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취한 긴급조치

2010년 12월 6일 밤 마이클 멀린(Michael G. Mullen) 미국군 합참의장은 찰스 재코비(Charles H. Jacoby, Jr.)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을 대동하고 워싱턴 근교에 있는 앤드루스 공군기지(Andrews Air Force Base)를 이륙한 미국군 군용기에 몸을 실었다. 군용기는 2010년 12월 8일 새벽 오산 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멀린 합참의장의 서울 파견은 급하게 추진되었다. 합참본부 대변인 존 컬비(John Kirby) 해군 대령은 합참의장의 서울 파견이 “지난 주 늦게(12월 3일을 뜻함)에 결정되었다”고 말했다. (Stars & Stripes 2010년 12월 6일) 미국군 합참의장의 긴급한 해외 파견은 이례적이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합참의장 긴급 파견을 결정하였음을 말해 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합참의장을 서울에 급파한 목적이 무엇인지 암시하는 미국군 소식지의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군 합참본부 대변인 존 컬비(John Kirby) 해군 대령은 서울에서 열릴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를 비상사태 협의(emergency consultation)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국 국방부 관리는 “급하게 계획된 그의 순방 목적은 한국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Stars & Stripes 2010년 12월 6일)

멀린 합참의장이 한반도 비상사태를 협의하기 위해 서울을 급히 방문한 것이 아니라는 컬비 대령의 말은 무슨 뜻일까? 그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11.23 포격전으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의 군사상황을 비상사태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 군부는 11.23 포격전 이후 자위권 발동설을 꺼내들고 실탄사격훈련을 재개하는 바람에 남측 국민들이 긴장한 판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의 현 상황이 평시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그렇게 판단한 것일까?

또한 한국 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하기 위해 멀린 합참의장을 서울에 급파하였다는 미국 국방부 관리의 말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 60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미국 군부가 한국 군부를 지지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한국 군부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기 위해 멀린 합참의장을 서울에 급파하였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그 말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위에 나온 미국 국방부 관리 두 사람의 말은, 11.23 포격전으로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미군사관계에 시급한 현안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멀린 합참의장이 서울을 급히 방문하였음을 암시한다.

2010년 12월 8일 오전 멀린 합참의장은 한국군 합참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에 참석하였다. 11.23 포격전으로 한미군사관계에서 발생한 시급한 현안을 토의한 자리가 바로 한미 합참의장협의회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멀린 합참의장을 서울에 급파한 것은 한미 합참의장협의회를 개최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그 협의회는 11.23 포격전으로 한미군사관계에서 발생한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취한 긴급조치였던 것이다.

공동성명 핵심문장에 담긴 암시

한미 합참의장협의회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므로 회의 내막을 파악할 길은 없으나, 협의회 이후 오후 3시 30분에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한미 합참의장 공동성명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협의회를 긴급 개최한 의도를 짚어볼 수 있다. 공동성명에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우선적으로 보완해 북한이 재도발할 경우 동맹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합의했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이 핵심문장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11.23 포격전 이후 한반도 군사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언급한 것이다. 간략하고 암시적으로 쓰여진 그 문장을 정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동성명 핵심문장은 국지전 작전계획을 시급히 보완한다고 지적하였다. 국지전 작전계획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미국군 합참본부의 작전방침에 따라 보완하는 것이다.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멀린 합참의장은 월터 샤프(Walter L. Sharp)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앞으로 국지전 작전계획과 훈련을 개발하기 위해 한국 군부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Stars & Stripes 2010년 12월 8일) 원래 한국군 합참본부에게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제시하는 작전계획을 수행할 의무만 있을 뿐이고, 작전계획을 수립하거나 보완할 권한은 없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이 규정한 대로 작전계획수립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행사한다.

