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반도 관련 외교문건을 통해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통일 고위 당국자들의 대북 인식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이들은 대개 미국측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 “중국의 신세대 관료들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2010.2), “북한 보위부가 최근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여객 열차에서 폭탄을 발견했다”(김성환 외교부장관, 2010.2),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5년 이상을 살 것 같지 않다”(현인택 통일부장관, 2009.7) 등이라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붕괴설과 흡수통일론, 김정일 조기사망설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들 발언이 갖는 위험성은 무엇보다도 사실(fact)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 김 위원장이 왕성한 현지지도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것에만 봐도 미국도 김 위원장이 줄담배를 피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이 양호한 것으로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남한의 대북 흡수통일론은 중국 당국의 입장과도 배치됩니다.

외교·안보·통일 분야 고위 당국자들의 대북 인식이 이러니 그들에 둘러싸인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인식도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 개방 3000’이 그렇고, 이 대통령 역시 일찍이 2008년 11월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방미 중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사실상 흡수통일론을 밝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번쯤 북한의 입장에 서거나 또는 북한과 대화를 하자는 ‘현실적인 방법’은 일체 없습니다. 그냥 언젠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죽거나, 북한이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나오거나, 종국에는 북한이 붕괴하기만을 바라는 이른바 ‘기다리는 전략’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망사고(所望思考)가 대북 정책 결정에서 대결과 오판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멀쩡한 사람더러 곧 죽을 것 같다고 한다든지, 2012년에 강성대국건설을 꿈꾸는 판에 곧 붕괴할 것이라고 단언한다면 이는 오판 중에서도 악의적인 오판이 될 것입니다. 이런 대결의식을 갖고 있기에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과 숱한 군사적 충돌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악의적인 오판만을 일삼으니 궁극적으로는 이번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이 북측을 향해 K9 자주포를 쏴도 정조준이 아닌 오조준(誤照準)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