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인민생활의 결정적 전환”은 과연 가능성 있는가?

북한이 사용하는 “인민생활”이란 표현은 남측표현으로 본다면 “주민생활”, “서민경제”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의 주민생활 수준을 알아야지 올해 북한경제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북한주민생활을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가서, 직접 보는 것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진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훨씬 사실적이다. 이 가운데는 일정기간을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북한전역을 자유롭게 방문하면서 생활을 들여다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북한주민과 대화를 나눠본다든지, 하다못해 그들의 옷차림새나 도로, 주택의 수준을 눈으로 가늠하는 것도 그저 이야기만 듣는 것에 비해 북한의 오늘을 훨씬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이후, 남북교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불행히도 금강산 관광, 평양방문을 비롯한 북한방문은 크게 줄어 현재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는 사실상 2007년을 정점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가 판을 치고 있다. 수많은 반북단체들은 앞다투어 익명의 현지정보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출처불명의 정보를 언론매체에 쏟아놓기 바쁘다. 그러나 이들 정보는 대체로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 통화자의 휴대폰 통화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그 신뢰도가 상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북한에 대한 정보가 워낙 막혀있는 현실에서 필자는 미흡하지만 보수세력이 북한 시장을 촬영하였다고 주장하는 동영상 화면을 분석자료로 삼고자 한다. 물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매체가 보도하는 북한시장에 대한 동영상은 구체적 취재자도 없고 취재시점도 없이 촬영된 속칭 “몰래카메라”이다. 물론 몰래카메라 영상도 조작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영상자체가 가져다주는 사실적 정보 또한 있기 마련이므로 여기에 근거해서 북한주민생활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샴푸에 바나나 까지 거래되는 신의주 채하시장

지난 8월 19일, 조선일보는 북한 신의주 채하시장의 동영상을 단독 입수하였다면서 보도하였다. 이후 9월 7일에는 신의주 수해피해 이후의 채하시장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필자는 신의주에 채하시장이 정말 존재하는지, 조선일보의 동영상이 정말로 채하시장의 거래장면을 촬영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들의 복장과 거리의 형태가 북한도시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판단 속에서, 영상의 장면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조선일보가 8월 19일 보도한 동영상 자료에 의하면 상품진열장에는 갖가지 식품, 공산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조선일보도 “작년 12월 화폐개혁 이후 한산했던 북한 시장(市場)이 최근 화폐개혁 이전보다 더 활황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북한 내부 동영상”이라 평가하고 있다.

영상에 의하면 채하시장에는 일용잡화, 의류, 식품들의 판매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신의주 시장은 각종 일용잡화·의류·식품 등으로 매대가 넘쳐난다.”고 표현하였다. 조선일보는 “공산품은 대부분 중국산이다.”라고 주장하며 “"오마니, 오마니 보시라요" "아저씨 샴푸 안 사요?" 흥정을 하는 상인들과 주민들로 시끌벅적하다.”고 시장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북한사회 내에서 단순 식료품 이외에도 공산품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전자제품, 오토바이 헬멧, 밥솥, 선풍기 등 갖가지 물품을 판매”한다고 표현하였다. 샴푸를 비롯한 생활잡화들이 상당부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량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다양한 공산품이 거래될 수 있을까? 만일 북한주민들의 식량문제가 절박하다면 당분간 머리를 감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샴푸 대신 밀가루 포대를 사야 맞다. 한국의 시장에서도 샴푸는 800ml 한통에 5000원에 거래되는데 이 돈이면 밀가루 4kg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영상에 의하면 갖가지 물품들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모습은 시장에서 바나나, 복숭아, 자두 등 과일류도 거래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냉대기후에 가까워 바나나는 커녕 귤도 재배되지 못하는데 조선일보는 바나나를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속칭 “몰래카메라”에 잡힌 바나나는 북한당국이 선전용으로 전시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북한주민들의 실수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바나나는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수입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바나나가 저렴한 과일이다. 그러나 이는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대규모 수입에 의한 효과일 뿐 수입관세를 부과하던 8-90년대에 바나나는 사과나 배에 비해서 분명히 귀한 과일이었다. 북한도 열대지방 국가와 FTA를 체결한 사실이 없으니 북한주민들에게 바나나는 귀한 열대과일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북한주민들의 식생활에 대해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해왔는데 귀한 열대과일이 거래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을 알았는지 조선일보는 탈북자의 말을 빌어 “신의주 채하동은 부자동네”라고 덧붙인다. 마치도 서울의 도곡동과 같은 부자동네의 모습이니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입에 풀칠하기 힘들어도 신의주 채하동에는 바나나, 복숭아도 있고 샴푸도 있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주장도 궁색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북한의 신의주는 평양에서 15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데다 인구도 30만명 수준의 중소도시이다. 설령 북한에 부유층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30만명의 중소도시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소비시장을 형성하기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다. 물론 한국에도 인구 10만명 규모의 중산층 밀집지역인 경기도 과천시가 있기는 하지만 과천도 하나의 독립된 도심지라기보다는 인구 2000만명의 광범위한 수도권에서 행정기능이 분화된 특화도시로 보는 것이 맞다.