한미 합참의장 공동성명은 국지전 작전계획을 보완한다고 표현하였지만, 11.23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작전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을 보면, 불충분한 국지전 작전계획을 이번에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없었던 국지전 작전계획을 새로 작성한다고 표현해야 옳다. 미국군 합참본부는 북침 전면전 작전계획은 마련해 두었으나, 국지전 작전계획은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공동성명 핵심문장은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재발할 경우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응한다고 지적하였다.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 군사상황을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은 적이 없고, 11.23 포격전도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응하였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한미동맹 차원에서 국지전에 대응하겠다니 무슨 뜻일까? 두 가지 뜻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국지전에 대응한다는 말에 담긴 첫 번째 뜻은, 공동성명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식으로 국지전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한미군사관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국군이 지원하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한국군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는 주종관계이므로, 미국군이 한국군을 최전방에 앞세워 국지전에 대응한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안전한 후방에서 한국군에게 국지전 작전명령을 내리고, 한국군은 최전방에서 인민군과 국지전을 벌이게 된다는 뜻이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국지전에 대응한다는 말에 담긴 두 번째 뜻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단독으로 국지전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미국군 합참본부의 지시에 따라 국지전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지전 대응방식을 이해하려면, 11.23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때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작전상황을 단독으로 판단하지 못하였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포격전 당일 오후 8시 30분께 태평양사령부에 대북 군사정보를 요청하였다.(한국일보 2010년 12월 10일) 대북 군사정보를 태평양사령부에 요청해야 하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국지전 상황을 단독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재발하는 경우,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단독으로 한국군에게 작전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 합참의장협의회를 진행하는 긴급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미 합참의장협의회를 진행하는 긴급조치를 취한 까닭은, 한반도 국지전에 대한 대응을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우려하는 한반도 상황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급파결정에 따라 서울에 나타난 멀린 합참의장의 발언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판단을 엿볼 수 있다. 오산 공군기지에 내린 멀린 합참의장은 미국 기자들에게 “나는 북코리아가 일련의 도발을 멈출 것이라는 환상을 갖지 않았고, 그들이 또 다른 핵실험을 실시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말했다.(American Forces Press Service 2010년 12월 7일 보도자료) 그의 발언에 담긴, 한반도 군사상황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판단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멀린 합참의장의 발언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재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한국군 해병대의 강습상륙전 포격연습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고, 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앞으로 한국군 해병대가 그 수역에서 강습상륙전 포격연습을 재개하는 경우 포격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국지전은 2011년에 재발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군 해병대가 서해 5도 분쟁수역에서 강습상륙전 포격연습을 기어이 강행하여 북측을 자극하면, 인민군은 기습포격으로 대응할 것이고, 11.23 포격전에서 참패하여 보복기회를 노리는 한국군은 인민군에게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1.23 포격전보다 더 격렬한 국지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국지전이 재발할 경우 한국군이 또 참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인민군이 국지전 재발에 대비하여 한국군을 제압할 작전준비를 마치고 군사적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도 인민군이 군사적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인정하였다.(연합뉴스 2010년 12월 7일)

군사분야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11.23 포격전은 한국군과 인민군의 작전능력 격차가 벌어져, 인민군이 한국군을 군사적으로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60년 동안이나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미국군에게 의존하였으니,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갖지 못하고 쇠약해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 한국군은 쇠약한 상태에 있다. 이를테면, 입대기피증이 전사회적으로 만연되었고, 군의 정신력과 기강이 해이해졌고, 작전통제권이 없어서 전략전술을 개발하지 못했고, 각종 군사장비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군사장비를 불균형적으로 수입하여 기존 성능마저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11.23 포격전보다 더 격렬한 국지전이 일어나 한국군이 더 큰 인명피해를 입고 참패할 경우, 청와대와 군부는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반도 국지전이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보다 국지전이 개발할 경우 한국군이 또 참패할 가능성을 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지전 대응을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로, 멀린 합참의장의 발언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지전과 북측의 핵실험이 한꺼번에 일어날 가능성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북측의 핵실험을 감시할 기상관측항공기(WC135)를 오키나와(沖繩)에 있는 가데나(嘉手納) 주일미공군기지에 배치하였고(산케이신붕 2010년 11월 23일), 북측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현장을 촬영하기 좋은 쾌청한 날을 골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하핵실험장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동아일보 2010년 12월 7일)

만일 인민군이 국지전에서 한국군에게 또 다시 참패를 안겨주고, 전격적으로 핵실험까지 실시하는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지전 대응을 주한미국군사령부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청와대와 군부가 꺼내놓은 자위권 발동설

