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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 창립 20주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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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2.26  11: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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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조세열 사무총장을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국민들께서 저희들에게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을 세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사무국장인 조세열(54세) 사무총장은 지난해 『친일인명사전』 발간 여세를 몰아 역사관 건립에 전력투구하겠다고 밝혔다.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3시 서울 청량리 소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조세열 총장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역사관 건립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1991년 2월 27일 4명의 상근자로 출범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11월 8일 박정희 전 대통령 등 4천 389명의 친일행각을 상세히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장지연, 윤치호 등 독립유공자 19명이 보훈처 서훈취소심사위에서 서훈취조 결정이 내려졌고, 사전에 이름이 등재된 후손들이 반발하며 잇단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승소했다.

조세열 총장은 “민간연구소에서 낸 성과지만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보훈처에서도 타당성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민간 연구 성과를 받아들였다는 측면에서 일보 진보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보훈처가 행정안전부로 넘겨서 행안부에서도 문제 없다고 국무회의에 상정했지만 아직 국무회의 의결이 보류되고 있다”며 정부의 ‘보수세력 눈치보기’를 꼬집었다.

친일인명사전은 3권 1질에 30만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벌써 3쇄를 찍어 4천여 질이 팔렸고, 출판계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조직 판매도 아니고 대부분 개인 구매다. 영업망 가동도 아직 안 했다”며 “시민들의 바른 역사에 대한 희구랄까, 역사정의 실현에 대한 열정이랄까 이러 것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층이나 일부에서 고가여서 개인 소장이 부담스럽다며 보급판 발간 건의가 들어온다”며 “‘풀어쓴 친일인명사전’이라든지 인터넷 서비스 등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는 『친일인명사전』도 대중적 접근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연구자들이나 관심있는 시민 분들 외에는 내용도 딱딱한 측면이 있어서 접근성에 문제 있다고 보고, 이걸 청소년 시민들에게 보다 생생하고 구체성 있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역사자료관 설립을 구상하게 됐다”며 “올해 제일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이고 이는 20주년 기념사업이자 장기사업”이라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미 3만여 점의 유물과 3만여 점의 도서가 수집돼 정리돼 있고, 이 자료들을 토대로 근현대사 최대, 최고의 전문 역사관을 건립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

그는 “과거사 청산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동아시아 역사 문화교류의 장도 되고, 시민참여형 교육문화 공간도 되도록, 크게 봐서는 동아시아 역사문화운동 중심으로 서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사관 건립까지는 사전 편찬 작업 못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소요 경비만도 5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해서 사용할 예정”이라며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2012년 연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50억원을 모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벌써 사전 판매로 얻은 5억원과 송기인 신부가 진실화해위원장 재직시 받은 임금 2억원을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임직원들도 자체로 2억원을 내놓는다고.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역사의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뉴라이트 등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국민들께서 저희들한테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을 세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시면 그런 움직임을 막는데 사전을 만들었듯이 최선을 다해 막아내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는 26일 오후 3시 서울 조계사 경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리며, 3월 1일부터 20일까지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도 진행한다. 또한 8월경 기념문화제와 11월경 친일인명사전 발간 의의에 관한 심포지움도 예정돼 있다.

그는 “연구소에 용기를 주신 분들이 결국 시민들”이라며 “저희들은 심부름한 것이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힘으로 해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에 월회비를 내는 실질회원만 6천여명이고, 회원들은 연구소의 각종 활동과 전국 27개 지부의 실천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친일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최근 뉴라이트와 같이 퇴행적 역사인식을 확산시키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친일 인물들에 대한 기념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골리앗에게 돌 던지는 다윗의 심정’

   
▲ 창립 당시 사무국장을 맡았던 조세열사무총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걸어온 20년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이 깊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통일뉴스 :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 조세열 사무총장 : 20주년 기념행사는 올해 한해 동안 계속될 것이다. 2월 27일이 창립일이다. 기념식은 26일 3시 조계사 안에 있는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가지게 된다. 8월 경에 기념문화제를 계획하고 있고, 11월에 친일인명사전 발간 의의에 관한 심포지움을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 제일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이고 이는 20주년 기념사업이자 장기사업이기도 하다.

