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겨레하나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사진-전북겨레하나]
남측이 북 신의주에 100억원 상당의 긴급구호 물자를 지원하고 북측이 이산가종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봄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런 기대감이 번지는 가운데 전북겨레하나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이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하고 이희호 여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9월 11일 오후 2시 30분부터 청소년평화통일기자단 30여명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홀에서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간담회를 주선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전북겨레하나의 김은경 상임대표, 방용승 공동대표, 김성희 사무처장 등이 동석했다.

몰래 소설책 읽고 야식 먹던 여학교 기숙사 시절 그리워

기자단의 박수와 환호 속에 이희호 여사가 입장한 후 김은경 상임대표와 노민정 청소년기자(전북여고 2)가 기자단을 소개하고 초청에 사의를 표했다.

이희호 여사는 청소년들 앞에서 자신의 여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밤 10시면 불을 꺼야 하는 기숙사에서 이불 속에 들어가 불빛을 감춰가며 밤새 소설책을 읽던 기억, 작은 상자에 줄을 매달아 수위에게 과자를 사서 넣어달라고 부탁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풀어갔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동생을 돌보거나 일찌감치 시집을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며 좋은 시대에 태어났으니 꿈을 더 크게 꾸라고 권유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 풀 수 있는 건 6.15공동선언 뿐

청소년 기자들은 아흔을 바라보는 전 영부인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궁금한 점을 쏟아 놓았다.

창수란 기자(전주여고 2)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방법을 묻자 이희호 여사는 “6자회담이 열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과거로 돌아갔고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국방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며 답답해했다.

6.15공동선언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던 남편의 뜻이 정부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생각한 듯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할 능력도 없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 어려움을 타개할 방법은 6.15공동선언에서 약속한 것을 서로 지키는 것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렵게 사는 북녘 동포 보면 연민 느껴

▲박하은 청소년기자.(근영여고2) [사진-전북겨레하나]

북한 방문의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박하은 기자(근영여고2)에게는 헐벗은 산을 보고 안타까왔던 이야기부터 해주었다. 또 건물에 유리창 대신 신문지 같은 것을 끼워 놓았고 그나마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더라고도 말했다.

특히 남쪽 아이들에 비해 몹시 왜소한 북측의 어린 군인들을 보니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나는 바람에 저들이 저토록 고생을 하는구나”라는 생가을 했다며 연거푸 “참 안됐다”고 했다.

그런 측은지심이 있어 최근 이희호 여사는 추위를 많이 탔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털목도리 300개를 떠서 북녘 어린이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투석받던 남편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 후회스러워

서재인 청소년기자(유일여고 2)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이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했다. 이 여사는 답변 도중 가끔씩 생각에 잠기며 남편을 회고했다.

한 때 돈을 꽤 버는 사업가였던 남편이 국회의원 선거에 돈을 다 써버리고 가난해졌을 무렵 결혼을 했다. 그 후 격랑의 한국 현대사 중심에 있다 보니 함께 앉아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서거 2년 전부터 다소 한가해져서 밤이면 침대에 앉아 대화도 하고 옛 노래도 함께 부르는 여유를 가졌다고 한다.

한 가지 후회가 되는 것은 다섯 시간씩 걸리는 투석을 받을 때 곁을 지켜주지 않고 나가서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했던 점이다.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며 회한에 잠기기도 했다.

여성들이여, 쉬지 말고 공부하고 당당하게 주장하라!

“여성운동가로서 여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달라”는 박지숙 청소년기자(한일고 3)의 요청을 받자 이희호 여사는 금세 활기에 찼다. 국내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씨와 여성운동을 했던 일이며 여성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운동에 참여했던 일들을 소개했다.

“요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시험을 봐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과연 여성 장관이 몇 명이고 여성 국회의원들이 몇이나 되는가?”, “쉬지 않고 공부하되 당당하게 주장하여 권리를 찾으라”며 여학생들을 격려했다. 망국적인 지역 감정을 타파하기 위해 결혼은 경상도 남자랑 하라는 농담도 던졌다.

간담회를 마친 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여사님, 저랑 사진 찍어요!” 너도나도 핸드폰 사진을 찍자며 이희호 여사를 에워싸자 경호원들이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이희호 여사는 응석받이 손녀들을 바라보듯 그들의 요구에 응하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북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는 TV 뉴스가 전해졌다. 청소년 기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자단은 김대중도서관 내부에 전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둘러보기도 했다.  [사진-전북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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