1953년 정전 직후,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쓴 미국군사령관이 만들어놓은 현행 ‘정전시 유엔군사령부 교전규칙’은,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군은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동종(同種), 동량(同量)의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한 작전지침이다. 교전규칙을 만들어놓은 목적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와 군부에서는 교전규칙을 넘어선 자위권 발동설이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다. 자위권 발동설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2010년 5월 24일 그는 천안함 사태에 즈음하여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북측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위권 발동설을 해석한 사람은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이다. 2010년 12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자위권은 적이 먼저 도발했을 때 응징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현재 교전규칙 상의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응징)범위는 적의 도발의지가 꺾일 때까지다.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지금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7일 김관진 신임 국방장관은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과 국방부 산하 기관장 150여 명이 참석한 회의를 주재하였다.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회의는 어느 때보다 결연하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그 회의에서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한의 도발을 최대한 억제하되, 도발 시에는 예하 지휘관에게 자위권 행사를 보장해 적 위협의 근원을 제거할 때까지 강력히 응징하라”고 지시했다.(연합뉴스 2010년 12월 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자위권 행사는 국가의 고유권한으로 다른 나라의 동의나 양해를 받을 사항이 아니다. 교전규칙보다 우선하는 게 자위권으로, 교전규칙이 자위권을 대체하거나 축소하지 못한다. 자위권과 교전규칙이 서로 부합하지 않으면 당연히 자위권이 우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10년 12월 8일)

청와대와 군부가 말하는 자위권 발동은, 전투기를 동원한 대북 공습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 전투기 공습으로 인민군의 공격원점을 정밀타격하여 위협의 근원을 분쇄하겠노라고 큰 소리를 친 것이다.

그러나 대북 공습을 강행하겠다는 말은 11.23 포격전 참패에서 벗어나려는 허풍발언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한국군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대지 미사일로 북측의 공격원점을 파괴하는 공습은, 폭격훈련이 아니라 교전이다. 그런데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에 따르면, 교전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명령하는 것이지 한국군 합참의장이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폭격훈련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교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11.23 포격전에서 한국군 합참본부가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F-15K 전투기 4대를 출격”시키고, 한미연합사령부에 공습을 “건의”하였는데, 한미연합사령부는 3시간 30여 분 동안 회의를 계속한 끝에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대북 공습을 “만류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한국일보 2010년 12월 10일) 그런데 이 보도가 나온 당일,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위의 보도내용을 수정하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보도자료에서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북한에 있는 목표물을 폭격하기 위한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이 말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 합참본부로부터 공습 허가를 요청 받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한국군 공습작전 명령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만 있고, 더욱이 전투기에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하여 공습태세로 출격시키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명령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재구성하면, 11.23 포격전에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국군 전투기를 공습태세로 출격시켰으면서도 3시간 30여 분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작전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끝에 대북 공습을 하지 말라고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지시하였던 것이다.

미국군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44년이 지난 1994년 12월 1일에 한국군에게 평시 작전통제권을 반환하였지만,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을 채택함으로써 교전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여전히 장악하도록 조치하였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받아간 평시 작전통제권이란 알맹이 없는 껍데기다. <한국일보> 2010년 12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한미연합권한위임사항이란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교전권, 군사적 위기에 대처하는 위기관리권,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작전계획수립권, 군사교리를 작성하는 군사교리개발권, 각종 군사훈련을 기획하고 실시하는 군사훈련시행권, 조기경보를 위한 정보자산을 관리하는 군사정보처리권,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4I)를 가동하는 전술운용권을 포함한 6대 군사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전권, 군사정보처리권, 전술운용권도 없는 한국군 합참본부가 무슨 수로 대북 공습을 할 수 있을까?