□ 추진 중인 3.1절 기념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 일본 전시회에 대해 소개해달라.

■ 작년에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진행한 것을 보고 일본에서 초청해 전시회가 열리게 됐다. 일본 전시회는 일본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3월 1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유물이 많이는 못가고 엄선된 중요한 유물 80여점 정도가 가고 나머지는 일제침략과 식민지 관련 패널 설명자료다. 일본에 가서 3월 1일 전시회 개막식을 가지게 되고 강연회 등 여러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당시의 상황과 창립 정신에 대해 소개해달라.

■ 임종국 선생께서 65년 한일협정을 보고 나서 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했고, 이후 계속 친일문제에 천착했다. 『친일파총서』 발간을 준비하시다 89년에 폐기종으로 돌아가셔서 후학들이 친일청산 운동을 이어나가 선생님의 유업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반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당시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잡았던 것이 친일문제고, 강제동원 문제 등 일제시기의 제 문제는 물론 근현대사의 진실규명을 과제로 삼았다. 핵심 과제이자 현안으로 떠올랐던 것은 역시 ‘친일인명사전’이었다.

91년 당시만 해도 87년 대선이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 과정이었지만 친일문제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사회 각계 지도층의 주류인사들 압도적 다수가 친일 원죄가 있거나 아니면 친일 과오가 있는 사람과 혈연, 학연으로 얽혀있는 사람이 다수였다. 더군다나 역대 독재정권 세력이 친일세력을 비호하다 보니 철옹성 같이 탄탄하게 고착화 돼있던 상황이었다.

요즘 여권 실세 한 분이 말한 ‘골리앗에게 돌 던지는 다윗의 심정’이 연구소 출범 당시 우리들의 심경을 똑 같이 표현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11평의 조그마한 연구실에서 김봉우 소장님과 사무국장인 나, 그리고 상근 연구자 둘, 이렇게 넷 밖에 없었다.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했는데도 의기는 높았다. 지원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한겨레 송건호 선생님, 리영희, 강만길 선생님 등 당대에 존경받는 스승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문익환 목사님과 함세웅 신부님 등 여러 사회 원로들께서 연구소를 음양으로 많이 도와주시고 용기를 북돋워줘서 상당히 힘있게 일할 수 있었다.

학계에서도 교수라든지 연구자들이 항상 연구소를 외곽에서 지원했다. 우리 몇몇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다. 뒤바뀐 역사를 바로잡는데 동의하는 분들이 지식인 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고, 이 분들이 전부 지원해서 대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 연구소 설립의 계기가 된 임종국 선생은 어떤 분이셨고, 연구소 초기 주요 구성원들은 누구였나?

■ 임종국 선생님은 본래는 문학을 전공해 『이상 문학 전집』을 내신 분인데,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계기로 해서 친일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도서관 직원인 줄 알 정도로 도서관 자료를 다 뒤져 『친일문학론』을 엮어냈다. 그게 당시로서는 지식인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 커다란 충격이었고, 반향을 일으킨 저서다. 선생님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친일문제 저술을 계속 냈다.

초대 소장은 김봉우 선생이신데, 전문학자는 아니었다. 민주화운동을 해서 옥고도 여러 번 치렀다. 당시만 해도 친일은 예민한 문제였는데, 김봉우 선생이 거대한 일제시대 자료집을 냈다. 상당히 일제시대에 관한 구체적인 감각이 있었다. 더구나 현역 중진 교수 중에 소장을 맡을 분이 마땅치 않아 김봉우 소장이 맡게 됐다. 나는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고, 초대 이사장은 이돈명 변호사님이 맡았다.

지금 김봉우 선생은 독도 운동을 하고 계시고 나와 김민철 선생은 지금까지 연구소를 지키고 있다. 초대 이사장 이돈명 변호사, 2대 조문기 선생, 송건호, 리영희 선생 등 많은 어른들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셨다. 특히 부민관 폭파 의거 주역이셨던 조문기 선생께서 『친일인명사전』 출간을 보지 못하고 영면하신 것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한 건도 패소한 적이 없고 다 승소했다"

   
▲ 2009년 11월 9일 백범 김구선생 묘역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공식 선언하는 (왼쪽부터)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후 반응과 판매 상황은 어떤가?

