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오는 28일 결성 20년 기념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범민련은 1980년대 후반 통일운동이 대중의 뜨거운 호응 속에 남측 민간 진영을 넘어 전민족적인 연대 조직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생겨났다.

남북해외 3자 연대 조직이라는 범민련의 정체성은 숱한 시련을 가져왔다. 1990년대 당국의 탄압과 감시를 뚫고 범민족대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이 넘는 관련자들이 연행되거나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범민련은 1997년 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때부터 '범민련=이적단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발표 이후 조성된 남북 교류협력의 새로운 시대 흐름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관련 단체들이 북녘을 오가며 교류 활동을 펼치는 동안에도 유독 범민련만은 이적단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정부의 선별 배제와 방북 불허 방침을 감수해야만 했다. 범민련 운동이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더구나 2005년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남북해외의 모든 세력들이 모인 6.15공동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범민련의 입지와 역할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년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이규재 의장 등 지도부가 구속됐다가 헌법재판소가 통신비밀보호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받아들이면서 일시적으로 풀려났지만, 공안 당국의 압박도 다시 거세지고 있다. 현재 범민련 남측본부 관련자 20여 명이 재판 중이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특히 이적단체 규정은 공안 당국에는 더없이 좋은 표적인 까닭에 피해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1990년대나 나올 법한 "범민련 사수" 목소리는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범민련은 결성 20돌을 또 하나의 이정표로 보고 있다. 오랜 숙원인 합법화를 위한 이적단체 규정 철회와 함께 민족대단결 3자 연대 운동을 한 차원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통합과 연대에도 기여하겠다는 포부도 엿보인다. 2003년부터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아온 이경원 사무처장을 만나 결성 20돌을 맞은 범민련의 의미와 역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통일의 본성적 요구인 3자 연대 운동이 바로 범민련"

▲이경원 사무처장. [자료사진-통일뉴스]
□ 통일뉴스 : 범민련이 결성된 지 20년을 맞았다. 어떤 의미인가?

■ 이경원 사무처장 : 20년이라는 기간도 중요한데, '나이만큼 자기 역할을 잘했냐'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오면서 10년 지내왔는데 돌아보면 잘한 것도 있고 반성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범민련이 걸어온 길은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이라는 길에서 3자 연대를 지키면서, 그것을 발전시켜왔다고 하는 데서 범민련의 역할은 성과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범민련 자체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민족의 통일 지향하는 과정에서 범민련이 앞장서서 투쟁해 왔다는 부분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 운동이 발전되어야 되고, 그 운동 속에서 조국통일이 이뤄져야 된다고 보는 것이다.

3자연대 운동은 민족 통일의 본성적 요구다. 그것이 범민련으로 표현된 것이고, 범민련이 그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 온 것이다. 지금 범민련에서 많이 이탈되어 있지만, 여전히 통일운동을 하려면 연대를 통해서 대단결 운동을 해야 되는 문제고, 여기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3자연대 운동의 본성적 기본 내용이라고 하면 '민족 자주'고 '민족 대단결'이다. 통일운동이 기본적으로 민족 자주 정신과 민족 대단결 사상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3자연대 운동이야말로 그 방향에서 일관되게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20년사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한길'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2000년대 들어서 우리민족끼리 이념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범민련 운동은 그야말로 이 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범민련만큼 20년 역사에서 견결하게 투쟁하고 싸워온 조직이 없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범민련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줄기"

□ 범민련이 추구하는 운동 방식이 통일운동에 얼마만큼 기여했다고 생각하나?