국지전 재발 시나리오

만일 국지전이 재발하여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 합참본부에게 한국군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대지 미사일로 북측의 공격원점을 파괴하라고 지시해도, 한국군 전투기는 인민군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습은 고사하고 격추당할 것이다. 왜곡보도만 들어온 독자들은 한국군의 최신형 전투기가 공대지 미사일 한 방으로 인민군의 해안포 기지를 날려버릴 수 있다고 상상하지만, 그것은 왜곡된 군사정보에 길들여진 착각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고 가장 강력한 인민군 방공망은 전자전 공격, 지대공 미사일 공격, 방공포 사격, 전투기 요격,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 가동을 배합한 5중 방공망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행진에 등장한 주체식 요격미사일종합체는 미국군의 전면적 공습에 대응하는 것이므로, 한국군의 제한적 공습에는 동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민군은 전자전 공격, 지대공 미사일 공격, 방공포 사격, 전투기 요격을 배합한 4중 방공망으로 한국군 전투기의 제한적 공습에 대응할 것이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대북 공습에 동원할 전투기는 2005년에 미국에서 수입하여 2007년에 작전배치한 최신형 F-15K(Slam Eagle)다. 다른 기종은 공습능력이 떨어져 동원하기 힘들다. F-15K가 인민군의 4중 방공망 밖에서 공격원점을 타격하는 방도는 사거리가 매우 긴 통합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 JDAM)을 쏘는 것이다. 이 미사일을 제작한 미국 보잉(Boeing)사가 2010년 6월에 펴낸 자료에 따르면, F-15K에 장착하는 통합직격탄(Standoff Land Attack Missile Expanded Response) 슬램-이알 (SLAM-ER)의 사거리는 241km이며,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 GPS)로 비행한다. 순항미사일이므로 음속보다 느린 초속 245m 정도로 날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인민군이 고도 30km, 사거리 300km의 지대공 미사일(SA-5)로 F-15K를 위협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F-15K는 통합직격탄을 241km 밖에서 쏠 수밖에 없다. 통합직격탄을 241km 밖에서 쏘면 표적까지 날아가는 데 16분이 걸린다. 촌각을 다투는 전투상황에서 16분이라는 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인민군은 전자전 공격으로 그 미사일의 위성항법 비행궤도를 교란할 것이며, 비행궤도에서 이탈한 미사일을 방공포로 집중사격하여 공중격파할 것이다. 수구언론매체들은 한국군 전투기가 통합직격탄으로 정밀타격하여 인민군의 공격원점을 파괴할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그것은 복잡하게 전개되는 전투상황을 알지 못하고 통합직격탄의 성능만 생각하는 단순무식한 소리다.

통합직격탄 같은 정밀유도무기는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연합뉴스> 2010년 10월 6일 보도에 따르면, 2010년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동안 인민군의 강력한 전자전 공격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전라남도 홍도에 이르는 서해 상공에서 여러 시간 동안 전파수신이 간헐적으로 중단되는 미증유의 사태가 일어났는데, 방해전파 발신지가 개성이었다는 점이다. 인민군 전자전 부대는 왜 개성에서 방해전파를 쏘았을까?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방해전파를 쏘면 더 멀리 방사할 수 있으므로, 개성 부근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방해전파를 쏘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 해발고도가 757m인 천마산이 있다. 천마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한 각도의 직선을 내리그으면, 충청남도 태안군 격렬비열도 인근해상을 거쳐 전라남도 홍도까지 이르는데, 그 거리는 396km다. 이것은 방사거리가 400k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자전 장비를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인민군의 전자전 공격에 대비하여 F-15K는 두 가지 대응장비를 장착하였다. 적외선 탐색추적기(infra-red search and track, IRST)와 레이더 경보기(radar warning receiver, RWR)다. 인민군이 방해전파를 쏘는 경우, F-15K에 장착된 레이더가 교란되어 전자시계(電子視界)가 가려지면 적외선 탐색추적기로 시계를 확보하게 된다. 이 장비는 전파를 쏘아 상대를 파악하는 레이더와 달리 열(적외선)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파악하므로 인민군이 전자전 공격을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그러나 F-15K에 장착된 탐지거리 100km의 레이더(APG-63V1)에 비해 적외선 탐색추적기의 가시거리는 제한적이어서 30km밖에 내다보지 못한다. 따라서 F-15K가 인민군의 공격원점을 정밀타격하려면 30km까지 접근해야 한다. 30km까지 접근하는 것은 인민군의 방공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민군이 서해 상공에 설정한 공습저지선을 F-15K가 넘는 순간, 인민군의 전자전 장비는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고, 고도 40km, 사거리 50km의 지대공 미사일(SA-2)이 자동으로 발사된다. 인민군이 쏜 지대공 미사일이 추적전파를 방사하면서 F-15K를 향해 날아가면, F-15K에 장착된 레이더 경보기가 경보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면 조종사는 지대공 미사일을 따돌리는 금속조각(Chaff)이나 불덩이(Flare) 같은 교란물체를 방출하고 긴급히 회피기동을 해야 한다. 그 사이에 황해남도에 전진배치되어 비상대기 중인 인민군 전투기 미그-29가 긴급 출격한다. 인민군은 11.23 포격전 당시에도 황해남도에 전투기들을 전진배치하여 긴급출격 대비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기종 성능만 비교해 봐도, 미그-29를 상대할 만한 한국군 전투기는 F-15K밖에 없다. 미그-29는 사거리가 170km인 공대공 미사일(R-27)을 장착하였고, F-15K는 사거리가 105km인 공대공 미사일(AMRAAM)을 장착하였으나, 전자전 공격이 벌어지는 근접공중전(dogfight)에서는 공대공 미사일이 무용지물이다. 근접공중전에서는 기체가 가볍고 날렵하게 비행할 수 있게 설계된 기종이 무조건 유리하다. 미그-29와 F-15K의 공중기동성을 비교하면 어떠할까? F-15K의 적재 후 무게는 20,200kg, 고도상승률은 초당 254m, 저고도 비행속도는 마하 1.2인데 비해, 미그-29의 적재 후 무게는 16,800kg, 고도상승률은 초당 330m, 저고도 비행속도는 마하 1.25다. F-15K보다 미그-29가 공중기동성이 우세하다.

