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은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ㆍ통일ㆍ국방장관들에게 바쁜 하루였습니다. 다름 아닌 이들 부서들이 대통령에게 ‘2011년도 업무계획’ 보고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업무보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년도 우리 정부가 펼칠 외교ㆍ안보ㆍ통일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 세 부서들이 보고한 내용들은 대개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비현실적이고 대결적입니다. 게다가 급조한 느낌마저 듭니다.

먼저, 외교통상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통일 외교’를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외교부는 ‘통일 외교’에 대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변 국가들의 도움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면 ‘외교’면 됐지, ‘통일 외교’라는 조어(造語)는 무엇입니까? 이는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비해 국제적인 여건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통일부는 2011년 3대 정책 추진목표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 △바른 남북관계 정립 △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제시했습니다. 요지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통일 준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도대체 무슨 지렛대를 가지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또 북한과 만나지도 않으면서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인지 영 알 수가 없습니다.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요.

또한,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 △‘전투형 군대’ 만들기 △국방개혁의 강도 높은 추진 등 3개 중점과제와 함께, 핵심 추진과제로 ‘서북해역사령부’와 ‘합동군사령부’ 창설을 제시했습니다. 일만 터지면 뭔가를 만듭니다. 사실 군은 축소의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조직 비대화를 가져와 군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자, 특정 지역에 전쟁부서가 하나 더 늘어나 필경 상대편을 자극할 것입니다.

2011년도 업무보고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세 부서가 무엇인가로부터 외상(外傷)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북한이겠지요. 이들 세 부서는 올해 북한으로부터 많은 것을 당했습니다. 외교부는 국제무대의 ‘천안함 외교’에서 사실상 북한에 완패를 당했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이제까지 북한과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 자격지심(自激之心)에 부대낄만합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겪으면서 경계와 안보에서 모두 국민적 불신에 휩싸였습니다. 맞습니다. 이들 세 부서들의 공통점은 대북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환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에 대해 이토록 경기(驚氣)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급조된 ‘통일 외교’와 ‘통일 준비’를 외치고 ‘서북해역사령부’를 창설하자고 소리치는 세 트라우마 환자들의 합창이 참 처연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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