■ 범민련이 결성되고 오는 과정에서 통일운동에 기여한 것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 통일운동이 대중화되면서 민족이 단결해야 된다는 기본 방향에서 범민련이 결성된 것이었고, 범민련 말고는 강고했던 혹독한 탄압 속에서 범민족대회 소집 운동을 벌여나가면서 수만 명이 운집해서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고 투쟁해 왔던 경험이 없지 않나. 범민련만이 해 온 것이다. 그것이 6.15시대 들어서면서 누구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교류하는 폭이 확장되어 왔지만, 통일운동이란 것이 만나면 좋고, 만나면 통일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통일운동에 다 기여했다고 보기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범민련은 혹독한 탄압 속에서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고 3자연대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사진은 원천봉쇄를 뚫고 98년 서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 [자료사진-통일뉴스]
단체마다 성격, 다른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2000년대 들어와서 교류협력하는 단체들도 있고, 교류협력이라는 범주에서 보면 대북 지원단체라고 볼 수 있는 단체들이 종교집단으로부터 해서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것이 통일운동에 기여하고, 얼마만큼 보탬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그것도 민족이 화해하고 북에 대한 여러가지 이데올로기, 선입견이 무너지고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측면에서 보면 그것도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보면 분단장벽, 통일의 걸림돌이라고 하는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이 대단합하는 문제다.

민족이 단합한다는 것은 통일 지향성, 단일민족국가를 구성한다는 방향에서 대단결하는 것이 통일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통일운동도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길에서 통일운동에 복무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민족적 입장에서 가장 원칙적으로 해오려고 했던 조직이 3자연대 조직으로 표현됐던 범민련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줄기라고 본다. 핵심적 줄기는 그 방향에서 가는 것이다. 그 줄기 속에서 부문 운동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농민, 노동자, 청년학생, 여성, 종교 집단들이 줄기 속에서 가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가지들이 범민련이라고 하는 줄기 속에서 생기고 발전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 줄기에서 이탈됐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3자연대 운동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범민련의 기본노선은 여전히 정당하고, 공동선언 발표 이후에 그런 정당성들이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3자 연대 운동의 질적 발전이 범민련의 역할"

▲ 09년 2월 28일 진행된 범민련 공동의장단 회의 모습.[자료사진]
□ 2005년 6.15공동위가 결성되고 범민련 역할이나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보나?

■ 그것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범민련이 자기 소임을 다해 나갈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2000년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통일연대가 만들어졌는데, 저는 본질적으로는 통일연대로 모여있던 세력들이 결국 범민련으로 들어와야 하는 조직들이었다. 민화협이나 종단, 시민단체 다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통일운동을 전통적으로 해 왔던 단체, 부문들은 범민련으로 결집했어야 한다. 당시에 범민련이 내부적 분규 과정이 있었고, 또 하나는 범민련에서 이탈됐던 조직들이 스스로 북과 만나고 대화하고 공동행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범민련으로 안 들어온 것이다. 오히려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해서 탄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당시 범민련으로 들어오는게 바람직했냐 안 했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범민련으로 들어왔을때 그런 조직들이 탄압을 이겨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탄압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 조직적 힘이 있었다고 하면 저는 들어왔어야 한다고 본다. 근데 당시 대중 조직들이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다 범민련으로 들어와서 해라고 강하게 하기도 어려운 주체적 여건이 있었지만. 그런 것이 지금 발전되면서 공동위원회로 모여있다고 본다.

공동위는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들이 결집되는 무대인데, 그러면서도 공동위원회 자체는 다양한 세력들이 들어와 있음으로 해서 3자연대 운동을 발전시켜왔던 질적 문제나, 민족의 대단합 하는데 싸워나가야 할 질적 문제로 표현될 수 있을텐데, 6.15공동위원회가 그렇게 모여져서 공동행사를 하지만, 지금 남측위원회를 보면 한계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하면, 여전히 그런 방향에서 범민련이 해 나가야 할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것을 범민련이 역량을 갖추고 잘 해나가는 문제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도 공동위에 들어가서 공동위가 잘 되는 방향에서 연대하고 지지하고 힘을 보태가지만, 역으로 통일운동을 전통적으로 해 왔던 세력들을 규합해서 분단장벽을 허물어나가는 투쟁이 또한 중요하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범민련은 자기 역할이 있다고 본다.