또한 근접공중전에서 중요한 요인은 조종사의 정신력이다. 엇비슷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들이 근접공중전으로 맞붙는 경우 조종사의 정신력에 승패가 달려있다. 포격전이 일어났던 2010년 11월 23일 <조선중앙텔레비죤>은 “김정일 장군 만세 높이 적 항공모함도 핵무기도 우리가 다 까겠습니다”는 구호가 적혀 있고, 전투기 조종사가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그려진 대형 옥외선전판 앞에서 인민군 병사들이 진행한 결의모임을 찍은 보도사진을 방영하였다. 조종사들이 검은색 가죽야전잠바를 똑같이 입은 것으로 봐서, 공군기지 안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이 결의모임을 진행하는 사진이다. 선전판에 쓰여 있는 “김정일 장군 만세 높이”라는 문장은 인민군 병사들이 적과의 전투에서 자폭하는 마지막 순간의 외침을 뜻한다. 11.23 포격전이 일어난 시각,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폭정신을 안고 결의모임을 진행한 것이다.

실제로 2009년 4월 초 북측이 '은하 2호' 발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미일동맹군의 해상전력과 공중전력이 동해에 집결하였는데, 당시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동해에 몰려든 미일동맹군을 역습하기 위해 출격하면서 “성스러운 이 길에서 비록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조국이 준 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겠다”는 내용으로 서약한 “맹세문을 가슴에 품고 결사전에로 나갔다”고 한다.(연합뉴스 2009년 9월 10일)

이처럼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항모강습단을 격침시킬 자폭정신으로 무장하였는데, 한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봉급을 많이 주는 민간항공사로 자리를 옮길 생각이나 하고 있다. 한국군 소령급 조종사의 전역 현황을 보면, 2005년 81명, 2006년 102명, 2007년 138명, 2008년 145명, 2009년 142명으로 늘어나고 있어서(연합뉴스 2010년 6월 20일), 숙련된 공군조종사가 166명이나 모자란다.(연합뉴스 2009년 10월 12일)

또한 근접공중전에서 중요한 요인은 조종사의 비행훈련이다. 한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들보다 비행훈련시간이 더 많다고 하지만, 비행시간이 길다고 근접공중전 훈련을 더 많이 연마한 것은 아니다. 초계비행이나 하면서 비행시간을 늘려놓은 것은 근접공중전 훈련과는 무관하다. 한국군 전투기 조종사의 연간 비행훈련시간은 숙련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연합뉴스 2010년 10월 15일) 인민군 전투기들은 2009년 1월 17일 이후 5월 초까지 한국 군부가 백령도 북쪽 64km 상공에 그어놓은 전술조치선(TAL)에 1,087회나 접근하였는데(연합뉴스 2009년 5월 8일), 이것은 인민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행훈련을 강도 높게 실시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행훈련 중에 빈번히 추락사고를 내는 것을 보면, 그들의 훈련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퇴역을 앞둔 낡은 기종이 비행훈련 중에 고장으로 추락한 사고는 너무 많아 제외하고, 4,300만 달러짜리 한국군 주력 전투기 KF-16이 추락한 사례만 손꼽아 봐도 2002년 2월 26일 충청남도 서산에, 2006년 1월 27일 충청북도 충주에, 2007년 2월 23일 충청남도 보령 앞바다에, 2007년 7월 20일 서해에, 2009년 3월 1일 서해에 각각 추락하였다. 최신형 F-15K도 2006년 6월 7일 동해 상공에서 야간비행훈련 중 추락하였다.