인구 30만명의 독립된 경제권이라면 전라북도 익산시나 강원도 원주시 정도의 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거래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한국에서도 익산이나 원주에 일반주민들은 범접할 수 없고 부유층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있을 리 없다. 결국 신의주 시장의 모습은 북한의 “부자동네”가 아닌 북한의 일반주민들의 생활모습이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신의주 주민들의 생활 수준

SBS가 9월 7일에 공개한 신의주 지역의 다른 동영상을 보면 북한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생생히 나타나 있다.

물론 주택이 침수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은 임시천막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압록강 인근 신의주에서는 6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압록강 맞은편인 중국 단둥시에서도 상당한 수해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영상은 평양이 아닌 북한의 중소규모 지역도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석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해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을 촬영한 이 영상을 보면 논이 펼쳐진 농촌지역인데 농로는 비포장된 상태이지만 인근지역에 저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아파트 단지 지역은 도로포장이 완료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동영상의 곳곳에 자전거를 탄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볼 때, 북한주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포크레인과 트럭, 오토바이도 눈에 띄는데 포크레인과 트럭은 주민들이 직접 이용하는 장비라기 보다는 수해복구를 위해 지원된 장비인 듯 판단된다.

다만 100cc 급으로 추정되는 오토바이는 동영상 내에서도 일반 북한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된다. 이는 곧 북한 내에서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가솔린의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2명이 탑승한 경우에도 탑승자가 모두 보호헬멧을 쓰고 있는 바 북한에서도 오토바이 헬멧착용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민들의 의복은 남성들의 경우 여전히 검은색, 짙은 고동색 등 의복이 주를 이루지만 여성들의 경우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의복들이 눈에 띄며 굽높이가 5cm를 넘는 하이힐 구두를 신은 여성들도 눈에 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물탱크 차량이 물을 판매하는 모습이 목격되는데 이는 수해로 인해 해당지역의 상수도시설이 일시적으로 가동중단된 데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신의주에 상수도 시설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조선일보의 “채하시장”의 동영상을 보면 “샤와기” 꼭지를 판매하는 상인이 보이는데 이는 북한에서도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퍼서 사용하던 방식에서 샤워기를 통해 직접 수도를 이용하는 단계로 진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샤와기”의 판매는 신의주에 상수도 시설이 온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판단근거로 될 수 있다. 물탱크의 식수판매는 상수도 시설의 일시적 가동중단에 따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인터뷰

이 대목에서 지난 2월 25일 신동아가 취재한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인터뷰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국적을 가져 방북이 자유로운 박상권 사장은 평양시내의 보통강호텔과 남포시를 오가며 남북 합작 기업인 평화자동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161번, 지난해엔 14번 평양에 다녀온 박 사장은 한국인 중 북한을 가장 많이 오가는 기업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신동아의 보도에 따르면 박상권 사장은 북한에서 자동차조립공장, 주유소, 호텔을 경영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Fiat) 모델을 조립해 ‘휘파람’ ‘뻐꾸기’ ‘삼천리’란 브랜드로 판다. 지난해 1300대를 팔았고, 올해는 1800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는 북한의 경제사정에 대해 “제가 직접 상점을 둘러보고 사진도 다 찍어왔습니다. 평양에서 그런 사진 찍는 남쪽 사람 별로 없어요. 사과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고, 다 잘 돌아가요. 주민들이 호주머니에서 북한 돈을 꺼내 물건을 구입합니다. 저는 북한 돈이 없지 않습니까? 북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 돼지고기, 사과, 소시지를 한아름 샀습니다. 백화점에도 생필품이 넉넉하게 진열돼 있고요.”라고 인터뷰하였다.

박상권 사장은 화폐개혁 이후 평양주민들의 반응에 대해 “화폐개혁으로 손해 본 일부 사람은 불만이 있겠지요. 대다수 주민은 화폐개혁 덕분에 구매력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좋아하죠.”라고 발언하며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2010 북한주민경제

신의주 지역의 동영상과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 인터뷰라는 복수의 자료를 통해 판단할 때 북한의 생필품 공급은 평양시와 지방중소도시를 아울러 크게 무리가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북한농촌지역과 산간지역의 분석은 향후에 더욱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부가 1999년 1월 탈북자와 방북자 등 500명에 대한 면담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여 개의 북한 시․군․구역에 약 300~350여 개 이상의 장마당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개의 시장에는 주민수에 따라 900석~2000석의 매대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신의주 채하시장은 특별히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라기보다는 북한 전역에 걸쳐 있는 300여개의 시장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물론 신의주는 중국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국경지역이므로 중국제품들이 넘어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종 공산품들이 평양과 신의주에서만 활발히 거래되고 그 외 지역에서는 거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논리의 비약이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주민들의 구매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하였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하였다는 주장은 출처가 불분명한 익명이 제보자인데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출처가 분명한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이 제기하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 확실한 것은 직접 북한에 건너가 확인해봐야 밝혀질 수 있다.

남북의 교류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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