■ 사전이 출간되고 난 뒤에는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한쪽은 그야말로 횡포에 가까운, 격렬하게 비난하는 극우 보수세력이 있었고, 압도적 다수는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반응을 보였다.

반향이 상당히 컸다. 지금은 초판에 이어 3쇄 째인데, 4천여 질 가까이 나갔다. 고가인 점을 감안하면 출판계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엄청나게 나간 것이다. 조직 판매도 아니고 대부분 개인 구매다. 영업망 가동도 아직 안했다. 그런데도 많은 양이 나갔다는 것은 시민들의 바른 역사에 대한 희구랄까, 역사정의 실현에 대한 열정이랄까 이러 것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젊은층이나 일부에서 고가여서 개인 소장이 부담스럽다며 보급판 발간 건의가 들어온다.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풀어쓴 친일인명사전’이라든지 인터넷 서비스 등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있다.

□ 사전 발간으로 법적 소송도 진행됐고, 일부 사전 등재 인사들의 서훈 취소도 있었다고 들었다.

■ 소송은 작년 한 해 내내 진행됐고, 한 건도 패소한 적이 없고 다 승소했다. 박정희, 장지연, 홍순일(박정희 동서)이 있고, 화가 장우성 일제검사 엄상섭은 일찍부터 소송을 걸었다. 엄상섭 같은 이는 훌륭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과오는 과오대로 기록해야 한다. 지금은 홍순일 관련 재판 하나만 남았다.

서훈 취소는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보훈처 안에 서훈심사위원회가 있는데, 특히 독립유공자 서훈은 대단히 엄격해 조그만 허물이 있거나 친일 혐의만 있어도 보류하는 엄격한 심사기준이 있다. 보훈처 서훈취소심사위원회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김성수를 제외하고 사전에 등재된 19명에 대한 서훈 취소를 결정했다.

보훈처 심사위원회는 가장 전문가로 구성돼 있지만 서훈 당시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물정보가 지금같이 치밀하게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동안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친일인물 DB가 가장 잘 구축돼 있고, 국사편찬위원회나 학술기관 등에서 자료의 정보화가 상당히 진척돼 있다. 지금 상황에서 과거 오류들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잘못된 서훈이 지금이라도 바로잡혀졌다고 긍정적으로 봐야한다.

다만 보훈처가 행정안전부로 넘겨서 행안부에서도 문제 없다고 국무회의에 상정했지만 아직 국무회의 의결이 보류되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나 싶다. 정부쪽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간연구소에서 낸 성과지만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보훈처에서도 타당성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민간 연구 성과를 받아들였다는 측면에서 일보 진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후 후속사업은?

■ 앞으로 나와야 될 책이 ‘일제협력단체사전’ 중앙편, 지방편, 해외편이 있고, ‘식민통치기구 사전’, 그 다음에 ‘창씨명 사전’이 있다.

『친일인명사전』도 예산과 인력이 모자라 1차분에서 빠진 지방, 해외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강작업을 진행 중이고 보유(補遺)편, 장기적으로 개정판까지 내놔야 한다.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으로 보고, 연구소의 기간사업으로 진행될 사안이다.

사전 발간이 일종의 핵심이라고 본다면 일단락은 지었다고 본다. 그러나 연구나 이후의 후속조치, 실천운동 등등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역사관 건립, 동아시아 역사문화운동 중심으로 서고 싶다"

   
▲ 역사관 건립을 당면 주요 과제로 강조한 조세열 사무총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 추진에 대해 소개해달라.

■ 사전을 만들면서 많은 유물과 자료를 모았다. 학술적인 기반도 상당히 축적이 됐고, 귀중한 가치있는 자료들이 집대성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친일인명사전』도 대중적 접근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연구자들이나 관심있는 시민 분들 외에는 내용도 딱딱한 측면이 있어서 접근성에 문제 있다고 보고, 이걸 청소년 시민들에게 보다 생생하고 구체성 있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역사자료관 설립을 구상하게 됐다.