다른 한 편, 2003년 3월 1일 북측 동해안에서 241km 떨어진 상공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미국군 정찰기(RC-135)에게 인민군 미그-29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30m까지 접근하여 강제로 끌어가려고 하였다. 첨단탐지장비를 가동하는 미국군 정찰기가 인민군 미그-29기의 재빠른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인민군이 근접공중전 훈련을 매우 높은 수준에서 연마하였음을 말해 주는 사례다.

근접공중전이 벌어지는 경우, 평소에 연마한 근접공중전 전술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사전을 벌이는 미그-29 조종사를 F-15k 조종사들이 무슨 수로 당할 수 있을까?

돌발적인 모험행동 통제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지전이 재발하는 경우, 한국군 합참본부는 이판사판이니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모르게 인민군 해안포 기지를 공습하는 모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1968년 1.21 사태 직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모르게 제한적인 대북 공습을 강행하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주간조선 제2131호 2010년 11월 15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한국군 합참본부를 통제한다고 해도, 국지전이 재발하여 한국군이 또 다시 참패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한국군 합참본부가 돌발적으로 취할 모험행동을 통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2010년 12월 1일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은 대구 공군기지를 찾아 F-15K 42대가 작전배치된 제11전투비행단의 작전수행 여건을 점검하였다.(연합뉴스 2010년 12월 1일) “대구 공군기지에 있는 F-15K 전투기들은 최근 주야간 정밀폭격이 가능하도록 출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동아일보 2010년 12월 7일)

청와대와 군부가 자위권 발동설을 제기하고, 대구 공군기지의 F-15K 전투기들이 공습출격태세를 갖추고, 공군참모총장이 공습출격태세를 현지에서 점검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국지전이 재발할 경우 한국군 합참본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제한적 대북 공습을 강행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미국군 홍보실(AFPS)이 2010년 12월 7일에 펴낸 보도자료는, 오산 공군기지에서 도착한 멀린 합참의장이 미국 기자들에게 “중요한 초점은,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주어질 것이다. 통상적인 군사훈련이라 할지라도 폭넓은, 전략적인 의의를 고려하면서 한반도를 더 이상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는 방향에서 실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하였는데,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국군 합참본부의 대북 공습 강행으로 한반도 군사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를 긴급 개최한 까닭은, 합참본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대북 공습을 강행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이 명백하다. “한국군이 자위적 차원에서 항공기 폭격을 한다면 미국 측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멀린 합참의장은 “구체적으로 협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회피했는데(프레시안 2010년 12월 8일), 그가 답변을 회피한 공백을 미국 언론보도가 메워 주었다.

한미 합참의장협의회에서 멀린 합참의장은 “북코리아의 추가 도발에 남코리아가 신속하게 대응할 경우, 미국군 전투기를 한국군 전투기와 함께 출격시키는 접근방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괜찮지만, 폭격기 비행은 안 된다(Planning, yes. Bombers in the air, no)”고 말했다.(뉴욕 타임스 2010년 12월 8일) 또한 그 협의회에서 미국군 지휘관들은 “남코리아에게 자위권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국군의) 단독적인 행동을 삼가고 (미국군의) 조절에 따라 대응하도록 그들(한국 군부를 뜻함)을 압박하는 미묘한 태도를 취했으며”(월 스트릿 저널 2010년 12월 8일), 멀린 합참의장은 “앞으로 북코리아의 공격에 대해 남코리아가 단독행동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을 보이는 가운데, 남코리아와 미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말했다.(월 스트릿 저널 2010년 12월 9일)

북측이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하고 핵실험 준비를 재개하는 바람에 잔뜩 궁지에 몰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에게 참패를 안겨줄 한국군 합참본부의 돌발적인 모험행동을 강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