"범민련에 대한 선입관 있어..오히려 통일운동의 대중화 이끌어"

▲09년 5월 17일, 범민련은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금남로까지 제 시민사회단체,대학생들과 함께 '5.18 자주통일대행진'을 진행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범민련 운동 방식이 선명성은 있지만,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 하나는 범민련을 바라보는 선입관이 있다. 1990년대 혹독한 탄압 속에서 이것을 견디고 싸워나가기 위해서는 굉장히 전투적인 투쟁역량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90년대 범민련이 범민족대회를 사수하면서 정치투쟁을 벌여왔던 문제를 대중성이 없는 것인가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통일운동이라고 하면, 범민족대회, 범민련 말고는 뭐가 있냐. 그렇다면 범민련이 그야말로 통일운동을 대중화시켜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성이 없다고 하는 지적은 역으로 보면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잇다고 생각한다. 범민련 노선이 대중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노선인가. 많은 이들과 얘기해보면 다 똑같다. 범민련이 추구해나가는 기본 운동방식이 시민단체와 얘기해도 다르지 않고, 일반인 얘기해도 다 동의되는 얘기다. 그런데 선입관, 또 영상이 1990년대부터 투쟁해 왔던 것으로 남아 있다보니까 범민련은 빡쎄고, 아무나 갈 수 없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다. 2000년대 들어서 여러 노력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런 것 이전에 범민련 하면 선입견으로 다가왔던 측면들이 있다.

▲09년 5월 7일 국정원과 경찰 보안수사대가 서울 남영동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해 전국 23개 사무실 및 가택을 압수수색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또 하나는 여전히 탄압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범민련은 여전히 탄압받고 있기 때문에, '아 범민련은 저래서 탄압을 받지' 이런 생각들이 있다. 우리가 통일운동을 하면서 3자연대 운동에서 나타나는 운동의 통일성 이런 것들에 의해서 범민련하면 친북조직이니 이렇게 표현된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는 친북이니 친남이라는 이런 구분 자체가 실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자기 검열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범민련이 얘기하는 주한미군문제나 전쟁연습 문제가 우리만 얘기하는 것이냐. 연방제 통일이나 6.15 공동선언 2항에서 얘기하고 있는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을 살려서 통일해 나가자고 하는 것을 우리만 얘기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범민련 하면 다 그렇게 생각한다.

"남쪽 정권, 민간 통일운동 체제 내화하려 해"

저는 역사적으로 범민련만큼 통일운동을 대중화시켜 온 단체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어디가 있겠나. 그렇게 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남쪽에 있는 정권은 자꾸 민간 통일운동을 체제 내화 하려고 한다. 자꾸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범위를 넘어서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를 무조건 반대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가면 우리가 얼마든지 도와주고 협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면 우리는 투쟁해 나간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을 무조건 통제하고 탄압하려는 것이다. 일반 대중 조직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통제한다. 이를테면, 공동행사를 할 때 재정을 지원하니 안 하니, 방북했을 때 어디를 가면 되니 안 되니 등의 얘기를 한다. 심하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 부문 조직이나 북하고 대화를 할 때 통로가 없지 않나. 예전에 범민련을 통해서, 범민련은 해외에 공동사무국이 있으니까 통로가 있었다. 예전에는 범민련 통로 말고는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급하면 범민련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정부를 범민련을 통해서 받았다고 접수를 안 받으려고 한다. 그게 다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단체들은 범민련하고 안 하려고 한다. 그런 것이 지금도 여전히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범주, 그런 통제는 통일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많이 반대해 왔던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선명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3자 연대 운동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데 있어서 신념이나 방식 같은게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다르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통일운동 내용 가지고 그럴 것은 아니라고 본다.

▲"범민련은 3자연대 운동과 6.15시대를 발전시킬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09년 8월 15일 열린 민족통일대회.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여러가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범민련이 경직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90년대부터 지키고 싸워오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있는 문제라고 본다면, 통일운동을 해 나가는데 우리는 굉장히 유연하게 하려고 한다. 지역에 가면 공동위의 지방 본부 가면 범민련 일꾼들이 사무국장 등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지방에서 할 때에 여러 인사들로부터 '범민련 애들은 너무 선명하고, 너무 원칙적이라서 못 해'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3자연대 운동과 6.15시대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환경 만드는데 노력"

□ 앞으로 과제는 무엇인가?