3만여 점의 유물과 3만여 점의 도서가 그간 수집해서 잘 정리돼있다. 사장시키기 아까운 이 자료들을 토대로 근현대사 최대, 최고의 전문 역사관을 목표로 해서 과거사 청산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동아시아 역사 문화교류의 장도 되고, 시민참여형 교육문화 공간도 되도록, 크게 봐서는 동아시아 역사문화운동 중심으로 서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

□ 상당한 자금과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 서울에서 대지를 사서 건축하는 것은 민간모금으로는 불가능하고, 기존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해서 사용할 예정이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2012년 연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50억원을 모을 예정이다.

연구소가 10억원을 출연할 계획인데, 친일인명사전 수익금 5억, 송기인 신부께서 진실화해위원장 재직시 받은 급여 전액 2억원을 통장째 내놓으셨고, 김병상 이사장님을 비롯한 후원금이 1억원, 연구소 내부 임직원이 2억원 정도 모으면 된다. 해외를 포함해 시민모금 30억과 연관단체나 기업에서 10억을 더해 50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이화 선생님이 추진위원장을 맡으셨는데, 만약 어느 지자체에서 대지를 내놓는다면 변수가 생길 수 있다.

□ 지난 정부 때 발족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이 현 정부 들어 거의 종료됐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 중 일부 위원회들은 그나마 조금 성과를 내고 마무리됐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라든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등은 상당히 성과를 내고 해산하게 됐다. 사실은 본래 특별법에 보면 사료관이나 재단 설립 등 후속조치도 포함돼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후속조치가 전혀 없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더 심하다. 마지막에는 위원장이 교체되면서 위원회 내부에서 크게 반발이 일 정도로 정리단계에서 너무 퇴행적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는 두고두고 상당히 문제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과거사 청산 문제는 한 정권의 문제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보는데, 나라와 민족이라는 큰 시야에서 바라보고 미래세대를 위한 작업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는데, 현 정권에서 너무 적대적 시각에서 보지 않았나 생각된다. 도로(徒勞)가 된 점이 적지 않다.

현 정부 3년, "엎어버린 3년"

   
▲ 그는 이명박 정부 3년을 '엎어버린 3년'이라고 명명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일 정책 등 대외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제언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

■ 전문가가 아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내건 모토가 실용정부였는데, 이렇게 비합리적인 정책을 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대 조류에 맞지 않는 냉전적 사고방식이고, 현실적으로 국가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꾸준히 갖고 있고, 이같은 생각에 갈수록 확신을 가지게 된다. 3년간 대단히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결과 외에는 얻은 게 없다.

토건사업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한다면 왜 토건사업을 4대강에서 벌이고 있나. 기반시설이 부족한 북한도 있고 시베리아나 만주, 그야말로 실용적 관점으로 뻗어나갈 데가 많은데, 반 실용적인 정책들을 펴고 있다. 전문가 아니지만 평화정착이라든지 통일지향 관점에서 볼 때 굉장히 걱정이다.

대일정책도 전혀 개념이 없다. 작년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전기가 될 수 있는 시기였고, 일본에서도 상당히 나름대로의 제스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반응이 절실하지 않고 시큰둥한 반응 보이니까 문화재 일부 돌려받는 보여주기식 해프닝으로 끝난 감이 적지 않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가 하나도 없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사할린조선인문제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 하나도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조치가 없었다. 미래지향은 말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화해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그래서 거칠게 정리하자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현 정부를 ‘엎어버린 3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전문가가 아니니까 조언할 위치에 있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집권 당시 외쳤던 실용주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친일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그는 친일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며 민족주의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우리 사회의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극복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탈민족주의라는 게 정말 현실에 맞는 이론인가 의구심도 좀 갖는다. 이상적으로 보면 ‘세계 시민주의’랄까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맞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강대국들도 민족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적 형태로 경향상 진행하고 있고, 또 민족주의란 게 엄연히 국제현실 속에서 발생되고 있는데 외면할 수만은 없다.

