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 1년에 두 차례나, 그것도 지난 5월에 이어 3개월여 만에 방중길에 올랐을까? 이번 방중은 그 자체로 단독적인 사안이라기보다는 지난 5월 방중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까지 가지 않았고, 게다가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이 27일 창춘(長春)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 위원장의 동선(動線)이 중국의 동북지역인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이번 방중의 두 가지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지린에서 김일성 주석의 모교인 위원(毓文)중학교와 베이산(北山)공원을 찾았으며 이어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하얼빈(哈爾濱)과 무단장(牧丹江)을 각각 찾은 것이다. 이들 지역은 각각 김 주석의 항일운동과 북중연합이 형성된 곳이다. 북한판 ‘혁명성지’ 순례라 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중국 동북진흥계획의 핵심사업인 이른바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지역을 순회한 것이다. 즉, 김 위원장은 26일 지린성 지린시를 거쳐 27일 창춘에 도착해 거기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고, 30일 투먼(圖們)을 거쳐 귀국했다. 중국의 창지투 개발지역과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와의 경제결합이 상정되는 대목이다.
혁명성지 순례와 경제개발지역 순회. 이는 북한이 ‘혁명과 건설’을 자체 힘으로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거꾸로 말해 당분간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한과의 관계 회복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이같이 ‘방향 전환’을 한 이유는 현재 한미공조로 형성된 천안함 국면, 즉 대북 제재국면에서는 미국이든 남한이든 간에 관계 개선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 아울러 2009년 8월 김정일-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시도한 대외 유화정책을 접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 같은 방향 전환의 기조를 2012년까지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방중에서 보여준 ‘혁명성지 순례와 경제개발지역 순회’가 이를 웅변적으로 시사한다. 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한 해이고 동시에 미국과 남한에서 대선이 있는 해이다. 이제 2012년을 향한 ‘북한 대 남한’, ‘북한 대 미국’ 사이의 힘겨루기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고, 미국과 남한에서는 대북 화해적인 정부가 들어서길 바랄 것이다. 그때까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겠다는 것이다.