■ 20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우리가 가져야 될 것은 3자연대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가 있다. 또 하나는 현 정세다. 남쪽에서 6.15시대가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여러 곡절을 겪는 현실 속에서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2012년 남측에서의 총선, 대선이라는 정치적 격변기에서 어떻게 6.15시대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당면한 최대의 목표라고 본다. 그것을 잘 해나가는 것이 범민련 20돌을 맞이하는 우리들이 가진 자세다.

20돌은 이전 시기를 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정치적 대격변기에서 6.15시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가 과제다.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렇게 하는 데서 선차적인 것이 진보진영의 단결이다. 그것을 돌파하는 힘은 진보진영에서 나온다고 본다.

당면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지만, 2012년에서는 정치적 격변기에서 공동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6.15시대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우리에게 절박한 목표로 놓고 투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적규정 철회, 범민련의 자기 역할 문제와 직결"

□ 매년 '이적규정 철회, 합법화' 구호가 나온다. 실질적으로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 왔나? 범민련이 보는 이적규정은 또 어떤 것인가?

■ 범민련 합법화 문제는 어찌보면 6.15시대의 발전하고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가 발전되지 않고 저절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저절로 범민련이 합법화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적규정 문제, 합법화 문제는 국가보안법 또는 정치적 환경하고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주체 역량을 발전시키느냐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아무리 탄압을 해도 이겨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자기 역할을 다 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합법화라는 것이 법률적으로 이적 규정을 철회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문제이지만, 운동적 측면에서 보면 범민련이 자기 역할을 얼마나 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적규정 문제도 그런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 이적 규정 철회, 합법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간급이 다 차단되었기 때문에 부문 운동이 굉장히 침체되어 있다. 이전에 교류가 활발해질 때는 뭔가 되는 것 같고, 통일운동이 확대되는 것 같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그런 길이 닫히다 보니까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축소되는 것이다. 결국 그 활동이 범민련 이적규정 속에서 해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반미투쟁하고 군사훈련 저지투쟁하고 분단장벽 걸림돌을 제거하는 투쟁을 하고, 이런 것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합법적으로 남북이 오갈 수 잇는 환경이 되면 또 달라질 것이다. 범민련은 불허되고, 그 사람들은 올라가고. 그렇게 될 때 범민련 이적규정이 갖는 것이 굉장히 크게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투쟁을 통해서 확보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고 범민련의 역량을 최대한 강화, 발전시켜서 자기 역할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

"새 정치환경 만들어지면 보안법 철폐 투쟁 가장 먼저 일어날 것"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지면 2004년처럼 보안법 철폐 투쟁은 가장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제기할 것이고, 그때는 이전처럼 기회주의적으로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해나가는 것도 통일세력의 단결과 힘이 그것을 규제하고 강제하고 이끌어나가지 않으면 이전처럼 될 가능성은 또 있다. 그렇게 안 될려면 우리가 얼마만큼 단결된 힘을 통해서 정세를 압도해 나갈 수 있느냐와 직결됐다고 본다.

□ 범민련이 남측 통일운동진영에 바라는 게 있다면?

■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운동했던 역량이 지금보면 통일운동 하면 지금은 일상화된 것이다. 예전처럼 8.15대회를 중심으로 집중투쟁하는 것이 아니고 연초부터 연말까지 일상적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통일운동세력이라고 자처해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계기적으로 움직인다. 6.15, 8.15를 계기로 해서 한번 집중하거나 그때 반짝하는 것을 통일운동을 다 했다고 보면 안 된다. 지금은 자기 조직 역량을 동원해서 일상적으로 얼마나 완강하게 싸워나갈 수 있느냐, 그리고 요구되어질때 모든 세력이 단결해서 힘을 집중해서 정치적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것을 잘 해나가는 것이 통일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그런 투쟁이 잘 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것을 잘 해야 2012년 정세도 돌파해나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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