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올해도 2,3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세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답보되거나 후퇴했습니다. 한반도에서 3월에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났으며 11월에는 남북이 연평도에서 포격전을 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사건이 한반도 정세를 무겁게 짓누른 한 해였습니다. 남북 당국간 및 민간 교류는 꽉 막혔습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가 미국에게 유인책이 될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2010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민간교류 ⑤통일운동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인도주의 :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종,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이나 태도.

'인도주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항상 변화하는 남북관계 틀 속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인도적 정책은 '인도주의'의 사전적 의미에서 크게 벗어났다.

통일부는 1월 민간단체들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 방침으로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에 집중해 북한 취약계층에 순수 인도적 물자를 중점 지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이유로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 구호성 사업만을, 그것도 선택적으로 지원한 방침을 연장하겠다는 의미였다.

특히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전'으로 이어진 남북간 군사적 대립은 정치적으로 비화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였다.

95년이래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이나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상황 통계를 보면 '천안함', '연평도'라는 두 사건이 준 영향은 상당하다.

통일부가 발간한 <2010 남북교류협력동향 11월호> '대북 인도적 사업' 편 통계에 따르면 95년부터 2009년까지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14,642억원, 민간의 대북지원은 8,262억원이었다.

그러나 2010년 11월 현재 정부는 128억원, 민간은 204억원에 그쳤다.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해인 2008년 438억원(정부), 725억원(민간)이라는 금액 보다 더 낮은 액수로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의 240억원(정부), 182억원(민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5.24조치, 통일부 '변명'에 힘 빠진 '대북 인도적 지원'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은 통일부의 계속된 반출불허에 대한 변명으로 힘을 받지 못했다.

통일부는 지난해에 이어 2010년에도 '취약계층'에게 보내는 사업에만 제한적으로 반출승인을 해왔다. 게다가 '평양 이외 지역'을 명시하도록 민간단체를 암묵적으로 압박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 보복으로 발표된 '5.24 대북조치' 이후 통일부는 통일부식 '영유아 취약계층' 정의로 민간단체의 지원물자 반출을 제한해왔다. 심지어 이러한 선별 반출 승인에 불만을 품은 일부 단체는 '인도주의'에 입각해 편법적으로 대북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윤상 북민협 정책위원장은 "권력계층에 속하지 않는 북한 주민들은 모두가 취약계층으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라며 "어린이와 환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북한 당국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식량난과 질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반박했다.

이러한 통일부식 '취약계층' 정의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양 이외의 지역'이라는 배분지 선별 압박은 민간단체들을 힘들게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7월 "특정 지역은 배제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평양은 열악한 산악지역 지방보다 여건이 좋은 것으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같은 재원이라면 어려운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인도지원 관련 반출계획서 신규 양식을 통해 분배지역, 수혜자 등을 명시하도록 개정했다. 하지만 단순히 지역만으로 분배 투명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일었다. 더구나 통일부는 분배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분배 모니터링을 위한 지원단체 관계자들의 방북을 막았다.

실제 지난 8월 '평화3000'의 평양과 평안남도로 보낼 옥수수 60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콩우유사업본부의 평양으로 보낼 콩 원료 2만4천불어치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 사업이지만 보류된 상태였고 결국 불허됐다.

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구 양식에는 분배지역 명시 대신 분배지 투명성 확보를 언급하는 수준이었으나 변경된 양식에 따라서 평양을 적어 제출했는데 반출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평양을 의도적으로 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정부도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방관만 하지는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북한 지역의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타미플루 50만명분 지원에 이어 올해 2월 손 소독제 20만리터(10억원 상당)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8월 신의주, 개성 일대에서 발생한 수해 긴급구호를 위해 대한적십자사 차원으로 쌀과 시멘트 등 120억원 어치 중 일부를 보냈다. 그러나 이 것 뿐이었다.

'먹거리의 정치화'란 롤러코스터 탄 대북 쌀지원

5.24조치로 중단 위기에 놓인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은 8월 북한 수해 피해 소식이 알려지자 긴급구호를 명분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특히, 대북 쌀 지원의 목소리가 컸다. 이는 대북 수해지원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과 함께 쌀값 폭락으로 인한 농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맞닿아 폭발력을 지닌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됐고 민주노동당과 경상남도도 대북 쌀 지원에 힘을 보탰다. 마침내 지난 9월 쌀 203톤이 육로를 통해 개성을 거쳐 신의주로 전달됐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의 발언과 통일부의 대북 쌀지원 선별승인에 '인도주의적 대북 쌀 지원'은 '먹거리의 정치화'란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남한 쌀을 지원받으면 군량미로 비축하고 기존의 쌀을 방출한다"며 민간단체와 정치권, 지자체의 대북 쌀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통일부도 지자체의 쌀 지원을 '정부차원'이라고 못 박으며 반출승인을 불허했다. 결국 지자체의 협력으로 대북 쌀지원에 탄력을 받을 것이란 민간단체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전'으로 대북 쌀지원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대북 인도적 지원' 연평도 포연과 함께 사라지다.. '인도주의' 되찾아야

북한 수해 피해 긴급지원으로 기지개를 켠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으로 전면 중단됐다.

창고에 쌓여있던 대북 지원물품들은 발이 묶여야 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모은 수해지원 쌀은 더 이상 북한 지역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심지어 통일부는 대한적십자사가 북한 수해 지원을 위해 중국에 보관 중이던 시멘트 등 물자들을 환수조치 했다. 결국 '인도주의'는 연평도 포연과 함께 사라졌다.

북한적십자사는 “남조선적십자사가 괴뢰 호전광들의 시녀가 되여 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선포한 조건에서 우리도 더이상 인도주의 문제 해결에 연연할 생각이 없다"며 "대화와 북남관계 개선을 그토록 집요하게 반대하며 사사건건 가로막은 역적패당의 속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민간단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전쟁 중에도 인도적 지원은 이어지듯이 현 남북관계에도 대북 인도지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지금 워낙 '전쟁이냐 아니냐'라고 하는데 전쟁 중이라도 인도지원은 진행된다"며 "여전히 인도지원이 남북관계를 끌고 갈 수 있다는 호소력있는 구호를 외쳐야 한다. 희망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푸는 실마리였다.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조된 한반도 전쟁위기감을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대북 지원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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