 주변에서 많이 안타까워하지만, 이렇게 끝나고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서로 교제하는 과정에서 수배와 구속을 겪으면서 서로가 느낀 게 참 많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 그러나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 힘들었던 순간들은 그에게 많은 것들을 남겼다.

윤 전 의장은 옥중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했다고 했다. 미국의 역사, 북한 경제 분야 등에 대해서 꾸준히 글을 쓰고, 이 분야의 책을 집필하는 등 자신만의 의미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기회였다고도 했다. 감옥에서 만난 한상렬 목사와의 인연을 꺼내놓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출소 후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윤 전 의장은 "당장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밖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몫을 넓혀가려고 한다"며,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는 "지금 활동의 화두는 반이명박 투쟁을 잘하는 것이 가장 큰 화두"라면서 "대중들에게도 인정받으면서, 이제는 '프로'란 얘기를 듣고 싶다. 실력을 쌓으면서 열심히 지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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