탈민족주의라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은 있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지구촌이 되어 교류도 많고 우리 경우도 다문화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민족차별이라든지 이런 것은 엄연하게 철폐되어야 할 문제다. 고유문화라든지 전통을 존중하면서 다문화 사회, 서로 이해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는 잘못된 것이 명백하다.

또 한 가지, 우리 연구소 같은 경우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배타적이거나 국수적이지 않다. 오히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권이나 평화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민족문제연구소에 가입해 지원하고 있다. 이런 것만 봐도 ‘한국 현실 민족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다.

일부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존재한다. 그건 사실상 파시즘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정희식 ‘유사 민족주의’, ‘위장 민족주의’다. 잘못된 민족주의는 민족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이다.

박정희가 민족주의를 가장 악용한 사람인데 박정희를 추종하는 뉴라이트쪽은 민족주의에 가장 적대적이다. 극우민족주의는 굉장히 모순된 양태를 보인다.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광분해서 민족문제연구소를 말살하자고 나선다. 그런데 독도문제는 제일 앞장서서 단지(斷指)도 한다. 기준이 어디 있는가 참 궁금하다. 일관되지 못한 거다. 극우보수세력의 특징은 주류,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추종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선호하는 다수 시민들은 오히려 보편적 가치라든지 상식을 추구하는 건전한 집단이라고 본다. 내가 현장에서 뛰면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느낀 것이다.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년간 활동하시면서 느낀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은?

■ 연구소는 그간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IMF 때는 회원들 상당수가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본의 아니게 탈퇴한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게 그분들 상당수가 연락을 드린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회원으로 돌아왔다.

어려움을 많이 겪고 압박도 많이 받았는데 연구소에 용기를 주신 분들이 결국 시민들이다. 국민모금의 열기를 보여주신 시민들, 특히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저희들은 심부름한 것이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힘으로 해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1단계 사업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발간 일정에 대한 약속을 여러 번 어겨 죄송하게 생각하는데, 결국 내놓았고 전문학계의 평가도 상당히 좋다.

2단계 과제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연속선상에서 역사의 대중화라는 책임을 정말 맡고 싶다. 지금 여러 움직임 있는데 역사왜곡 현상이 심각하다.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조국 근대화의 영웅으로 내세우고, 이런 의도를 갖고 광화문에 대한민국관을 건립하고 있다. 대한민국사의 정통을 뉴라이트 입맛에 맞게끔 왜곡시키겠다는 것이다.

친일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뉴라이트와 같이 퇴행적 역사인식을 확산시키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친일 인물들에 대한 기념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민들께서 저희들한테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을 세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시면 그런 움직임을 막는데 사전을 만들었듯이 최선을 다해 막아내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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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의식 () 2011-02-27 01:15:21
경제난에 시달린 북한이 돈 좀 뜯어 보자고 일본에게 배상요구해도 일본이 줄 것 같냐!! 이미 일본군장교 박정희가 경제개발비용 차관하면서 협약으로 면죄부주고 독도영유권까지 포기해 버렸으니 말이다. 종북주의개쌍도인들 안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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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열 () 2011-02-27 10:52:43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분단 체제 지배에 계속되고 있다 분단 체제의 계속을 그대로두고 민족의 주체성의 확립은 있을 수 없다 민족 연구소의 친일 인명부의 발간은 북쪽의 정권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희생자까지도 추방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자력으로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기만성은 비슷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민족의 굴욕이면 분단 체제 지배도 민족의 굴욕이다 위안부의 존재가 민족의 굴치이면 조선인의 특공대의 존재도 민족의 굴욕이다 베트남의 민족 해방 전쟁에 한국군의 개입은 최대의 민족의 굴욕 행위이다 굴욕을 굴욕이라고 느끼는 것이 과거를 청산하는 일과 올바른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된다 이전 북쪽을 방문했을 때에 북쪽의 젊은 여성에게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소망하니 김일성의 찬가가 않이고 친일 인명부에 올인 홍란파의 고향의 봄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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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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